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중 하나의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관리자. 문서를 고치려면 이메일 인증 절차가 필요합니다. 사용자 환경 설정에서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이메일 주소 인증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혼정기'''({{llang|zh|混政期}})는 [[해영국]]이 [[일본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부터 1951년, 공화 쿠데타가 발발한 시기까지 유지되었던 극도의 사회적, 대외적 혼란기를 일컫는다. 본격적인 혼정기의 시작은 [[1.25 폭동]]으로 보고 있으며, 1950년부터 1951년에는 6.25 전쟁과 같은 대외적 혼란을 틈타 공화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궁과 내각 관저를 비롯한 [[해성행정시]] 전역을 장악하면서, [[해성 공화국]]이 건립됨에 따라 막이 내렸다. ==1945년 ~ 1947년== 1945년 해방 직후 [[해영임시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해영국 임시건국준비위원회와 해영국 왕실복귀위원회를 구성하여 국왕을 위시로 한 과도 왕정부를 구성하였다. 아직 헌법이 고안되지 않았기에, 명목상 국왕은 내각의 인사권과 입법권, 사법권을 소유한 초법적 존재였으며,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긴 공화주의자들과 반왕정주의자들은 [[해성민주당]]을 창당하여 독자적인 세력권 구축에 나섰다. ---- '''1945년''' * 영인항 폭파기도(10.11): 공화주의자들이 [[이성훈 내각]]에 반발하여 폭탄 테러를 일으키려다가 저지된 사건이다. * 예량도 시민군 교전(10.23): 치안유지를 이유로 자발적으로 조직된 시민군과 이를 해산시키려 한 해영 국군간에 갈등이 무력 충돌로 빚어진 사건이다. * 해성민주당 창당(11.5): 공화주의자 및 반왕정주의자들을 위시로 한 정치단체인 [[해성민주당]]이 창당하였다. * 내각관저 앞 분신기도(11.15): 내각관저 앞에서 "공화혁명"을 이유로 분신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해영 국군과 의료진들의 긴급대처로 저지된 사건이다. '''1946년''' * 남화구 방화사태(1.23): 남화구의 구 일제강점기 잔재 건물이 원인 모를 이유로 방화된 사건이며, [[해성민주당]]은 사실과 무근하다고 설명하였다. * 해성봉 인근 교전(2.11): "왕정타도"를 내세운 시민군들이 "혁명군"을 자처하고 해영 국군과 교전한 사건이다. * 자유정의대 창설(4.13): 해성민주당의 주요 인사들이 독립적인 준군사단체인 [[자유정의대]]를 창설한 사건이다. * 예화구 시가지 테러(6.15): 자유정의대 일원 중 1명이 자살 테러를 감행한 사건이며, 이후 내각에서 "테러 감시조례"를 발표한다. * 내각관저 테러 미수(8.1): 내각관저 앞에서 자살 테러를 감행하였으나, 국군에 초동 대처에 무산된 사건이다. * 예성구 시가지 테러(9.24): 자유정의대 소속원 5명이 총기를 이용하여 무차별적 총기 난사를 일으킨 사건이다. * 군사조직 제한조례 발표(10.15): [[이성훈 내각]]에서 자유정의대의 활동 및 그 정당성을 배제하기 위하여 발표한 조례이다. '''1947년''' * 1.25 사태(1.25): 자유정의대 일원들이 [[해성행정시]]전역에서 시가지 전투를 벌인 '''폭동'''으로서, 이에 결과로 이성훈 내각이 해산되었다. 혼정기 (해성국)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