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사하 제국

NOPARDA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7월 26일 (월) 17:0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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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극동 시베리아 지역에 위치한 국가이다. 지정학적으로 동쪽에는 동맹국인 축치-캄차카 공화국이 있고 왼쪽에는 러시아랑 인접해있는 국가이다. 인구는 2021년 기준 250만명이며 매우 적은 수의 인구수를 보유하고 있다.

민족 구성은 폴란드인 60% 아슈케나짐 유대인 20% 사하인 20%이다. 폴란드인의 비중이 높은 다민족 국가이다.

냉전 이후의 폴란드-사하는 시베리아라는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매우 발달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국민들의 소득 수준은 높지 않은 국가이다.

외교적으론 산서 공화국과 대한민국 그리고 축치-캄차카 공화국과 매우 친밀하며 미국과의 관계도 안보 파트너로서 친밀한 관계이다. 대한민국과 축치-캄차카 그리고 산서 공화국은 동아시아 수호조약으로 묶여져 있는 관계이기도 하다.

군사력 또한 동아시아 수호조약 중 대한민국 다음으로 강력한 국가이다. 러시아를 견제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미국의 안보 효과를 받고 있다. 그로 인해 폴란드군은 전세계에서 14위안에 드는 군사력을 갖춘 국가이기도 하다.

국가 상징

폴란드는 영어 명칭이고 폴란드 내부에선 폴스카-사하라고 불린다. 한자 음차로는 파란-사하 라고 불리며 한국에선 파란으로 많이 불리기도 한다.

국기는 특이하게도 원래 국기인 백색과 적색을 위 아래로 배치한 국기가 아닌 푸른색 바탕에 국조인 휜꼬리 수리가 있는데 푸른색은 시베리아에 냉혹한 자연과 추위를 상징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자유를 상징하기도 한다. 휜꼬리수리는 폴란드인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국기가 채택된 것은 1919년 폴란드-사하 제국 건국과 독립 전쟁때 채택되었다.

역사

폴란드-사하 제국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멸망 이후 시작되었다. 1830년 러시아 제국의 폴란드인 대규모 이주가 계획되었고 러시아 제국은 폴란드인들을 시베리아로 강제 개척을 시켰다. 이주는 30년간 이루어졌고 1860년이 되어서야 폴란드인들의 완전한 개척을 끝마치게 되었다. 이때 개척 과정 도중 수많은 폴란드인들은 목숨을 잃었고 그로 인해 러시아 제국의 대한 감정이 매우 안좋았다. 1917년 러시아 제국의 붕괴 이후 적백내전이 일어나자 그로부터 2년 뒤인 1919년 폴란드인들은 사하인들과 반러시아 전선을 형성하며 독립을 선언하게된다. 적백내전 이후 소련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1924년 파소 불가침 조약을 맺게된다. 파소 불가침 조약의 내용은 소련은 폴란드의 독립을 보장하는 대신 폴란드에 철도 부설권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축치-캄차카 공화국을 동맹으로 맞이하며 동아시아 수호조약이 탄생하게 된다. 1929년 폴란드-사하 제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을 보장하였고 1930년 일본과의 전쟁을 우려하여 파일 불가침 조약을 맺게 된다. 파일 불가침 조약의 내용은 폴란드와의 전쟁이 없는 대신 폴란드는 만주에서의 사변을 관여하지 않는 조건을 걸었다. 하지만 1937년 일본의 중국 선전포고로 인해 폴란드는 천천히 이 상황은 관망하다가 미국이 참전을 하자 일본과의 불가침 조약을 파기하고 전쟁 에 참전하였다. 파일 전쟁에서 폴란드 해군은 전부 전멸 당했으며 폴란드에선 이 사건을 90일 간의 해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90일 동안 폴란드 해군은 일본제국 해군을 상대로 항전을 하였고 전멸 당하는 선택을 하였다. 중국 본토에서도 여러 전투가 있었는데 중국의 산서 군벌에 무기를 지원함과 동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