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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독일은 그 자체로 독일인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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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란

https://cafe.naver.com/madenewworld/6338

 

이 글은 1번국도님의 게시글 ‘독일은 그 자체로 독일인가?’에 관한 사견을 정리한 것이다. 앞으로 많이도 구하겠지만, 필자 본인의 필력 부족으로 말끔한 글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미리 양해 구한다. 독해가 귀찮은 회원을 배려하여 원글에 나름의 요약을 거친다면: 그는 “독일을 모티브 삼은 폰란드란 국가는 독일의 고유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지 않으면서도 [독일적인] 혹은 [독일과 거의 유사한] 사회문화적 요소를 가지는”데―이어 푸념하며―그 때문에 폰란드는 하등 복제품에 불과하고 자신의 세계관에 대해서는 “말이 되지 않는 설정을 본인의 무지와 아집으로 억지로 끌고 왔던 것”이라 진단한다. 진단이 암울하니 처방은 어떻겠는가? “어떤 것에서 모티브로 삼은 것을 성립시키려면 모든 것이 현실과 완전히 같아야 한다”는 허무주의적 통보와 더불어 “내가 한 것은 결국 자가복제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으로 끝맺는 암울의 궤적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암울한 것이나, 창작자들의 마음 한편 또한 쉬이 착잡하게 만드는 까닭에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전통적인 ‘창조적 창작자’의 관념이 붕괴하고 새로이 세워지는 ‘해석-가공하는 창작자’란 소담론에서 창작자들이 부자유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면서도, 복제품은 원본보다 저급하다는 언사를 통해 복제의 가치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인데, 정말 폰란드는 그 자체로 독일일 수 있는가? 질문을 더하여, 복제는 원본의 가치성을 따라잡을 수 있는가 하며, 원글과 관련해 현대라는 시대적 상황에 요구되는 질문은 무엇인가 등등…. (이러한 자문자답은 등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

폰란드의 존재적 당위성에 관하여: 우선, 폰란드는 존재할 수 있는가? 실존적 맥락이 아닌―당연히 폰란드는 존재하지 않다지만―당위성의 맥락에서 말이다. 독일의 복제품에 불과한 폰란드는 과연 존재함에 있어 당위적일 수 있는가? 필자의 대답은 ‘그야 당위적으로 존재할 수 있지’이다. 사실, 폰란드의 당위성을 논하려면 보다 높은 개념을 일갈해야 한다. 현실의 독일은 그 자체로의 독일일 수 없고, 자체로 독일인 주체-독일을 벗어나 객체로서의 독일인 ‘프랑스의 동부에 위치한 독일’이자 ‘폴란드의 서부에 위치한 독일’ 등이어야만 독일일 수 있다. 존재는 관찰자가 있어야만 인식된다. 즉, 독일을 비롯한 근본적인 존재의 당위성을 고찰하기 위해선 존재가 존재하는 세계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는 존재의 외부이자 관찰자이고, 그 역 또한 성립한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물어보아야 할 것: ‘폰란드의 세계는 안녕한가?’, 현실이란 세계를 닮은 그 가상의 세계는? 이러한 맥락에서 그가 폰란드가 존재하는 세계(‘가상 세계관 1’)를 가정했었단 사실은 놀랍다. 하지만 또다시 푸념. 이유는 “[독일] 대신 [폰란드]라는 이름이 폰란드의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므로, 폰란드라는 이름도 성립하지 못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원글의 이전에도 언급되지만 개변범위를 설정함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폰란드라는 국명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성립 불가능성은 정치사회적, 문화예술적 요소들, 다시 말해 불가능성은 인문적이며 정신적인 범주에까지 포괄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 그치는가? 지정학적 요건이나 지리적 분포, 물질적 기반까지 포괄한다. 이에 더하여 정신적 요소와 물질적 요소의 소통까지 포괄하자니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또한, 객체를 이루는 폰란드/독일 외부의 ‘세계’에 관해서는 어찌 상담을 하여야 하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사실, 문제는 가까운 곳에 있다. 근본적으로는―창작 자체, 나아가 존재 자체가 문제의 창출이겠지만―현실에 존재하는 원본 독일을 모티브 삼았기에, 즉 모티브라는 방법론을 사용하여 ‘변화’를 꾀하였기에 문제가 발생한다. 현실 자체를 옮겨오면 그것은 변화가 아니라, 그저 현실에 관한 서술이다(이후의 서술에서 필자는 이를 복사니 복제라고 칭할 것이다). 원본-현실 독일은 원본-현실 세계와 계속 소통하여야 비로소 원본이고 현실로 기능할 수 있다. 나의 진단은 이러하다: 세계와 잘 소통하던 독일, 정확히는 ‘세계와 잘 소통하던 독일에 관한 묘사’를 토대로 만든 가상적 독일인 폰란드를 놓고, 이 폰란드에게도 본래의 독일과 같이 소통의 대상되는 세계가 요구되니―그래야 ‘세계’관이 되기 때문이며(물론, [세계‘-’관]은 아니지마는), 오직 폰란드만 만들어 공허한 관념의 바다를 떠돌아 스스로가 스스로만의 세계로 변모하는 일이 없게 하려고―‘가상 세계관 1’이란 균형을 구축한 것이다. 모티브를 통한 분리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잃어버리는 것이 있다. 이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의 소실은 독일이 폰란드란 요소로 복제(재해석)되는 과정과 결과로서의 연장에서 비롯된다. 이 소실은 폰란드와 본디 폰란드이던 독일 간의 마찰에서 발생하는 소실이다. 모티브의 방식으로 어중간히 이루어진 변화는 불쾌한 골짜기와 같이 양 형태 간의 유사성에서 기원한 계속적 마찰을 누진한다. 탈피를 통해 독일은 가상 세계관 1이란 가상계에 폰란드란 이름으로 자리잡지만, 본래 소통하던 독일과 현실의 사이를 갈라내고 폰란드라는 복제품과 현실 아닌 가상을 들였으니 그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마찰은 거의 끊임없이 탐구할 수 있는 실재인 현실을 저버리고 제한된 개인의 인식론적 세계 속 거울에 비친 불완전한 현실의 상을 담지함과 동시에 유사한 총체적 현실인 가상의 총체를 목적함으로써 발생한다. 둘째는 원인과 결과 간에 존재하는 ‘과정의 모호성’이다. 인간은 생래문화적으로 해답을 추구하는 존재인데, 이는 인간이 어떠한 현상에 대하여 끊임없이 정립하여 들기 때문이다. 무언가 사건이 발생하면 이를 설명―사건은 ‘사건’이라는 프레임으로 이미 정립되었다. 나아가, 본문의 “이순신의 이름을 김김김으로 바꾼다고 해서 세계가 달라질까?”란 질문은 동어반복이다.―하려고 한다. 이러한 정립은 필연적으로 ‘결과’라고 불리는 일종의 진단과, 이에 선결되는 최초동력인 ‘원인’의 가정을 가능하게 한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자동으로 무엇이 위치하는가? 그것은 과정으로서의 중간설명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원인-과정-결과의 도식을 현실 독일과 폰란드란 예시에 대입하여 보자. 현실은 구조가 부족하지만 존재하는 세계의 구조 중 가장 완성된 구조(가상의 원천)이고 현존하는 자체로서의 실재이기에, 통념적이거나 비교적 잘 알려진 권위적 사실들에 관해서는 탄탄한 과정의 설명이 보충된다. 헌데 일개 창작자는 그러한 총체성을 담지하지 못한다는 어쩔 수 없는 능력적 한계에 봉착하며, 원인-결과라는 직선적 시간선 상의 규정이란 고정성에서 탈피가 불가피하기에 위기를 맞이한다. 현실이야 놓인 객체인지라 지속적인 ‘발굴’이 가능하지만, 세계관이 발화되는 타인의 생각은 해당자의 구술이나 행동, 그에 비하면 많지 않은 기록을 통해서만 해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전자는 시침과 분침의 조합으로 매번 시간을 통보하는 시계이지만, 후자는 특정 메커니즘으로밖에 소통이 한정된 탁상시계의 알람 기능이다. 물론, 과정을 중시하는 창작자도 존재하지만, 현실에서 가상으로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정보의 잠재성의 소모를 담지함은 사실이다. 이는 개인 창작자에서 벗어난 상업적 창작물의 거대구조로서의 세계에도 해당하는 문제이다. 단지 여럿이 의도한 구조는 총체에 접근할 수는 있어도 그에 동일해지진 못한다.

그렇기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세계관은 현실 세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본문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저런 것(현실과 가상 불일치의 예시)에서 자유로우려면 현실 세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야 한다”는 추측은 현실적 종속성을 은폐하는 세계관의 기능적 함의를 내포할 뿐이다. 모든 가상은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너무나도 많은 지식이 요구”된대도 가상은 결코 현실에 비견하는 총체를 갖출 수 없다. 가상의 총체는 현실의 신기루이다. 완벽성을 내걸고 세계관을 운용할 수는 있지만, 결코 세계관은 완벽해지지 않는 걸 어찌하는가? 그러한 연장에서 다음의 체념적 문단은 헛되다. “[말이 되지 않는 설정]을 본인의 무지와 아집으로 억지로 끌고 왔던 것”이 아니라, 세계관의 자연스러움(현실성)을 추구하려 몸부림친 실재라는 모래사장의 피복에 형성된 상흔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어 인용하자면 “내가 그리고 있는 지도를 현실의 지구 지도와 다르게 하려던 것은 모두 무용지물”은 아니거니와, “어떤 것에서 모티브로 삼은 것을 성립시키려면 모든 것이 현실과 완전히 같아야 한다”는 것은 더욱이 아니다. 후자의 모티브는 원본의 변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자의 무용성의 경우에서는 작금 시대의 진단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겠는데, 가상이 현실을 대체하는 세계―‘현실이 흐릿해지는 세계’―가 바로 지금의 세계가 아닌가 하며, 수많은 ‘복제’가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같은 모습으로 ‘찍어내지는’ 현실이 아니던가? 게바라를 상품화한 티셔츠는 이미 반백 년 전에 성행했던 바가 있으며, 고대부터 사용된 무수한 상징들은 어떠하고, 결정적으로는…(종교적 이야기는 누락시켰다). 그러한 맥락에서 니체의 신살선언은 유보되어야 마땅하다. 절대자는 물신(物神)의 모습으로 찬란하게 부활을 꾀했다. 다시, 윤리성을 제쳐두고라서도 가상의 점증이 정복한 세계가 작금의 현실이 아니던가? 자조적으로 말하건대, 창조적 창작자는 물신의 대리사(代理死) 당했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해법을 따지기 이전, 국도님이 시도했었던 세계관 창작 행위들이 그저 기계적 복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해답을 갈구하기 위해서라면 복사와 모티브를 비롯한 몇몇 개념을 다시 짚어볼 필요성이 있다. ‘지금껏 하던 일들은 자가복제에 지니지 않았다는 것’은 그리 ‘분명한 것’이 아니며, ‘자가’복제 또한 아니거니와 그리 무가치한 행위도 아니다. 가치의 매김은 가치의 형성에 참여하는 논의자에 책임과 권한이 일축되며, 또한 그 의미가 상대적이고 가령 시장에서 형성되는 자연적 가격과 같이 제삼자가 참견할 주제는 아니다. 복사기가 함의하는 복사/복제의 기능은 가내수공업적 생산과 유사하게 각기 생산품의 양질적 측면에서 상이한 양태를 가지는 인간의 불규칙적 생산과는 궤를 달리한다. 복사기는 기계적 생산으로 말미암아 식별적으로 동일한 서류를 ‘찍어낸다’. 세계관 창작자들은 자신 창작의 연장에서 텍스트나 그림으로 된 창작물을 서적의 형태로 복사하거나 혹은 성곽에 접착된 만인을 대상한 선언의 형태로 개인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게재하는 그러한 기계적 생산의 방법론 외에, 1차로 창작물을 최초 창작할 당시가 본래로 고정된다. 즉, 모티브라는 원본으로부터의 변이는 “자가[복제]”가 아니며, “[자가]복제”는 더더욱 아닌 까닭이다. 쉽게 말해, 모나리자를 대상한 트레이싱은 복제일지 모르나, 머릿속의 모나리자(원본)의 모습을 떠올려 자신의 사견을 덧붙인 새로이 스케치한 작품(가상)은 현실과 세계관의 관계를 재해석하는 과정이다.

본래 요소와 그 배경되는 현실과의 지속적 소통이 무산되어 일어난 마찰이 독일이 그 자체로 독일일 수 없는 의문이 제시된 발화의 시발점이라면, 세계관 창작자인 우리에게는 어떠한 해답이 요구되어야 하나? 사실 이러한 답에 관해서는 다음의 글에서 소개해보려고 했기에, 간단히 제시해보겠다. 우선은 ‘발화’를 가속하는 안이 있다. 세계관이라는 어색함은 숨겨지지 않고 오히려 창작자는 작품의 표면에서 적극적으로 드러내진다. 애써 총체를 품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폰란드의 우스꽝스러움을 돋보이게 하여 실존치 않는 세계란 것을 독자들에게 깨닫게 하라. 그리고 그 지점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라. 둘째는 새로운 세계의 완결성에 함몰하는 방안이다. 인간의 인식론적 범위는 한정적이기에 총체를 나름대로 품는다면 해당 세계는 현실의 인식론적 기획에 그나마 가까워질 수 있다. 이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작금의 상황에 어울린다.

 

 

 

 

 

-. 출처

 

먀오, 「‘독일은 그 자체로 독일인가?’를 읽고」, 『세계관 제작소』, 2021. 2. 28, <cafe.naver.com/madenewworld/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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