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게스코인세실

Anonymous (토론)님의 2021년 12월 8일 (수) 00:37 판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
Britannian Imperial Knight of the Empe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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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 제9대 황제기사
메들록의 게스코인세실 백작
4th Earl Gascoyne-Cecil of Medlock
본명 헨리 데이비드 로이드 게스코인세실 경
Sir Henry David Lloyd Gascoyne-Cecil
출생 77년 8월 10일 (23세)
일본국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조계
국적 대영제국
일본국
임기 대영제국 황제기사 (조지 5세)
98년 7월 11일 -
작위 메들록 백작 (Earl of Medlock)
기사경 (The Lord Knight)
대영제국 황제기사 (Imperial Knight of the Empe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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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리처드 게스코인세실
구로사와 유카코
신체 182cm, 78kg
종교 무종교 (범신론)
학력 세인트 조지 군사학교 (졸업)
혈통 웨일스계 영국인, 일본계 영국인
군인 정보
임관 세인트 조지 군사학교
복무 황제 폐하의 제국군
93년 -
계급 원수
보직 메들록 기사경
대영제국 황제기사
병과 기병, 보병

개요

대영제국의 군인. 조지 5세황제기사직을 맡고 있으며 황제 폐하의 제국군을 통솔하는 위치에 있다.

상세

80년 이후 이어진 신냉전 체제 하에서 슬럼프를 겪던 대영제국의 체제에 매스를 댄 인물이다. 21세의 나이로 황제기사에 올라서 제국은행장, 중화제국 총독, 전쟁부장관 등 수많은 기성 정치인들을 조지 5세 황제의 막강한 신임 속에서 숙청하고 권력 장악을 감행하였다. 내각의 권력을 대폭 축소하고 전제 정치적인 면모를 부활시켰으며 동시에 군국주의적인 정책을 추구하였다. 또한 제3세계 국가에 대한 내정 간섭과 국제적인 공작, 대소련 도발 등으로 대영제국의 외교도 이끌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대영제국의 황제를 뛰어넘는 막강한 정치적 장악력 때문에 정적들과 반대자들로부터 독재자, 제2의 크롬웰, 호국경 요구자 등 부정적인 별명을 가지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신냉전의 공포 속에서 과감히 체제에 손을 대고 있는 행보 때문에 민중들로부터의 지지는 막강하다. 이런 점에서 카이사르의 행보와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다.

생애

스코틀랜드-웨일스 출신의 군소 귀족 가문인 게스코인세실 가문의 후계자로 태어났다. 아버지인 리처드 게스코인세실은 일본 귀족의 먼 친척인 구로사와 유카코와 결혼하여, 일본 가나가와 요코하마의 요코스카 조계(영국인 거주지)에서 헨리 게스코인세실을 낳았다. 이후 리처드 게스코인세실이 심장마비로 급사하자, 헨리 게스코인세실은 임페리얼 캐피톨 인근의 교외 도시인 해먼튼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게스코인세실 가문이 기본적으로 귀족 가문인데다가 사업을 통해 부유했기 때문에 헨리 게스코인세실은 어린 시절 전혀 부족함이 없이 자랐으며, 명문 귀족 군사학교인 세인트 조지 군사학교에 91년 입학해 기사경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신체 능력이 매우 형편없었으나 지략과 전쟁전술학에서 엄청난 재능을 보였기 때문에 필기 시험에서는 언제나 상위 10위권 안에 들었다고 한다.

대영제국 황태자의 기사로서

후일 조지 5세가 되는 윌리엄 조지 어터슨 화이트로이드과 게스코인세실이 처음 만난 것은 94년의 일로 이때 게스코인세실은 제국군에 입대하여 기사 임명을 코 앞에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보통 대영제국의 황제 후계자들은 후계자 교육 외에 1년간 세인트 조지 군사학교에서 기초적인 군사 교육을 받으므로, 이 당시 윌리엄 조지 어터슨 화이트로이드는 14세의 나이로 막 세인트 조지 군사학교에 입학한 참이었다.

만남 자체는 두명이 같은 방을 쓰게 되면서, 굉장히 우연한 계기로 이루어졌는데 이때 게스코인세실은 조지 5세가 대영제국의 황태자인지는 몰랐다고 한다. 조지 5세도 황태자 대우에 지쳐있던 면이 있어서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화이트로이드가 아닌 다른 성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기사경 작위를 받기 직전이었던 게스코인세실은 조지 5세에게 이것 저것 군사적인 지식을 알려주며 학업을 도움으로서 친교를 맺었다.

95년 게스코인세실이 기사경 작위를 받고 "게스코인세실 경"이 된 그날에 조지 5세는 자신이 대영제국 황태자라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황제가 되면 자신의 황제기사가 되어달라고 말했다. 게스코인세실은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였고 또 상황 파악을 잘 하지 못하여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조지 5세가 "지금까지 날 황태자가 아니라 인간으로 대해준게 너 뿐 아니냐"라고 말하면서 조지 5세의 기사가 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95년 12월 23일 게스코인세실 경은 조지 5세의 기사로 서임되었다.

대영제국 황제기사

98년 조지 4세가 붕어함에 따라 황위 계승 1순위였던 윌리엄 조지 어터슨 화이트로이드가 대영제국 황제직에 오르자, 황태자의 기사였던 게스코인세실 경도 대영제국 황제기사 직에 올랐다. 이에 따라 게스코인세실 경은 대영제국 내 권력 서열 2위에 오르게 되었다.

지나치게 어린 나이 때문에 능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철저하게 계산적이고 장기지향적인 계획으로 군 내에서 지지를 받게 되었다. 또한 조지 5세를 단순히 호위하는 것을 넘어, 정서적 버팀목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황실에서의 게스코인세실 경에 대한 여론은 굉장히 좋다. 그 외에 반군과 내란이 들끓는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대영제국군의 오랜 골칫거리가 되어왔던 아가데즈 사회주의 무장혁명군을 군사적으로 섬멸시키는 것이 아닌, 뒷공작을 통해 외교적으로 고립시켜 스스로 무장해제시키게한 어프코트 작전이 크게 성공하면서 대중적으로도 호의적 반응을 얻었다.

다만 군사 작전에 있어서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결정을 내리고 대영제국이 표방하는 가치와 멀더라도 일단의 이익이 된다면 단기적으로 연합하기도 하는 정책 때문에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황제기사의 직속 정보 기관인 대영제국 비밀안보부에 의한 뒷공작과 도청, 감청, 암살 의혹이 너무나도 많이 터져나와서 도덕성에 있어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이와는 별개로 조지 5세 개인은 게스코인세실 경을 단순한 황제기사와 황제 수준의 관계가 아니라 거의 정서적으로 의지하는 수준으로 가까이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향

전임자 크리스토퍼 폰 합스버그가 소련의 유럽 침공으로 인하여 시작된 신냉전 시기에 소련이 성장하지 않도록 적당히 견제하면서 세계 정세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였다면 게스코인세실은 좀 더 공격적인 스타일의 군사 정책을 추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소련의 심기를 건드릴 수도 있을만큼 적극적으로 타국의 정세에 개입하는 편이다. 대영제국 국무부에서 월권 행위를 적당히 하라는 항의를 보낼정도로 군사 정책과 더불어 외교 정책도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황제로부터의 무한한 신임 때문에 거의 제왕적인 권력을 누리고 있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이후 가장 권한이 강력한 황제기사라는 평이 있다.

각종 더러운 뒷공작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의 직속 기관인 대영제국 비밀안보부에 의한 암살, 도청, 감청 의혹이 크리스토퍼 폰 합스버그 재직 시절에 비해 10배로 늘었고 나머지 4개의 정보 기관인 대영제국 통신안보부, 대영제국 보안정보국, 대영제국 국가치안국, 대영제국 국방보안국도 매우 민첩하게 돌아가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5대 정보기관이 대영제국 치안부대영제국 국무부에게도 정보를 공유할 의무가 있는데, 게스코인세실의 황제기사 임명 이후 제국군과 국무부의 갈등 때문에 정보 교류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국무부와 군대 사이에 관계가 많이 안좋은 상태다.

이에 반해 전반적으로 국민들의 여론은 호의적이다. 황제기사에 대한 만족도는 74%로 부정평가한 5%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게스코인세실 경 자신이 타국에 위해가 될 지언정 자국에는 철저하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군 정책을 이끌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비판

상술했듯이 조지 5세의 신임을 등에 업고 과도하게 권력을 휘두른다는 비판이 있다. 국무부 측에서 이런 불평이 많이 나온다. 게스코인세실의 정책은 군사 정책에 외교 정책까지 포함시키는 것으로 전략을 짜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타국에 위해가 갈 수 있는 것들이 한가득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무부가 활동하면 또 그것을 막고 자신의 의중대로 외교 방향이 흘러가도록 방해하거나 방치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황제기사의 업무는 제국군 통솔과 황제 경호인데 이걸 넘어섰다는 비판이다.

너무나도 현실 지상주의, 자국 중심주의적인 군사 정책 때문에 이것으로도 비판받는다. 기본적으로 타국의 권위를 거의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아예 군사를 타국 국경 근처에 마구 배치해놓고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장기적으로 판도 잘 짜고, 뒷공작으로 대영제국의 이익을 챙기는데에 상당한 재능을 보이고 있으나 지속되는 제왕적인 월권 행위(특히 국무부와의 갈등), 지나친 공작과 통제, 타국 정치 개입으로 개인의 도덕성에 대한 평가는 그렇게 좋지 않다.

능력

전쟁전술학과 지략 면에서 대단히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고전 전쟁 전술학서들을 읽는게 취미라고 한다. 스스로 전술학에 대해서 연구하고 쓴 글도 꽤 되며, 논문도 썼다. 실전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인다. 단순히 군사 전략을 군사 자체로만 쓰지 않고, 정치 공작과 함정이 마구 포진된 외교술을 곁들여 쓰는 것을 전쟁 전략의 최고 덕목으로 삼고, 이를 실행해오고있다. 이 때문에 군사 정책에 있어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대체로 전략을 세우는 능력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평을 듣는다.

신체 능력이 매우 형편 없다. 세인트 조지 군사학교 재학 당시 실기 시험에서 거의 전부 최하위권 성적을 받았으나, 필기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기 때문에 기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군인이기 때문에 일반인에 비해서는 신체 능력이 꽤 된다. 단지 대영제국 군대의 통수권자라는 사람이 너무나 약해서 주목을 받는 것일 뿐이다. 조지 5세에게는 전적이 1승 13패이며 50대인 크리스토퍼 폰 합스버그에게도 단 한번도 이긴적이 없다.

여담

  • 왼쪽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는데, 사고로 한쪽 눈을 잃은건 아니고, 선천적으로 왼쪽 눈의 시력이 매우 나빴기 때문에 추가적인 시력 손실을 막기 위해 가린 것이라고 한다. 본인 말에 따르면 눈을 쓰는게 정말 중요할때만 안대를 잠깐 뺀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니발 게스코인세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플라톤의 "국가론" 그리고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라는 책을 좋아한다고 한다.
  • 역사덕후적인 면모가 있다. 로마와 독일, 중국의 역사에 대해 거의 책을 쓸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만 다른 분야에서 지식은 없는건지 수학을 특히 매우 못해서, 가계부를 쓸때 169 X 3을 169 + 169 + 169라는 식으로 계산하는 매우 황당한 모습을 보인적도 있다고 그의 학교 시절 친구가 증언했다.
  • 제법 젊기도 하고(23세) 미형의 얼굴과 안대 때문에 개인에 대한 인기도 상당하다. 스스로는 이런 인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 독일어와 라틴어를 할 수 있으며, 중국어는 조지 5세의 권유 때문에 배우고 있다.

성격

매우 계산적이고 차가워서 대하기 힘들다고 한다. 자신의 부하들도 거의 장기말로 생각하는 것인지 최측근이더라도 자신의 이익에 따라 마음대로 내치거나, 직급을 떨어트리고 다시 올리는 식으로 자기 휘하의 사람들을 거의 조련하다시피 다룬다. 나이가 어리든 적든, 경력이 많든 적든 철저한 능력주의, 결과지상주의적인 평가를 통해 아예 권위를 무시하는 식으로 사람들 다룬다는 악평이 많다.

전혀 호전적이지 않은 성격으로 인해 남이 예상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잦다. 앞에서는 조용히 넘어가지만 뒤로는 숙청을 지시하는 식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정적들에게는 "앞에서 웃는 암살자" 등의 부정적인 별명이 붙여졌다.

거의 인간 말종에 가까운 모습과 달리 자신과 매우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친절히 대하는 모양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조지 5세가 심리적으로 게스코인세실에 무한히 의지하는게 설명이 안되지 않겠냐는 주장이다. 업무 외에 일로 그를 대한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게스코인세실 경을 알기 힘들지만 긍정적인 인물로 평했다.

조지 5세와의 관계

단순한 군신 관계 혹은 친구 관계 이상이라는게 중론이다.

게스코인세실 경이 전제 군주나 다름 없는 전무후무한 수준의 권력을 휘두르는건 개인의 인기와 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지 5세의 지지가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을 지 의문이다. 대영제국 국무부와 사회부, 치안부에서 어마어마한 수준의 클레임이 들어옴에도 조지 5세는 이를 모두 물리치고 자신의 기사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줬다. 황제기사를 위한 관저가 따로 있음에도 아예 동거를 하며 자신을 상시 지키게한것도 조지 5세이다.

이 때문에 향간에는 두명이 동성애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있고 또는 게스코인세실 경이 화이트로이드 황가의 숨겨진 자식이기 때문에 어찌하지 못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음모론도 있다. 동성애가 기본적으로 선천적으로 발휘되는 특성인데, 프레더릭 3세도 사실상 동성애자였음을 생각해보면 이쪽도 말이 된다는 소리도 있다. 물론 황실부에서는 이를 말도 안되는 소리로 일축하고 있다.

가장 적절해보이는 설명은 "이전까지 황제의 자식, 화이트로이드 황조의 계승자, 황태자, 황제, 국왕 정도로만 여겨졌던 조지 5세를 처음으로 인간 그 자체로 대해준 것이 게스코인세실 경이기에 심리적으로 의지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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