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란스케세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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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 개요 ==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 center;" width="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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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background:#F5F5F5; color:#000000;" "text-align:right;" | [[파일:Lori-0004739663-1000.jpg|480px]]<br/><small>연방의 수도인 [[블라디보스토크 연방시]]의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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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란스케세이는 1995년, 새롭게 개정된 [[트란스케세이 연방법]]에 따라 법적으로 성립된 [[민주주의]] [[연방제]] 국가이다. [[연방 총리(트란스케세이)|연방 총리]]가 상징적인 국가 원수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연방 평의회(트란스케세이)|연방 평의회]]를 통한 [[내각의원제]]를 지향하고 있다.
트란스케세이는 1995년, 새롭게 개정된 [[트란스케세이 연방법]]에 따라 법적으로 성립된 [[민주주의]] [[연방제]] 국가이다. [[연방 총리(트란스케세이)|연방 총리]]가 상징적인 국가 원수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연방 평의회(트란스케세이)|연방 평의회]]를 통한 [[내각의원제]]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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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국들에 비해 적은 인구와 비교적 가혹한 기후 환경에도 불구하고, [[트란스케세이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사회주의 정권]] 시절부터 추진한 [[비동맹 운동]]의 영향을 받아 [[동구권]]과 [[서방권]] 사이에서 각각의 이득이 되는 정책을 취해왔고,<ref group="주">이런 박쥐 같은 행동으로 [[스탈린]]의 심기를 건드린 나머지 당시 [[아르테미 유수포프]] 연방 대통령과 [[드미트리 골릿신]] 연방 총리가 [[코민포름]]에서 영구 제명되고 [[매카시즘]] 열풍에 있던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ref> 이들의 경제적 지원과 원조를 통해 경제 산업을 발전시켜 왔다. 특히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해 [[동아시아]]의 물류 허브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사할린]] 지역에서 산출되는 [[천연가스]]와 [[석유]] 산업의 호황에 힘입어 경제 성장이 지속화되고 있다.
주변국들에 비해 적은 인구와 비교적 가혹한 기후 환경에도 불구하고, [[트란스케세이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사회주의 정권]] 시절부터 추진한 [[비동맹 운동]]의 영향을 받아 [[동구권]]과 [[서방권]] 사이에서 각각의 이득이 되는 정책을 취해왔고,<ref group="주">이런 박쥐 같은 행동으로 [[스탈린]]의 심기를 건드린 나머지 당시 [[아르테미 유수포프]] 연방 대통령과 [[드미트리 골릿신]] 연방 총리가 [[코민포름]]에서 영구 제명되고 [[매카시즘]] 열풍에 있던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ref> 이들의 경제적 지원과 원조를 통해 경제 산업을 발전시켜 왔다. 특히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해 [[동아시아]]의 물류 허브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사할린]] 지역에서 산출되는 [[천연가스]]와 [[석유]] 산업의 호황에 힘입어 경제 성장이 지속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아시아의 다섯 마리 용]]으로 분류되던 [[신흥 공업국]]이었으나 현재는 [[WTO]]와 [[OECD]]에 가입한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한민국]]과 함께 [[G20]]에도 참여하는 등 국제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 총소득]](GDP)은 55,000 달러에 달해 [[세계은행]]에서 고소득 국가로 분류하고 있고, [[인간 개발 지수]](HDI)도 세계 20위로 '매우 높음'으로 분류되었다. 그외에 [[개발 원조 위원회]](DAC), [[파리 클럽]] 등의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 국가 상징 ==
== 국가 상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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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란스케세이의 국기는 주로 '''연방기'''({{llang|ru|Флаг Федеральные земли}})로 불린다. 5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오색기를 채택하고 있으며, 순서대로 초록색은 '''평화'''를, 흰색은 '''자유'''를, 하늘색은 '''희망'''을, 노란색은 '''통합'''을, 빨강색은 '''용맹'''을 의미한다.
트란스케세이의 국기는 주로 '''연방기'''({{llang|ru|Флаг Федеральные земли}})로 불린다. 5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오색기를 채택하고 있으며, 순서대로 초록색은 '''평화'''를, 흰색은 '''자유'''를, 하늘색은 '''희망'''을, 노란색은 '''통합'''을, 빨강색은 '''용맹'''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국기의 색들이 연방을 구성하는 민족들을 지칭했다. 초록색은 [[우크라이나인]]을, 흰색은 [[한국인]]을, 하늘색은 [[러시아인]]을, 노란색은 [[퉁구스족]]<ref group="주">처음에는 [[만주인]]을 지칭했으나, [[퉁구스어]]를 사용하는 [[시베리아]] 소수 민족들에 대한 권익 정책이 추진되면서 넓게 포괄되어 불렀다.</ref>들을, 붉은색은 [[중국인]]을 의미했다. [[대타결]] 이후에는 민족의 개별성을 강조하는 대신 연방의 통합과 정체성을 확립하면서 그 의미가 위와 같이 변경되었다.
과거에는 국기의 색들이 연방을 구성하는 주요 민족들을 지칭했다. 초록색은 [[우크라이나인]]을, 흰색은 [[한국인]]을, 하늘색은 [[러시아인]]을, 노란색은 [[퉁구스족]]<ref group="주">처음에는 [[만주인]]을 지칭했으나, [[퉁구스어]]를 사용하는 [[시베리아]] 소수 민족들에 대한 권익 정책이 추진되면서 넓게 포괄되어 불렀다.</ref>들을, 붉은색은 [[중국인]]<ref group="주">[[트란스케세이 내전]] 이후 대다수의 중국계 국민들이 자진하여 본토로 귀국하면서 일시적으로 [[유대인]]을 상징하기도 했다.</ref>을 의미했다. [[대타결]] 이후에는 민족의 개별성을 강조하는 대신 연방의 통합과 정체성을 확립하면서 그 의미가 위와 같이 변경되었다.


국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트란스케세이의 국기]] 문서를 참조.
국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트란스케세이의 국기]] 문서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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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타결]]과 연방 체제의 성립 ===
=== [[대타결]]과 연방 체제의 성립 ===
{{본문|대타결}}
{{본문|대타결|한인 독립운동|콜차크그라드 폭동}}


=== [[샨타르 독립운동]]과 연방의 현황 ===
=== [[샨타르 독립운동]]과 연방의 현황 ===
{{본문|샨타르 독립운동}}
{{샨타르 공화국 국기}}
{{샨타르 공화국 국기}}
[[폐쇄도시]]였던 [[샨타르스키예 제도]]({{llang|ru|Шанта́рские острова}})는 농업 진흥 및 황무지 개척을 명목으로 다수의 [[니브흐인]]들이 강제로 이주하여 [[집단 농장]] 혹은 [[굴라그]]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강제 이주를 겪은 니브흐인들은 권리 보장을 요구했으나 묵살되었으며, 도리어 경찰 기관이었던 [[내무인민위원회]]가 주도하고 [[트란스케세이 공산당 정치국]]이 승인한 [[노동절 학살]]({{llang|ru|Первое мая расстрел}})로 수많은 사람들이 총살되는 등 수모를 겪었다.
[[트란스케세이 내전]] 동안에도 그들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았으며, [[대타협]] 이후에도 소수 민족 권익에 대한 보장은 입으로만 주장되었다. 이에 샨타르스키예 제도에 남아있던 니브흐인들은 연방 정부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고, 자치권 확보를 주장하는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류드밀라 페실로바]]({{llang|ru|Людмила пэсильлова}})를 중심으로 한 급진파들이 과격 모험주의를 추구하며 [[니브흐 해방군]]을 조직하고 무장 투쟁을 선언하며 사태는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끝내 2001년 6월에 니브흐 해방군이 샨타르스키예 제도를 이루던 [[벨리치 섬]]({{llang|ru|Остров Беличий}})을 순찰하던 연방 해상경찰들을 사살하고 [[샨타르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직접적인 충돌이 발생했다. 이에 맞서 연방 정부가 경찰 및 군인들로 구성된 10만 명의 진압 병력을 파견하여 대규모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샨타르 공화국]]의 대통령을 자처한 류드밀라 페실로바는 [[레분 기습]]을 일으켜 거주하던 [[일본인]]·[[아이누인]] 등의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일부를 납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은 [[해상자위대]]를 통해 [[라페루즈 해협|소야 해협]] 일대에 기뢰를 설치하고 [[니브흐 해적]]들이 이끌던 불법 어선들을 통제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러시아]]와 [[미합중국]]은 각기 공군 및 해상 병력을 파견했다. 11월에 다국적 군대로 구성된 진압군이 [[우츠카야 만 작전]]과 [[추미칸 상륙작전]]을 통해 [[오호츠크 해]] 일대를 장악하면서 점령지 및 보급로를 유지할 수 없게 된 샨타르 공화국은 내부 지도층의 붕괴로 페실로바 대통령이 피살되고 항복을 선언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샨타르 사태는 [[한인 독립운동]], [[콜차크그라드 폭동]] 이후로도 개선할 기미가 보이지 않던 민족 정책에 대한 방조가 [[강대국]]들의 개입과 연방의 근간을 흔들수 있던 [[민족주의]] 문제를 야기했음을 시인하는 것이었다. [[연방민(트란스케세이)|연방민]]들은 무능력한 정부에 분노를 표출했고, 근본적인 해결책 대신 일시적인 미봉책만 내세우는데 급급하며 [[트란스케세이의 정치|연방 정부]]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던 [[연방민주당]]은 이 사태로 전면적인 당 쇄신을 선언했으며, [[콘스탄틴 로스토프]] 연방 총리는 책임을 지고 퇴임했다. 이후 [[연방기록원]]과 [[샨타르 사태 조사위원회]]의 공조 아래, 면밀히 인과 관계를 조사하면서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기 시작했으며, 새롭게 취임한 [[보리스 간티무로프]] 연방 총리의 주도로 다민족주의 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이 실시되었다.
== 교육 ==
{{본문|트란스케세이의 교육|예게}}
[[트란스케세이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사회주의 정부]] 시절에는 [[소련]]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과 연계 교육 과정 실시로 상당한 수준의 공교육이 유지되었고, 높은 교육의 질이 보장되었으나, [[소련 해체]]와 함께 [[민주공화정]]과 [[자본주의]]를 채택하면서 공교육 중심으로 운영되던 교육 체제가 사립화를 추구함에따라 큰 변혁을 겪었다.
한때 수준 높은 교육을 보장받던 연방의 교육이었던 것이 무색하게, [[북한]]의 영향을 받아 [[김부자 교과서]]와 상당히 유사한 교과서인 [[극동 혁명사]]를 채택했던 바 있다. [[아르테미 유수포프]] 연방 대통령의 독재 체제를 공고화하는 한편, [[공산주의]] 이념과 목표에 따라 계급 의식을 가르치고, 공산주의 인간으로 육성하며 또한 집단주의 원칙의 준수를 요구했던 [[우상화 교육]]의 일환이었다. 1979년에 유수포프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에 [[집단지도체제]]로 변화함에따라 우상화 정책이 폐지되면서 '3·6·6학년제'에 따른 평준화 교육 제도가 실시되었다.
사교육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으나, 연방 정부에서 추진하는 교육 복지 정책은 [[핀란드]]와 유사하다. 백년대계로 불리는 교육의 중요성이 커진만큼,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측정되는 트란스케세이의 높은 평가는 교육 체제가 잘 관리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내신 [[절대평가]]를 실시하는 트란스케세이의 교육은  '학업 성취도'의 주안점을 두며, 성적에 따른 [[상대평가]]는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학력의 차이를 무시한 평등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아니다. [[중학교]] 교육에서는 성적이 낮은 학생이 특별 학급에 배정되거나, 보충 수업을 받는다. 이렇게 학력을 차별화하여, 저학력 학생에 대한 개별 교육으로 뒤떨어진 학업 성취도를 보충해 주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6년제로 운영되는 [[인문 고등학교]]와 [[직업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겐 핀란드의 [[아비투어]]와 비슷한 [[예게]]({{llang|ru|ЕГЭ}})라는 대입 시험을 응시할 수 있게 된다. 1년에 3번에 걸쳐 시험이 실시되며, 복수 시험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중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결과를 통해 일반 [[대학교]] 혹은 [[산업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된다.
이때문에 트란스케세이는 교육 복지 분야에서 높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전반적인 학생들의 수준, 학위의 공급, 교육 접근의 평등성, 가계에 압력으로 작용하는 비용 부담까지 모든 측면에서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이다.


== 각주 ==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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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해 ==
== 주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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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6일 (월) 22:22 기준 최신판


러시아어: Зелёный Клин
우크라이나어: Закитайщина
이디시어: טראַנסקאַץ
트란스케세이 연방국
Federal States of Transcathay
沿海聯邦國
국가 평화를 향하여
(영어: Towards peace, 중국어: 向平和歌)
국목 토끼풀
(영어: Clover, 중국어: 三叶草)
표어 우린 평화를 놓치 않으리.
(중국어: 我們不會錯過和平)
(영어: We will not miss peace)
수도 포염 연방시 (浦塩聯邦市, 북위 43° 08′동경 131° 54′)
최대도시 솔빈시 (率賓市, 북위 43° 48′동경 131° 58′)
면적 791,538‬‬ km2 (아시아 10위, 세계 38위, 아시아 1.77%)

인문 환경


인구 전체 인구 6,520,844‬명(2020)
민족 구성 러시아인 47%, 한국인 28%, 우크라이나인 10.4%, 중국인 6.8%, 기타 민족 7.8%
인구 밀도 8.23명/km2(2020)
출산율 2.54명(2020)
출생 인구 103,864‬명(2020)
기대 수명 83세(2020)
공용어 러시아어, 한국어, 우크라이나어 등등
공용 문자 키릴 문자, 한글, 히브리 문자 등등
종교 국교 없음(정교분리)
정교회 35.6%, 불교 14.8%, 유대교 4.7%, 기타 44.9%
군대 트란스케세이 연방군
(영어: Federal States Armed Forces)
세부
군대
육군 트란스케세이 연방지상군
(영어: Federal T.C Ground Forces)
주방위군
(영어: State Defense forces)
해군 트란스케세이 연방해군
(영어: Federal T.C Navy)
극동함대
(영어: Far-East Fleet)
트란스케세이 해군보병대
(영어: T.C Naval Infantry)
공군 트란스케세이 연방항공우주군
(영어: Federal T.C Aerospace Forces)
트란스케세이 항공우주방위군
(영어: T.C Aerospace Defence Forces)
기타 트란스케세이 전략로켓군
(영어: T.C Strategic Rocket Forces)
트란스케세이 공수부대
(영어: T.C Airborne Troops)
한인 황실근위대
(영어: Korean Imperial Bodyguard)

행정구역


행정구역 자치국 3개 자치국
주 / 군 23개 주 / 187개 군
특수 행정구역 자치구 8개 자치구
연방시 포염 연방시, 백단 연방시

정치


정치 체제 국민주권제, 민주주의(대의제), 연방제, 정교분리, 양원제, 다당제, 성문법주의(대륙법계 혼합), 부분군주제
민주주의 지수 5.97 (혼합된 체제)
연방 총리
(Federal Chancellor)
알렉산드르 벨로프
(Алекса́ндр Белов, 2018~현재)
연방 부총리
(Federal Vice-Chancellor)
일리야 리센코
(Ілля Лисенко, 2018~현재)
내각 상원 의장 레오니트 마르첸코
(Леони́д Марченко)
하원 의장 에밀 홀로바티
(Емі́ль Головатий)
연방 대법원장 안드레이 아멜린
(Андрей Амелин)
내무부 장관 라시트 알레힌
(Рашид Але́хин)
외무부 장관 이츠하크 카우프만
(יִצְחָק קויפמן)
방위부 장관 블라디미르 리
(Владимир Ри)
법무부 장관 이호르 바비악
(Ігор Бабіак)
산업통상부 장관 최세현
(Цойсехён)
정보과학부 장관 이반 스미르노프
(Иван Cмирно́в)
연방교통부 장관 알렉세이 구왈갸
(Алексей Гуальгия)
여당 자유연방당(FAP)
연립 정당 트란스케세이 인민민주당(PDPTC)

경제


경제 체제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소유권 절대의 원칙, 사적 자치의 원칙, 과실 책임의 원칙
명목
GDP
전체 GDP $3,753억
1인당 GDP $57,553
GDP
(PPP)
전체 GDP $3,619억
1인당 GDP $55,498
수출
입액
수출 $1,283억
수입 $834억
외환보유고 $2,754억
신용등급 무디스 Aa3
S&P AA
Fitch AA-
화폐 공식화폐 트란스케세이 루블(루블과 1:1 등가 협정)
ISO-4217 TCD, TC$
국가
예산
1년 세입 $824억
1년 세출 $841억

코드와 단위


ccTLD .tc(국제화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
ISO 3166-1 645, TC, FTC
국제 전화 코드 +89
단위 법정연호 서력기원, 일세일원제(카레야 자치국 한정)
시간대 UTC+10(트란스케세이 표준시)
도량형 SI 단위
날짜형식 yyyy-mm-dd
운전석
(통행방향)
왼쪽(우측통행)

외교


유엔 가입 1945년 10월 25일
유엔 회원국
승인 여부
193개국 승인
수교국 188개국 수교
(이란, 북마케도니아 등 미교류)

트란스케세이 연방국(영어: Federal States of Transcathay, 우크라이나어: Федеративна Закитайщина, 러시아어: Федеральные Штаты Закитайщина), 줄여서 트란스케세이(영어: Transcathay, 우크라이나어: Закитайщина, 러시아어: Закитайщина)는 아무르 강태평양 사이 러시아 극동 지역에 위치한 연방 국가이다. 러시아, 중화인민공화국, 북한과 영토를 맞닿고 있으며, 라페루즈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일본과 접하고 있다.

1917년 적백내전으로 중앙 권력이 공백화된 틈을 타서 프리모르스키하바롭스크 중남부를 중심으로 젤레나 우크라이나라는 이름으로 독립국이 건립되었다. 이후 알렉산드르 콜차크 제독이 이끌던 전러시아 임시정부시베리아 남서부에 위치한 옴스크에서의 항전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하여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잔존 백군 세력을 규합하면서 극동 우크라이나인들과 연계하여 시베리아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그 후 시베리아 정권을 돕기 위해 일본 제국시베리아 출병을 선언하자 직접적인 마찰을 피하고자 했던 볼셰비키 정권이 1922년에 일소 극동조약을 체결함에따라 완충국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

1928년 자유시 혁명으로 친소 정권이 수립되면서 일시적인 통합 무드가 제시되었으나, 일본의 정치 개입과 시민들의 대대적인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후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여 미합중국이 추진한 무기대여법의 도움을 받아 북태평양 전역에서 일본군 병력을 극동에 묶어두는 역할을 맡았다. 허나 소련만주 전략 공세 작전과 함께 정세 안정 및 전리품 확보를 목적으로 극동 전쟁을 일으키면서 트란스케세이를 침공했고, 아무르강 전투에서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민간인 피해가 확대될 것을 우려한 군사 정권이 항복을 선언하면서 트란스케세이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으로 공산화되었다.

1946년부터 수립된 공산 정권은 독재 체제를 공고화하고 극동 핵 위기 등의 국제 분쟁을 야기했다. 결국 1989년부터 촉발된 동유럽 혁명과 몽골의 민주화의 영향을 받은 클로버 혁명으로 공산 독재 정권이 붕괴되면서 자본주의민주주의를 채택한 연방제를 실시하게 되었다. 하지만 1991년, 중국계 정착자들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복고 및 중국으로의 합병을 계획하면서 벌어진 트란스케세이 내전이 1995년까지 이어지면서 또다른 상처를 입었다.

내전 이후에도 한인 독립운동, 콜차크그라드 폭동 등의 사회 혼란이 지속되었다. 이에 민족계 대표들간의 회담을 통해 대타결이 선언되어 자치국, 자치주가 대거 편성되면서 연방 사회는 새롭게 개편되었다.

수차례에 걸친 전란과 사회 혼란으로 연방 사회는 여러 번 위기를 맞닥뜨려야 했다. 이에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거치며, 트란스케세이 거주민들은 '연방민'이라는 하나의 뚜렷한 공동체 정체성을 확립해나갔고, 이는 곧 연방 공동체의 단결이 중시되는 다민족 사회로서의 현재 모습이 완성되었다.

개요


연방의 수도인 블라디보스토크 연방시의 시내.

트란스케세이는 1995년, 새롭게 개정된 트란스케세이 연방법에 따라 법적으로 성립된 민주주의 연방제 국가이다. 연방 총리가 상징적인 국가 원수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연방 평의회를 통한 내각의원제를 지향하고 있다.

연방민들의 직접 선거를 통해 상원하원이 구성되는 입법부 체제를 구상하고 있고, 일부 행정 구역에서는 입헌군주제[주 1]직접민주주의[주 2]가 실시되는 등 다양한 정치 복합체가 공존하고 있다.

연방 수도는 블라디보스토크 연방시(러시아어: Город федерального значения Владик)[주 3]이며, 최대 도시는 우수리스크(러시아어: Уссурийск)[주 4]다. 수도와 최대 도시가 상대적으로 연방 남부 지역에 포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주 5]

주변국들에 비해 적은 인구와 비교적 가혹한 기후 환경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정권 시절부터 추진한 비동맹 운동의 영향을 받아 동구권서방권 사이에서 각각의 이득이 되는 정책을 취해왔고,[주 6] 이들의 경제적 지원과 원조를 통해 경제 산업을 발전시켜 왔다. 특히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해 동아시아의 물류 허브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사할린 지역에서 산출되는 천연가스석유 산업의 호황에 힘입어 경제 성장이 지속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아시아의 다섯 마리 용으로 분류되던 신흥 공업국이었으나 현재는 WTOOECD에 가입한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한민국과 함께 G20에도 참여하는 등 국제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 총소득(GDP)은 55,000 달러에 달해 세계은행에서 고소득 국가로 분류하고 있고, 인간 개발 지수(HDI)도 세계 20위로 '매우 높음'으로 분류되었다. 그외에 개발 원조 위원회(DAC), 파리 클럽 등의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가 상징

국호

공식 국명은 트란스케세이 연방국(영어: Federal States of Transcathay)이다. 시베리아 임시정부의 성립 직후에는 트란스아무르(러시아어: Трансамур) 혹은 젤레나 클린(러시아어: Зелёный Клин) 등으로 불렸다.

'트란스'(러시아어: Транс)는 고유 명사가 아닌 일반 명사로서, '~ 너머' 혹은 '연안'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케세이'(우크라이나어: Китай)는 본래 중앙아시아 및 아시아 북부의 여러 민족이 거란(영어: Kitai)을 일컫던 말이었으나, 서구권으로 넘어가면서 중국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즉, 트란스케세이는 '중국의 연안' 혹은 '중국 너머'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중화권에선 沿海聯邦國(연해 연방국), 일본에서는 トランスキャセイ連邦国(트란스케세이 연방국) 혹은 沿岸連邦国(연안 연방국)이라고 지칭한다. 한국어에선 트란스케세이, 문화어로는 뜨란스께세이로 부른다.

러시아 제국 시절에는 프리모르스키(Примо́рский край)과 하바롭스크(Хаба́ровский край)가 위치했던 곳이었기에 현재도 옛 명칭으로서 불리는 경우도 있다.[주 7]

국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트란스케세이의 국호 문서를 참조.

국기

연방기
Флаг Федеральные земли

트란스케세이의 국기인 '연방기'는 본래 다섯 민족 집단을 상징했다.

트란스케세이의 국기는 주로 연방기(러시아어: Флаг Федеральные земли)로 불린다. 5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오색기를 채택하고 있으며, 순서대로 초록색은 평화를, 흰색은 자유를, 하늘색은 희망을, 노란색은 통합을, 빨강색은 용맹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국기의 색들이 연방을 구성하는 주요 민족들을 지칭했다. 초록색은 우크라이나인을, 흰색은 한국인을, 하늘색은 러시아인을, 노란색은 퉁구스족[주 8]들을, 붉은색은 중국인[주 9]을 의미했다. 대타결 이후에는 민족의 개별성을 강조하는 대신 연방의 통합과 정체성을 확립하면서 그 의미가 위와 같이 변경되었다.

국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트란스케세이의 국기 문서를 참조.

국가

트란스케세이의 국가인 평화를 향하여(영어: Towards peace, 중국어: 向平和歌)는 트란스케세이 내전 종결 직후인 1995년 말에 미하엘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남작[주 10]이 작사·작곡했다. 성문법에서는 국가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았으며, 현재까지도 법령상 규정되어 있는 바는 없으나 사실상의 국가로 인정되어 있어 국가적인 행사 따위에서 연주 또는 가창되고 있다.

국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트란스케세이의 국가 문서를 참조.

역사

트란스케세이의 역사
История Транскитай
고대 중세
고구려
高句麗
B.C 37년 ~ A.D 668년
발해
渤海
698년 ~ 926년
요나라
大遼
906년 ~ 1125년
금나라
大金
1125년 ~ 1234년
원나라
大元
1271년 ~ 1368년
명·청 시대 러시아 제국·적백 내전기
명나라
大明
1368년 ~ 1644년
청나라
大淸
1616년 ~ 1860년
러시아 제국
Россійская Имперія
1860년 ~ 1920년
녹우크라이나
Зелена Україна
1917년 ~ 1920년
시베리아 임시정부
Сибирь правительство
1920년 ~ 1923년
근현대
트란스케세이
Транскитай
1923년 ~ 현재
제1공화정, 제2공화정, 사회주의 정부, 연합정, 내전기, 연방정

트란스케세이는 주변국들에 비해, 성립된 배경이 다소 흥미진진하다. 근대적 이데올로기의 발흥과 함께 민족주의에 대한 기치와 단일민족국가라는 정서를 강하게 향유하고 있는 여타 동아시아 국가들과는 다르게, 다양한 민족 군상들로 구성된 연방은 수차례에 침략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 왔다.

허나 침략과 혼란은 도리어 연방의 단결과 연방민(영어: Transcathian)이라는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하게 만들었다. 코스모폴리탄(영어: Cosmopolitan)에서 기인한 다민족주의 사고 방식과 맞물리며, 단일한 문화를 공유하는 포괄적인 집단으로 나아갔다. 연방의 독특한 생활 문화는 개인주의공동체주의가 개별적인 성격이 아닌, 공존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대타결(영어: Great Compromise, 러시아어: Великий Компромисс) 이전 역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트란스케세이의 역사 문서를 참조.

대타결과 연방 체제의 성립

샨타르 독립운동과 연방의 현황

샨타르 동맹기
Шантар Альянс флаг

샨타르 공화국에서 내세운 '자칭' 국기. 니브흐인 민족상징기와 매우 유사하다.

폐쇄도시였던 샨타르스키예 제도(러시아어: Шанта́рские острова)는 농업 진흥 및 황무지 개척을 명목으로 다수의 니브흐인들이 강제로 이주하여 집단 농장 혹은 굴라그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강제 이주를 겪은 니브흐인들은 권리 보장을 요구했으나 묵살되었으며, 도리어 경찰 기관이었던 내무인민위원회가 주도하고 트란스케세이 공산당 정치국이 승인한 노동절 학살(러시아어: Первое мая расстрел)로 수많은 사람들이 총살되는 등 수모를 겪었다.

트란스케세이 내전 동안에도 그들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았으며, 대타협 이후에도 소수 민족 권익에 대한 보장은 입으로만 주장되었다. 이에 샨타르스키예 제도에 남아있던 니브흐인들은 연방 정부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고, 자치권 확보를 주장하는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류드밀라 페실로바(러시아어: Людмила пэсильлова)를 중심으로 한 급진파들이 과격 모험주의를 추구하며 니브흐 해방군을 조직하고 무장 투쟁을 선언하며 사태는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끝내 2001년 6월에 니브흐 해방군이 샨타르스키예 제도를 이루던 벨리치 섬(러시아어: Остров Беличий)을 순찰하던 연방 해상경찰들을 사살하고 샨타르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직접적인 충돌이 발생했다. 이에 맞서 연방 정부가 경찰 및 군인들로 구성된 10만 명의 진압 병력을 파견하여 대규모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샨타르 공화국의 대통령을 자처한 류드밀라 페실로바는 레분 기습을 일으켜 거주하던 일본인·아이누인 등의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일부를 납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은 해상자위대를 통해 소야 해협 일대에 기뢰를 설치하고 니브흐 해적들이 이끌던 불법 어선들을 통제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러시아미합중국은 각기 공군 및 해상 병력을 파견했다. 11월에 다국적 군대로 구성된 진압군이 우츠카야 만 작전추미칸 상륙작전을 통해 오호츠크 해 일대를 장악하면서 점령지 및 보급로를 유지할 수 없게 된 샨타르 공화국은 내부 지도층의 붕괴로 페실로바 대통령이 피살되고 항복을 선언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샨타르 사태는 한인 독립운동, 콜차크그라드 폭동 이후로도 개선할 기미가 보이지 않던 민족 정책에 대한 방조가 강대국들의 개입과 연방의 근간을 흔들수 있던 민족주의 문제를 야기했음을 시인하는 것이었다. 연방민들은 무능력한 정부에 분노를 표출했고, 근본적인 해결책 대신 일시적인 미봉책만 내세우는데 급급하며 연방 정부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던 연방민주당은 이 사태로 전면적인 당 쇄신을 선언했으며, 콘스탄틴 로스토프 연방 총리는 책임을 지고 퇴임했다. 이후 연방기록원샨타르 사태 조사위원회의 공조 아래, 면밀히 인과 관계를 조사하면서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기 시작했으며, 새롭게 취임한 보리스 간티무로프 연방 총리의 주도로 다민족주의 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이 실시되었다.

교육

사회주의 정부 시절에는 소련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과 연계 교육 과정 실시로 상당한 수준의 공교육이 유지되었고, 높은 교육의 질이 보장되었으나, 소련 해체와 함께 민주공화정자본주의를 채택하면서 공교육 중심으로 운영되던 교육 체제가 사립화를 추구함에따라 큰 변혁을 겪었다.

한때 수준 높은 교육을 보장받던 연방의 교육이었던 것이 무색하게, 북한의 영향을 받아 김부자 교과서와 상당히 유사한 교과서인 극동 혁명사를 채택했던 바 있다. 아르테미 유수포프 연방 대통령의 독재 체제를 공고화하는 한편, 공산주의 이념과 목표에 따라 계급 의식을 가르치고, 공산주의 인간으로 육성하며 또한 집단주의 원칙의 준수를 요구했던 우상화 교육의 일환이었다. 1979년에 유수포프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에 집단지도체제로 변화함에따라 우상화 정책이 폐지되면서 '3·6·6학년제'에 따른 평준화 교육 제도가 실시되었다.

사교육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으나, 연방 정부에서 추진하는 교육 복지 정책은 핀란드와 유사하다. 백년대계로 불리는 교육의 중요성이 커진만큼,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측정되는 트란스케세이의 높은 평가는 교육 체제가 잘 관리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내신 절대평가를 실시하는 트란스케세이의 교육은 '학업 성취도'의 주안점을 두며, 성적에 따른 상대평가는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학력의 차이를 무시한 평등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아니다. 중학교 교육에서는 성적이 낮은 학생이 특별 학급에 배정되거나, 보충 수업을 받는다. 이렇게 학력을 차별화하여, 저학력 학생에 대한 개별 교육으로 뒤떨어진 학업 성취도를 보충해 주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6년제로 운영되는 인문 고등학교직업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겐 핀란드의 아비투어와 비슷한 예게(러시아어: ЕГЭ)라는 대입 시험을 응시할 수 있게 된다. 1년에 3번에 걸쳐 시험이 실시되며, 복수 시험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중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결과를 통해 일반 대학교 혹은 산업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된다.

이때문에 트란스케세이는 교육 복지 분야에서 높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전반적인 학생들의 수준, 학위의 공급, 교육 접근의 평등성, 가계에 압력으로 작용하는 비용 부담까지 모든 측면에서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이다.

각주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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