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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제국 - 대한제국 황권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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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LE팀

1. 개괄

 

THE LAST EMPIRE*1 모드 속 한국은 원래 역사*2의 대일본제국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으나 일본 천황과 다른 군주의 역할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엠의 대한제국의 황제 또한 원역사에서의 천황의 역할 또는 통상적으로 퍼져있는 인식에 의거하여 '한국 황제 또한 일본 천황과 비슷한 역과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라 생각할 것이다. 

 

*1: 이하 라엠으로 호칭한다
*2: 이하 원역사로 호칭한다

 

허나 라엠 세계관 내에서의 황제는 이와 달리 전제권에 가까울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이를 실제로 행사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게임 내의 강명황제 뿐 아니라 그의 선대황제인 고조, 고종, 순종 세 황제 모두 서술되는 내용에서 '강력한 군주'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강력한 군주권이 모드의 특색이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라엠 대한제국은 조선의 종법질서와 후기 조선에서 정조가 구축한 '왕에게 권한이 강력하게 집중된' 권력구조를 계승하였다. 임오화변 이후 악착같이 왕의 권위를 확보한 정조는 자신의 유교적 지식과 심환지 등 야당 인물들을 자신의 뜻대로 이용하면서 조선이라는 나라의 권력 구조를 제 뜻대로 재편할 수 있었다. 원역사에서는 철종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체제가 해체되는 과정을 거쳤으나, 라엠에서는 헌종이 정조를 밴치마킹하면서 그의 체제를 재현(再現)하려 노력함은 물론 삼전도의 굴욕을 복수한 것과 칭제건원으로 제국을 선포하면서 조선 후기의 권력 체제를 이어갈 수 있었다. 
둘째, 한국의 황제들은 격동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국가를 수호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선전하며 황제의 신성화를 이뤄냈다. 초대, 차대, 3대에 이르기까지 대한제국 황제들은 모든 외교적 선택이 필요한 사안에서 한국이 이득을 보는 결과를 만들어냈고, 민족주의 의식이 꽃핀 19세기와 20세기에 민족의 대표이자 충분한 권위를 가진 군주가 소위 '강대한 나라'를 만든건 충분히 대한제국 황제와 황실에 대한 강력한 권위를 부여할 수 있다.
셋째, 이런 기류를 타고 가며 대한제국은 헌법 자체에 군주주권을 명시하였고 군주의 정치개입을 정당화하였다. 선대로부터 이어받은 체제와 19세기 중후반동안 한국 황실이 쌓은 강력한 권위는 라엠 내에서 1886년 흠정대한국헌법이 작성될 때 군주주권과 황제가 정치적 의사결정에 당연히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게 하였다.
결국 라엠 세계관 내에서의 대한제국은 '전근대 전제국가인 조선과 근대문물과 이념을 수용한 신생 한국'이라는 혼합된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전근대성'을 가진 전제군주가 존재할 수 있고, 이는 충분히 이해되는 과정을 통해 설명되었다고 여길 수 있다.

 

다만 그러한 내면에 대해서 상세하게 모든 것을 찾아보고 이해하기에는 힘들고, 또한 사람마다 해석이 다 다를 수 있다. 그렇기에 본고는 THE LAST EMPIRE의 대한제국 속 황제들의 군주권과 그들이 소위 '강력한' 황권을 가지게 된 원인, 최종적으로 이것이 합당한지에 대해 고찰해보려고 한다.

 


2. 헌종이 고조 태황제가 될 수 있던 이유

 

라엠 세계관 내에서의 가장 핵심적인 변화를 꼽자면 조선의 제국화일 것이고, 그 근간을 살펴본다면 원역사 조선 헌종의 장수와 그의 정치의 연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24대 국왕 헌종은 단순한 왕이 아니다. 그는 효종으로부터 내려오는 조선 후기 왕실 직계, 그리고 임오화변 이후 간신히 세울 수 있던 정조계 왕실정통성의 마지막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조선 특유의 강력한 중앙집권과 왕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의 창출 과정에서 이런 헌종의 정통성은 그 자체로 강력한 무기로 활용될 수 있었고, 실제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헌종 즉위 초 순원왕후의 수렴청정 기간동안 왕의 외가 친척과 외척으로 자리매김한 장동 김씨*3 세력들은 효명세자파(派)로 불리는 계열들을 적극적으로 숙청하며 왕실의 지지세력을 아예 정치권력에서 배제함으로써 왕권의 약화를 꾀했다. 이는 이지연-이기연 형제 탄핵사건과 윤상도의 옥사사건 등으로 대표된다.*4

 

*3: 김조순 등이 주류로 있는 신(新) 안동김씨. 이하 장동 김씨로 호칭한다.
*4: 방성원, 19세기 중반의 정치 상황과 헌종의 국정 운영, 2021, 건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순원왕후가 철렴을 선포하고 헌종이 친정을 시작하면서 이런 왕권의 약화는 제동이 걸렸다. 헌종은 부친인 효명세자의 세력을 온전히 이어받지 못하자 이를 대체하기 위해 왕의 특지나 비망기로 관직을 제수시키는 중비(中批)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제 세력을 꾸려갔다. 또한 왕의 외척이라는 명분으로 권력을 장악하는데 수월함이 있던 장동 김씨는 효현왕후 사후 남양 홍씨 홍재룡의 딸 효정왕후가 헌종의 계비로 간택되면서 근간이 흔들리게 되었다. 헌종은 꾸준히 사망년도인 1849년에 이르기까지 장동 김씨 세도가들을 풍양 조씨를 이용해 견제하면서 왕권을 바로 세우는데 집중하였고, 실제로도 세도가 척살에 근접할만한 성과를 이루어내기 직전까지 갔으나 정당한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면서 이 모든 행동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5

 

*5: 헌종의 뒤를 이은 철종은 혈통상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언군의 아들 이쾌득(사후 전계대원군 추증)의 서자였으며, 정조-순조-문조-헌종으로 이어지는 소위 '정조계 왕통'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또한 왕으로서 정무를 처리하는데 부족함이 있어 철종 2년까지 순원왕후의 수렴 과정을 거친 후에서야 스스로 정국을 운영할 수 있었다. 다만 이 또한 조정을 장악했고, 헌종 사후 다시 외척으로 자리잡은 장동 김씨에 의해 철종이 뜻하는데로 행해질 수 없었다.*6
*6: 임혜련, 철종대 정국과 권력 집중 양상-임술민란 배경과 관련하여-, 고려사학회, 2012, no.49, pp.121-158(38 Pages). 

 

헌종의 정략적 능력은 자신의 세력이 없는 와중에도 왕권을 잡아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입증되었다. 원역사에서 장동 김씨들이 주류를 차지하던 조정에서 스스로의 특권을 응용하는 정치적 센스가 존재하였으며, 중희당으로 이어하면서 후기 왕실의 중시조라고 불리면서 신하들을 '가르쳤던' 정조의 권위를 빌려오는 지혜를 발휘하였다.

 

라엠 세계에서는 헌종의 수명을 늘리고, 장동 김씨가 확실하게 그 세력이 제거될 수 있게 1852년 '한성 투서 사건'과 '임자사화'를 창작하면서 헌종이 조정 내에서 완전하게 권력을 장악하게 만들었다. 이후 임자사화로부터 김병학이 유배를 가면서 조정에서의 복귀를 위해 다블뤼 주교의 천주교 선교를 고발하면서 '을묘개화 - 조불통상조약'까지 역사의 변화를 일궈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라엠이 헌종을 변화의 주역으로 삼고, 추후 있는 1862년의 조청전쟁에서, 그리고 1877년까지 '현명한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만든건 약간의 비약이 있을 수는 있어도 충분히 감안할만하다고 판단내릴 수 있다. 1867년 이환*7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자신의 권위를 양껏 끌어올리면서 그렇게 '고조 태황제 이환' 시절의 라엠 한국은 확실하게 황권의 압도적 우위를 가질 합리성과 이해력이 제시되고 있다.

 

*7: 李烉, 헌종의 본명.

 


3. 경은군의 즉위와 대한제국의 근대국가화

 

라엠 세계관 내에서 헌종은 외아들 태자 이정을 낳았으나, 그가 요절하면서 계승권 문제가 수면 위로 대두되었다. 허나 가장 큰 차이점이 있었다. 후계자가 원역사에서 사도세자의 4대손인 경은군 이재성이 된 것이다. 원역사와 달리 고종 이형이 왕이 되지 못한 연유는 다음과 같다. 혈통적으로 가장 가까운 왕족인 경은군 재성이 철종 사망년도인 1864년*8 이 아니라 1877년 기준으로는 충분히 요절하지 않고 계승할만한 성년이었고, 고종 즉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흥선대원군과 조대비의 커넥션이 헌종이라는 강력한 군주의 황권 때문에 존재하지 않았다. 

 

*8: 서기. 이하 본고에 쓰이는 모든 년도와 월일은 현대 서기 표기법을 따름.

 

경은군은 항렬상으로 영조의 5대손이기에 원역사에서 철종이 역항렬로 즉위하는 것과 달리 종법상으로 큰 문제가 없다. 또한 경은군 이재성은 원역사에서 담배 제조 공장인 연초제조주식회사(煙草製造株式會社)를 세워서 경영하는 등 근대적 문물의 수용에 적극적이었고*9, 의병 등과 엮이면서*10 계몽의식이 충분히 존재하였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런 '개화'적인 면모와 '열정'적인 면모를 헌종이 보면서 그를 태제로 삼았다는 발상은 충분히 설득이 간다.

 

*9: 강만길, 1973, 〈대한제국 시기의 상공업문제〉, 《아세아연구》 16-2, 152~160쪽(주진오, 1993, 〈독립협회와 대한제국의 경제정책 비교 연구〉, 《國史館論叢》 41, 149쪽에서 재인용).
*10: 〈직명을거두다〉, 《대한매일신보》, 1907년 10월 16일. 〈職名還收〉, 《황성신문》, 1907년 10월 16일. 등.

 

정리하자면 경은군의 즉위는 조선-대한제국의 변화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유교적 종법질서를 유지하고 있고, 헌종 개인의 기호에 맞아 떨어졌기에 당연한 결과라고 설명할 수 있다. 여기서 집중해야할 부분은 그 이후 라엠 경은군의 행적이다. 그는 황제로 즉위한 이후 부족한 권위를 채우기 위해 정치적으로는 헌종의 유산들을 어느정도 물려받지만 이를 크게 중용하지는 않았다. 라엠 내에서 헌종이 예전에 했던 것과 같이 스스로의 친위세력을 마련하기 위해 중비를 활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근대 문명에 관심이 있는' 경은군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소위 '개화파'들을 중용하면서 헌종의 신하들로 이루어진 '고조계'와 새로운 황제의 친위세력으로 이루어진 '고종계'*10의 신(新) 붕당을 만드는걸 조장했다. 이 새로운 붕당을 황제가 조절하면서 혈통적 정당성의 부족함을 매꾸어냈다. 

 

*10: 라엠 세계 내에서 경은군의 묘호. 高宗 光皇帝.

 

이런 경은군의 행보는 라엠 세계 내의 당대인의 시점으로 보면 파격적이지만, 작품 전체적인 완성도에는 크게 흠을 잡기에는 어렵다. 정치적인 계산으로 이런 결과를 내었다고 한다면 이해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라엠이라는 작품에서, 특히 경은군의 집권기에서 비판해야할 점은 그가 근대문물에 관심이 있다, 정치적으로 개화파들을 중용했다인 부분이 아니라 외교 정책에서 승승장구만을 거듭했다는 '다소 작위적인 진행'에 있다.

경은군이 즉위한 1877년의 바로 1년 뒤에는 라엠 내의 운양호 사건*11이 일어나게 되면서 1878년 조선대습래가 펼쳐지고, 즉위 3년 뒤에는 청나라 서태후의 주도로 한청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1900년에는 의화단의 난에 개입하고, 1904년에는 한러전쟁을 치루게 된다. 이 모든 전쟁에서 대한제국은 승리하였고, 그 대한제국의 최고 의사결정자이자 군주는 광무황제 이천*12이다. 

 

*11: 운요호 사건의 오마주.
*12: 라엠 내 경은군 이재성의 칭호. 연호 '광무'와 개명한 이름 '천'을 합쳤다. 이하 경은군 이재성은 광무황제 이천으로 호칭한다.

 

라엠 내 대한제국의 체급이 원역사의 대일본제국과 비교했을 때 약간 힘이 달린다는 것을 매꾸기 위해, 또 모드의 제작의도인 '대일본제국의 비판과 과도한 민족주의의 해악'을 담고 있다는걸 전달하기 위해 군주의 능력과 혜안을 증강시키는건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었으나 다소 아쉬운 선택이었다. 다만 이런 라엠의 핍진성에서의 부족함은 둘째치고, 본고의 주제인 황권의 영역에서 고찰한다면 광무황제 이천의 연속된 외부 정치에서의 승리, 그리고 근대문물 수용의 성공은 제국의 창건자인 헌종보다 더 높은 권위와 권한을 허용될 수 있게 만든다고 판단할 수 있다.

 

즉 정리하자면 핍진성에서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라엠은 대한제국의 열강화와 강력한 군주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4. 결론

광무황제 이천 사후 그의 뒤를 이은 융희황제 이택과 인게임 내의 황제인 강명황제 이진은 모두 광무황제의 혈통적 자손이다. 대한제국을 개창한 고조 태황제 이환, 이를 열강의 자리에 올려놓은 고종 광황제 이천의 후계임을 주창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렇기에 선대가 쌓은 권위를 융희황제와 강명황제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고, 대한제국이라는 근대 국가에서 타 국가에서는 유래가 없는 전제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이들이 오직 선대의 후손이라는 권위에서만 권력 기반을 마련한 것은 아니다. 광무황제 이천 시기에 창설한 첩보부인 '익문사'를 이용해 대한제국 의회에 대해 정탐하면서 정치적으로 몇 수 더 앞에서 판단할 수 있게 하였고, 특히 융희황제는 스스로의 정략적 능력이 뛰어나다고 설정되었기에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는 판을 짤 수 있으면서 그 결과가 황제라는 개인의 권위가 향상되도록 하였다. 다만 아무리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고, 시대의 운이 황제에게 이득이 되도록 흘러갔다 한들 고조와 고종의 후임 황제들이 이런 상황을 만든 근간은 선대들이 쌓은 업적과 권위, 시스템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정리하자면, 라엠 모드는 대한제국의 강력한 황제권이 마련되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설정의 당위성을 마련했고, 그 상황을 황제 또한 이해가 가는 선에서 이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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