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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호이4' 속 아나키즘에 관한 아니키스트 연대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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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란

 

 

 

우리가 아나키즘인가 뭔가를 운동의 원칙으로 삼아 활동을 해온지 어언 2년이다. 그리고 그 2년간 참으로 많은 아나키스트 (대부분 자칭) 들을 만나왔다. 그러면서 경험적으로, 통계적으로 확신하게 된 무언가가 있다. “남조선 땅 (자칭) 아나키스트들의 80% 이상은 하츠 오브 아이언 4 (이하 호이 4) 나 카이저라이히 (이하 카라) 를 하다가 아나키즘 뽕에 차올라서 (자칭) 아나키스트가 되었다.” 는 사실이다. 무얼 숨기랴. 애초에 <아나키스트 연대> 의 회원 중 절반 정도도 그러다가 아나키즘 뽕에 맞은 것을.


하지만 우리가 만나온,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 일컫는 자들 중 또 80%는, 왜인지 이상한 원칙들을 얘기하면서 이게 아나키즘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단순한 산수로 계산해본다 하더라도 아마도 남조선 땅 “아나키스트” 의 60% ~ 80% 정도는 호이 4를 하다가 이상한 아나키즘 뽕에 맞은 것이라 보는 것이 수리적으로 틀리지 않다. 대체 이 게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이나 다종다양한 이상한 사람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그토록 궁금한 와중에, 언제나처럼 연쇄 할인마 스팀동지께서 호이 4 세일을 걸어주시니, 어찌 구매하지 않을 수 있었겠나.


게임을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다보면, 국공합작 이벤트가 나오고 조금 더 지나서 루거오차오 사건 이벤트를 전후로 해서, 스페인 공화파가 반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한참 스페인 내전을 지휘하다 보면, “스페인 내전에서의 아나키스트 반란” 이 나오며 <아라곤 지역방위위원회> 가 성립된다. 플레이어가 스페인을 플레이하고 있지 않다면, 아라곤 지역은 높은 확률로 국민파의 통제 아래에 있는 가운데 카탈루냐 지역 세력으로 현현하지만, 어쨌든 아나키즘 세력이 등장하는 것이다. 여기서 첫 뽕이 찬다.


아라곤지역방위위원회의 특질은 다음과 같다. 하나, 안정도가 사실상 0%로 고정된다. 둘, 전쟁지지도가 사실상 100%로 고정된다. 셋, 징병을 할 수 없어서 항상 인력 고갈에 시달린다. 이것만 보면, 당시 스페인에서 살아가던 아나키스트 선배님들께서는, 누구도 전쟁에 부르지 않아도 흘러넘치는 전쟁에 대한 열정으로 사회의 안정성 따위는 내던진 채 파시스트 돼지들의 심장에 총탄을 박으러 나아가는 혁명 전사들이셨던 것이 틀림없다. 두 번째 뽕이 찾아온다.


어떻게든 스페인 내전을 마치고, 포르투갈에 “민주주의 배달부” 같은 것이 되어 ‘자유’를 전파해주면, <아라곤 지역방위위원회> 는 <이베리아 지역방위위원회> 가 된다. 그리고 거기서 무언가 무언가를 하다보면, 마침내,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아나키스트들의 마음의 고향, <범세계방위위원회> 가 등장한다. 전쟁명분 획득시간의 극단적 감소, 점령지를 아나키스트 지상낙원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모든 지역에 대한 핵심영토 획득 기능, 세력을 만들지 못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패기, 점령지를 해방하지 못하는 일국아나키즘. <아라곤 지역방위위원회> 의 혁명 전사들은, 세계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명분도 없는 전쟁으로 뛰어들고 그렇게 점령한 땅을 아나키즘으로 세뇌 조교하는 방법까지 배우신 모양이다. 그러다보니, <범세계방위위원회> 는 게임 내에 등장하는 그 어떠한 세력보다 더 세계정복에 유리한 세력이 된다. 또, 뽕이 찬다. 세 번째다.


하지만 이렇게 아나키스트 세계혁명 (이라고 불리는 세계전쟁) 을 완수하고, 붉게 물든 세계를 바라보며 뽕들을 채워 오신 분들은, 우리와 이야기하다보면 언제나 당황한다. 이게 왜 아나키즘이죠? 같은 말이 절로 나오기 시작한다.


애초에 <아나키스트 연대> 는 최소한 남조선 땅 안에서는 스페인 혁명 당시의 CNT-FAI 와 당시 아나키즘적 조합주의 운동에 대하여 누구보다 맛깔나게 깔 수 있는 조직이다. 그렇게 자부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말할 수 있다. 하나, 1936년 당시 CNT-FAI 는 결코 “스페인 내전에서의 아나키스트 반란” 따위를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지도부는 공화국 정부와 그들의 ‘인민전선’ 에 복무했다. ‘아나키스트 법무부장관’ 후안 가르시아 올리베르 씨는, “우리는 혁명을 위해서라면 목숨보다 더한 것이라도 포기할 것” 이라면서 “그렇기에 우리는 공화국 정부와 함께할 것” 을 선포하신 바 있다. 최소한 아나키스트 반란이라도 일으켜보고 진압당해 패배했다면, 그 패배한 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뽕이라도 느낄 수 있겠다만, 일어나지도 않은 반란이 게임 속에서 일어나는 순간 대체역사조차도 아닌 가상의 지구-4로 날아가 버리는데 무슨 뽕이 차겠나.


하나, 이걸 굳이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나키스트들은 전쟁광 따위가 아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파시스트들과의 전쟁에 미쳐있던 전쟁광들은 전쟁을 위해 사회 안정도가 중요하니 정부에 복무했고, 정부를 해소하고자 노력했던 평범한 아나키스트들은 자기 지역에서 파시스트들을 몰아낸 후 산업의 집산화와 행정의 공동체화에 나섰다. 무엇보다 정부가 없다는 것이 왜 사회 안정도가 0%인 것으로 연결되어야 하는가. 스페인 혁명에서 아나키스트들이 주도하던 사회에서 정부는 기능하지 않았지만, 사회는 그 어떠한 때보다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인민들은 누군가가 지시하지 않아도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해내었다.


하나, 아나키스트들은 단 한 순간도, 세계정복 같은 것을 꿈꾸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세계제국을 어떻게 하면 더 잘게 쪼갤까를 고민해온 것이 아나키스트들이다. 아나키스트들이 바라마지않는 세계혁명이라는 것은, 해방 이베리아에서 양성해낸 백만 민병대원들의 해방전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인민들이 자발적 투쟁을 통해 자기 사회를 변혁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나키스트들이 국제적 ‘세력’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도 잘못됐다. 애초에 CNT 부터가, IWA 라는 국제연대체의 회원조직이었다. 심지어 CNT 스스로가 과반을 장악하지도 못한 노선을 가지고 있던 조직 말이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호이 4 에서의 아나키스트 뽕이 결국 아나키스트인지, 뽕인지도 모르겠는 것으로 귀결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게임플레이 경험에 있다. 아나키즘은 대중의 운동이다. 누군가의 영도를 따라, 혹은 어떠한 당의 지도를 따라 사회를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옆에서 살아 숨 쉬며 노동하는 내 친구와 이웃, 부모와 형제자매들이 사회를 변혁하는 운동이다. 그 안에서 아나키스트들이 해야 할 일은 대중운동의 지도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 안으로 들어가 대중운동의 일익을 담당하는 가장 급진적인 노선을 건설해내는 것이다.


하지만 호이 4 를 플레이하는 우리에게 아나키스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인력 수십만이라는 숫자로만 표시되는 대중들이 아니다. 게임 속에서 ‘국가’ 에 효과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는 그래픽 데이터 쪼가리인 ‘아나키스트 코뮌’ 이라는 국가지도자마저 아니다. 호이 4의 아라곤 지역방위위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적재적소에 버튼을 누르고, 늦지 않게 이벤트 트리거를 누적하며, 뛰어난 전략으로 군대를 운용하는 지도자다. 그러니까 모니터 뒤에 있는 플레이어, 당신 말이다.


이렇게 당신은 이번 세이브 파일에서 스페인 인민대중들에게 유일신이자 지배자요, 절대군주이자 헌법이며, 인민들을 이끄는 전위당이자 서기장 동지가 된다.


그리고 당신은 자연스럽게 이러한 게임의 전위당마저도 개발사가 만들어 놓은 게임 시스템에 귀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당신이 아무리 대중들에게 자유를 선사하고 싶어도, 체제 (시스템) 가 당신에게 보여주는 것은 당신의 지도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하다가 프랑스나 비시프랑스, 나치 자식들에게 유린당하는 스페인일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아나키스트 뽕이 빠진 당신, 결국 대충 공산 폴란드를 건설하여 나치 자식들을 무너트리면서 행복해하는 것으로 귀결할 것이고 말이다.


그러면, 우리의 아나키즘 운동이 매번 들어온 것처럼, 싫으면 이민을 가면 되지 않나. 다른 게임으로 탈주하거나, 정 못하겠으면 코딩을 배워서 새로운 게임을 만들면 되지 않겠냐는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체제의 창조자이자 개발자가 된다고 해도, 무엇이 바뀌는가. 게임의 개발자는 대중을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시스템을 창조해낼 수는 있다. 혹은, 시스템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게임 개발자가 창조해낸 무언가는, 당연하지만 게임 개발자가 직접 통제해 무너뜨려버릴 수도 있다. 그들은 게임에서의 권력을 잡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할 수 없다. 동시에 그들이 될 수도 없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 이 게임은 너무 권위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이어서 못해먹겠다고 욕을 박은 후, 아예 다른 게임을 찾아 떠난다. 대충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동으로 무언가를 건설해내고 다른 사람들과의 합의로 사회를 만들어내는 게임, 그러니까 마인크래프트 같은 것으로 말이다. 이러한 자위행위는, ‘나’ 를 보다 행복하게 만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호이 4 안에 존재하는 스페인 인민대중에게는 어떠한 변화도 주지 못한다. 내가 서울 시내 옥탑방 하나를 점거하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곳을 아나키스트 코뮌이라 소유를 선언하는 것이 남조선 땅 인민들의 삶에 어떠한 변화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딩을 건드린다. 시스템의 코드를 뜯어내고, 그 코드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재조립한다. 이를테면, 게임 속의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뜯어고쳐 고정된 산출량을 랜덤으로 산출되도록 해 게임 속에서 자유로운 대중을 구현해본다. 이를테면, 게임 그 자체의 틀만 놓아두고 아예 새로운 게임같이 돼버린, 속 내용이 완전히 바뀐 현상을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우리가 만든 모드를 창작자 코뮌, 아니 커뮤니티에 업로드하고, 다른 모더들의 피드백을 기다린다. 이를테면, 그들이 우리 모드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사회를 구현해낸다. 이를테면, 그렇게 만들어진 모드들을 총합하여 하나의 거대 모드를 구성하여 아예 게임을 뜯어고친다.


물론 이러한 작업들이 게임의 본질적 시스템에 가로막힐 수는 있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복잡하게 자유로운 대중을 구현해봤자, 듀얼코어도 인식하지 못하는 구질구질한 클라우제비츠 엔진의 성능으로 그걸 어떻게 감당하겠나.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게임의 시스템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뜯어고치러 나아가야 한다. 그러한 우리의 지향점으로 더 많은 모더, 대중들을 모아내야 한다. 그러다보면, 개발자라는 자들은 성공작이 될 빅토리아 3 나 하츠 오브 아이언 5 에서는, 보다 나은 시스템을 제공 할테니까. 모딩으로 단련된 누군가가 더 나은 세계, 게임을 건설하러 나서는 것이 이제는 찾기 어려운 사례도 아니니까 말이다.


완벽한 대입은 어렵다. 사회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게임을 사회로 대입해, 현실로 대입해 완벽한 비유를 해내기에, 현실은 게임과 같은 정교하게 통제되고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게임 속 모더들처럼, 우리의 생각이 언제라도 혁신적인 무언가로 갈아치워질 그 날까지. 정해진 체제와 시스템 속에서, 플레이어로서, 그리고 그 속에서 변화를 촉진하는 모더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 낸 저항과 싸움들의 총합이, 게임을 변화시킴과 동시에 사회의 변혁을 이끌어내지 않겠는가.

 

 

 

 

 

-. 출처

 

아나키스트 연대(anarchistleague), 「하츠 오브 아이언 4 : 플레이어에서 모더로」, 『아나키스트 연대』, 2022. 5. 4, <blog.naver.com/anarchistleague/222720802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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