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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축씨는 꼬마 유령에게 치유받고 싶어., "귀여움이란 이름의 가림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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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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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애니 겉핥기 리뷰에서 만화 『사축씨는 꼬마 유령에게 치유받고 싶어.』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에 대하여 다룬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해당 작품을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꼬마유령은 사축씨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서 작용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고찰할 것입니다.


사축(社畜)이란 나무위키에 따르면 ‘회사와 가축을 합쳐 만든 신조어로, 자신의 자유의지와 인생을 회사에 좌지우지 당해 회사의 가축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된 불쌍한 직장인’을 뜻합니다. 본래 일상으로 돌아가고픈 욕구가 있는데도 회사에 상주해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후시하라 씨 또한 그런 사축에 속합니다. 그녀는 사축의 전형입니다. 부장의 호통을 들으며 스트레스를 받고, 상급자의 업무를 떠맡아 대신합니다. 야근시간이 정각을 넘는 것은 기본이요, 몸살감기에 아파하는데도 업무에 치여 병가조차 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야근 중 ‘사라져’라는 괴이한 톤의 목소리를 듣고, 소리의 근원을 찾아 회사를 둘러보다 꼬마유령과 조우합니다. 꼬마유령은 사축씨가 앓는 모습이 안쓰러워 겁을 줘 쫓아내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곧, 사축씨는 꼬마유령의 귀여움에 치유받지요. 그리고 힘을 냅니다. 사축씨는 유령의 귀여움에서 얻은 에너지를 잡무를 끝마치는 데에 이용합니다. 힘을 내어 빠르게 일을 마치고 회사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 이것은 사축씨와 꼬마유령 양자가 바라는 목표로 설정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점은 꼬마유령을 개혁의 기체가 아닌 부조리한 현실을 유지하게 하는 나태의 상징으로서 읽혀질 수 있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문제점은 신자유주의의 착취적 구조와 좁게는 하급자에게 잡무가 떠맡겨지는 잘못된 상하관계에 있거든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겪는 이를 치유하여 고통을 감내시키는, 즉슨 고통을 은폐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꼬마유령으로부터 사축씨가 에너지를 얻어도 회사일이 싫고 힘든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잡무가 하급자에게 배당되는 부조리한 현실과 야간업무가 비정상적으로 지속되는 각박한 환경은 특별한 행동이 없는 한 바뀌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축씨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조금 더 잘 견뎌낼 수 있게 되었을 뿐이지요. 실제로 꼬마유령의 앙탈에 사축씨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닷새는 더 일할 수 있겠어!”


작중, 꼬마유령은 이중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우선 ‘부르주아’적 태도입니다. 사축씨를 비롯한 다른 회사원들이 식사 대용으로 준비해 놓은 오니기리를 훔쳐 가는 모습은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자본가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자신의 것이라는 듯, ‘공물’이라 생각하고 먹어버린다는 점에서도 그렇지요. 한편으로는 사축씨의 역경에 공감할 줄 아는 ‘노동자’의 ‘동지애적 태도’입니다. 야근하는 사축씨에게 공감하고, 빨리 집으로 사라지라고 하는 면모가 그것이지요. 앞서 제시되었던 이윤을 착복하는 차가운 ‘부르주아’적 태도와 상반되는 따뜻한 모습입니다. 이러한 점을 들어 저는 꼬마유령이 ‘중간관리직’의 알레고리로 감상될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꼬마 ‘유령’이라는 점 또한 그렇습니다. “암만해도 나는 19세기와 20세기 틈바구니에 끼여 졸도하려 드는 무뢰한인 모양이요”,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로 알려진 작가 이상의 편지 중 일부입니다. 뇌절을 조금 해보면 유령은 사측의 상급자와 하급자 사이에 끼어 압사당한 중간관리직의 영혼이 구천을 떠돌고 있다는 식으로의, 일종의 도시괴담으로도 읽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부장과 하급 사원의 틈바구니에 끼여 사망해 억울하게 회사를 떠도는 유령인 모양이오.’) 으음, 이 해석은 꽤 호러하네요.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겠지마는, 꼬마유령은 분명히 귀엽습니다. 그리고, 이는 꽤 위험합니다. 고된 노동현실을 은폐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G. Deleuze)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의 선택은 언제나 그것이 배제시키는 것의 관점에서 정의된다”.1) 마찬가지로 노동현실을 은폐하고 퇴락에 안주할 때, 우리는 노동현실을 개혁할 가능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꼬마유령은 현실을 왜곡하고 고된 노동을 지속하게 하는 매개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행위를 방해하는 상징으로도 읽혀질 수 있습니다. 비록 ‘부르주아’의 기생에 의해 삶을 연명하고 있다지만 언젠가는 사축씨도 변혁의 기회를 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잠시 옆길로 새자면, 데리다(J. Derrida)의 ‘유령’론(hantologie)은 흥미롭게도 반대의 측에서 시선을 돌리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위협하는 타자를 호명케 하는 공포의 정치입니다. 『1984』가 유령론의 알레고리로 읽힐 수 있다면, 『멋진 신세계』는 꼬마유령의 알레고리로 읽혀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권력에 대한 반발을 무화시킴으로서 기존의 체제에 구조적으로 동조시킨다는 점은 공통되지요.


다시 돌아와서, 그렇다면 사축씨에게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다시 들뢰즈를 호명해보도록 합시다. 그는 『소진된 인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소진된 인간(l'épuisé)은 피로한 인간(le fatigue)를 훨씬 넘어선다. “단순한 피로가 아니다. 나는 단순히 지친 게 아니다. 높이 올라오긴 했지만.” 피로한 인간에게는 더 이상 어떤 [주관적인] 가능성(possibilité)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는 최소한의 [객관적인] 가능성도 실현할 수 없다. 그러나 결코 가능한 것(le possible) 모두를 실현하지는 않기 때문에 최소한의 가능성은 남는다. 가능한 것을 실현하면서도 또 다른 가능한 것이 생겨나게 할 수도 있다. 피로한 인간은 단지 실현을 소진했을 뿐이다. 반면 소진된 인간은 모든 가능한 것을 소진하는 자이다. 피로한 인간은 더 이상 실현할(réaliser) 수 없다. 그러나 소진된 인간은 더 이상 가능하게(possibiliser) 할 수 없다.2)

 

가능성을 소진한다는 것은 반복할 역할이 사라진다는 것을 뜻하고, 그로부터 역설적인 선택지들이 열리는 것입니다. 더 이상 부조리한 역할을 지속하지 않아도 되는, ‘사축씨’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후시하라 씨’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더 이상 오니기리를 눈치 보며 빼앗지 않아도 되는 ‘꼬마’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본래의 고정된 역할을 포기함으로써 이들에게 새로운 잠재성의 지평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후시하라 씨’와 ‘꼬마’가 고된 회사일을 하는 것/보는 것을 어서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쉬는 것을 목표하지 않고, 더 나은 무언가가 되었다는 사실만을, 그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참고문헌

  1. 질 들뢰즈, 한정헌·정유경 역, 『경험주의와 주체성: 흄에 따른 인간본성에 관한 시론』(난장, 2012), 17쪽.

  2. 질 들뢰즈, 이정하 역, 『소진된 인간』(문학과지성사, 2013), 23쪽.

 

 

 

양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수정 후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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