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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8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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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르샤와

https://www.youtube.com/watch?v=DPsVfw1CAno

신해철의 100분 토론 출연 하이라이트 - 엠빅뉴스

 

파일:168212_202396_4808.jpg

 

불법으로 다운받는 사람들은 다운받고 욕이나 안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뭐 좋으네 나쁘네 하지 말고 그냥 닥치라는 거죠.

 

10월 27일은 가수 신해철이 의료사고로 사망한 지 8주기가 되는 날이다. 1968년 5월 6일 서울 중구에서 태어난 그는 2014년 사망할 때까지 가수이면서 음악가, 프로듀서, 사회운동가로 활동하였고, '마왕'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1988년 《MBC 대학가요제》를 통해 무한궤도라는 그룹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그는 《그대에게》를 부르며 대상을 수상하였고, 이듬해 6월 무한궤도의 유일한 앨범인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발매하며 호평을 받았다. 본 앨범에 수록된 동명의 곡은 철학적이고 시적인 가사와 합창 사운드가 인상적이었으며 지금도 신해철의 곡들 중에서 빠질 수 없는 발라드 곡 중 하나이다.

 

대학가요제에서 부른 《그대에게》는 무려 전주 부분에 신디사이저 4대를 활용하여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실제로 그가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불을 뒤집어써 멜로디언을 불어가며 작곡한 뒷이야기가 있다. 또 연인이 아닌 음악을 '그대'라는 대상으로 비유한 것은 신해철 본인이 음악에 대한 열정과 애착을 노래 속에 담아낸 것으로 보여진다.

 

이후 무한궤도는 멤버들 사이의 음악적 견해 차이와 대마초 흡연 사건으로 해체되었으며, 신해철은 1990년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로 솔로 활동을 이어갔고 이듬해에는 무려 작곡과 연주, 작사와 편곡을 혼자서 만들어낸 《Myself》를 내놓으면서 기존의 마이크 녹음 방식에서 미디(MIDI) 프로그램을 사용한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의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1992년에는 N.EX.T라는 록 밴드에 들어가 리더이자 메인 보컬을 맡아 윤도현, 김경호와 함께 점점 꺼져가는 90년대 한국 록 씬을 이끌게 되었다.

 

그들이 내놓은 1집 앨범 《Home》은 정통 록보다는 테크노나 디스코에 영향을 받은 '팝 록'에 가까웠으나, 2집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부터는 하드 록,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라는 장르를 들고 나오며 정통 록에 가까운 장르를 표방했다. 특히 《껍질의 파괴》는 이전 앨범과는 전혀 다른 어두운 느낌과 신디사이저 반주와 함께 헤비메탈의 전형을 보여주었으며, 《The Ocean: 불멸에 관하여》는 영국의 킹 크림슨처럼 서정적이고 웅장한 멜로디와 높은 완성도로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대표적인 곡 중 하나이다.

 

3집 《The Return of N.EX.T Part 2: The World》는 기존의 신해철 원맨 밴드와는 달리 N.EX.T의 구성원들이 앨범 작업에 참여하여 높은 음질을 자랑했고, 황금만능주의 비판, 동성동본 금혼법,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 사고의 언급으로 나타난 사회비판적인 메시지가 들어가 있다. 이 외에도 《나는 쓰레기야》라는 곡으로 스래시 메탈을 선보였으며, 《Komerican Blues》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의 OST를 록으로 편곡시킨 후 국악 소재를 사용하는 실험을 선보였다.

 

4집 《Lazenca - A Space Rock Opera》는 《영혼기병 라젠카》의 OST 《Lazenca, Save Us》로 꽤 유명해졌으며, 신해철 사후에도 인기가 높은 곡이지만 높은 음역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부르기 어려운 곡이다. 그러나 N.EX.T는 1997년 12월 31일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해체되었으며, 2002년 재결합할 때까지 90년대를 이끌었던 아이콘으로 남게 되었다.

 

시인이자 영화감독이었던 유하의 말을 들어보면, 2집 앨범 《Myself》를 주의깊게 듣기 전까지는 N.EX.T를 '뉴키즈'에게 인기 있는 신상품으로 취급했는데, N.EX.T의 곡을 들은 후 리더인 신해철을 단순히 노래하는 베짱이가 아닌 이세계를 자신의 멜로디로 해석하고 재구성하려는 욕망을 가진 아티스트라고 평가받았으며 아울러 그의 노래가 한국 대중가요의 중세성을 해체하고 근대적 기획(Modern Project)을 완성시키겠다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다고 말하였다. 또 신해철을 한국 대중음악계의 누벨바그를 예감케 한다고 말하였다. 이렇듯 소비를 중시하는 사회를 비판하고, 위 음악 평론에서 소위 '뽕짝' 정서와 대중음악의 선입견을 비판하던 유하의 평론은 《Home》의 앨범 부클릿에 수록되어 있다.

 


 

신해철이 Crom이란 이름으로 활동할 당시 1998년 발매된 솔로 3집 《Crom's Techno Works》는 일렉트로니카로 음악적 색채를 변화하는 시도를 보여주었으며, 4집 《Monocrom》은 '아이돌' 신해철이 아닌, '마왕' 신해철로서의 이미지로 변신했다. 특히 4집은 N.EX.T 때부터 인연을 맺어온 크리스 샹그리디와 함께 모노크롬이란 듀오 명의로 발매되었고 록과 국악의 조화를 이루어내면서 영국 유학의 경험으로 영어 가사가 많은 실험적인 앨범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는 처참히 실패했다.

 

2000년에는 미국 체류와 함께 비트겐슈타인이라는 밴드를 결성하며 정규 1집을 내게 되었으나 그가 진행하는 고스트스테이션에서 N.EX.T를 재결성한다는 발언을 통해 2002년 경 N.EX.T의 재결합을 선언했다. 그렇게 내놓은 앨범이 바로 2004년 발매된 5집 《The Return of N.EX.T Part 3: 개한민국》이었다.

 

5집의 타이틀 곡 《아! 개한민국》은 자국 혐오와 더불어 국회폭력, 지역이기주의, 금수저, 남아 선호사상 등 대한민국 사회 전반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에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의 안티테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는데, 때문에 2008년 보건복지가족부(현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의 심의로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된 바 있다. 《Saving Private Jesus》는 사기와 협박 등으로 범죄를 일삼는 기독교를 다뤘다.

 

이후 무한궤도와 N.EX.T 수록곡들을 리메이크한 5.5집 《ReGame?》을 거쳐 6집 《666 Trilogy Part 1》을 공개했는데, ReGame? 활동 직후 그의 사업가적인 마인드에 반발해 3명의 멤버가 빠져나간 뒤로 멤버 개편이 이루어졌다. 한 때 6집이 나온 후 666 Trilogy Part 2, Part 3 계획까지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그리고 2012년 두 명의 멤버(김세황, 지현수)의 탈퇴로 N.EX.T는 사실상 해체하게 되었고, 이후 2014년 N.EX.T United를 통해 부활을 알리게 되었다. N.EX.T 멤버들을 모아 각 포메이션으로 조합하여 신해철과 밴드를 구성하는 형식인데, 이에 그는 N.EX.T United의 신보 《I Want It All Demo 0.7》에서 보컬로 참여하였다.

 


 

신해철은 음악 활동과는 별개로 사회운동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2000년대부터 사회운동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는데,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하여 대마초 비범죄화, 간통죄 폐지, 체벌 반대 입장을 내걸었고, 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기도 했다. 노무현이 서거하자 당연히 그도 삭발과 동시에 추모 공연을 했으며, 2012년에는 《Goodbye Mr.Trouble》이 수록된 《노무현을 노래하다 Part 5》를 발매하였다. 이어 18대 대선에서도 문재인 후보의 유세를 돕기도 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바로 그가 공교육에 비판적이라는 것인데, 실제로 인터뷰에서 현재의 공교육은 수습될 수 없는 상태로 접어들었고 여러 정부에서 입시 제도를 뜯어고쳤는데도 그 누구도 성공한 사람이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앨빈 토플러의 말을 인용하여 학교가 가장 먼저 소멸하는 미래를 지켜보고 사교육이 저렴한 가격과 온라인으로 가난한 사람에게도 얼마든지 공급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2009년 한 한 사교육 업체 광고에 출연해 논란이 되었을 때에도 입시 위주의 공교육을 비판했을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가 주장했던 체벌 폐지와 간통제 폐지는 학생인권조례, 헌법재판소의 간통제 위헌으로 실현되긴 했으나, 대마초의 비범죄화는 사후 2019년이 되어서야 의료용 합법화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성공했다.

 



《666 Trilogy Part 1》 발매 6년 뒤인 2014년, 정기송과 강석훈이 참여한 솔로 6집 《Reboot Myself》를 발매했다. 6집에서는 유일한 아카펠라곡인 《A.D.D.a (아따)》와 《Here, I Stand For You》에 대한 답가이자, 자신의 아내와 팬들을 위한 고백과 감사를 담은 타이틀 곡 《단 하나의 약속》 등이 수록되었다.

2014년 10월 22일, 심장 이상을 받고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10월 27일 사망하고 말았다. 소속사 측은 뇌 산소결핍으로 인한 뇌손상이라고 밝혔지만, 11월 3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천공에 의한 패혈증으로 사망 원인이 확인되었다. 11월 5일 비공식 가족장이 치러졌고, N.EX.T의 전 멤버들과 선후배 동료 뮤지션 등 각계각층에서 추모 물결이 이어졌고, 조용필도 그의 빈소를 찾아 애도하였다.

신해철 사후 2015년 10월 신해철의 유작들이 수록된 《Welcome To The Real World》를 발매했고, N.EX.T United는 각자의 활동으로 현재 활동이 중단되었지만, 2019년 10월을 기점으로 음악인 추모 그룹인 '시월'을 발족시킨다. 하지만 이 마저도 코로나 사태로 활동이 취소되었다.

한 때 90년대 음악의 거장이자 한국 록의 전설, N.EX.T와 무한궤도의 리더, '마왕' 그 자체였던 신해철은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도 예능과 음악 프로그램에서 언급되는 등 영향력이 꽤 남아 있다.

댓글
1
  • 용용
    2022.10.27
    세월이 진짜 많이 흐르긴 했네요. 죽음은 정말 허무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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