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헤르만 호페는 살아있는 오스트리아학파 학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호페는 멩거, 뵘-바베르크, 미제스, 그리고 라스바드로 이어지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과 오스트로-자유주의(Austro-libertarianism)의 가장 뛰어난 대표자로서, 칸트(Immanuel Kant)와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합리주의 철학에 기초하여 미제스와 라스바드의 인간행동학 이론체계를 대폭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칼 멩거(Carl Menger)에 의해 창시된 오스트리아학파가 미제스의 인간행동학을 통해 완전한 선험적-연역적 이론체계로 탈바꿈했다면,—적어도 지금까지는—최종적으로 호페가 미제스의 방법론을 경제학을 넘어 형이상학과 윤리학에도 적용함으로써, 인식론, 윤리학, 그리고 경제학을 아우르는, 일종의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으로서의 오스트리아학파의 정체성이 완전히 확립되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 : #철학과_방법론
원문 : The Wealth of Nations: Ideology, Religion, Biology, and Environment (게재일 : 2004년 9월 6일)
번역 및 편집 : 김경훈 연구원
- 2021년 7월에 발간된 신작 <경제 사회 국가>의 제5장 "국부: 이데올로기, 종교, 생물학, 그리고 환경"에서, 한스-헤르만 호페는 자본 축적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발명과 기술개선 등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가 사회에 존재하는 어떤 보편적인 이념에 의해 장려되거나 저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만약 사람들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라는 가르침을 믿는다면, 그러한 사회가 발전하고 번영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또 누군가 죽을 때 마다 모든 소유물을 함께 매장하는 종교가 있다면, 한 세대가 쌓아온 모든 것이 세대가 끝날 때 마다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누적된 진보를 이룩할 수 없을 것이다. 호페는 힌두교, 불교, 이슬람 등이 경제, 문명, 그리고 과학의 발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종교이고, 유대교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자본주의의 발전을 방해했으면 방해했지 결코 어떠한 기여도 하지 못했으며, 기독교는 예수가 창시했을 시절에는 비합리적이고 문명발전을 방해하는 종교였으나(지금 이 시기 모습을 간직하는 종교가 바로 이슬람이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대폭 받아들이고 나서 서구문명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기독교는 개인주의적이고, 신이 아니라 인간에게 세계에 대한 지배권을 부여하고, 지혜와 성취가 노력으로부터 기인하고, 사회적 협력을 지지하고, 사유재산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서구문명과 자본주의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 흥미로운 점은 유교에 대한 그의 분석이다. 일반적으로 유교는 자본주의와 융합할 수 없는 간섭주의 정치철학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호페는 유교가 경제발전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고,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있다는 이색적인 견해를 표출한다. 결과적으로 유교가 동아시아의 경제와 문명이 발전하는 것을 방해했음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이는 공맹의 고유한 가르침 때문이 아니라 동아시아 특유의 관료제가 유교와 결합하며 교조적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호페와 철학적으로 종종 충돌하는 인간행동학 철학자인 로데릭 롱(Roderick T. Long) 역시 공맹시대의 초기 유교는 오스트리아학파와 리버테리어니즘의 교훈을 담고 있다는 논문을 쓴 바 있다.
유교는 경제발전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초기에는 유교가 경제성장에 매우 적합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유교는 과학과 연구에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한다. 1500년 경까지는 중국이 분명 지구상에서 가장 발전한 지역이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유교는 전적으로 합리적이고 세속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유교는 천국이나 신에 대한 의인화된 개념이 없다. 유교에서 말하는 하늘은 일종의 비인격적 존재로, 우리가 생각하는 (인격)신과는 전혀 무관한 존재이다. 그리하여 유교는 사실상 신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유교는 사후세계에 대한 어떠한 개념도 없다. 다른 종교가 사후세계를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사안이지만, 이것은 장점일 수도 있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다. 기독교와 달리 유교는 완전하게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이는 기적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생각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즉, 모든 것은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유교에는 성인과 같은 존재도 존재하지 않는다. 공자는 신이 아니고 예언자조차 아니다. 그는 스승 혹은 군자일 뿐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유교를 종교로 지칭하는 것이 적절한지조차 의심하곤 한다. 만약 신이 없고, 예언자가 없다면, 그것을 정당하게 종교라 말할 수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폴란드 출신의 영국 사회학자 스타니스와프 안드제예프스키(Stanisław Andrzejewski)가 유교에 대해 언급한 바를 인용할 필요가 있다. 안드제예프스키는 로버트 니스벳(Robert Nisbet)이나 헬무트 쇠크(Helmut Schoeck)와 함께 좌파가 아닌 극소수의 사회학자 중 한 명이다. 그에 따르면:
만약 우리가 과학적 발견과의 양립가능성에 따라 종교의 순위를 매기고자 한다면, 유교는 단연 최고의 종교로 간주되어야 한다. 사실, 유교의 합리적이고 세속적인 전망은 일부 학자들이 유교가 종교임을 부정하게 만들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는 확실하게 어원적 의미에서 종교(religionem -> religion)이다. 유교는 의심의 여지 없이 2천년 동안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은 유대관계를 형성했다. 물론, 종교의 본질적 특징으로 신에 대한 의인화와 사후세계 약속을 선택한다면, 유교는 종교가 아니다. 왜냐하면 유교인들에게 최고의 실체(the supreme entity)는, 근동의 아브라함 계통 종교들(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등)이 전제하는 인격을 가지고 지상의 폭군처럼 행동하는 의인화된 신이 아니라 보이지 않고 비인격적인 힘인 하늘이기 때문이다.
죽은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공자는, "사는 것도 알지 못하는데 죽은 뒤를 어떻게 알겠는가?"(未知生焉知死)라고 대답했다. 공자는 초자연적 혹은 마술적이라 불릴 수 있는 어떤 현상이나 기적도 없다고 가정하고, 그의 추종자들도 공자 사후에 그러한 주장을 하지 않았다. 유교인들은 기적을 바라지 않고, 성인을 갈망하지 않고, 창시자인 공자를 신이 아니라 위대한 군자로서 존경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유교가 분명히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 세계관이라 말할 수 있다. 유교는 가족의 연대와 효심을 매우 강조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기존의 전통에서 일탈하고자 하는 개인의 독창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효심과 가족주의는 자본주의와 양립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유교인들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러한 혁신적 정신의 결여를 사회역사학자 찰스 머레이(Charles Murray)의 책 <인간의 성취>(Human Accomplishment)를 인용하여 설명해보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유교 윤리의 핵심은 '예'(禮)에 의해서 설명된다. '예'는 인간의 최고 덕목(virtue)으로, 선함, 자애, 사랑 등의 요소를 결합한 인간의 자질이다. 예 윤리는 가장 큰 힘을 가진 자들에게 가장 필수적인 것이다. 공자는 "관용이 있으면 사람들을 얻을 수 있다"(寬則得衆)고 가르쳤다. 또한, "민첩하면 공적을 세울 수 있고, 은혜로우면 충분히 사람을 부릴 수 있다."(敏則有功 惠則足以使人) 실제로, 유교 사상의 또다른 핵심인 예의 이러한 특징 중 한가지는 공자부터 시작하여 윗어른이 아랫사람에게 먼저 모범을 보이는 태도를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족지향성 때문에, 중국과 일본의 아이들 또한, 어느 정도는 그들의 삶에서 내리는 결정의 우선순위로 부모의 바람과 행복을 염두하고, 그 다음에는 대가족의 바람과 행복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동체를 고려하곤 한다. 물론 서양의 전통과 달리 여기에서 우리는 자신을 위한 성취를 대한 격려를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교육에 대한 강조가 큰 편이다. 중국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일종의 시험을 통해 사회에 최고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실력주의 제도(meritocratic system)를 채택하고 있다. 중국 사회는 높은 IQ를 가진 사람들을 선발하여 대중을 속세의 권력에 묶어두는 경향을 가진다. 누구나 출세할 수 있고, 공정하게 누가 성공하고 실패하는지 보여주는 실력주의 제도 덕분에, 사회의 하층민이라도 어떻게 해서든 이러한 제도를 포용하고 살도록 위안을 받는다.
그럼에도, 왜 중국은 궁극적으로 서구와의 경쟁에서 패배했는가? 반드시 언급해야 할 설명 중 하나는, 아주 일찍부터 유교와 국가 관료들 사이에서 존재했던 강력한 유착관계이다. 이것은 서구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것인데, 중국의 천자는 유교 계층도에서 나타나는 최고의 윗어른과 직접적으로 혹은 다소 직접적으로 동일시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유교는 매우 일찍부터 국가와 엄청나게 가까운 사이를 맺게 되었고, 이 때문에 발명과 혁신을 꺼리는 유교 내부의 거부감이 엄청나게 증폭되었다.
유교와 국가의 결합은 무비판적 사고로 이어졌다. 반면에 서구세계에서는 그리스 문화의 유산덕분에 논쟁과 반론제기가 중요한 것으로 자리잡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끝없이 서로 반박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내가 네바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도 그런 경향이 있었다. 동양의 학생들은 수학 방정식을 풀고 객관식 문제를 풀 때 매우 뛰어나고, 가르쳐준 모든 것을 암기하며 항상 수업의 최상위 성적을 거둔다. 그러나 논술과 글쓰기에서는 난관에 마주친다. 글을 쓰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논제를 제시하고, 반론이 제기된다면 어떤 논변이 더 강하고 약한지 구분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동양 학생들은 상당한 약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약간의 추측이지만, 동양인들은 수학, 물리학 공학에서는 강세를 보이는 반면에 로스쿨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로스쿨은 서양인 모두가 초등학교부터 배우는 그리스식 논쟁이 자리잡은 곳이다. 이 현상에 대하여 머레이를 다시 인용하고자 한다. 그가 동아시아에 대해 말하길:
과학에서, 공개적인 논쟁에 대한 거부는 동아시아 과학계가 축적된 지식체계를 구축하는 능력을 결여하도록 만들었다. 중국 과학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때때로 뛰어난 학문적 발전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단편적인 것이며 서구과학처럼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후속 발견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서구과학의 발전은 목표를 향한 열정적이고, 쉬지 않고, 경쟁적인 논쟁에 의해 이루어졌다. 동아시아에는 그러한 문화가 없었다. (...) [역자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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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ans-Hermann Hoppe, 김경훈 역, "The Wealth of Nations: Ideology, Religion, Biology, and Environment", Economy, Society, and History(2004), pp. 80-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