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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은 [[슐리펜 계획]]에 따라 [[벨기에]]를 침공하였고, 이는 [[영국]]의 참전을 불러왔다.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은 [[벨기에]] 국경의 요새에서 며칠을 소요하긴 하였으나, 기술의 발전에 따른 넓은 구경의 높은 화력의 포로 요새를 함락시켰다. 요새를 무시하고 진격한 독일의 군대는 빠르게 [[벨기에]]를 점령하고 이후 남진하여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의 [[파리]]를 향해 진격하였다.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는 [[제17계획]]과 그로 인한 [[엘자스-로트링겐]]에서의 패배로 큰 손실을 가진 상태였고, [[영국 원정군]]과의 [[벨기에]] 전선에서 패배를 거듭했다.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군 총사령관 [[조제프 조프르]]는 군대를 퇴각시켜 재정비 후 반격을 가한다는 계획을 구상하다 이를 폐기하고 위치 사수를 명했다. 비록 프랑스군은 사기를 잃지 않았으나, 독일군은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윽고 [[파리]] 근방의 [[마른 강]]에서의 전투에서 프랑스군과 [[영국 원정군]]을 궤멸시킴으로써 [[파리]]를 점령하고 [[우익 공세]]로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 북부를 잠식해 나감으로써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 서부의 전쟁을 종결시킨다.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은 [[슐리펜 계획]]에 따라 [[벨기에]]를 침공하였고, 이는 [[영국]]의 참전을 불러왔다.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은 [[벨기에]] 국경의 요새에서 며칠을 소요하긴 하였으나, 기술의 발전에 따른 넓은 구경의 높은 화력의 포로 요새를 함락시켰다. 요새를 무시하고 진격한 독일의 군대는 빠르게 [[벨기에]]를 점령하고 이후 남진하여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의 [[파리]]를 향해 진격하였다.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는 [[제17계획]]과 그로 인한 [[엘자스-로트링겐]]에서의 패배로 큰 손실을 가진 상태였고, [[영국 원정군]]과의 [[벨기에]] 전선에서 패배를 거듭했다.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군 총사령관 [[조제프 조프르]]는 군대를 퇴각시켜 재정비 후 반격을 가한다는 계획을 구상하다 이를 폐기하고 위치 사수를 명했다. 비록 프랑스군은 사기를 잃지 않았으나, 독일군은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윽고 [[파리]] 근방의 [[마른 강]]에서의 전투에서 프랑스군과 [[영국 원정군]]을 궤멸시킴으로써 [[파리]]를 점령하고 [[우익 공세]]로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 북부를 잠식해 나감으로써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 서부의 전쟁을 종결시킨다.
[[동프로이센]]에 대해 [[러시아]]는 신속한 동원령을 통해 [[쾨니히스베르크]]를 위협했으나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열세인 독일군에 패해 후퇴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태양 아래서)|오스트리아-헝가리]]는 [[갈리치아]] 지역에서 공세를 개시했다 패배하여 [[프레미셀]]의 요새에 11만명의 병력이 포위되었다. 이후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에 대한 공세로 큰 타격을 입었으나 재정비 후 이들의 공격을 격퇴시켜 진격함으로써 [[프레미셀]]의 병력을 구출하는 데는 성공하였다. 이후 [[러시아]]의 공세에 [[갈리치아]]를 잃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태양 아래서)|오스트리아-헝가리]]는 [[드리나 강]]을 넘어 [[베오그라드]]를 향해 진격하였다. 개전 당시 3개의 군은 [[갈리치아]]에서의 대패로 인해 1개 군이 차출되었다. 그럼에도 병력의 차이는 여전하였으나 [[세르비아]]는 [[세르]]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태양 아래서)|오스트리아-헝가리]]는 [[드리나 강]]으로 퇴각한다. 이러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향해 [[세르비아]]는 [[드리나 강]]을 건너 공격을 개시했으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공격을 중지하였고, [[오스트리아-헝가리 (태양 아래서)|오스트리아-헝가리]]는 재정비 후 다시 [[드리나 강]]을 건너기 시작하였다. [[콜루바라 강]]에서 패배한 [[세르비아]]는 [[베오그라드]]를 버리고 내륙 깊숙히서 재정비 후 재탈환을 목표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 (태양 아래서)|오스트리아-헝가리]]의 공세와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의 항복으로 인한 지원 단절로 인해 큰 피해를 입는다.


== <center>'''Erster Zwischenkriegszeit'''<br /><small><small>제1차 전간기</small></small></center> ==
== <center>'''Erster Zwischenkriegszeit'''<br /><small><small>제1차 전간기</small></small></center> ==

2021년 7월 27일 (화) 23:16 판

제1차 세계 대전 1914.7.28. - 1915.7.9.
프랑스인 소요 1916. ~ 1917.
제3차 발칸 전쟁 1916.9.22. ~ 12.12.
플로레알 27일의 쿠데타 1917.5.16. ~ 5.18.
제2차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1918.
캅카스 내전 1918.10.10. ~ 11.4.
포르투갈 왕정복고 1919.1.8.
수에즈 사태 1919.4. ~ 5.
인도 독립 1919.10.7.
대영제국 붕괴 1919.11. ~ 12.
오스만 전쟁 1920.4.11. ~ 11.3.
러시아 내전 1921.1.8. ~ 1928.10.3.
힌두 장교 쿠데타 1921.7.7. ~ 7.20.
네덜란드 혁명 1922.11.10. ~ 12.5.
네덜란드 코뮌 1922.12.5.
프랑스 코뮌 혁명 1923.5.1. ~ 7.9.
카이세리 쿠데타 1925.8.8.
아나톨리아 선포 1925.8.10.
프레사 델 포타레 1924.4.6.
리우 왕당파 혁명 1924.11.15.
포르투갈-브라질 1924.11.17.
1월 쿠데타 1925.1.2.
세르비아 전쟁 1924.2.1. ~ 1925.10.10.
오스트리아-헝가리 내전 1925.7.12. ~ 1925.10.10.
헝가리-세르비아 전쟁 1925.10.10. ~ 1926.1.10.
에르데이 전쟁 1925.12.20. ~ 1926.3.21.
빈 조약 1926.1.18.
검은 금요일 1926.4.6.
피우수트스키 쿠데타 1928.6.30.
폴란드 제2공화국 선포 1928.7.3.
프랑스 제4공화국 선포 1929.5.18.
안트베르펜 혁명 1929.8.1.
벨기에 내전 1929.8.21. ~ 9.14.
강철 조약 체결 1930.1.11.
베오그라드 동맹 1930.3.13.
제4차 발칸 전쟁 1931.6.29. ~ 11.18.
비아리스토크 점령 1932.11.11.
비아리스토크 합병 1932.11.24.
스페인 내전 1933.7.7. ~ 1935.12.4.
튀르키스탄 침공 1933.8.8. ~ 1933.11.10.
10월 쿠데타 1934.10.10.
폴란드-리투아니아 선포 1934.12.7.
군부동맹 1935.8.2.
리가 사건 1936.1.18.
제2차 세계 대전 1936.3.4. ~ 1941.9.18.
포니아토프스키 사건 1942.12.8. ~ 19.
마아양가 사건 1942.10.2 ~ 20.
이스라엘 건국 1943.4.6.
에게 해 학살 1944.2.19. ~ 4.10.
10월 3일 사건 1944.10.3.
핀란드 내전 1944.10.3. ~
빌냐 소요 1945.6.6. ~ 9.
발트 민족 무장사건 1945.6.7. ~ 1946.1.7.
벨라루스 서부 사태 1945.6.7. ~ 1947.
9월 쿠데타 1945.9.5.
발트 병합 1947.1.18.

Erster Weltkrieg
제1차 세계 대전

1914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차기 황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폰 외스터라이히에스테 대공이 그의 아내 초피 초테크 폰 호헨베르크 여공작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동통치령 사라예보를 방문했다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인 가브릴로 프린치프에 의해 암살당하면서 유럽은 7월 위기라 불리는 사태를 겪게 된다. 약 한달뒤, 독일에게서 백지수표를 받은 오스트리아-헝가리는 꽤나 가혹한 조건의 최후통첩을 세르비아에게 보낸다. 세르비아는 갑자기 최후통첩을 거절하였고, 결국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세르비아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그 이후 독일프랑스러시아에게 동원령의 해제와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으나, 프랑스러시아는 이에 답하지 않았고, 결국 8월 3일, 프랑스러시아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독일슐리펜 계획에 따라 벨기에를 침공하였고, 이는 영국의 참전을 불러왔다. 독일벨기에 국경의 요새에서 며칠을 소요하긴 하였으나, 기술의 발전에 따른 넓은 구경의 높은 화력의 포로 요새를 함락시켰다. 요새를 무시하고 진격한 독일의 군대는 빠르게 벨기에를 점령하고 이후 남진하여 프랑스파리를 향해 진격하였다. 프랑스제17계획과 그로 인한 엘자스-로트링겐에서의 패배로 큰 손실을 가진 상태였고, 영국 원정군과의 벨기에 전선에서 패배를 거듭했다. 프랑스군 총사령관 조제프 조프르는 군대를 퇴각시켜 재정비 후 반격을 가한다는 계획을 구상하다 이를 폐기하고 위치 사수를 명했다. 비록 프랑스군은 사기를 잃지 않았으나, 독일군은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윽고 파리 근방의 마른 강에서의 전투에서 프랑스군과 영국 원정군을 궤멸시킴으로써 파리를 점령하고 우익 공세프랑스 북부를 잠식해 나감으로써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 서부의 전쟁을 종결시킨다.

동프로이센에 대해 러시아는 신속한 동원령을 통해 쾨니히스베르크를 위협했으나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열세인 독일군에 패해 후퇴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갈리치아 지역에서 공세를 개시했다 패배하여 프레미셀의 요새에 11만명의 병력이 포위되었다. 이후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에 대한 공세로 큰 타격을 입었으나 재정비 후 이들의 공격을 격퇴시켜 진격함으로써 프레미셀의 병력을 구출하는 데는 성공하였다. 이후 러시아의 공세에 갈리치아를 잃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드리나 강을 넘어 베오그라드를 향해 진격하였다. 개전 당시 3개의 군은 갈리치아에서의 대패로 인해 1개 군이 차출되었다. 그럼에도 병력의 차이는 여전하였으나 세르비아세르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오스트리아-헝가리드리나 강으로 퇴각한다. 이러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향해 세르비아드리나 강을 건너 공격을 개시했으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공격을 중지하였고,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재정비 후 다시 드리나 강을 건너기 시작하였다. 콜루바라 강에서 패배한 세르비아베오그라드를 버리고 내륙 깊숙히서 재정비 후 재탈환을 목표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공세와 프랑스의 항복으로 인한 지원 단절로 인해 큰 피해를 입는다.

Erster Zwischenkriegszeit
제1차 전간기

Zweiter Weltkrieg
제2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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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itgeschich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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