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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의 한 장면 : 하야토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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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반

▲ 하야토즈카(隼人塚)의 무인상, 하야토의 반란에서 죽은 이들의 위령을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 전해짐

 

하야토의 반란 (720-721, 隼人の反乱)

 

규슈 남부에 살던 토착 세력, 하야토(隼人)가 야마토 왕권(ヤマト王権)에 대항하여 일으킨 반란

 

1년 반 가까이 진행되었으며, 하야토 세력이 패배함에 따라 야마토 왕권은 규슈 남부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함

 

 

7세기 후반, 규슈 남부는 야마토 왕권의 세력이 미치고 있었지만

 

지배 체제가 완전하지 않아 구마소(熊襲)와 하야토라 불리는 토착 집단들이 할거하고 있었음

 

조정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히고 통제력을 강화하고자 이 지역에 율령제를 도입시키고자 했으나

 

규슈 남부 사람들로부터 지지받지 못했음

 

그 이유는 율령제의 기반이 이사나쿠(稲作, 벼농사)에 있었지만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규슈 남부는 시라스(白州, 白砂)라고 불리는, 두꺼운 화산재 지층 때문에 벼농사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임

 

 

당시 야마토 왕권은 난세이 제도를 경유한 중국 대륙과의 활발한 교류(견당사 등)가 이어짐에 따라

 

멱국사(覓国使, 벳코쿠시 또는 구니마기노츠카이)라는 조사대를 조직, 규슈 남부와 난세이 제도에 파견하고 있었는데

 

700년(몬무 천황 4년), 멱국사가 규슈 남부 각지에서 주민들에게 위협 받는 일들이 발생함

 

 

이에 조정은 오늘날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에 설치했던 지방행정기관 및 특수행정구역인 다자이후(太宰府)에서 무기를 모아

 

702년(다이호 2년) 8월, 사쓰마 · 다네(多褹, 오스미 제도)에서의 반란을 계기로 규슈 남부에 군사를 보내는 동시에

 

휴가국(日向国, 오늘날의 미야자키현으로 설립 초기에는 가고시마현을 관할했음)을 분할해서

 

하야토국(唱更国, 하야히토 또는 쇼코로 불렸고 후에 사쓰마국이 됨)을 설치해 현지 지배 체제를 강화함

 

또 713년에는 휴가국을 분리해 오스미국(大隅国, 오늘날 가고시마현 동부)을 설치하고

 

당시 율령제 도입 선진 지역이었던 부젠국(豊前国, 오늘날 후쿠오카현과 오이타현에 걸친 지역)에서

 

약 5천 명을 이주시켜 지배 체제를 더욱 강화시킴

 

이에 율령제, 특히 국군리제(国郡里制, 다이호 율령으로 시행된 고대 지방 행정 체제)와

 

반전수수법(班田収授法, 당의 균전제를 모방해 백성들에게 땅을 분배하고 조용조라 불리는 세금, 부역을 부과)을

 

추진하려는 조정과 기존의 공동체적 토지 이용 사회를 유지하려는 하야토 사이에 긴장이 고조됨

 

▲ 하야토 측이 농성했다고 알려진 히메노키(比売之城, 히메키 성으로도 불림)의 성터

 

720년(요로 4년) 2월 29일, 다자이후에서 조정으로 오스미국의 고쿠시(国司, 지방관), 야코노 마로(陽侯麻呂)가

 

살해되었다는 보고가 전해짐 이에 조정은 그 해 3월 4일, 오토모노 다비토(大伴旅人)를 세이하야토지세쓰타이쇼군(征隼人持節大将軍)에,

 

가사노 미무로(笠御室)와 고세노 마히토(巨勢真人)를 후쿠쇼군(副将軍)에 임명해 하야토의 땅을 정복하도록 함

 

하야토 측은 수천 명의 군사를 모아 7곳의 성에서 농성했고, 이에 조정에서는 규슈 각지에서 1만 명에 달하는 군사를 모아

 

규슈 동쪽 및 서쪽으로 두 군을 나누어 진군시켜 6월 17일, 5개의 성을 함락했다고 함

 

그러나 남은 성인 소오노이와키(曽於乃石城)와 히메노키, 두 성을 공략하는데 시간이 걸리면서 장기전이 되었음

 

이에 오토모노 다비토는 전열에서 이탈해 8월 12일, 도읍으로 돌아왔고 나머지를 후쿠쇼군들에게 맡겼음

 

1년 반에 가까운 이 싸움은 결국 하야토 측의 패배로 종결되어 721년(요로 5년) 7월 7일, 후쿠쇼군들이 하야토 포로들을 데리고 복귀함

 

하야토 측 전사자와 포로는 모두 합쳐 1,400명이었다고 하며 이 반란 때문에 반전수수법 적용이 늦춰졌고

 

이 전쟁으로부터 80년 가까이 지난 800년(엔랴쿠 19년)이 되어서야 시행되었다고 함

 

▲ 야고로돈(弥五郎どん)상

 

당시 이 전쟁에서 하야토 세력을 이끌었다고 하는 전설적인 인물이자 거인, 야고로돈이 전해지는데

 

여기서 야고로는 이름이고 돈(どん)은 사쓰마 방언으로 '님 또는 나리 ~공(公)'을 의미하는 경칭인 도노(殿, 아루지도노~ 할 때 그 도노)임

 

즉 풀이하면 야고로 공, 야고로 나리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음

 

이외에 오히토야고로(大人弥五郎), 야고로사마(弥五郎様)라고도 불림

 

이 인물의 기원은 싸움에서 패배한 하야토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호조에(放生会)가 시간이 흐르면서

 

야고로돈마츠리(弥五郎どん祭り)라는 지역 축제가 생기면서 대두되었다는 것이 유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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