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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공방] 시대와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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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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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공방 - 창작관 논의 1편

윤리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1. 오늘의 윤리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윤리란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것은 집단마다 견해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논의다. 사람은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타인의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된다. 이것은 굉장히 보편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또한 현대사회에서는 이것이 명시화되어있지 않더라도 암묵적인 법칙으로 여겨지고, 국제법 상에서의 법제화도 진전되었다. 즉 21세기에서 윤리란 최소한으로 지켜져야 하는 "경계선"인 셈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예상했다시피 윤리는 변화한다. 윤리는 시대에 따라서 얼마든 달라졌으며 그 배경 중 큰 요인은 바로 시대의 기술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사회적 산물이지 진리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늘 유동적이란 것이다.

 

2. 과거의 윤리

  시대를 반영한 사례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조금 충격적인 것을 예로 들자. 오늘로부터 불과 2세기 전인 과거 1861년 미국에서는 노예제로 인한 산업의 입장차이로 미국의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그런데? 당시 미국의 법조계에서는 흑인을 소유하는 권리에 대해서 굉장히 논리적이고 또한 체계적인 법제화를 하고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흑인 노예가 잘못된 것을 알긴 알았는데, 익숙해서 없애지 못했다."의 수준이 아니라, 정말 의식적으로 흑인 노예의 문제를 부정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과거에서는 그런 사회적 합의에 이를만큼 광범위한 사람들이 노예제를 동의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노예제, 백인 우월주의, 백인 인종의 생존권을 지켜라 

 

   또한 북부 역시도 다양한 이권에 의해서 남북전쟁이 일어난 것이지, 반드시 북부가 더 정의로웠다고 할 수는 없다. 단지 북부에서는 기계 동력(산업)이므로 노예(산업)이 필요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근대에도 이정도니 과거의 인권이 얼마나 불분명했는지는 더 길게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여기서 추가로 2가지의 더 예시를 들겠다. 하나는 중국, 하나는 중세 유럽이다.

 

  ①. 춘추전국시대의 한 문헌에 따르면, 어떤 귀족의 취미 생활이, 마음에 드는 천민 여성을 골라 목을 자르고 전시했다는 내용도 있다. 애초에 중국 고대사에는 인육에 대한 언급이 종종 있으니 이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공자와 인육에 대한 이야기도 있긴한데, 이것은 내가 정확히 아는 이야기는 아니다. 애초에 도시전설이란 얘기가 더 많고. (출처 고우영의 열국지)

 

 ②. 유명한 책 찰스 다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보면 책 서장에 귀족의 마차들이 길을 막는 농민들의 길을 짓밟고 지나간다는 묘사가 있거나, 민생이 개박살나는데 귀족은 아예 신경도 안쓰는 묘사가 많이 나온다. 프랑스 혁명을 다루는 장르다보니 더 노골적으로 표현됐을 수도 있는데, 1859년에 쓰여진 작품인 만큼 그 시대상이 왜곡되었다고 보긴 어렵다고 본다. 그니까 까놓고 말해서 그 시대 사람들은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3.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가?

 

  의식 수준의 차이는 단지 생래적인 기능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의식이 지속적으로 훈련될 수 있도록 ​고도의 훈련을 거치는 것.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도록 만드는 것. 오늘날에는 보편적인 교육을 통해서 사회에서 필요한 또한 내 가치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의식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그냥 요컨대 현대의 교육은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도록 만든다. (대한민국 하의 주입식 교육에 그런 건 없다고 말하지만, 꼭 공교육이 아니더라도 오늘을 살아가다보면 내가 누구인지 모두가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반면 과거에는 그런 여유가 없었고, 각박한 삶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쟁했으므로 그런 내면 세계에 대해 탐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보면 철학적인 사유를 즐겨하던 이들은 대부분 먹고 사는 일에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반론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인류 대다수의 기술은 고도로 교육받은 지식인들(적어도 가난하지 않았던)로부터 탄생했다. 만국의 노동자를 단결시킨 마르크스마저 아버지는 유대인 집안 출신의 변호사였다. 비록 그는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했지만 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이토록 풍부한 사유를 할 수 있는 건 우리 모두가 최소한 생존권에 대해서 위협받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더 나아가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술이 우리를 풍족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시대를 반영하는 윤리란 기술을 반영하는 윤리와도 같다. 고도로 발달한 기술이 우리 모두의 윤리를 변화시킨 것이다.

 

4. 의식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하고 있다.

  많은 세계관들은 숫자 만큼이나 다양한 시대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느정도 구분할 수는 있겠지만, 그 모든 세계관의 모든 윤리가 동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표현하기 위해서 우리의 배경지식을 동원하고, 그 과정에서 현대의 윤리에 맞추는 경향성을 보이긴 할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다만 나는 위와 같은 윤리의 단면을 보고, 디테일한 세계관을 추구하는 우리가 세계관마다 다른 윤리를 적용시켜볼 수 있다는 걸 전하고 싶다.

댓글
10
  • 레스어틀라
    2022.10.23
    오독을 한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습니다만, 저는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관념적 진보 역시 이끌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시대적으로 보았을때 인간의 동일한 본성은 각 시대에서 다른 모습으로 야만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말씀하셨다시피 근대에는 노예제의 형태로 나타났겠죠. 하지만 그것이 기술이 덜 발전한 고대의 전국시대나 봉건 시대에 비해 더 나은 형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현대도 마찬가지죠. 인간은 학교를 통해 특정한 이념을 주입받고 자본주의는 공장식 형태로 인간을 객체화시킵니다. 현대 국가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지님으로써 국민들의 삶을 제한하고, 국민을 수단화시키는 도구입니다. 이런 모습은 베트남 전쟁으로, 또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혹은 소련의 공산 체제로서 나타났습니다. 이름과 제도만이 다를 뿐 노예 제도는 고대, 근대, 현대에 들어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예는 징집제의 모습으로, 그리고 고용 노동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인권의 개념으로 설명을 하셨습니다만 인권이 현대에 들어 명시적인 것 외의 부분에서 진보하지 않았다고 보는 이유도 이로 인합니다. 물론, 현대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인간이 투표권과 피선거권, 신체보존권 등의 권리를 얻기는 하였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연적인 가치를 잘 지켜내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현대는, 인간을 물질적이고 유물적인 존재로 격하시켜 과거의 종교적, 관념적 존재였던 숭고한 것들까지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아까 전에 인육 얘기를 하셨습니다만 그것이 오늘날에 사라진 관습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여전히 인신매매의 형태로 존재하니까요. 이런 현대 하에서의 인신매매는 도리여 인간의 육체를 물질화시키고, 우마를 도축하듯 부위별로 가격을 책정함으로서 인간의 피와 살점까지 자본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인간이 아니라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현대의 인육이, 고대의 인육보다 어떻게 보면 더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것이 아닐련지요.
     
    기술의 진보는 인간 관념의 진보, 인간 관념의 진보는 사회의 진보라는 막스주의적 역사관이 그러한 점에서 치명적인 결점을 가진다는것입니다.
  • 레스어틀라
    용용
    2022.10.23
    @레스어틀라 님에게 보내는 답글
  • 레스어틀라
    용용
    2022.10.23
    @레스어틀라 님에게 보내는 답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좋은 이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예는 늘 존재한다는 이야기처럼 들리고, 실질적으로 그런 세상인 것 같습니다. 결국에 이 글 역시 현대윤리라는 편향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다보니 맹점을 많이 가지는 것 같네요.
  • heni2108
    2022.10.23
    결국은 윤리가 형성된 원인에 대한 차이와 윤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발전이 아닌 형성 입니다. 기술의 발전이 현대 윤리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다른 시대의 윤리까지 모두 기술의 발전 만으로 설명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 됩니다. 그리고 동일한 시대, 유사한 환경이라고 할 지언정 동일한 상황에 대해 지니는 인식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단편적인 예시로 중세 서유럽의 윤리는 게르만족이라는 인간 본능에서 유래된 윤리와 예수라는 사람 한 명의 가르침의 변형에서 유래된 윤리의 결합이었습니다. 이 두 윤리의 관계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의 정당화 되었고 새로운 개념들을 탄생 시켰습니다. 물론 이것은 성직자와 같은 지식인들의 이야기이고 일반 시민들은 이렇게 탄생한 윤리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닌 왜곡하고 일부만 수용하는 등 그들만의 독자적인 윤리를 형성 하였습니다. 당시 교회는 일반 시민들의 이러한 행위를 탄압하기보단 그들의 윤리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방향으로 따라갈 수 있게 가이드를 제시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 heni2108
    용용
    2022.10.23
    @heni2108 님에게 보내는 답글
  • heni2108
    용용
    2022.10.23
    @heni2108 님에게 보내는 답글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제가 확실히 그런 부분들을 외면하고 기술 중심적으로 서술하긴 했네요. 윤리와 종교에 대한 이야기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종교 쪽이 무지한지라 이 이야기를 보니 맞네.. 중세 윤리는 곧 종교구나 딱 떠오릅니다. 그저 저는 결국 기술이 총체적으로 인류 전체의 지식 향상에 이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늘 이곳저곳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킹아!
  • 담뱃갑
    담뱃갑
    내댓글
    2022.10.28
    너무 흥미로운 주제이자, 다루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윤리와 도덕을 다루기 위해선 가치관과 논리, 명분, 그 외 너무나 많은 것들을 모두 다뤄야만 온전한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전 몇 가지 흥미로운 얘기만 첨언하고 사라지도록 하겠습니다.
     
    과거 근대 무렵, 유럽 특정 지역에는 엉긴 우유라는 해괴한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인고 하니, 한창 청소년기인 소년이 꼬꼬마 여자애한테 푼돈 쥐어주고 수음을 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아니, 정신나간 아동성착취가 아닙니까? 근데 그 당시에는 딱 요즘 고딩들이 담배피는 정도의 일탈로 받아들였지, 현대 아동성범죄와 같이 심각한 죄질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또한, 당연히 그런 문화가 있는 사회에선 해당 성착취를 당한 여아 역시 그게 끔찍한 일이란 인식이 없기에, 별다른 트라우마도 없이 잘 자랐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근대 정신의학계와 법학계에서 관심을 가지며 수면 위로 올라오자, 이 엉긴 우유라는 풍습은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엉긴 우유는 잘못된 것이니, 잘못된 것을 알게모르게 당해버린 여아는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아, 내가 천일공노할 쓰레기짓을 당했구나! 난 더렵혀졌구나!
     
    당연히 현대윤리를 적용했을 때, 엉긴 우유는 잘못된 풍습입니다. 아동은 성적자기결정권을 가지기엔 너무나 미숙하며, 그들에게 사랑과 보살핌이 아닌 날것의 욕망을 투영하는 이기주의적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현대윤리'를 적용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토마스 쿤은 세상을 바라보는 과학관을 두고 진보가 아닌 진화라고 말합니다. 흔히 우리가 사용하는 '패러다임'이라는 단어가 바로 그것입니다. 요컨데, 고대 그리스에선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과 플라톤의 이데아론 만으로도 세상을 모두 규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언가 더 필요해졌고, 따라서 기존의 이론은 수정을 거칩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수정은 과학관을 성장시킨 것일까요? 글쎄요, 완벽한 세상을 다른 완벽한 세상으로 바꾼 것일 뿐, 4원소설은 다분히 이성적이었으며 논리적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더 정밀한 수학체계와 관측기계 뿐이었으며, 그들의 이론은 완벽했습니다. 과거의 과학관, 지금의 과학관, 미래의 과학관은 모두 완벽할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렇기에 더 낫고 말고도 없으며,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또 바뀜에 틀림없는 불완전한 것입니다.
     
    윤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믿는 윤리관은 언제나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이론이 필요할 뿐입니다. 앞으로도 다른 이론이 필요하겠죠. 그것이 진보를 의미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물질적이며 실존적인 세상의 기준인 과학이 아니라, 지극히 관념적이고 본질적인 세상의 기준인 윤리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사람들은 경로의존성 때문에 지금의 도덕적, 윤리적 질서를 지키는 것에 강박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은 한 때의 무언가일 뿐입니다.
     
    계속하여 쓰겠습니다.
  • 담뱃갑
    담뱃갑
    담뱃갑
    내댓글
    2022.10.28
    @담뱃갑 님에게 보내는 답글
    후술할 내용은 콜버그의 도덕성 6단계와 니체의 정신발달 3단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게 실제 연구가 이뤄진 내용인지는 모르겠으나, 저의 경우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며 같이 다룰 경우 흥미로운 상승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후술할 내용은 제가 니체의 실존주의 철학에 다분히 많은 영향을 받았기에 이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위에서 서술하였듯, 도덕적 윤리적 질서라는 것은 굉장히 유동적이며, 현재 우리가 믿는 가치가 과거 또는 미래에는 무가치해질 수 있다는 것은 언뜻 생각하면 소름끼치는 사실입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근원적 기준이 없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믿는 모든 가치들이 허상임을 지적합니다. 실로 타당한 말이며, 실제로 그러합니다. 윤리와 도덕은 허상에 불과하며, 우리는 그것을 따를 이유나 타인에게 강요할 근거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따라 움직여야 할까요? 그리고 왜 그렇게 움직여야 할까요?
     
    하인츠 딜레마는 이에 대한 좋은 예시입니다. 전 인간의 도덕관념이 나이나 학습 등에 따라 바뀐다고 믿진 않으며, 실제로 후속 연구에 따르면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정론인 듯 합니다. 저 역시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콜버그가 분류한 도덕성 6단계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대표적인 도덕관념을 잘 보여주며, 단순히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바로 '왜 우리는 이걸 이런 방식으로 옳고 그르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판단 근거입니다.
     
    우리는 경로의존성에 따라 도덕을 규칙으로써 받아들입니다. 도덕이 규칙인 것은 사실이나, 도덕이 규칙과 달리하는 점은 그 규칙들에 지켜야 할 마땅한 근거와 존재 명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도덕적으로, 또는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그냥 '그러면 나쁘니까! 이러면 착하니까!' 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는 흔히 규칙을 어겼을 때의 처벌을 두려워하거나,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한 수동적 사고방식에 불과합니다. 니체의 정신발달 3단계에선 이러한 상태를 낙타에 비유합니다.
     
    좀 더 나아가자면, 우리는 스스로 윤리적인 사회 일원이 되어 사회의 신뢰와 좋은 인간관계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혹은, 이 신뢰와 인간관계의 선순환을 의식하고, 이 선순환을 유지하려는 준법정신 역시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외부에서부터 가치를 추구하는 수동적 윤리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규칙 자체에 의문을 가지며, 지금의 상황에 맞는 적합한 선택과 이 선택을 존중하는 윤리관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그저 현재의 규칙이 당연하다고 믿으며, 규칙에 익숙하며, 규칙을 재구축하는 것이 피로하기에 하지 않을 뿐입니다. 이렇듯 규칙을 파괴하고 더 적합한 규칙을 창출해내는 것을, 니체의 정신발달에선 사자에 비유합니다.
     
    콜버그의 정신발달 6단계는 사실상 이 영역에서 끝이 나지만(6단계는 공통적으로 적용되기 난감하다고 보며, 애초에 6단계의 도덕성은 지나치게 종교적이며 본질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퇴보했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니체의 정신발달 3단계는 사자의 단계 이상이 있음을 말합니다. 바로 어린아이의 단계입니다.
     
    어린아이 단계에서 사람은 도덕과 윤리에 얽메이지 않습니다. 도덕과 윤리는 관습과 관성을 만든다는 점에서 무가치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정서적 공감과 이성적 판단을 극대화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능력이지, 언제나 유동적으로 바뀌는 도덕과 윤리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성숙한 정신을 통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음에도, 현재의 윤리와 도덕에 의존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이유로 쉽사리 현재의 규칙에 편승하려고 합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에 맞는, 내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도덕기준은 그 누구도 만들어 줄 수 없음에도 이를 고뇌하는 것이 고통스럽기에 우리는 회피하고 맙니다. 이런 경향성은 결국 개인을 사회에 종속된 수동적 인간으로 만들어내며, 개인으로 하여금 그들 고유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윤리와 도덕은 우리에게 좋은 교과서이자 사례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기준이 될 수 없음이 너무나 자명합니다. 물론 위 모든 발달과정에는 우열이 없습니다. 애초에 우열을 나누는 것이 가능한가, 우열이 있다면 다른 단계로의 도약은 가능한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 언제나 이런 윤리관에 대한 내용을 보면, 자발적이며 주도적 삶을 사는 것을 포기했을 뿐 아니라 윤리적 삶을 더 나은 가치라고 메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예전부터 토론에서 다루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한 얘기기도 해서 한 번 써 봤습니다. 여전히 제 사고체계에 대한 설명을 위해선 더 많은 내용이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쌉tmi이기 때문에 이만..
  • 담뱃갑
    용용
    2022.10.29
    @담뱃갑 님에게 보내는 답글
  • 담뱃갑
    용용
    2022.10.29
    @담뱃갑 님에게 보내는 답글
    글평 부탁드렸더니 훌륭한 의견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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