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아래서 타임라인: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8번째 줄: 18번째 줄:


=== Vertag <span style="font-size: 75%;">조약</span> ===
=== Vertag <span style="font-size: 75%;">조약</span> ===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가 항복하고 난 이후 만신창이가 된 [[파리]]에서 조약이 체결된다.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 [[영국 (태양 아래서)|영국]], [[벨기에 (태양 아래서)|벨기에]], [[룩셈부르크]]를 대상으로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태양 아래서)|오스트리아-헝가리]], 그리고 극후반에 참전한 [[이탈리아 (태양 아래서)|이탈리아]]가 참여했다. 조약은 전체적으로 [[9월 계획]]에 따라 [[룩셈부르크]], [[벨기에 (태양 아래서)|벨기에]]] 동부, [[로트링겐]]은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에게 합병되었으며, [[이탈리아 (태양 아래서)|이탈리아]]는 니차와 사보이아를 합병한다. [[벨기에 (태양 아래서)|벨기에]]]는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의 영향력 하에 들어가 대신 [[파드칼레]]를 합병한다.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 동부의 광할한 지역은 비무장화되었다. 유럽 외의 지역에서는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의 식민지가 대규모로 확장되어 [[독일령 동아프리카]]와 [[독일령 카메룬]]이 [[독일령 중앙아프리카 (태양 아래서)|독일령 중앙아프리카]]로 합병되고 [[독일령 노이기니아 (태양 아래서)|독일령 노이기니아]]는 [[독일령 오세아니아]]로 변한다. [[모로코]]가 독립하였으며, 1900년대 이루어진 모든 동맹들은 해체되었고, 더해서 [[영일 동맹]]도 해체되었다. [[영국 (태양 아래서)|영국]]은 식민지를 잃거나 하지 않았지만 전세계에 대한 패권이 종식되었다.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가 항복하고 난 이후 만신창이가 된 [[파리]]에서 조약이 체결된다.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 [[영국 (태양 아래서)|영국]], [[벨기에 (태양 아래서)|벨기에]], [[룩셈부르크]]를 대상으로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태양 아래서)|오스트리아-헝가리]], 그리고 극후반에 참전한 [[이탈리아 (태양 아래서)|이탈리아]]가 참여했다. 조약은 전체적으로 [[9월 계획]]에 따라 [[룩셈부르크]], [[벨기에 (태양 아래서)|벨기에]] 동부, [[로트링겐]]은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에게 합병되었으며, [[이탈리아 (태양 아래서)|이탈리아]]는 니차와 사보이아를 합병한다. [[벨기에 (태양 아래서)|벨기에]]]는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의 영향력 하에 들어가 대신 [[파드칼레]]를 합병한다.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 동부의 광할한 지역은 비무장화되었다. 유럽 외의 지역에서는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의 식민지가 대규모로 확장되어 [[독일령 동아프리카]]와 [[독일령 카메룬]]이 [[독일령 중앙아프리카 (태양 아래서)|독일령 중앙아프리카]]로 합병되고 [[독일령 노이기니아 (태양 아래서)|독일령 노이기니아]]는 [[독일령 오세아니아]]로 변한다. [[모로코]]가 독립하였으며, 1900년대 이루어진 모든 동맹들은 해체되었고, 더해서 [[영일 동맹]]도 해체되었다. [[영국 (태양 아래서)|영국]]은 식민지를 잃거나 하지 않았지만 전세계에 대한 패권이 종식되었다.


슬라브 국가와의 조약은 독일과의 관계가 깊은 [[리가]]에서 이뤄졌다. [[러시아 제국 (태양 아래서)|러시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대상으로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참여했다. 역시나 [[9월 계획]]에 따라 조약이 이루어졌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발트 연합공국]],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북캅카스]], [[그루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핀란드]] 등이 독립함으로써 [[러시아 제국 (태양 아래서)|러시아]]는 광대한 영토를 잃는다.또한 병력은 150개 사단에서 60개 사단으로 보유를 제한받는다. [[발칸 반도]]의 [[몬테네그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태양 아래서)|오스트리아-헝가리]]의 일원으로 합병당했으며, [[세르비아]]는 [[7월 최후통첩]]의 내용이 수용되었다.
슬라브 국가와의 조약은 독일과의 관계가 깊은 [[리가]]에서 이뤄졌다. [[러시아 제국 (태양 아래서)|러시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대상으로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참여했다. 역시나 [[9월 계획]]에 따라 조약이 이루어졌다. [[폴란드 (태양 아래서)|폴란드]], [[리투아니아]], [[발트]],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캅카스]],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핀란드 (태양 아래서)|핀란드]] 등이 독립함으로써 [[러시아 제국 (태양 아래서)|러시아]]는 광대한 영토를 잃는다.또한 병력은 150개 사단에서 60개 사단으로 보유를 제한받는다. [[발칸 반도]]의 [[몬테네그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태양 아래서)|오스트리아-헝가리]]의 일원으로 합병당했으며, [[세르비아]]는 [[7월 최후통첩]]의 내용이 수용되었다.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의 [[빈트후크]]에서 [[포르투갈]]과의 조약이 체결되었다.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은 [[파리 조약 (1915년)|파리 조약]]으로 공식적으로 패권국으로 인정 받은 만큼 [[포르투갈]]과의 조약에서 높은 단계의 요구사항을 관철해낼 수 있었다. 아프리카 전선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머쥐고 있던 [[포르투갈]]은 [[포르투갈령 앙골라]]와 [[포르투갈령 모잠비크]] 북부를 빼앗기게 된다. [[일본 제국 (태양 아래서)|일본]]은 [[협상국]]이 모두 항복한 이후에도 계속 전쟁 상태를 유지하였다. [[일본 제국 (태양 아래서)|일본]]과의 전쟁은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였고 양측 모두 전쟁 상태의 유지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제1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대전]]이 종전되고 난 뒤 1년이 지난 [[1916년]] [[5월 11일]]에서야 [[도쿄]]에서 [[일본 제국 (태양 아래서)|일본]]이 단지 소규모의 배상금만 지불하기로 하면서 아시아에서의 전쟁까지 끝이 난다.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의 [[빈트후크]]에서 [[포르투갈]]과의 조약이 체결되었다.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은 [[파리 조약 (1915년)|파리 조약]]으로 공식적으로 패권국으로 인정 받은 만큼 [[포르투갈]]과의 조약에서 높은 단계의 요구사항을 관철해낼 수 있었다. 아프리카 전선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머쥐고 있던 [[포르투갈]]은 [[포르투갈령 앙골라]]와 [[포르투갈령 모잠비크]] 북부를 빼앗기게 된다. [[일본 제국 (태양 아래서)|일본]]은 [[협상국]]이 모두 항복한 이후에도 계속 전쟁 상태를 유지하였다. [[일본 제국 (태양 아래서)|일본]]과의 전쟁은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였고 양측 모두 전쟁 상태의 유지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제1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대전]]이 종전되고 난 뒤 1년이 지난 [[1916년]] [[5월 11일]]에서야 [[도쿄]]에서 [[일본 제국 (태양 아래서)|일본]]이 단지 소규모의 배상금만 지불하기로 하면서 아시아에서의 전쟁까지 끝이 난다.
26번째 줄: 26번째 줄:
== <center>'''Erster Zwischenkriegszeit'''<br /><small><small>제1차 전간기</small></small></center> ==
== <center>'''Erster Zwischenkriegszeit'''<br /><small><small>제1차 전간기</small></small></center> ==
=== 1916 ===
=== 1916 ===
[[파리 조약 (1915년)|파리 조약]]은 [[1916년]] [[1월 1일]] 공표되었다. 그와 동시에 효력을 가져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 동부의 영토들은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 [[벨기에 (태양 아래서)|벨기에]], [[이탈리아]] 등에 합병되었다. 조약에 따라 합병될 지역들에는 이미 [[동맹국]]의 군대가 군정을 진행 중이였으며, 조약의 공표와 함께 새 지역 행정부가 수립되었다. 단 하루만에 국적이 바뀐 전 프랑스인들은 특별한 연대가 없었어도 빠른 시위를 일으킨다.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에 합병된 지역은 새롭게 수립된 [[로트링겐 제국령]]에 저항하였고, [[벨기에 (태양 아래서)|벨기에]]]에 합병된 지역은 [[왈롱 지역]]의 지배에 저항하였다. 가장 큰 저항은 [[이탈리아]]에서 발생했다. 앞선 두 곳은 이미 많은 수의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의 군대가 주둔중인 지역으로 조직적인 무력 진압에 빠르게 무너져내렸으나, [[이탈리아]]는 초반의 대응을 실패하여 큰 소요 사태로 확대시킨다. [[코르시카]]의 소요는 세 지역 중 가장 빠르게 종료되었으나 [[사보이아]]와 [[니스]]의 소요는 [[1917년]]까지 이어지게 된다.
[[파리 조약 (1915년)|파리 조약]]은 [[1916년]] [[1월 1일]] 공표되었다. 그와 동시에 효력을 가져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 동부의 영토들은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 [[벨기에 (태양 아래서)|벨기에]], [[이탈리아 (태양 아래서)|이탈리아]] 등에 합병되었다. 조약에 따라 합병될 지역들에는 이미 [[동맹국]]의 군대가 군정을 진행 중이였으며, 조약의 공표와 함께 새 지역 행정부가 수립되었다. 단 하루만에 국적이 바뀐 전 프랑스인들은 특별한 연대가 없었어도 빠른 시위를 일으킨다.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에 합병된 지역은 새롭게 수립된 [[로트링겐 제국령]]에 저항하였고, [[벨기에 (태양 아래서)|벨기에]]에 합병된 지역은 [[왈롱 지역]]의 지배에 저항하였다. 가장 큰 저항은 [[이탈리아 (태양 아래서)|이탈리아]]에서 발생했다. 앞선 두 곳은 이미 많은 수의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의 군대가 주둔중인 지역으로 조직적인 무력 진압에 빠르게 무너져내렸으나, [[이탈리아 (태양 아래서)|이탈리아]]는 초반의 대응을 실패하여 큰 소요 사태로 확대시킨다. [[코르시카]]의 소요는 세 지역 중 가장 빠르게 종료되었으나 [[사보이아]]와 [[니스]]의 소요는 [[1917년]]까지 이어지게 된다.


[[1915년]] [[10월 1일]]에 체결된 [[리가 조약]]은 [[1916년]] [[6월 6일]]에 공표되었다. 공표와 동시에 [[러시아 제국 (태양 아래서)|러시아]]의 동부에 위치하던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의 군정들에서 독립국이 세워졌으며, 동시에 [[중앙유럽 동맹]]에 가입하고 친독 정부 혹은 괴뢰정부가 수립되었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발트]], [[우크라이나]], [[조지아]] 등 대부분의 독립국이 군주제를 표방했으며, [[우크라이나 헤트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독일계 인물이 군주에 즉위했다. [[폴란드]]에는 [[빌헬름 2세]]의 둘째 왕자인 [[프리에드리흐 1세]](아이텔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왕자), [[리투라이나]]는 [[민다가우스 2세]](빌헬름 카를 폰 우라흐 공작), [[발트]]는 [[아돌프 프리드리히 추 메클렌부르크 대공자]], [[우크라이나]]는 [[파울로 스코로파즈키]], [[조지아]]는 [[프레데리흐 1세]](요아힘 폰 프로이센 왕자)가 군주를 지녔다. 그 외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캅카스]] 등은 공화정이 세워졌다.
[[1915년]] [[10월 1일]]에 체결된 [[리가 조약]]은 [[1916년]] [[6월 6일]]에 공표되었다. 공표와 동시에 [[러시아 제국 (태양 아래서)|러시아]]의 동부에 위치하던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의 군정들에서 독립국이 세워졌으며, 동시에 [[중앙유럽 동맹]]에 가입하고 친독 정부 혹은 괴뢰정부가 수립되었다. [[폴란드 (태양 아래서)|폴란드]], [[리투아니아]], [[발트]], [[우크라이나]], [[조지아]] 등 대부분의 독립국이 군주제를 표방했으며, [[우크라이나 헤트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독일계 인물이 군주에 즉위했다. [[폴란드 (태양 아래서)|폴란드]]에는 [[빌헬름 2세]]의 둘째 왕자인 [[프리에드리흐 1세]](아이텔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왕자), [[리투라이나]]는 [[민다가우스 2세]](빌헬름 카를 폰 우라흐 공작), [[발트]]는 [[아돌프 프리드리히 추 메클렌부르크 대공자]], [[우크라이나]]는 [[파울로 스코로파즈키]], [[조지아]]는 [[프레데리흐 1세]](요아힘 폰 프로이센 왕자)가 군주를 지녔다. 그 외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캅카스]] 등은 공화정이 세워졌다.


[[제2차 발칸 전쟁]] 이후 [[불가리아]]는 패배를 복수하기 위해 군비를 증강하고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의 지원을 받았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1차 세계 대전]]이 종전하고 난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태양 아래서)|오스트리아-헝가리]]는 다른 슬라브 국가를 견제하고 동맹을 얻기 위해 [[불가리아]]를 지원하였다. 두 게르만 국가로부터 여러 지원을 받은 [[불가리아]]는 [[1916년]] [[9월 22일]], [[세르비아]], [[루마니아]], [[그리스]]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세르비아]]는 [[제1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1차 세계 대전]]에서의 패전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비무장화되었으며 이 때문에 몇 주만에 [[베오그라드]]가 함략되며 항복하였다. 남북의 양 전선을 가지게 된 [[불가리아]]는 잠시 고전하였으나 [[루마니아]]의 공격을 돈좌시키고 [[솔룬]](테살로니키)을 함략, [[라리사]]까지 진격한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태양 아래서)|오스트리아-헝가리]]가 중재국을 자처하여 [[사라예보 조약]]이 체결된다.
[[제2차 발칸 전쟁]] 이후 [[불가리아]]는 패배를 복수하기 위해 군비를 증강하고 [[독일 (태양 아래서)|독일]]의 지원을 받았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1차 세계 대전]]이 종전하고 난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태양 아래서)|오스트리아-헝가리]]는 다른 슬라브 국가를 견제하고 동맹을 얻기 위해 [[불가리아]]를 지원하였다. 두 게르만 국가로부터 여러 지원을 받은 [[불가리아]]는 [[1916년]] [[9월 22일]], [[세르비아]], [[루마니아]], [[그리스]]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세르비아]]는 [[제1차 세계 대전 (태양 아래서)|제1차 세계 대전]]에서의 패전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비무장화되었으며 이 때문에 몇 주만에 [[베오그라드]]가 함략되며 항복하였다. 남북의 양 전선을 가지게 된 [[불가리아]]는 잠시 고전하였으나 [[루마니아]]의 공격을 돈좌시키고 [[솔룬]](테살로니키)을 함략, [[라리사]]까지 진격한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태양 아래서)|오스트리아-헝가리]]가 중재국을 자처하여 [[사라예보 조약]]이 체결된다.

2021년 7월 31일 (토) 09:59 판

제1차 세계 대전 1914.7.28. - 1915.7.9.
프랑스인 소요 1916. ~ 1917.
제3차 발칸 전쟁 1916.9.22. ~ 12.12.
플로레알 27일의 쿠데타 1917.5.16. ~ 5.18.
제2차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1918.
캅카스 내전 1918.10.10. ~ 11.4.
포르투갈 왕정복고 1919.1.8.
수에즈 사태 1919.4. ~ 5.
인도 독립 1919.10.7.
대영제국 붕괴 1919.11. ~ 12.
오스만 전쟁 1920.4.11. ~ 11.3.
러시아 내전 1921.1.8. ~ 1928.10.3.
힌두 장교 쿠데타 1921.7.7. ~ 7.20.
네덜란드 혁명 1922.11.10. ~ 12.5.
네덜란드 코뮌 1922.12.5.
프랑스 코뮌 혁명 1923.5.1. ~ 7.9.
카이세리 쿠데타 1925.8.8.
아나톨리아 선포 1925.8.10.
프레사 델 포타레 1924.4.6.
리우 왕당파 혁명 1924.11.15.
포르투갈-브라질 1924.11.17.
1월 쿠데타 1925.1.2.
세르비아 전쟁 1924.2.1. ~ 1925.10.10.
오스트리아-헝가리 내전 1925.7.12. ~ 1925.10.10.
헝가리-세르비아 전쟁 1925.10.10. ~ 1926.1.10.
에르데이 전쟁 1925.12.20. ~ 1926.3.21.
빈 조약 1926.1.18.
검은 금요일 1926.4.6.
피우수트스키 쿠데타 1928.6.30.
폴란드 제2공화국 선포 1928.7.3.
프랑스 제4공화국 선포 1929.5.18.
안트베르펜 혁명 1929.8.1.
벨기에 내전 1929.8.21. ~ 9.14.
강철 조약 체결 1930.1.11.
베오그라드 동맹 1930.3.13.
제4차 발칸 전쟁 1931.6.29. ~ 11.18.
비아리스토크 점령 1932.11.11.
비아리스토크 합병 1932.11.24.
스페인 내전 1933.7.7. ~ 1935.12.4.
튀르키스탄 침공 1933.8.8. ~ 1933.11.10.
10월 쿠데타 1934.10.10.
폴란드-리투아니아 선포 1934.12.7.
군부동맹 1935.8.2.
리가 사건 1936.1.18.
제2차 세계 대전 1936.3.4. ~ 1941.9.18.
포니아토프스키 사건 1942.12.8. ~ 19.
마아양가 사건 1942.10.2 ~ 20.
이스라엘 건국 1943.4.6.
에게 해 학살 1944.2.19. ~ 4.10.
10월 3일 사건 1944.10.3.
핀란드 내전 1944.10.3. ~
빌냐 소요 1945.6.6. ~ 9.
발트 민족 무장사건 1945.6.7. ~ 1946.1.7.
벨라루스 서부 사태 1945.6.7. ~ 1947.
9월 쿠데타 1945.9.5.
발트 병합 1947.1.18.

Erster Weltkrieg
제1차 세계 대전

1914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차기 황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폰 외스터라이히에스테 대공이 그의 아내 초피 초테크 폰 호헨베르크 여공작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동통치령 사라예보를 방문했다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인 가브릴로 프린치프에 의해 암살당하면서 유럽은 7월 위기라 불리는 사태를 겪게 된다. 약 한달뒤, 독일에게서 백지수표를 받은 오스트리아-헝가리는 꽤나 가혹한 조건의 최후통첩을 세르비아에게 보낸다. 세르비아는 갑자기 최후통첩을 거절하였고, 결국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세르비아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그 이후 독일프랑스러시아에게 동원령의 해제와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으나, 프랑스러시아는 이에 답하지 않았고, 결국 8월 3일, 프랑스러시아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독일슐리펜 계획에 따라 벨기에를 침공하였고, 이는 영국의 참전을 불러왔다. 독일벨기에] 국경의 요새에서 며칠을 소요하긴 하였으나, 기술의 발전에 따른 넓은 구경의 높은 화력의 포로 요새를 함락시켰다. 요새를 무시하고 진격한 독일의 군대는 빠르게 벨기에]를 점령하고 이후 남진하여 프랑스파리를 향해 진격하였다. 프랑스제17계획과 그로 인한 엘자스-로트링겐에서의 패배로 큰 손실을 가진 상태였고, 영국 원정군과의 벨기에] 전선에서 패배를 거듭했다. 프랑스군 총사령관 조제프 조프르는 군대를 퇴각시켜 재정비 후 반격을 가한다는 계획을 구상하다 이를 폐기하고 위치 사수를 명했다. 비록 프랑스군은 사기를 잃지 않았으나, 독일군은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윽고 파리 근방의 마른 강에서의 전투에서 프랑스군과 영국 원정군을 궤멸시킴으로써 파리를 점령하고 우익 공세프랑스 북부를 잠식해 나감으로써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 서부의 전쟁을 종결시킨다.

동프로이센에 대해 러시아는 신속한 동원령을 통해 쾨니히스베르크를 위협했으나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열세인 독일군에 패해 후퇴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갈리치아 지역에서 공세를 개시했다 패배하여 프레미셀의 요새에 11만명의 병력이 포위되었다. 이후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에 대한 공세로 큰 타격을 입었으나 재정비 후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바르샤바를 향해 공세를 개시함으로써 바르샤바를 함략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프레미셀에서 11만명의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구출한다. 이후 우치를 향해 공세를 개시했으나 러시아의 반격에 패배하여 돈좌된다.

오스트리아-헝가리드리나 강을 넘어 베오그라드를 향해 진격하였다. 개전 당시 3개의 군은 갈리치아에서의 대패로 인해 1개 군이 차출되었다. 그럼에도 병력의 차이는 여전하였으나 세르비아세르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오스트리아-헝가리드리나 강으로 퇴각한다. 이러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향해 세르비아드리나 강을 건너 공격을 개시했으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공격을 중지하였고,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재정비 후 다시 드리나 강을 건너기 시작하였다. 콜루바라 강에서 패배한 세르비아베오그라드를 버리고 내륙 깊숙히서 재정비 후 재탈환을 목표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공세와 프랑스의 항복으로 인한 지원 단절로 인해 큰 피해를 입는다.

아프리카에서 독일의 식민지들은 빠르게 점령되어갔으나, 독일령 동아프리카파울 폰 레토포어베크는 전쟁이 끝날때까지 유격전을 펼쳤다. 아시아 지역에서도 독일의 식민지들은 협상국에 의해 점령되었다. 독일령 자모아뉴질랜드에, 독일령 노이기니아오스트레일리아에, 독일령 키아우초우일본에 의해 점령되었다. 한편 동아시아 함대의 드레스덴급 중순양함 SMS 엠덴은 인도양 지역에서 협상국 상선에 대해 통상파괴 작전을 실행하여 인도양을 마비시키기도 하였다.

1915

새해 1월부터 독일은 공세를 개시하였다. 포위의 위기 속에서 러시아의 10군은 20만의 피해를 입고 포위망을 탈출하는데는 성공하였으나 네만 강까지 전선을 물린다. 이후 독일갈리치아의 회복을 위해 슐레지엔에서의 소규모 공세를 개시했으나 서부 전선의 군대가 참전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또한 가담하여 대규모 공세로 변화되어 러시아령 폴란드를 점령하고 드네르프 강까지 진격한다. 독일군이 상트페테르부르크 50km 앞까지 전진하자 러시아는 항복한다. 남부 전선에서도 오스트리아-헝가리는 공세를 개시하였다. 세르비아 또한 재정비의 시간을 가졌던 만큼 격렬히 저항하였으나 화력의 열세로 마케도니아까지 후퇴한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몬테네그로를 공격하여 1주일만에 항복시켰고, 세르비아 전역을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Vertag 조약

프랑스가 항복하고 난 이후 만신창이가 된 파리에서 조약이 체결된다. 프랑스, 영국,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대상으로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그리고 극후반에 참전한 이탈리아가 참여했다. 조약은 전체적으로 9월 계획에 따라 룩셈부르크, 벨기에 동부, 로트링겐독일에게 합병되었으며, 이탈리아는 니차와 사보이아를 합병한다. 벨기에]는 독일의 영향력 하에 들어가 대신 파드칼레를 합병한다. 프랑스 동부의 광할한 지역은 비무장화되었다. 유럽 외의 지역에서는 독일의 식민지가 대규모로 확장되어 독일령 동아프리카독일령 카메룬독일령 중앙아프리카로 합병되고 독일령 노이기니아독일령 오세아니아로 변한다. 모로코가 독립하였으며, 1900년대 이루어진 모든 동맹들은 해체되었고, 더해서 영일 동맹도 해체되었다. 영국은 식민지를 잃거나 하지 않았지만 전세계에 대한 패권이 종식되었다.

슬라브 국가와의 조약은 독일과의 관계가 깊은 리가에서 이뤄졌다. 러시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대상으로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참여했다. 역시나 9월 계획에 따라 조약이 이루어졌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발트,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캅카스,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핀란드 등이 독립함으로써 러시아는 광대한 영토를 잃는다.또한 병력은 150개 사단에서 60개 사단으로 보유를 제한받는다. 발칸 반도몬테네그로오스트리아-헝가리의 일원으로 합병당했으며, 세르비아7월 최후통첩의 내용이 수용되었다.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빈트후크에서 포르투갈과의 조약이 체결되었다. 독일파리 조약으로 공식적으로 패권국으로 인정 받은 만큼 포르투갈과의 조약에서 높은 단계의 요구사항을 관철해낼 수 있었다. 아프리카 전선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머쥐고 있던 포르투갈포르투갈령 앙골라포르투갈령 모잠비크 북부를 빼앗기게 된다. 일본협상국이 모두 항복한 이후에도 계속 전쟁 상태를 유지하였다. 일본과의 전쟁은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였고 양측 모두 전쟁 상태의 유지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대전이 종전되고 난 뒤 1년이 지난 1916년 5월 11일에서야 도쿄에서 일본이 단지 소규모의 배상금만 지불하기로 하면서 아시아에서의 전쟁까지 끝이 난다.

Erster Zwischenkriegszeit
제1차 전간기

1916

파리 조약1916년 1월 1일 공표되었다. 그와 동시에 효력을 가져 프랑스 동부의 영토들은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 등에 합병되었다. 조약에 따라 합병될 지역들에는 이미 동맹국의 군대가 군정을 진행 중이였으며, 조약의 공표와 함께 새 지역 행정부가 수립되었다. 단 하루만에 국적이 바뀐 전 프랑스인들은 특별한 연대가 없었어도 빠른 시위를 일으킨다. 독일에 합병된 지역은 새롭게 수립된 로트링겐 제국령에 저항하였고, 벨기에에 합병된 지역은 왈롱 지역의 지배에 저항하였다. 가장 큰 저항은 이탈리아에서 발생했다. 앞선 두 곳은 이미 많은 수의 독일의 군대가 주둔중인 지역으로 조직적인 무력 진압에 빠르게 무너져내렸으나, 이탈리아는 초반의 대응을 실패하여 큰 소요 사태로 확대시킨다. 코르시카의 소요는 세 지역 중 가장 빠르게 종료되었으나 사보이아니스의 소요는 1917년까지 이어지게 된다.

1915년 10월 1일에 체결된 리가 조약1916년 6월 6일에 공표되었다. 공표와 동시에 러시아의 동부에 위치하던 독일의 군정들에서 독립국이 세워졌으며, 동시에 중앙유럽 동맹에 가입하고 친독 정부 혹은 괴뢰정부가 수립되었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발트, 우크라이나, 조지아 등 대부분의 독립국이 군주제를 표방했으며, 우크라이나 헤트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독일계 인물이 군주에 즉위했다. 폴란드에는 빌헬름 2세의 둘째 왕자인 프리에드리흐 1세(아이텔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왕자), 리투라이나민다가우스 2세(빌헬름 카를 폰 우라흐 공작), 발트아돌프 프리드리히 추 메클렌부르크 대공자, 우크라이나파울로 스코로파즈키, 조지아프레데리흐 1세(요아힘 폰 프로이센 왕자)가 군주를 지녔다. 그 외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캅카스 등은 공화정이 세워졌다.

제2차 발칸 전쟁 이후 불가리아는 패배를 복수하기 위해 군비를 증강하고 독일의 지원을 받았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이 종전하고 난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다른 슬라브 국가를 견제하고 동맹을 얻기 위해 불가리아를 지원하였다. 두 게르만 국가로부터 여러 지원을 받은 불가리아1916년 9월 22일, 세르비아, 루마니아, 그리스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세르비아제1차 세계 대전에서의 패전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비무장화되었으며 이 때문에 몇 주만에 베오그라드가 함략되며 항복하였다. 남북의 양 전선을 가지게 된 불가리아는 잠시 고전하였으나 루마니아의 공격을 돈좌시키고 솔룬(테살로니키)을 함략, 라리사까지 진격한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중재국을 자처하여 사라예보 조약이 체결된다.

1917

러시아의 최대 곡물 생산지인 우크라이나가 독립하게 됨에 따라 일시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린다. 이는 1915년 한 해의 생산량 또한 줄어 든 것과 합쳐져 러시아에서 대규모 기근이 발생하게 된다. 기근은 대도시에서 더욱 심각하여 식량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 일부 농부들은 부를 축적하기도 하였다. 러시아 전체 인구 1억명 중 최소 5백만 명에서 최대 2500만명까지 아사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러시아 정부는 리가 조약의 배상금 지불의 문제로 해당 사항에 큰 예산을 투자하지 못하였고, 부족한 예산에 부정부패로 대부분의 예산이 빼돌려지면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매우 적어진다. 여러 악재들로 겨우 사용된 예산들은 대부분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주변의 기아를 위해 사용되었다. 기근으로 인해 민심은 하락하였으며, 구제받지 못한 지역들에서는 반정부 단체들이 지지를 받기 시작하였고, 이들 중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 가장 큰 지지를 얻는다.

1918

1919

1920

Zweiter Weltkrieg
제2차 세계 대전

Zweiter Zwischenkriegszeit
제2차 전간기

Dritter Weltkrieg
제3차 세계 대전

Zeitgeschichte
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