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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을 보라: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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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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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지적 환영.

 

 

 

1919년 9월 시인이자 비행기 조종사이며 민족주의 선동가이자 전쟁 영웅인 가브리엘레 단눈치오가 186명의 이탈리아군 출신 폭동자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새빨간 피아트 자동차를 타고서 폭동자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향했는데, 이 자동차는 당시 한 목격자가 영구차로 착각할 정도로 한 아름의 꽃들로 뒤덮여 있었다(단눈치오는 꽃의 숭배자였다). 단눈치오의 목적지는 크로아티아의 항구도시 피우메였다. 이 도시는 당시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 지도자들이 파리에서 전후 논공행상을 하는 가운데 이제는 파산해버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분리시키려고 논의하던 곳이었다. 당시 연합국 측을 대표하는 한 부대가 단눈치오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연합국 최고사령부의 명령은 분명했다. 필요하다면 사살해서라도 단눈치오의 진격을 저지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연합군 부대는 이탈리아군 소속이었고, 그래서 이탈리아인 부대원 대다수는 단눈치오가 지금 하려는 일에 공감하고 있었다. 잇따라 장교들도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나중에 단눈치오가 한 기자에게 말하기를, 정규군 장병들이 길을 터주면서 자신을 뒤따르고자 탈영했던 과정은 거의 코미디나 다름없었다.

 

단눈치오가 피우메에 도착할 무렵 그의 추종자는 2000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그는 도시에서 밤새도록 자신을 기다리던 열광적인 군중의 환대를 받았다. 아침 이른 시각에 도심 광장을 지나가던 한 장교는 여성들이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총을 든 채 광장을 가득 메운 모습을 목격했다. 이는 단눈치오가 연합국에 반발하여 스스로 '두체(Duce)'이자 독재관으로서 피우메를 장악한 15개월 동안 그 장소가 어떠했는지를―환상적인 연회장이자 전쟁터―잘 말해주는 정경이었다.

 

가브리엘레 단눈치오는 격정적이되 일관되지 않은 정치적 견해를 진닌 인간이었다. 단눈치오는 스스로 평하기를, 단테 알리기에리 이래로 가장 위대한 이탈리아 시인으로서 민족을 대표하는 '시성(時聖)'이라고 했다. 그는 실지회복주의 운동의 대변자였고, 그의 열정적 추종자들은 한때 이탈리아였던 모든 곳 혹은 이탈리아 땅이라고 간주된 모든 곳, 이전 세기에 이탈리아인들이 외국의 지배자들로부터 해방되었을 떄 미처 회복하지 못한 모든 곳을 탈환하기를 원했다. 피우메로 진군하며 그가 내건 목표도 이탈리아 주민이 다수를 차지하는 그곳을 이탈리아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가 도착한 지 단 며칠 만에 그런 목표는 비현실적이라는 게 분명해졌다. 단눈치오는 패배를 인정하기는커녕 자신의 봉토가 될지 모를 이 작은 땅에 원대한 전망을 투사했다. 이 땅은 단지 영토 분쟁의 대상이 아니었다. 여기서 단눈치오는 하나의 현대적 도시국가, 즉 정치적으로 매우 혁신적이고 문화적으로 몹시 세련되어서 전쟁에 지친 칙칙한 세계 전체를 압도해버리는 그런 곳을 창출하고 있다고 선포했다. 그는 자신의 피우메를 "비루한 바다 한가운데서 빛나는 탐조등"이라고 불렀다. 그곳은 바람에 실려 떠다니다 점화되어 세계를 환하게 불태우는 신불이었다. 요컨대 "번제(Holocaust)의 도시"였던 것이다.

 

피우메는 정치적 실험실이 되었다.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트, 생디칼리스트, 그해 초부터 파시스트를 자처한 자들이 그곳에 집결했다. 아일랜드의 신페인당과 인도 및 이집트의 민족주의 그룹들도 속속 도착했고, 영국 정보원들이 신중히 그들의 뒤를 밟았다. 지구상에 안주할 고향이 없는 그룹들도 있었다. 즉 자유연애와 화폐 퇴출을 주장하며 오래된 마을의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모임을 갖던 '완성을 향한 자유 영혼 동맹'도 있었고, 일종의 정치 클럽 겸 거리 갱단이라고 할 수 있는 '요가(YOGA)'라는 단체도 있었다. 특히 '요가'에 소속된 한 회원의 말을 빌리면, 이 단체는 "무한한 역사의 바다에서 축복받은 자들의 섬"이었다.

 

단눈치오의 피우메는 환락경의 땅으로서 사회 상규가 적용되지 않는, 모든 것이 허용되는 공간이었다. 그곳은 또한 코카인의 땅이었다(당시 수법대로 작은 금색 상자에 담겨 방수 외투 주머니에 실려왔다). 탈영병과 아드레날린에 굶주린 전쟁 베테랑 모두가 그곳에서 경제 불황과 지루한 평화로부터의 안식처를 찾았다. 마약 밀수꾼과 매춘부들이 그들을 따라 도시로 들어왔다. 한 방문객은 화대가 그렇게 싼 곳은 본 적이 없노라고 말했다. 귀족 출신 딜레탕트들과 질풍노도의 10대 청소년들, 시인과 시인 지망생들이 서구 세계 전역에서 이곳으로 밀려왔다. 1919년의 피우메는 1968년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애슈베리(각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히피 거리.)처럼 불만에 가득 찬 이상주의자들의 국제 우애를 끌어당기는 자석 같았다. 그러나 단눈치오의 추종자들은 히피들과는 달리 사랑뿐만 아니라 전쟁도 하기를 바랐다. 그들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약이었다. 유럽의 모든 외무부에서는 피우메에 정보원을 파견해 단눈치오가 무엇을 하려는지 신경을 곤두세운 채 감시하고 있었다. 호텔이란 호텔은 기자들이 모두 점거했다.

 

단눈치오는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숭배받는 시인이고 유명 극작가로서 그의 연극 공연엔 왕족까지 참관하며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제 그는 피우메에서 실제 인간들의 삶을 재료 삼아 예술 작업을 하는 중이라고 허풍을 쳤다. 피우메의 공적 생활은 거리-극장이 하나로 연결되는 공연 그 자체가 되었다. 한 관찰자는 그 도시에서의 삶을 끝나지 않은 7월 14일(각주: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 초기에 바스티유 감옥이 함락된 날로 그 자체 혁명을 상징하는 날짜다.)에 빗대었다. "이 모든 노래, 춤 불꽃놀이, 모닥불, 연설을 보라. 그리고 멈추지 않는 웅변! 웅변! 웅변!"

 

단눈치오의 피우메 점령이 종막을 고하던 때, 이상사회에 대한 그의 꿈은 그 자체 인종 갈등과 폭력 의식으로 점철된 악몽으로 변질되었다. 단눈치오가 1년 조금 넘게 피우메를 점령하고 있을 떄, 그를 축출하려고 진지하게 시도한 열강은 없었지만, 결국 이탈리아 전함 한 척이 피우메 항구에 도착해 단눈치오의 사령부를 포격하자, 그는 닷새간의 전투 끝에 항복했다. 그러나 그의 명령이 통용되는 동안 피우메는―그 자신이 정확히 그렇게 되기를 의도했듯이―수천 명의 출연자와 전 세계의 관객을 거느린, 특별한 리얼리티 드라마의 무대였다. 그것은 말하자면 다음 반세기의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주제들이 공표된 무대였던 것이다.

 

단눈치오는 새롭고 더 나은 세계 질서, 즉 '시학의 정치'를 창출하기 위해 작업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의 군단에 열렬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합류한 보수적 민족주의자들은 물론이요, 그를 "유럽의 유일한 혁명가"로 부르며 캐비아 한 상자를 보낸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정치 성향을 지닌 관찰자들도 그렇게 믿었다. 그의 추종자들은 피우메를 회춘의 장소로, 즉 모든 불순물이 깨끗이 헹궈지고 이제 더 자유로우며 아름다워질 장소로 봤다. 그러나 정작 거기서 창출된 문화는 회고적으로 볼 때 급속히 타락하여 아주 고약한 특성을 띠게 되었다. 예컨데 번개 표시로 장식된 검은 제복은 제복 착용자를 불길한 느낌의 초인처럼 보이게 했다. 군사적 스펙터클이 마치 신성한 제식들인 양 눈앞에 펼쳐졌다. 젊음의 숭배는 비행 청소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타락했다. 소수 종족들은 괴롭힘을 당했다.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행렬과 축제들이 지도자 숭배를 치장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오늘날 이 모든 현상은 시학의 정치가 아니라 난폭한 권력 정치의 전형적인 요소들로 보인다. 훗날 베니토 무솔리니는 『파시즘의 세례 요한』이라는 제목의 단눈치오 전기를 저술할 것을 독려했다. 단눈치오 자신은 이 파시스트 지도자를 자신의 천박한 모방자로 봤는데, 자신이 구세주 무솔리니를 준비시킨 단순한 전조 현상(세례 요한)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불쾌해했다. 그러나 단눈치오는 파시스트적이지 않았더라도 파시즘은 단눈치오적이었다. 검은 셔츠와 로마식 경례, 노래와 전투 구호, 남성과 젊음, 조국과 피의 희생에 대한 찬양은 모두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이 있기 3년 전에 이미 피우메에 있던 것들이다.

 

파시즘과 이에 연관된 정치적 신조들이 어떤 경제적·정치적·군사적 환경 속에서 번성했는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다. 단눈치오의 이야기는 그런 운동들을 다른 각도에서 조사해보고 그런 운동들에 선행하는 문화적 기원과 그런 운동들이 편승한 심리적·감성적 필요가 무엇이었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돋보기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과연 단눈치오가 신낭만주의 성향의 젊은 시인으로부터 민주주의 정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급진적 우파 반란의 선동가로 변모한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파시즘이 예외적인 역사 운동의 기형적 산문이 아니라 유럽의 지적·사회적 삶에 깊이 뿌리내린 경향들로부터 유기적으로 성장해 나온 어떤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런 경향 중 일부는 명백히 예외적인 것이 아니었다. 단눈치오는 고전과 현대 문학을 두루 섭렵한 인물로서 나름의 폭과 깊이를 지닌 사려 깊은 문화의 아들이었다. 그는 (그 자신 대문자로 표현한) 아름다움과 생명, 사랑 상상력 등 모든 지고지선한 것을 대변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탈리아를 불필요한 전쟁으로 몰고 갔는데, 이는 그가 전쟁이 어떤 이점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거대한 지각 변동을 일으킬 폭력 그 자체를 갈구했기 때문이다. 피우메에서 그가 감행한 모험은 치명적이게도 이탈리아 민주주의를 불안정한 상태로 몰아넣었고, 파시즘의 허풍과 폭력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 그는 타고난 '예민함', 즉 삶의 충만함을 완전히 경험하고 기념하는 자신의 재능에 자부심을 지녔다. "나는 썰물 때 바닥에 드러난 해안가를 맨발로 걸어다니며 발바닥 밑에서 꿈틀대는 것을 살피고 주우려고 거듭 몸을 숙이는 어부와도 같다."

 

단눈치오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 말하자면 환생한 성 프란체스코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의 전쟁놀이는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혐오스러웠다. 그는 이탈리아의 적들에게 오물을 뒤집어씌웠다. 그는 적들을 엽기적인 범죄자로 단죄했다. 그는 적들의 피를 요구했다.

 

이탈리아 미래주의자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에 따르면, "쾌락을 주는 그의 재능은 가히 악마적이다". 단눈치오에 결사반대한 사람들조차 그에게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이 있음을 인정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럽 차원의 파시스트 운동들은 과거든 현재든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역사는 그 운동들이 뿜어낸 잠재적 매력을 증언한다. 그런 운동들의 부활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 운동들의 악폐를 인지하고 그 유혹의 힘까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단눈치오는 무솔리니가 애써 포장하려고 한 만큼 파시즘의 지지자는 결코 아니었다. 단눈치오는 미래의 두체를 겁쟁의 허풍선이로 조롱했다. 그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도 경멸했다. 그러나 단눈치오의 피우메 점령이 이탈리아의 민주주의 정부에 결정적으로 상처를 입혔고, 3년 후 무솔리니의 권력 장악을 간접적으로 가능케 했다는 것은 확실히 사실이다. 물론 무솔리니와 히틀러 모두 단눈치오에게서 아주 많이 배웠다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단눈치오의 생에와 사상이 그가 번제(Holocaust)의 도시를 병합한 후 20여 년 만에 원래의 구상보다 훨씬 더 끔찍한 유대인 대학살(holocaust)로 귀결될 문화사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 출처

 

루시 휴스핼릿, 장문석 역,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 시인, 호색한, 전쟁광』(글항아리, 2019), 1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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