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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지방선거의 결과, 의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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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초, 영국은 지방선거를 치렀다. 영국은 1년에 한 번씩 지방선거를 치른다. 한꺼번에 모든 지역에서 투표가 치러지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마다 나눠서 지방의회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따라서 런던 시장 선거나 스코틀랜드 자치의회 선거 같은 큼직한 선거는 이번에 치르지 않는다.

 

가디언에서는 지방선거의 결과를 "보수당에게는 나쁜 결과이지만, 노동당에게도 완전한 승리는 아니다(not a good night for the Conservatives but neither was it a clear-cut victory for the Labour party)"라고 평가하였다. 자유민주당의 선전 역시 단순한 양당에 대한 항의를 위한 포괄 정당(catch-all party of protest)으로서의 성격을 회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정을 내렸다. 영국의 고전적인 3대 전국 정당인 노동당, 보수당, 자민당이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냈다는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기초 자치단체 의회에 속하는 지방 의회 선거의 결과, 보수당은 485석을 잃어, 1,403석을 차지하였다.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은 각각 108석과 224석을 추가로 획득하였다. 의석 수로 보자면 보수당의 대참패와 노동당, 자민당의 선전이다. 녹색당과 스코틀랜드 국민당 역시 표를 많이 얻었다.

 

보수당의 경우 이번 선거의 패배가 매우 명확하기 때문에 보리스 존슨 총리의 사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1979년 제임스 캘러헌 총리의 불신임 이후, 보리스 존슨 총리는 역사상 최초로 불신임(탄핵)을 맞이하는 총리가 될 수 있다. 이미 보수당의 국회의원 중 20여 명이 보리스 존슨 총리의 코로나 방역 지침 위반 논란에 항의하는 표시로 불신임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국회의 과반은 322석이므로(원래는 325석이지만, 7석을 확보하고 있는 아일랜드 독립파 정당 신 페인은 투표에 불참한다) 대략적인 산수로 계산해 보면 보수당의 의석인 365석 중 43명 정도만 불신임에 동참해도 보리스 존슨은 총리직에서 쫓겨나게 된다. 총리직에서 쫓겨난다면, 조기 총선이 치러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차기 총선은 노동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2010년 이후 12년째 이어지고 있는 보수당의 집권이 종식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당과 자민당에게 있어서도 썩 괜찮은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보수당은 많은 의석을 잃었지만, 북부 지역에서는 의석을 조금 잃은 반면, 남부 지역에서 의석을 많이 잃었다. 일명 영국의 러스트벨트라고 불리는 "레드 월" 지역에서 노동당은 이번에 보수당으로부터 많은 의석을 빼앗았다. 그러나 이것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얻은 의석들을 복구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원래의 텃밭을 되찾은 것이지, 딱히 새로울 것은 없다는 소리이다. 그래서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도 이번 선거에서 레드 월에서 선전한 것을 두고 노동자들의 표를 "되찾아"다고 표현하였다. 전통적인 지지층을 복구한 것은 노동당 입장에서 그렇게 반길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보수당은 자신들이 본래 강세를 보였던 런던 내 부촌 지역과 남부 중산층 거주지에서 많은 의석들을 잃었다. 특히나 자유민주당은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대단한 선전을 거두었다. 한국의 경상북도 지역에 비견되는 "블루 월", 즉 보수당의 텃밭 지역에서 자유민주당이 보인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블루 월에 속하는 서머싯과 웨스트 옥스퍼드셔, 그리고 포츠머스 지역에서 보수당은 이번 선거에서 거의 처음으로 과반을 자유민주당에게 내어주었다.

 

가장 주목해 볼 만한 건 런던의 결과이다. 런던은 레드월이나 블루월보다도 보수당이 더 많은 표를 잃었다. 런던 내에서 보수당의 우세 지역은 웨스트민스터와 켄싱턴, 첼시로 대표되는 부촌 지역과 억스브릿지, 칭포드 등으로 대표되는 교외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동당이 런던 내에서 어느 지역이든지 가리지 않고 보수당을 상대로 엄청난 선전을 거뒀다. 특히 웨스트민스터 시의회에서는 거의 60년 만에 과반을 되찾았다. 비유를 하자면,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비틀즈가 데뷔한 이후 처음으로 보수당이 웨스트민스터 구의회에서 야당으로 전락했다.

 

영국의 언론들은 이러한 현상을 런던의 탈(脫)영국화로 꼽고 있다. 런던이 점점 영국과 멀어진다는 뜻이다. 우선 런던 인구의 48%는 이민지 출신이다. 런던이 더는 앵글로 색슨계의 도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근 30년간, 모든 인프라가 런던으로 집중되면서 런던의 기본적인 정치 지형도 영국과는 크게 달라졌다. 정보, 재화, 정치가 모두 런던에 몰리게 되면서 런던 시민들의 정치 성향에 큰 변동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런던의 시민들은 이제 영국의 버밍엄이나 리버풀 시민들보다는, 미국인들과 더 비슷한 성향을 보이고 있다. 개인의 자유, 환경, 유럽의 단결에 더 집중하고, 노동당이 기존에 표방하던 좌익적인 의제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시티 오브 런던의 펀드 매니저가 노동당에 투표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영국 언론들의 해석이다.

 

블루 월이나 레드 월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앞서 언급했지만, 가디언은 이번 자민당의 선전을 노동당과 보수당 양측에 반대하는 항의성 투표로 보고 있다. 자민당은 이번에 두 군데에서 가장 크게 선전하였는데, 첫 번째는 영국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지역인 런던이고, 두 번째는 영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인 서머싯과 서리, 사우스 잉글랜드이다. 이는 자민당이 자당의 정책만으로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것임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보수당의 블루월 관리 능력 부족이 자민당의 선전을 불러왔다고 보고 있다. 보수당이 점차 엘리트 정당으로 변모하는데 반해, 영국의 농촌들은 날이 갈수록 가난해지고 있다. 가령, 영국에서 가장 보수당의 높은 지역은 이스트 미들랜즈의 링컨셔라는 지역인데, 이 지역의 1인당 GDP는 2만 3,200달러에 그쳐, 거의 동유럽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서머싯 역시 2만 8천 달러 정도이다. 2021년 현재, 사우스 잉글랜드 지역의 1인당 GDP는 현재 런던 중심부의 1인당 GDP의 1/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우스 잉글랜드의 주민들도 이제는 지친다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런던에만 집중하는 보수당을 찍을 여유가 없어서 자유민주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스코틀랜드에서는 스코틀랜드 국민당이 여전히 30%대 후반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영국 주류 언론들의 기대와는 달리 지지세가 끄떡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아일랜드의 상황은 더욱 심각한데, 이번 선거에서 북아일랜드 독립파 정당인 신 페인이 처음으로 의회 1당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영국은 이제 단일 국가로 보기조차 힘든 수준으로 사회가 분열되었다. 대처의 2차 산업 붕괴로 인해 사실상 경제가 해체된 북부 레드월 지역은 이제는 자포자기의 상태이다. 2018년에는 노동당, 2020년에는 보수당, 2022년에는 다시 노동당을 지지하는 형식으로 노동자들이 일관되지 못한 표심을 보여준다. 블루 월 지역은 농업을 빼면 아무것도 없는 낙후된 지역이 되었으며, 이제는 보수당을 찍을 수 없다며 자민당에 표를 주고 있다. 남부와 북부가 말라죽어갈 동안 런던은 돈이 너무 많아져서 감당이 안 되는 상태이다. 돈이 너무 많아져서 여유롭게 환경이나 여성 타령을 하며 노동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는 더 이상 잉글랜드와 한집에서 못 살겠다며 분리주의 정당에 투표를 하고 있다. 이것이 영국의 현주소이며, 사실상 한 나라라고 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계급, 지역 간의 갈등이 심각하다.

 

(지방선거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얘기지만) 더욱이 심각한 것은, 영국에는 카리스마를 가진 정치인들이 전무한 상태라는 점이다. 일단 보리스 존슨 총리는 이제 선호도가 20%대를 찍는 실패한 정치인이다. 그렇다면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대표는 어떠한가? Yougov의 조사에서 이미 영국인들의 37%는 키어 스타머 대표를 신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지한다고 밝힌 것은 35%뿐으로, 이는 키어 스타머 대표가 벌써부터 영국인들에게서 대안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못함을 의미한다. 자유민주당의 에드 데이비 대표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여론조사에서 비호감도는 20%로 제일 낮았지만, 호감도도 19%로 제일 낮았다. 한마디로 말해 일반 국민들은 에드 데이비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것이 자유민주당의 현실이다.

 

물론 호감도, 비호감도만으로 정치인의 자질을 평가하는 것은 정당한 태도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른 것이, 그 어떠한 정치인에게서도 영국을 이끌어갈만한 새로운 어젠다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잘못한 것이 굉장히 많은 정치인이긴 하지만, 제러미 코빈은 그래도 "소수가 아니라 다수를 위해"라는 슬로건 하에 꽤나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책을 표방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1950년대 노동당의 제도권 정당화 이후 영국에서 잘 볼 수 없었던 것이고, 어느 정도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최소한 참신한 어젠다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키어 스타머 대표가 내세우고 있는 정책은 지나치게 모호하며 그만의 특색이 전혀 없다. 고든 브라운과 토니 블레어 사이라는 애매모호한 수식어만이 따라붙을 뿐이다. 이미 전 총리들의 성향을 두고서 현임 대표의 성향을 논하는 것부터가, 현 대표의 정치 성향이 너무나도 진부하며 어젠다도 이미 토니 블레어 시기 다 나온 30년이나 된 낡은 것들이라는 증거이다. 에드 데이비나 리시 수낙도 별반 다를 것은 없다. 리시 수낙이 내세우는 정책들은 마거릿 대처의 정책을 조금만 수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에드 데이비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한마디로 말해 지루하고 진부한 고전 자유주의만을 표방한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영국은 현재 자국 주변뿐만 아니라 자국의 상황마저 크게 변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로 인해 생길 엄청난 실업자들과, 급변하는 국제 상황에 대해 웨스트민스터와 다우닝 가의 대응 너무나도 안일하다. 영국이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도 엄청나게 많은 상황이다. 대처 시기 2차 산업이 전부 무너진 탓에, 지금 영국은 국제 정세가 조금만 요동쳐도 역성장을 거듭하는 처참한 경제력을 지닌 국가가 되었다. 브렉시트 이후 런던의 "유럽 금융의 수도"라는 타이틀은 암스테르담과 프랑크푸르트에게 넘겨준지 오래다. 1인당 GDP는 2007년 이후 상승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락했다. 현상 유지를 하는 것이 오히려 망하는 길이다. 지금 영국은 남의 나라들이 두 걸음 걸을 동안, 다섯 걸음은 걸어야 지금의 상황을 최소한 유지시킬 수라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영국의 정치인들에게서 이런 것을 해결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는 동안 영국의 사회는 점점 분열되고 있고 그것의 결과가 바로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드러났다. 영국이 하루빨리 사회 갈등을 수습하고 산적한 문제들을 차차 해결해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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