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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중, 「이론가는 왜 바보여야 하는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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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란

원문의 내주는 누락하였음을 밝힘. 또한, 손수 타이핑했기에 오탈자가 있을 수도 있음을 알림.

 

문장 하나하나가 주옥같아서 딱히 이전의 공유글마냥 볼드체 강조는 하지 않았음.

 

(원문에는 인쇄 오류 때문에 마침표[.]가 보이질 않음; 쉼표는 보이건만, 추정컨대 복사기가 마침표 크기의 작은 점은 '이물질'로 판단해서 없애는 것 같다)

 

 

 

 

 

 

 

 

1940년에 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의 아홉 번째 테제에서, 벤야민은 자신이 1921년부터 소장해온 파울 클레(Paul Klee)의 수채화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1920)를 이상적인 역사가의 알레고리로 제시하고 있다. “이 그림의 천사는 마치 자기가 응시하고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금방이라도 멀어지려고 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 천사는 눈을 크게 뜨고 있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또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도 바로 이렇게 보일 것임이 틀림없다. 우리들 앞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전개되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는, 잔해 위에 또 잔해를 쉼 없이 쌓이게 하고 또 이 잔해를 우리들 발 앞에 내팽개치는 단 하나의 파국만을 본다. 천사는 머물고 싶어 하고 죽은 자들을 불러일으키고 또 산산이 부서진 것을 모아서 다시 결합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천국에서 폭풍이 불어오고 있고 이 폭풍은 그의 날개를 꼼짝달싹 못하게 할 정도로 세차게 불어오기 때문에 천사는 날개를 접을 수도 없다. 이 폭풍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 쪽을 향하여 간단없이 그를 떠밀고 있으며, 반면 그의 앞에 쌓이는 잔해의 더미는 하늘까지 치솟고 있다. 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러한 폭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역사의 천사는 위기와 파국의 중심에서 과거의 사물들이 파괴되어 부서진 채 진보의 폭풍에 휘말려 쇄도하는 카오스의 풍경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면서 미래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이것이, 벤야민이 암시하는 이상적인 연구자 혹은 이론가의 모습이라면, 이는 매우 충격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천사는 탐구의 대상을 개념적으로 그리고 영상적으로 장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위치나 거리를 두는 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는 실증주의적 관점에서 파악되는 이상적 역사가와 극단적으로 구분된다. 과거를 화석화시키고 그것으로부터 사실들을 추출하여 개념적으로 추상화시켜 과거를 재현하는 실증주의적 역사관에 대립하면서 벤야민은 지금 역사가에게 ‘파상력’에 입각한 탐구를 제안하는 셈이다. 과거는 굳어 있지 않다. 그것은 파괴적인 폭풍 속에 있다. 그런 과거를 탐구하는 주제는 안정적인 개념의 구사 속에서 과거를 지적으로 통제하는 주체가 아니다. 그는 역사의 파국적 상황 앞에서 마비되어 있다. 그의 몸은 특정한 몸짓으로 굳어 있다. 그것은 경악의 몸짓이며, 비상(飛翔) 불가능성의 몸짓(접힌 날개)이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파괴된 감각의 카오스를 응시할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파국적 상황 속에 존재하는 정신(역사의 천사)이 이상적인 이론가 혹은 연구자의 초상일 수 있을까?


벤야민 전집의 이탈리아어 번역자인 아감벤은 이 질문에 대한 흥미로운 지침을 제공한다. 그는 연구(Studium)라는 용어의 어원을 추적하면서 그것이 ‘충격’과 ‘마비’라는 의미소들과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는 이렇게 쓴다. “연구(studium)라는 단어는 충돌 혹은 쇼크를 가리키는 st- 혹은 sp-의 어근으로 소급된다. 연구하는 것(studiare)과 놀라는 것(stupire)은 이러한 의미에서 친근 관계를 갖는다. 연구하는 자는 충격을 받아서 그를 놀라게 한 것 앞에서 마비되어, 그것을 끝까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진 사람과 같다. 연구하는 자(student)는 그리하여 언제나 마비된 자(stupid)이다. 그러나 만일 한편으로 그가 늘 대상에 집중되어 있고, 얼빠져 있으며, 그로 인해서 연구란 본질적으로 고통이며 고난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 말하자면, 연구 속에 내재된 어떤 메시아적 유산을 통하여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의 결론을 내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마비와 명석의 교차, 발견과 상실의 교차, 열정과 행위의 교차가 바로 연구의 리듬을 구성한다.”


만일 연구가 근본적인 의미에서 마비의 상태, 충격의 상태, 이 논문이 표현하는 바에 의하면, 감각의 아나키와의 조우를 내포하고 있다면, 그것은 개념과 상상력을 넘어서는 파상력의 체험이다. 이런 점에서 벤야민은 우리에게 새로운 이론가의 이미지를 제공한다. 그것은 명석한 이론가가 아니라 어리석은 이론가이며, 날카롭고 똑똑한 이론가가 아니라 마비되어 있고 충격에 빠져 있는 이론가이다. 벤야민의 이론가는 개념의 서류함을 만들어나가는 성실한 독서가라기보다는 현실의 다양하고 잡다한 혼돈 속에서 무언가를 이해하여 언어화하려는 가망 없는 고투의 주체이다. 벤야민의 이론가는 요컨대 ‘바보’이다. 그는 감각의 카오스 앞에서 교착되어 있고, 정지되어 있고, 놀라 멈추어 있다. 이론적 체험의 근원에는 명석한 지성 혹은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아니라, 세계의 혼돈에 압도된 채 오랫동안 그 폐허를 응시하는 어리석음의 체험이 존재한다. 그것은 다변이나 달변의 체험이 아니라 일종의 침묵 혹은 눌변의 체험과 연결된다. 왜냐하면 이론가는 자신이 목도하는 세계의 혼란을 명명할 어떤 언어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자이기 때문이다. 진보의 폭풍이 휩쓸어가는 과거의 잔해 더미를 바라보는 역사의 천사나 충돌 이후에 아직 정신을 수습하지 못한 것으로 묘사되는 ‘바보’는 오직 집요한 탐색과 모색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언어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 이론은 그 언어의 현재적 부재와 미래의 현존 가능성 사이에 펼쳐지는 두껍고 불투명한 시간 속에서만 자신의 실존을 부여받는다. 이론가는 왜 바보여야 하는가? 그것은 이론적 원초적 체험이 감각의 아나키 앞에서 교란된 바보의 체험이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김홍중, 「이론가는 왜 바보여야 하는가?: 발터 벤야민을 중심으로」, 『사회와이론』15(2009), 30-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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