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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시스트 인터내셔널: 말뫼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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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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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5월 스웨덴에서 열린 말뫼대회는 유럽공동체의 이름으로 부활을 꾀하던 전후 파시스트들의 국제적 회합이었다. 독일 점령을 피했기에 파시즘에 비교적 거부감이 덜했던 스웨덴의 도시 말뫼에서 3일 동안 열린 이 대회에는 프랑스를 대표했던 바르데슈를 비롯해 이탈리아, 서독, 덴마크, 스페인, 스위스, 노르웨이 등에서 약 60명에서 100명 사이의 신파시스트들이 참가했다. 말뫼대회를 실무적 차원에서 조직한 인물은 ‘신(新)스웨덴운동(Nysvenska Rorelsen)’의 지도자 페르 엥달(Per Engdahl, 1909-1994)이었다. 그러나 말뫼대회 개최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것은 ‘이탈리아사회운동(Movimento Sociale Italiano)’이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력했던 신파시스트 정치세력이었던 이탈리아사회운동은 1950년 5월 로마에서 사전 준비 모임을 개최했고 여기에는 바르데슈와 엥달을 비롯해 영국의 모슬리, 무솔리니의 딸 안나 마리아 무솔리니(Anna Maria Mussoloni, 1929-1968), 히틀러청년단(Hitlerjugend) 간부 출신으로 신나치 조직 ‘독일사회운동(Deutsche Sozaile Bewegung)’을 이끌던 칼 프리스터(Karl Heinz Priester, 1913-1960)가 참석했다. 같은 해 9월, 이번에는 신세대 신파시스트들을 중심으로 다시 로마에서 회합이 이루어졌다.


말뫼대회의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파시즘의 복권을 위해 여론의 지지를 얻고, 둘째, 유럽 신파시스트 집단 모두에게 적용될 공동의 강령을 만들며, 셋째, 신파시스트 집단을 위한 유럽 차원의 활동 틀을 결정하고, 넷째, 다가올 유럽의회 선거에 대비해 공동 후보를 정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말뫼대회는 ‘유럽사회운동’이라는 명칭의 새로운 정치조직 결성을 결의했다. 이 조직은 ‘연구위원회(Commission d’Étude)’가 중심이 되는 일종의 집단지도체제 방식을 택했다. 바르데슈는 자신과 엥달, 프리스터, 그리고 이탈리아의 에르네스토 마시(Ernesto Massi, 1909-1997)가 제1기 연구위원이 되었고 엥달이 “소집과 연락”을 담당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는 유럽사회운동이 응집력 있는 정치조직이 되기에는 참가자들 사이의 이견과 경쟁, 혹은 갈등이 많았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유럽사회운동은 신파시스트 유럽공동체의 기본 구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첫째, 정치적으로 독자적이며 군사적으로 강력한 유럽을 구성하는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분열에 빠진 유럽은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에 종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이 완전한 독립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새로운 정치체제의 수립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진영에도, 공산주의 진영에도 속하지 않고 유럽에 적합한 정치체제” 즉 파시스트 정권의 수립은 유럽의 독립을 위한 선결 과제이다. 또한 정치체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유럽의 재무장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는 미국의 패권을 위한 것이므로 거부해야 한다. 그 대신 “무장한 민족적 독일”과 “민족적 반공 스페인”이 함께하는 “무장한 민족적 유럽(Europe nationale et armée)”을 만들어야 한다. 한마디로 유럽사회운동이 꿈꾸는 유럽은 “유럽의 지휘를 받는 유럽의 군대로, 유럽 민족들 사이의 연합체제로, 통합된 유럽이다.” 둘째, 사회정의가 지배하는 “사회적 유럽”의 수립이다. 이를 위해 “공동체에 유용한 모든 노동은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하며 노동에서 나오지 않는 수입은 철폐되어야한다.” “사회적 유럽만이 강력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말뫼대회가 폐회 직전 채택한 10개 조항의 선언문은 파시스트 유럽공동체 수립을 위해 유럽사회운동이 완수해야 할 핵심 과업을 담고 있다. 1. 공산주의에 맞서 서양 문화를 수호하기 위해 2. 유럽제국을 창설하고 3. 가격과 임금은 유럽제국 차원에서 통제되도록 하며, 4. 유럽제국의 중앙정부의 지휘를 받는, 모든 유럽 국가들로 구성된 군대를 창설하고, 5. 식민지 주민들은 적절한 문화적, 경제적 수준에 도달한 뒤 유럽제국 구성원이 될 권리를 부여할 것이며, 6. 주민투표에 의한 중앙정부의 지도부를 선출하고, 7. 조합주의적 국가의 기관들이 사회적, 경제적 삶을 조정하도록 하며 8, 교육의 목표는 강한 남성과 여성을 양성하는 데 있고 9, 지난 전쟁에서 양 진영으로 갈라졌던 이상주의자들사이의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요컨대 10. 이러한 유럽혁명은 인간, 사회, 국가의 정신적 갱생을 그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뫼대회는 파시스트 유럽공동체 수립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움으로써 전간기 파시즘을 계승하면서도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보편적 파시즘(universal fascism)을 내걸었고, 독일의 히틀러는 유럽의 새로운 질서 수립을 명분으로 일국적 파시즘의 틀을 넘어서고자 했던 일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예컨대 드리외 라 로셀처럼 “유럽연합국” 수립을 주장했던 파시스트 지식인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주요 유럽 국가들의 대표가 결집해 추상적이고 모호한 형태로나마 파시스트 “유럽혁명”으로 수립될 “유럽제국”의 밑그림에 합의를 이룬 것은 말뫼대회가 처음이다. 말뫼대회가 “유럽공동체 건설이 여전히 프로젝트에 머물고 있던 시절, 최초로 조직된 유럽 운동”이었다는 바르데슈의 평가는 따라서 그다지 과장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유럽사회운동’의 생명력은 약했다. 균열의 조짐은 1951년 말뫼대회 직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르데슈와 르네 비네(René Binet, 1913-1957)사이의 대립이 그것이다. 스탈린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를 거쳐 무장친위대(Waffen-SS)로 변신했던 비네 역시 말뫼대회에 참석했지만 곧 바르데슈와 대립했다. 유럽사회운동의 프랑스 지부 지휘권과 인종주의 문제를 놓고 두 사람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했던 것이다. 결국 1951년 9월 비네는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유럽신질서(Nouvelle Ordre Européen)’라는 명칭의 또 다른 신파시스트 인터내셔널을 조직해 유럽사회운동과 결별을 공식화했다. 유럽신질서는 유럽사회운동과 유사하게 “독립 유럽과 사회 정의”를 내걸었지만 “인종의 수호”를 가장 중시했다는 점에서 달랐다. 이 조직은 식민 지배가 식민지인들과 유럽의 백인들 사이의 혼종을 부추기기 때문에 식민주의에 반대할 정도로 인종주의에 집착했다.


정치운동으로서는 단명했지만 ‘유럽사회운동’은 이념적인 면에서는 하나의 분수령을 이룬다. 1952년 유럽사회운동 프랑스 지부의 기관지 격으로 바르데슈가 창간한 월간 『서양의 수호』는 1982년 폐간될 때까지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수정주의 파시즘의 이론적 실험실 역할을 함으로써 전후 유럽 파시즘의 “메타정치화”를 선도했기 때문이다. 이는 『서양의 수호』에 실린 글들의 성격과 기고자들의 면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예컨대 “로베르 브라지야크를 기억하며”(1955년), “푸자디즘”(1956년), “드리외 라 로셸”(1958년), “미지의 파시즘”(1969), “세계의 파시즘”(1970년), “반(反)볼셰비키 십자군”(1973) 등 『서양의 수호』 특집호들의 주제가 그러하고, 프랑스의 도미니크 베네(Dominique Venner, 1935-2013), 프랑수아 뒤프라(François Duprat, 1940-1978), 알랭 드 브누아(Alain de Benoist, 1943-), 벨기에의 레온 드그렐(Léon Degrelle, 1906-1994), 스웨덴의 엥달, 루마니아의 호리아 시마(Horia Sima, 1907- 1993), 이탈리아의 에볼라, 조르지오 알미란테(Giorgio Almirante, 1914- 1988) 등 유럽의 기라성 같은 신파시스트 기고자들의 면면이 그러하다. 마찬가지로 『서양의 수호』는 폴 라시니에(Paul Rassinier, 1906-1967), 로베르 포리송(Rober Faurisson, 1929-)과 같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유대인 학살 ‘부정주의자’들을 위한 공간을 제공했다.


유럽통합을 내건 파시스트 인터내셔널 운동은 말뫼대회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1956년 미국 CIA는 당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던 134명에 달하는 “국제주의적 파시스트”들의 명단을 작성했다. 이들은 국가별로는 독일 31명, 프랑스 30명, 스웨덴 17명, 벨기에 11명, 이탈리아 10명, 덴마크 9명, 오스트리아 6명, 스페인 5명, 노르웨이 5명, 영국 4명, 네덜란드 4명, 스위스 4명, 핀란드 1명이었다. 그러나 정치적인 면에서 유럽주의적 성향의 신파시스트들이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반면 바르데슈와 『서양의 수호』의 예에서 보듯이 정치투쟁의 수면 아래에서 전개된 이념적 차원의 실험에서 전후 파시즘은 착실한 성장을 이루었다. 전후 파시즘 연구에서 사상사적, 문화사적 접근이 긴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 출처

 

김용우, 「모리스 바르데슈의 신파시즘과 파시스트 유럽주의」, 『프랑스사 연구』37(한국프랑스사학회, 2017), 113-118쪽.

 

 

 

 

 

댓글
1
  • 용용
    2022.09.20
    굉장히 재밌는 이야기네요. 요즘 먹기 힘들어도 글을 읽는 편인데, 마치 삼국지 제갈량 사후의 이야기를 보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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