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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중심주의의 기원과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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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란

‘서구’와 ‘근대’가 구성되는 과정은 비서구와 전근대라는 두 가지 타자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양자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전자는 비서구를 타자화하여 서구와 비서구의 비대칭적 관계를, 후자는 전근대를 타자화하여 근대와 전근대의 비대칭적 관계를 만들어냈다. 전자는 서구 중심주의, 후자는 근대 중심주의이다.


서구 중심주의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논의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근대 중심주의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근대 중심주의 역시 서구 중심주의와 마찬가지로 17, 8세기에 형성되었다. ‘modern’이라는 형용사는 ‘just now’를 의미하는 라틴어 부사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영어에서는 빨라도 16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고대’와 대비되는 ‘현재’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7세기 이후, 특히 18세기에 들어 ‘근대’라는 말은 ‘더 낫다’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역사가들은 자기들의 시대를 그 이전 시대와 구별하기 위해 근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7세기 말경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중세’라는 말은 근대보다 덜 발전한 시대였고, “모든 국가와 모든 직업에 퍼져 있던 지독한 무지의 시대”였다. 이후 진보의 이상이 확산되면서 근대는 과거를 심판하는 기준이 되었다. 근대라는 시간 개념이 ‘무지의 시대’인 중세를 타자화하거나, 그를 대립쌍으로 설정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어갔음을 보여준다. 물론 자신들의 시대가 이전 시기에 비해 훌륭함을 부각시키고, 그들이 이룬 성취를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근대/전근대를 이항대립적으로 편성함으로써 ‘지난 시대’는 오늘날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창조되었다. 그에 따라 근대는 새로운 체제·가속·파열·혁명을, ‘과거’는 그와 반대로 낡아빠지고 정적인 것을 지칭하게 되었으며, 비가역적으로 지나가버리는 과거 전체를 처음부터 무화시키는 시간관이 성립된 것이다. 전근대-근대의 시기구분이 처음부터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의도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후 19세기와 20세기 초 계몽주의적 교의를 따르는 다수의 서구 지식인들에게 근대성은 제도의 지배, 즉 비이성적이며 비합리적인 모든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해주는 제도의 지배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 경계를 벗어난 것들은 전근대적인 것(premodern)으로 묘사되었다. 서구 열강들은 그들의 제국주의적 틀 내에서 근대성을 당대의 진보의 이념으로 간주하였다. 반면 민족주의자들은 그 안에서 발전의 약속을 보았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근대’가 자신들이 보여준 지적·문화적·기술적 혁신이, 인간의 역사가 끊임없는 진보와 완성을 향한 서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는 점이다. 근대 이전 시기에 대한 ‘근대’의 승리를 의미하는 중세-근대의 시기구분이 진보와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목적론적 역사인식과 쌍생아였음을 보여준다. 그에 따라 근대라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과거보다 뛰어난 것’을 의미했고, 식민지 침략이 구축한 지정학적 차이를 시간화함으로써 근대와 전근대의 차이가 ‘진보’, ‘근대화’, ‘발전’이라는 단일한 직선적 시간도식 내부의 차이로 규정되었다. 곧 전근대는 진보·발전된 근대를 향해 달려가야 할 숙명을 지닌 뒤쳐진 시간대로 타자화되어 설정된다는 점에서 목적론적인 역사인식이 더욱 선명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나아가 중세-근대의 시기구분에 의해 형성되고 전세계로 확산되어간 종교적-중세적-봉건적인 것, 그리고 세속적-근대적-자본주의적(혹은 민주주의적)인 것과 같은 개념의 계열들은 점차 배타적인 강제력을 행사하였다. 글로벌한 차원에서 원칙적인 정치 근대화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문화, 경제, 그리고 제도적인 형태가 필요하게 되었다. 나아가 ‘중세’는 최근 파키스탄에 대해 ‘봉건제’라는 딱지를 붙이듯이, ‘아직’ 근대화를 달성하지 못한 혹은 더 ‘나쁘게 역행하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적용될 수 있는 유동적 범주가 되었다. 유럽의 근대가 종교적·봉건적인 것 등 특정한 요소들을 근거로 근대 이전 시대를 억압하기 위해 만들었던 ‘중세’라는 개념이 전세계 역사에 균질적으로 적용되면서, 근대/중세를 준별하는 요소에 문화·경제·제도적 차원까지 덧붙여졌고, 마침내 앞서 언급한 식민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서구 근대와 이질적인 어떤 시대나 사회(비서구)에도 적용되는 논리로 확대되어갔음을 보여준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근대는 인류 역사의 전개 과정에서 이전 시기와 구별되는 특권적 시기의 지위를 부여받게 되었다. ‘전통’을 쉽사리 변화의 긍정적 원동력에 대한 장애물로 인식해버리게 된 것도 이러한 시간관의 결과임은 물론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며 근대는 근대 이전의 역사를 횡령하고, 과거를 심판하는 기준이 될 수 있었다. 다름 아닌 ‘근대 중심주의’이다.


제리 벤틀리(Jerry H. Bentley)는 ‘근대 중심주의(Modernocentrism)’의 요체를 “전근대와 근대 사이의 연속성에 대해 깨닫지 못하도록 근대 세계에 매혹당하는 것”에서 찾았다. 근대 중심주의는 근대가 이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믿게 만듦으로써 전근대와 근대의 역사적 경험을 왜곡시킨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근대 중심주의의 극복을 위해 세계의 역사를 더 넓은 범위와 긴 시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근대 중심주의에 대한 이러한 이해와 비판은 타당한 것이지만, 근대 중심주의가 가진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함의를 분명히 드러내고 비판하는 데는 부족하다.


그 점에서 오만한 심판자의 시선으로 전근대를 지배하는 근대 중심주의는 사이드(Edward W. Said)가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내린 정의를 빌려보면 보다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를테면 근대 중심주의는 “전근대를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근대의 방식”이며, “전근대에 관한 지식체계로서의 근대 중심주의는 근대인의 의식 속에 전근대를 여과하여 주입하기 위한 필터로 만들어”진 것이다. 근대 중심주의는 ‘서구적 근대’를 특권화한다는 점에서 서구 중심주의와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특권화의 대상이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서구 중심주의가 비서구를 서구에 종속시키는 개념이라면, 근대 중심주의는 서구와 비서구 어디에서든 전근대를 지배하기 위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서 그것이 가지는 영향력은 서구 중심주의에 비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중세사 연구자들에 의하면 중세/근대 또는 중세시대/르네상스시대와 같은 구분은 각 시기에 균질성을 부과함으로써 중세에서 보이는 ‘근대적’ 특성들과 근대에서 보이는 ‘중세적’ 특징들을 감출 뿐 아니라, 의학, 철학과 같은 분야의 역사를 왜곡하고 여성과 인종적으로 혹은 종교적으로 억압받는 소수집단의 역사를 방해하였다. 근대 중심주의가 날조된 ‘중세상’과 ‘근대상’을 주조함으로써 전근대는 물론 근대에 대해서도 왜곡된 이해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근대 중심주의에 대해 이렇게 규정할 수 있다면, 그에 대한 상대화 전략은 근대와 전근대의 이항대립적 인식에 대한 문제제기와 그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근대가 가진 특권적 지위를 상대화함으로써 전근대를 근대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나아가 전근대로부터 근대를 심문하는 방식으로 근대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나가야 한다.

 

 

 

 

 

-. 출처

 

배항섭, 「동아시아사 연구의 시각: 서구·근대 중심주의 비판과 극복」, 『역사비평』109(2014), 148-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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