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지호가 조형한 기념비 '미리 지어진 전쟁기념물'은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적 시각을 던져준다. 해당 기념비는 다른 기념비들과 차별화된다. 우뚝 솟은 비석이나 동상의 형태를 한 여타 기념비와는 달리 이것은 초라하게 땅바닥에 누워 있으며, 오벨리스크가 아닌 묘지나 영안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게다가 외벽은 유리로 되어있음에도 내부에는 아무런 조형물이 없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텅 비어있어 풀들만 무성하게 자란 내부는 관조자를 기만하는 포스트모던 성향의 예술 작품 중 하나처럼 보이게도 만든다. 놀랍게도 이 조형물은 '이미 지나간 일'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을 회고하는 기념비로서, 미래의 전장에서 발생할 전사자들을 위해 마련된 일종의 묘지이다.
근대주의적 또는 진보주의적 수사에서 과거는 미래에 의해 정립되고 수동적으로 배치되는 객체로서 등장했다. 이는 과거의 형상이 미래의 목표에 의해 주조(鑄造)되었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리 지어진 전쟁기념물'은 이러한 직선적-선형적 시간관을 뒤집는다. 기념비의 전통적인 유행에서 과거란 현존하는 주권의 존속에 내심 봉사하는 것, '선택적으로 기억되어야만 하는 것'이라는 능동적이지 못한 위치에 만족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초라하게 세워진, 아니 '눕혀진' 기념비에서 과거는 목표를 위해 잠깐 지나칠 뿐일 환승장이라는 전락된 위치에서 벗어나 본연의 위치를 찾을 기회를 얻는다. "통상의 기념비가 미래의 이념적 목표를 과거에 투영시켰다면, 원지호의 전쟁기념비는 거꾸로 과거에 수없이 빚어진 억울한 희생들을 미래로 투영시켰다."1) 그런고로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표현한 그 조형물은 진보사관에 의해 강제적으로 구축된, '만들어진 과거상'을 폐지시키고 본연의 위치로 과거를 복권하는 데에 일조할 수 있게 만든다. 또한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는 미래를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그것을 관람하는 관조자와 시민들로서 하여금 능동적인 미래를 개척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독일의 사상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자신의 철학적 유언장인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의 14번째 테제에서 다음과 같이 적는다.
유행이 무엇이 현실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낌새채는―그것이 아무리 지나간 과거의 덤불 속에 있더라도―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를테면 과거를 향해 내딛는 호랑이의 도약이다. 다만 이 도약은 지배계급이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원형경기장에서 일어나고 있을 따름이다. 역사의 자유로운 하늘에서 펼쳐질 이와 동일한 도약이 바로 마르크스가 혁명으로 파악한 변증법적 도약인 것이다.2)
마찬가지로 '미리 지어진 전쟁기념물'은 그러한 '역사의 자유로운 하늘에서 펼쳐질 도약'의 준비 단계라고도 볼 수 있겠다. 왜냐하면 진보사관에 의해 주조되고 억압된 과거를 구제하고, 반대로 원하는 대로 미래를 '주조'할 수 있게 만드는 능동적 주체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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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성, 「한국의 기념비 문화에 끼친 독일 반(反)기념비의 영향: 기념비적 역사에서 민주적 기억문화로」, 『독일연구』44(한국독일사학회, 2020), 2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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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최성만 역,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폭력비판을 위하여/초현실주의 외』(길,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