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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계 정당의 간략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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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1968

1987년 민주화 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뤄진 이후 민주주의를 이끌었던 정치인들은 크게 김대중을 따르는 동교동계와 김영삼을 따르는 상도동계로 나뉘어졌다. 이중 상도동계는 1990년 3선 개헌을 통해 독재 세력과 힘을 합침에 따라, 초기 민주당을 구성했던 세력은 동교동계였다. 상도동계에서 구 독재 정권과의 협력을 반대하며 튀어나온 10여명의 의원들도 있었는데 이들을 꼬마민주당이라고 부른다. 1992년 이 꼬마민주당 세력과 동교동계 평화민주당이 당을 합쳐서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당계 정당의 직계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이 창당되었다.

 

민주당은 1992년 총선에서 민주자유당의 단독과반을 막아내며 선전했지만 1당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이후 1992년 연말 치뤄진 대선에서도 민주당의 후보로 나온 김대중이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에게 패했다. 김대중은 정계 은퇴 선언을 발표한 뒤 영국으로 출국한다. 이후 1995년까지 동교동계의 수장이었던 김대중이 한국 정치계를 떠났으므로, 상대적으로 동교동계의 영향력은 적어졌고 대신 이기택이 이끌었던 꼬마민주당 계파의 힘이 강해졌다. 그렇게 1995년 지방선거에서 이기택의 민주당이 대선전을 거둠에 따라 민주당의 1997년 집권 가능성이 점쳐졌다.

 

문제는 1995년 김대중이 느닷없이 정계 복귀를 선언한 것이다. 정계은퇴를 선언한 사람이 대선 출마하려고 정계 복귀를 하려는게 아니냐는 반발 여론이 크게 일었다. 이중에서 김대중의 의견에 동조하던 동교동계는 김대중의 복귀를 반대하던 이기택과 민주당에 반발하여 민주당을 탈당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반대로 김대중의 정계 복귀에 중립적 혹은 다소 반대하던 노무현, 이기택 등의 인사는 민주당에 잔류했다. 그렇게 1996년 총선에서 야당의 밥그릇 싸움은 민주당이 단 20석도 얻지 못하면서 끝났고 다시 야당의 주도권은 이기택에서 김대중으로 넘어갔다.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김대중을 견제하기 위해 김영삼 대통령의 세력과 힘을 합치고자 하였다. 민주당 소속이었지만 김대중의 복귀에 반발해 민주당을 탈당한 조순 서울시장을 비롯하여 이기택, 이부영 등의 정치인들이 보수 정당인 신한국당과 합당을 결의해, 1997년 한나라당이 창당되었다. 민주당의 이러한 노력이 무색하게 김대중은 한나라당 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한 이회창을 꺾고 대선에서 승리했다. 더군다나 노무현과 같이 합당에 반대해 국민회의로 당을 옮긴 정치인들도 있었으므로 김대중을 견제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동교동계가 민주당계 정당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했다.

 

동교동계 우위 체제에 변화가 온 것은 2002년 대선부터이다. 2000년 총선에서 추미애, 김민석 등 민주화를 이끈 정치인들이 아닌, 민주화에 참여했던 운동권 출신의 정치인들이 대거 국회에 진출하며 야당의 세대 교체가 가시화되었다. 이 상황 속에서 김대중을 대체할 차세대 정치인을 뽑는 과정에서, 당시 완전한 비주류에 속했던 노무현이 개혁파 의원들 그리고 젊은 당원들의 지지를 받아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당연히 동교동계가 밀었던 이인제와 한화갑 등은 노무현의 선출에 크게 반발하였다. 이들은 노무현을 주도로한 개혁파의 당권 장악을 우려하여 후보를 교체해야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이후 정몽준이 제3지대 출신으로 유력 대권 후보로 떠오르자 정몽준으로 야당 후보를 단일화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오히려 정몽준이 노무현을 지지하고 후보직을 양보하게 됨에 따라 노무현을 견제하려던 동교동계의 노력은 수포가 되었다. 그렇게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이 당선되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에 비판적인 민주당 내 정치인들이 상당했으므로 당내 분란은 막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위 말하는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이라 불리는 민주당 내 진보파 정치인들에 의해 아예 구태 정치인들과 따로 정당을 차지자는 주장이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하여 40여명에 달하던 민주당 내 개혁파 세력들, 그리고 김영춘, 김부겸, 이부영 등 한나라당에 소속되어있던 중도파 정치인들이 집단으로 소속 정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동교동계 민주당은 이에 반발해 대권을 가지지 못하면 모두 파괴해버리겠다는 심정으로 한나라당과 손을 잡고 2004년 3월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에 반대하던 동교동계 유권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안건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고작 민주당 내 밥그릇 싸움 때문에 탄핵시켰다는 반발감을 불러 일으켰고, 민주당은 수십명의 중진 의원이 낙선하고 겨우 7석정도만을 얻으면서 총선에서 대참패하고 만다. 그렇게 민주당 내 주도권은 동교동계에서 친노파로 이동하였다.

 

문제는 열린우리당이 지나치게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였던만큼 전혀 정치적인 지식이 없는 젊은 의원들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점이다. 당시 열린우리당의 최다선 의원이 6선이었고 다음이 4선이었으며, 초선 의원은 108명에 이르렀다. 이 108명의 초선 의원들은 제각각의 목소리를 내며 같은 당 내에서조차 당론 통일에 실패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 결과 열린우리당의 높은 지지율은 불과 수년만에 급속하게 하락했고 이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대참패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의 참패 이후, 열린우리당의 정치인들은 노무현으로는 2007년 대선에서의 재집권이 어렵다는 판단 하에 노무현 지우기 운동에 나섰다. 아예 열린우리당을 탈당해버린 것이다. 신기남, 천정배, 정동영, 김한길 등 주요 정치인들이 대부분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고 대통합민주신당이라는 새로운 정당을 창당했다. 이 정당에는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넘어온 손학규 지사도 참여하며 더더욱 중도적인 색체가 강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정당을 창당한 비노계 세력 대부분이 2003년에는 열린우리당 창당을 이끌었던 개혁파 의원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대통합민주신당은 그냥 철새 행위가 아니냐는 비판이 컸으며 2007년 대선 24% 득표, 2008년 대선 81석 확보라는 매우 처참한 결과만을 가져왔다.

 

2008년 총선에서 천정배를 제외한 대부분의 당권파 정치인들이 낙선했다. 친노파도 타격을 입었지만, 노무현의 낮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민주당 내 우위를 차지한 비노파는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이런 와중에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중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전국민적으로 노무현에 대한 추모 여론이 일었으며, 이는 대표적인 친노파 정치인이었던 정세균이 민주당의 대표가 되어 2010년 지방선거를 이끌게하는 배경이 되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이광재, 안희정 등 친노파 정치인들이 대거 당선되었고 유시민, 한명숙 등의 다른 친노파 정치인들도 선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짧은 기간동안 민주당의 주도권을 이끌었던 비노파 중도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당권을 다시 친노파 진보계 정치인들에게 빼앗겼다.

 

그렇게 2012년 총선과 2012년 대선도 각각 한명숙과 문재인이라는 대표적인 친노파가 이끌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두번의 선거 모두 민주당의 패배로 끝났다. 선거 전략이 부족했던 탓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이명박 심판 여론이 60%가 넘었기 때문에 주어진 기회조차 활용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3년 민주당에서 문재인과 한명숙 등 친노파들이 비주류로 밀려나고, 유시민 등의 일부는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 친노파가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다. 반대로 안철수, 김한길 등 노무현과 상관이 없거나 비노파였던 정치인들이 복귀해 민주당을 이끌게 되면서, 약 4년만에 다시 민주당의 주도권은 비노파로 넘어갔다.

 

하지만 비노계도 당권을 순식간에 빼앗겼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안철수라는 비교적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 선전했지만 정작 2014년 7월 30일 치뤄진 재보궐에서는 대참패를 기록했다. 안철수 대표 특유의 고집과 외곬적 성향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이 원인이었다. 심지어 전라남도에서까지 새누리당에 패배했다는 점은 민주당 지지자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고, 이후 치뤄진 당대표 선거에서 문재인이 근소한 표차로 당대표로 선출되기에 이르렀다. 문재인이 민주당의 대표로 선출되자 안철수, 천정배, 김한길, 정동영 등 비노계 정치인들은 이에 반발해 2015년 12월 30일 전격으로 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2016년 총선은 이른바 문재인과 안철수, 친노파와 비노파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선거 결과는 두 정당의 무승부로 끝났다. 지역구는 민주당이 이겼지만 비례대표는 국민의당이 이겼다. 그러는도중 2017년 최순실 사태가 터졌다. 주요 대선 후보로 떠오른 사람은 당연히 안철수와 문재인이었다. 이 과정에서 안철수는 매우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안철수는 대선 토론회 직전 지지율이 38%까지 오르며 39%였던 문재인을 위협했으나, 토론회에서 정말 뜬금 없이 "내가 MB 아바타냐?" "내가 갑철수냐 안철수냐?" 와 같은 뚱딴지같은 대답을 하며 전국민적으로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안철수의 지지율은 폭락하고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17년 대선 이후, 안철수와 국민의당에게 계속 악재가 터졌다. 호남의 지지를 받던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를 투표를 통해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켜버렸는데, 이게 호남이 바라는 후보도 정치적 이익에 따라 쳐낼 수 있다는 인상을 주면서 국민의당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호남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정적으로 2018년 문재인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허위로 제보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안철수는 더이상 민주당계 정당에 있기 어려워졌다. 안철수는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도보수 성향의 바른정당과 합당해, 민주당을 떠나 보수로 이적한다.

 

이렇게 문재인과 친노파의 가장 큰 적이었던 안철수가 스스로 몰락함에 따라 친문파로 재편된 친노파는 2021년까지 쭉 민주당의 주도권을 잡았다. 2019년 조국 사태로 위기를 맞이하나 2020년 총선에서는 기존의 예측보다도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며 친문파의 입지는 매우 탄탄해졌다. 친문파의 지지를 받던 이낙연의 지지율이 40%를 넘었다. 하지만 2021년 부동산 문제와 청년 문제 등 여려 문제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실망스러운 대처가 부각되자, 민주당과 친문파는 점차 국민적 지지를 잃었다. 결정적으로 LH 사태가 터지며 정권 지지율이 폭락해 2021년 재보궐 서울시장에서 보수 후보가 20%p차로 승리하는 참사가 일어났고 친문파는 주도권을 상실했다.

 

이후 친문파들은 이대로는 안된다면서 비교적 친문과 거리가 멀면서도, 실용적 이미지가 있었던 무계파 이재명을 지지하였다. 일부는 이낙연을 지지하였으나 2021년 재보궐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이낙연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낙마했고 이재명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2002년 이후 거의 20년 이상 반복되어왔던 친노파 대 비노파의 대결 체제는 이재명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무계파 정치인의 등장을 통하여 해체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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