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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 시기 ‘보수혁명’ 담론에 나타나는 반근대주의」 中, <전쟁과 ‘전율의 미학’> 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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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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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타이핑했기에 오탈자가 있을 수 있음을 알림.

 

 

 

 

 

1918년 당시 국제적 명성을 떨치고 있던 작가 토마스 만은 그의 유명한 『한 비정치적인 자의 고찰』을 도스또예프스키의 한 에세이에 대한 긴 논평으로부터 시작했다. 이 에세이는 독일을 그 민족의 탄생 초기부터 로마 교회의 지배에 대항해 온 “저항적인” 세력으로 묘사한 것이었다. 토마스 만은 보수적이며 동시에 혁명적인 이 슬라브주의 작가가 추앙했던, 독일의 서구에 대한 “영원한 저항”은 프랑스 혁명의 유산과 20세기 국제연맹 기구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수혁명은 근대적 혁명 이념들이 고취시켰던 바와 같이 ‘역사적 진보’를 위한 혁명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혁명이었다. 19세기의 통례적 어법으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이 기묘한 혁명 개념은 서구 근대 문명에 대한 독일 보수주의자들의 필사적 반격이었다.


그렇다면 보수혁명론자들은 서구 근대 문명의 어떠한 점을 문제삼았던 것일까? 보수혁명론자들은 원천적 보수주의자들로서 프랑스 혁명과 산업화의 물결을 통해 독일에 흘러 들어온 서구 문명을 독일 문화의 건강한 정신성을 파괴하는 암적 요소로 폄하했고 이에 따라 모든 서구적인 것의 총체적 극복을 지향했다. 이때 그들은 개개의 정치적인 현안보다는 그들이 서구 문명의 본질이라고 파악한 계몽 사상과 대결하는데 치중하였다. 이들의 계몽 사상 비판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개인의 합리적인 이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유기체적 ‘생’(Leben)을 파괴한다는 것이었다. 에른스트 니키쉬의 과장된 어법에 따르면 이성적인 것이란 대체로 “기만적”인 것에 불과하며 “합리주의는 초이성적인 것을 부정하는 한 결함일 수 밖에 없다.” 보수혁명 담론은 서구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볼 때 독일 보수주의의 일반적 경향과 큰 차이점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담론이 아직 전면화되지 않고 개별 지식인들 사이에서 잠재적으로 나타나고 있을 때 까지 그것은 독일 보수주의가 진행되어 갈 여러 가능성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것은 그 중 가장 극단적인 경우였다. 계몽적 이성에 대한 비판은 여기서 이성적 사유나 행위 자체에 대한 전면적 거부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 대안으로 극단적 유미주의(Ästhetizismus)가 등장하였다. 그것은 부르주아 질서의 내적인 파괴를 지향하고 있었다.


1914년 발발한 제 1차 세계대전은 독일 보수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시대적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이 전쟁의 체험 없이는 ‘참전세대’의 형성은 불가능했을 것이며, 따라서 그들이 주체가 된 새로운 보수주의의 탄생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도스또예프스키와 니체에 몰두하여 ‘경화(硬化)된’ 부르주아 세계에 대한 낭만주의적 반역을 꿈꾸던 청년들에게 전쟁은 이들이 순수한 모험심을 넘어서서 정치화되는 출발점이었다. 그들의 시각으로는 부르주아 세계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었다. 이에 반하여 보수주의자들이 꿈꾸어 왔던 진정한 공동체란 개인이 유기체적 전체를 위해 자발적으로 복무할 수 있는 그러한 것이었다, 전쟁 중 참호 속에서의 동지애의 경험은 에고이즘으로 타락된 빌헬름 시대를 타파하고 새로운 ‘민족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다는 이상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과 공동체의 운명적 일체성이야말로 이른바 1914년의 이념들’(Ideen von 1914)이 지향했던 바였다.


그러나 전쟁 체험의 실제적 양상은 갈수록 변모해갔다. 최초의 ‘현대적 총력전’으로서의 1차 세계대전은 청춘의 “모험에 찬 가슴”을 숨죽이게 만드는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이 전쟁이 보여 준 ‘조직된 대량 살상’은 전전(戰前)의 순수한 이상을 무력하게 만들어버렸다. 작가 에른스트 윙어가 이 전쟁을 “무(無)에 의한 대숙청”으로 묘사한 것은 결코 과장만은 아니었다. 1차 세계대전의 체험은 19세기를 지배했던 “모든 가치의 전도”를 초래하였다. “전쟁은 우리의 아버지이다. 그것은 참호의 작열하는 품 속에서 우리를 새로운 종족으로 탄생시켰다(…) 청년은 세계의 가장 끔찍스런 지역들에서 낡은 세계가 종결되고 새로운 세계는 아직 쟁취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획득하였다.”


전후 새로운 보수주의 담론 지형의 형성에 선도적 역할을 수행했던 것은 무엇보다 윙어의 전쟁 문학이었다. 최전방에서 수 차례나 부상당한 경력을 소지한 역전의 용사였던 그는 전후에 자신의 체험을 일련의 문학 작품을 통해 재구성해내는데 성공했다. 문학 비평가 칼 하인츠 보오러(Karl Heinz Bohrer)는 1978년 그의 저서에서 윙어의 초기 작품들을 “전율(Schrecken)의 미학”으로 특징지었는데 이는 매우 적절한 것이다. 윙어의 전쟁 문학은 참혹함과 기괴함, 무의미와 혼돈, 절망과 냉소 그리고 병적 쾌감과 묵시록적 환영으로 가득 차 있다. 공중에서 빗발치듯 쏟아져 내라는 총탄과 폭약 세례를 “강철 뇌우”로 묘사한 그의 처녀작은 다음과 같은 이인칭 화법을 사용하고 있다. “너는 흙구덩이에 외롭게 잔뜩 쭈그리고 앉아서 인정사정 없고 눈먼 파괴의 의지에 희생되고 있다고 느낀다. 너는 공포심 속에서 네 지성 전체가, 네 능력과 제반 정신적, 육체적 장점이 무의미하며 우스꽝스런 것이 되어버림을 느낀다. 네가 이 점을 생각하는 동안에 벌써 철제 통나무가 굉음을 내며 너를 형태 없는 무(無)로 분쇄해버릴 비행을 시작했다. 너는 사자(死者)의 펄럭거리는 소리를 여타의 소음과 구별하려고 청각을 곤두세우고 있기에 심기불편함을 느낀다.”


윙어의 전쟁 문학은 현대 전쟁의 체험이 남긴 악몽을 치유하려는 시도였다. 과연 무엇을 위해 그토록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던가? “전쟁이란 학교에서 획득된 가장 가치있는 것은 생은 그 내적 핵심에 있어 파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다.” 윙어에 따르면 전투 행위를 통한 “내적 체험”이야말로 시련 속에서 얻어 낸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수없이 흘려진 피의 대가는 승전과도 맞바꿀 수 없는, 인간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었다.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좁은 틈새에서 춘 춤”은 모든 합리적 판단을 중지시키고 인간 내면에 잠재해 있던 “동물적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것은 19세기의 낙관적 휴머니즘을 거부하는 20세기적 인간론의 대두였다. 윙어의 “새로운 인간”이란 나약하고 타락한 부르주아와는 다른 “전적으로 새로운 인종”으로서 폭력과 파괴를 겁내지 않는 일종의 “세련된 맹수”이다. 그들은 승리를 위해서가 야니라 “파괴의 대하극(大河劇)”을 상연하기 위하여 싸운다. 윙어는 이처럼 패배에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직시하며 끝까지 투쟁하는 정신 자세를 “영웅적 현실주의”(der heroische Realismus)라 명명했다.


윙어는 전우들의 죽음과 그들의 포기된 청춘을 무의미 속에 사장시키지 않기 위해 그것에 나름의 내적 필연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폭풍』에서 작가는 역사적이고 문명적인 “시간으로부터 탈출”하여 자연의 영원성에로 시점을 변경시킨다. 전쟁이 몰고 온 파괴는 마치 열대 지역을 몰아치는 허리케인처럼 자연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그는 그의 작가적 상상력을 통해 1차 세계대전을 묵시록적 환영으로 묘사해 나갔다. 가공할 첨단 무기가 내뿜는 화염은 피의 희생을 통해 세상을 정화시키는 의미를 갖는다. 현대 기술의 위력에 대한 공포는 그것을 자연적인 파괴와 탄생의 순환으로 심미화시킴으로써 잠식될 수 있었다. 불과 피의 조응이라는 이 보수주의 작가 특유의 ‘전율의 미학’은 결국 근대성과 신화의 결합을 의미했다. “비로소 우리 세대에 와서 기계(문명)와의 화해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그 속에서 단지 유용성만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의미로운 일보(一步)이다(…) 아마도 이 전쟁은 우리에게 거대한 가능성일 수 있다. 이러한 방향의 가능성에 비하면 수백만의 죽음은 오히려 값싸게 치러진 셈이다.”


1차 세계대전의 체험은 종전의 낭만주의적 반근대주의를 왜소하게 만틀었다. 보수혁명론자들은 무엇보다 근대 기술문명의 현실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술이 근대 문명을 넘어설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반근대주의 자체를 철폐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대 기술에 대한 극단적 찬미는 그것의 파괴력에 대한 공포와 무력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보수혁명은 결국 그 명칭이 암시하듯, 근대성에 대한 인정과 부정의 이중성이 불안정한 평형을 이룸으로써 야기된 담론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이마르 시기의 독일이 처했던 문화적 위기의 한 증상이었다.

 

 

 

 

 

-. 출처

 

전진성, 「바이마르 시기 ‘보수혁명’ 담론에 나타나는 반근대주의」, 『독일연구』1(한국독일사학회, 2001), 71-76쪽.

 

 

 

 

 

댓글
2
  • 용용
    2022.08.02
    과거의 담론들이 현대의 우리한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싶네요. 21세기 이후에 가장 큰 위기론이 대두되는 오늘인데, 우리는 정말 그 현실을 자각하고 있을까?
  • 용용
    감동란
    작성자
    2022.08.03
    @용용 님에게 보내는 답글
    가령 자본주의나 산업사회가 발흥한 이래 나돌았던 담론과 문제점들이 아직 해결되지 않고 '현대'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근대가 가져온 '새로움'이란 유행의 한계가 드러났고 이는 곧 진보사관에 대한 재고가 요구됨을 역설함. 다시 말해, 그저 '과거'를 낡아빠지거나 이미 지나가버린 징검돌로 취급하기보다는 '지금상황의 거울'로서 바라보는 시선이 시대적으로 요구된다고 생각을 함. 과거 토대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지금에서도 바뀌지 않고 일어나고 있으니.
     
    아직 우리의 대부분은 자본주의의 환등상에 빠져있기에 지금세기에 다시 반복될 '극단의 시대'에 대하여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함. 하지만 선진국의 사람들이 기존의 삶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기후위기가 강화되고, 자본주의가 더 이상 우리가 요구하는 퇴락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에서야 사람들은 현실을 깨닫고, 좌절하고, 비로소 그때에서야 움직일 것이라고 예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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