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요제프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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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위 후기 ===
=== 재위 후기 ===
==== 독일 통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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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진정책 추진 ====
==== 제1차 세계대전 ====
==== 제1차 세계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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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3일 (일) 16:22 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황제
역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1대 2대 3대 4대 5대 6대
프란츠 1세
1804년 ~ 1835년
페르디난트 1세
1835년 ~ 1848년
프란츠 요제프 1세
1848년 ~ 1916년
카를 1세
1916년 ~ 1922년
카를 프란츠 1세
1922년 ~ 2006년
카를 프란츠 2세
2006년 ~ 현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Franz Joseph I
이름 프란츠 요제프 1세
Franz Joseph I.
대관식 1848년 12월 14일
재위기간 1848년 12월 2일 ~ 1916년 11월 21일
출생일 1830년 8월 18일
사망일 1916년 11월 21일 (86세)
아버지 페르디난트 1세
자녀 카를 1세

재위

재위 배경

재위 초기

1848년 혁명

크림 전쟁

재위 중기

이탈리아 통일전쟁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분노의 칼을 갈다

7주 간의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으로 군대의 보급과 군수산업의 중요성을 실감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막대한 자금을 들여 산업과 철도에 과감한 투자를 실시했다.

군사적으로는 흐트러지고 기강이 헤이해진 군을 시찰하고 감독하기위해 매달 1일에 황제 주관의 대규모 제식훈련이 실시되었다. 1867년 5월에는 제국사관학교를 설립하고 군사전술과 병참전략에 대해 방향성을 재고하였다.

산업적으로는 외스터라이히 지방에 도나우 강을 중심으로 제철소를 준공(1868)하였으며, 막대한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여 체코와 오스트리아, 헝가리, 베네치아를 잇는 철도망을 구축하였다(1870). 헝가리에는 화기조병창의 관리와 생산시스템의 효율성을 재고하고 불량율을 낮추는 설비를 도입하고 후장식 소총을 독자개발, 장비의 국산화를 성공하였으며(1873),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포병 및 보병의 전술훈련의 실전화를 위해 탄약을 생산하는 지구를 4개로 나누어 각지에서 보급을 원활하게 하였다.

또한 군사우선주의 노선에 따라 군인의 지위와 대우가 향상되었으며, 주요국가기간시설을 군이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게되었다.

자연스럽게 빈을 비롯해서 헝가리까지 도나우강 주변이 급속도로 산업화되었으며, 빈의 인구는 1860년 66만명에서 1870년 121만명, 1880년에는 194만명을 돌파하였다.

재위 후기

독일 통일

동진정책 추진

제1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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