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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레스트로이카 2.0'을 말하는 까닭?―代 알렉산드르 두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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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닉

1. 칠고초려


"아시아는 러시아의 출구가 되어줄 것이다."

 

19세기 후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예언이다.

 

"러시아의 8할은 아시아이다. 러시아의 희망은 아시아에 있다."

 

20세기 초반, 언어학자 트루베츠코이(Никола́й Серге́евич Трубецко́й)의 언명이다.

 

"러시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유라시아 국가로서만, 유라시아주의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20세기 후반, 역사학자이자 지리학자 레프 구밀료프(Лев Никола́евич Гумилёв)의 진단이다. 최후의 인터뷰에서 밝힌 견해였으니 유언이라고도 하겠다.

 

러시아제국과 소비에트연방, 두 번의 제국이 무너진 폐허에서 공히 솟아난 담론이 유라시아주의였다. 그 유라시아주의를 21세기에 계승하고 있는 이가 알렉산드르 두긴(Алекса́ндр Ге́льевич Ду́гин)이다.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 세 번은 반응이 없었다. 수신은 했건만 답장이 없었다. 다음 세 번은 거절하는 답장이었다. 그럼에도 미세한 변화는 있었다. 거절의 변이 점점 길어졌다. 파고들 여지가 있다고 여겼다. 질문지를 첨부한 7번째 편지를 보냈다. 마침내 승낙을 얻었다. 칠고초려 끝, 희소식이었다. 쾌재를 불렀다.


11번의 편지가 오가는 사이 110일이 지났다. 모스크바에 입성한 것은 5월이었다. 돌연 눈발이 흩날리는 북방의 봄날이었다. 넉 달 동안 동서남북을 쏘다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백야부터 시베리아의 툰드라까지 눈에 담았다. 바이칼의 호수부터 북극의 북해까지 시야에 넣었다. 이르쿠츠크의 대형서점에는 유라시아주의 특별 서가가 꾸며져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는 구밀료프의 책을 읽고 있는 대학생을 만났다. 유라시아주의는 푸틴 정권의 국시(國是)일뿐더러 민간에서도 호응하는 '시대정신'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감질 맛이 났다. 안달이 났다. 칠전팔기를 불사했던 까닭이다.

 

 

▲ 구밀료프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카자흐스탄 기념우표.ⓒwikipedia

 

 

인터뷰가 성사된 곳은 9월의 블라디보스토크였다. 동방경제포럼의 특별 연사로 초빙된 것이다. 장소가 아쉽기는 했다. 극동연방대학의 발해연구소에서 진행되었다. 모스크바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직접 보고 싶었다. 서재는 사상을 공간화해 둔 곳이다. 작업실은 그 사람의 뇌구조를 투영한다. 연구실 배치만 보아도 인터뷰 목적의 절반은 달성하는 셈이다. 공간의 아쉬움을 덜어준 것은 절묘한 시점이었다.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 박물관에서는 레닌 특별전이 시작되었다. 미술관에서는 더욱 흥미로운 전람회가 열렸다. 러시아혁명을 피하여 만주/연해주로 피난 갔던 정교도 신자 마을의 사진 전시회였다. 알렉산드르 두긴 또한 정교 사상가이다. 그 중에서도 비주류였던 고의식파 출신이다. 외양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회색 턱수염을 길게 길렀다. 콧수염도 덥수룩하여 입술을 죄다 덮었다. 가려진 입술 사이로 묵직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흡사 컴컴한 동굴에서 말씀이 웅웅 울려 퍼지는 듯하였다.


성직자 같다 하여 수도원에 은신하는 것도 아니다. 사회 활동이 활달하다. 두마 의장고문에 취임하여 현실 정치에 깊이 개입한 것이 1998년이다. 2002년에는 직접 정당을 창설하여 당수 노릇도 하였다. 당을 접고 유라시아주의 운동에 전념한 것이 2003년이다. 푸틴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표하며 시민사회에 투신한 것이다. 2008년에는 모스크바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취임한다. 신학부터 지정학에 이르기까지 이론적, 학술적으로 신유라시아주의를 정립했다. 2012년 푸틴이 대통령으로 복귀하자 당대의 이데올로그, 푸틴의 책사로 간주된다. 러시아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파악하는데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 알렉산드르 두긴. ⓒ이병한

 

 

 

2. 혁명과 문명


이병한 : 러시아혁명 100주년입니다. 새내기 시절 사회과학 동아리에서 레닌의 <국가와 혁명>을 읽었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2월 혁명은 부르주아혁명, 10월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 도식적으로 이해했던 것 같아요. 피상적이고 교조적인 혁명사관을 학습했던 것입니다. '표토르부터 푸틴까지' 러시아 근현대사 300년의 장기적 관점으로 러시아혁명을 접근하시죠?

두긴 : 로마노프 왕조, 러시아제국의 성립은 철저하게 표토르 대제의 기획이었습니다. 그 이전까지의 러시아문명, 정교 전통을 전복시키는 혁명이었습니다. 근대화를 명분으로 서구화를 추진한 것이죠. 예카테리나는 표토르의 실험을 완성시킨 여제였고요. 교시로써 러시아는 '유럽 국가'라고 못 박았습니다. 예카테리나는 그 오랜 집권 기간 동안 모스크바를 행차한 적도 몇 차례 없어요. 표토르가 건설하고 예카테리나 때 절정을 구가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파리 같은 곳이었습니다. 상류층은 러시아보다 프랑스어 쓰기를 더 좋아했죠. 의복부터 식습관, 학문과 예술까지 전반서화(全般西化)가 만연했습니다. 전통적인 복장을 하고 수염을 기르고 다니면 경찰에 의해 제지받았을 정도이죠. 이러한 서구화, 근대화에 저항했던 기층 운동을 주도했던 세력이 정교도 신자들이었어요. 특히 고의식파 숫자가 전체 인구의 1/3까지 확산된 것이 20세기 초의 상황입니다. 이들이 1917년 러시아혁명에 적극 가담하죠. 그래서 표토르가 폐지했던 총주교를 회복시킵니다. 수도도 모스크바로 되돌리고요.

이병한 : 저 또한 고의식파의 관점에서 본 러시아혁명사가 몹시 흥미로웠습니다. 국가로 흡수되어버린 제도권 정교와 일선을 긋는 '민간 정교', '민주 정교'라고 할까요? 실천 정교, 생활 정교였습니다. 그 '인민 교회'(=소비에트)가 권력을 접수해가는 과정도 인상적이었죠. 조선 말기에 동학운동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국가 이데올로기로서의 유교와 다른 '민중 유교', '민주 유교'였죠. 그 조직으로 집강소가 있었고요. 서당과 성당과 정당이 결합된 '인민 서원'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1894년 동학혁명은 실패했지만, 1917년 정교혁명은 성공했습니다.

두긴 : 아닙니다.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혁명을 도둑맞았죠. 볼셰비키들이 혁명을 낚아챘습니다. 또 다른 서구화가 시작되었거든요.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서유럽의 산물입니다. 유럽의 특수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조건을 전제로 등장한 이념이에요.

 

결국 볼셰비키의 실험은 18세기 이래 추진해왔던 러시아의 유럽화를 더더욱 심화시키고 말았습니다. 매우 다른 환경과 조건에다가 유럽 기원의 제도를 이식하려다 보니 무리수를 연발한 것이죠. 따라서 볼셰비키의 세계혁명이 완수되었다고 해도 그 결과는 유럽으로의 완벽한 동화에 그쳤을 것입니다. 즉 러시아 문명의 완전한 소멸, 좌파 버전의 '역사의 종언'이었겠죠.


소련 시기 달을 정복하고 우주왕복선을 만들고 핵무기를 개발하는 동안 러시아인들의 영혼은 피폐해졌습니다. 마을은 사라지고 성당은 폐쇄되고 인간들은 기계적인 프롤레타리아트가 되어갔죠. 전통은 말소되고 장소의 고유함은 사라지고 그 광대한 영토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똑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살아가는 끔찍한 시절이었습니다. 최고의 과학기술과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도 순식간에 소련이 몰락했던 까닭입니다. 영혼이 가난했습니다. 심성이 각박했습니다. 러시아의 기층과 전혀 상응하지 않는 외래문명이 겉으로만 군림했기 때문입니다.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러시아의 전통문명은 다시금 부활의 계기를 맞이합니다. 물론 초기에는 또 다른 표토르주의자들, 옐친과 같은 우파 서구화주의자들이 집권했죠. 그러나 최악의 혼란 끝에 푸틴이 집권하면서 안정을 되찾아갑니다. 푸틴은 표토르 이래 300년 러시아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리고 있습니다.

이병한 : 볼셰비키 혁명에 반대하여 러시아를 떠난 망명지식인들이 1920~30년대에 모색한 이념과 사상이 유라시아주의였습니다.

 

 

▲ 도스토예프스키. ⓒwikipedia

 

두긴 : 19세기로 더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슬라브주의라고 했죠. 물질문명을 최우선하는 서구파의 대척점에 섰던 일련의 사상가들입니다. '인민 속으로', 나로드니키의 출발이었고요.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또한 그 계보에 세울 수 있습니다. '정교도 사회주의자'였습니다. 유라시아주의자들이 유별난 것만도 아니었어요. 1910년대 이미 '서구의 몰락'이 운운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문명의 위기를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볼셰비키가 집권하면서 유물론과 무신론이 더욱 심화되고 말았습니다. 소비에트가 아니라 공산당이 권력을 독점한 것입니다. 인민교회가 국가기구에 배반당한 것입니다. 톨스토이가 아니라 마르크스를 떠받들었습니다.

 

마치 표토르에 반대하여 우랄산맥 동쪽으로 피난 갔던 고의식파처럼,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에 반대하는 이들이 파리와 프라하, 베를린, 브뤼셀, 소피아 등지로 망명을 떠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소피아가 중요하죠. 정교세계의 성지 가운데 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병한 : 소피아는 아시아 하이웨이의 종착역이기도 하더군요. 비잔티움세계의 경계였고요.


 

▲ 트루베츠코이. ⓒwikipedia

 

두긴 : 트루베츠코이의 <유럽과 인류>(Европа и человечество)가 발간된 장소이기도 하지요. 소피아대학에 자리를 잡았던 1920년이었습니다.

 

몽골의 러시아 점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파격적인 역사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러시아의 물질적 기반이 아시아를 통하여 형성되었다는 것이죠. 슬라브인, 중국인, 인도인, 아랍인, 아프리카인 등이 연합하는 진정한 인류애를 통하여 압제자 유럽에 대항하자는 대전략을 제시했습니다. 공산주의 일색의 세계혁명이 아니라, 각자의 문명을 통하여 서구 자본주의를 극복해보자는 취지였죠.

 

이 책자가 망명 지식인들 사이에 대논쟁을 촉발하여 유라시아주의자라고 하는 일군의 사상집단이 형성된 것입니다. 그 논쟁을 집대성하여 1921년에 펴낸 선집이 <동방으로의 출구>이고요.

이병한 : 제목부터 도스토예프스키 느낌이 물씬합니다. '아시아로의 출구'라는 표현을 차용한 것이겠죠?

두긴 : 시인 솔로비요프의 작품 중에는 <빛은 동방으로부터>도 있습니다.

이병한 : 러시아혁명에 반하여 그들이 추구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두긴 : 러시아문명입니다.

이병한 : 혁명의 반대편에 문명을 두는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 혁명 성찰>을 연상시킵니다. 영국 하원의원이자 사상가로서 프랑스 혁명에 대한 시국론을 설파하죠. 올 한해 유럽부터 러시아까지 견문하면서 삼독한 책이 <성찰>입니다. 학부 시절 전공이 사회학이었는데요. 그때는 '보수주의의 아버지'라고 하여 버크를 제대로 다루지도 않았어요. 경제적 자유주의를 수용하는 한편으로 봉건적 계층질서도 옹호했다는 식으로 중세에서 근대로 가는 이행기의 사상가 정도로 간주했죠. 그런데 올해 독서를 거듭하며 달리 보이더군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동시에 숙고한 사상가, 유동성과 안정성의 균형을 추구한 정치가로 보였습니다. 자연스레 버크와 두긴 선생님을 겹쳐서 독서하게 되었고요. 선생님을 '러시아의 버크'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두긴 : 20세기의 3대 이데올로기, 자유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와는 다른 '제4의 정치이론'을 궁리할 때 제가 자주 참조했던 인물이 버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가 봉건질서를 옹호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요. 시장사회가 확립되면 봉건체제는 자연스레 해체되기 마련이니까요. 다만 상업사회에서도 봉건사회에서 추구했던 가치와 미덕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인식한 것이 핵심입니다. 아니 프랑스혁명이 문명의 파괴가 아니라 문명의 진보가 되기 위해서라도 앙시앙 레짐에서 유효했던 태도와 관습을 통째로 버리면 안 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근대사회가 온전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전통사회의 원리가 기저에서 튼튼하게 바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상층계급의 공적 미덕으로서 강조된 기사도 정신이죠. 신사 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기사도 정신은 서유럽에서 인간 경영과 사회 운영의 노하우가 집약된 가치거든요. 문명이 지속하는 방책을 담고 있었던 비결입니다. 이것을 처분해 버리는 혁명은 결국 문명의 토대를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보았죠. 문명에 반하는 혁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혁명이념이었던 자유와 평등도 제어하려고 했습니다. 자유는 절제되어야 한다. 평등은 조율되어야 한다. 그래야 문명이 지속된다고 역설했습니다. 자유를 극단으로 추구하고 평등을 일방으로 추진하는 혁명은 단명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얄팍하고 편협한 혁명파들이 결국은 반동적인 전제정치와 폭력정치를 산출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견한 것이죠. 자코뱅의 테러와 나폴레옹의 독재를 예언했던 셈입니다. <성찰>이 출간된 것이 1790년이죠? 1789년 프랑스혁명 직후에 나온 것입니다. 위대한 저작입니다.

이병한 : 귀족계급을 타도하되 귀족이 추구하던 기사도 정신은 보존해야 한다는 역설적 논법이 흥미로웠습니다. '고귀한 복종', '존엄한 순종' 같은 특이한 표현도 많이 등장하고요.

두긴 : 신사 정신이라 함은 통치자와 지배계급이 사적 정념에 빠져들게 하지 않게 만드는 고도의 문명적 장치였어요. 권력이란 제도화된 폭력입니다. 그 합법적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의 사적 욕심, 동물적 욕망을 자제하고 억제하는 고도의 기능을 수행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작동해야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는 정묘한 문화형식이 생겨납니다. 그런 도덕적 장치가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폐기되면 권력의 폭정화, 정부의 전제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명예와 존경을 으뜸의 가치로 삼는 지배계급의 윤리의식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시장사회도 시민사회도 자유사회도 원활하고 원만하게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이병한 : 혁명적인 자유(Freedom)와 문명적인 자유(Liberty)를 분별하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두긴 : 문명적 규범에 의해서 사적인 정념을 억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입니다. 자발적으로 자기 규제를 하지 않으면, 강권적으로 폭정을 행사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면 자유롭지 못한 사회로 전락하게 됩니다. 버크는 부르주아 혁명이 허여한 사적 정념의 무분별한 표출, 무차별적 추구가 봉건체제보다 더 극심한 반동정권과 독재체제를 낳을 것이라고 예견한 것입니다. 자기부정을 통한 자기긍정, 자부와 자존이라는 가치를 '봉건 윤리'라는 이름으로 폐기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절제와 절도를 모르는 잡놈들이 자유롭게 권력을 행사하면 문명은 삽시간에 무너진다고 보았죠. 자아실현보다 자아극복이라는 위대한 자유, 문명적 자유를 배우고 익히지 않는 계층이 곧바로 권력을 행사하면 문명사회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것이라고 본 것이죠.

이병한 : 동방식으로 말하면 소아(小我)에서 대아(大我)로의 전환, '극기복례'(克己復禮)가 기사도 정신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신사도 또한 결국 지배층을 규율하는 윤리이지 않습니까? 시장사회, 근대사회로 가면 필히 상층계급만이 아니라 만인에게 그런 윤리를 학습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요?

두긴 : 버크는 하층계급들에게 신사도를 요구하기는 힘들다고 보았어요. 기사정신은 물질적 자본을 갖춘 사람들의 정신적 성숙, 마음 훈련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것은 종교라고 보았죠. 종교적 훈육의 사회적 역할이 바로 사적 욕망의 억제에 있기 때문입니다. 비뚤어지고 어긋나기 십상인 심성을 겸허함과 겸손함으로 다스리고 다독이는 것이죠. 모든 종교의 근간이 에고를 극복하는데 있습니다. 더 큰 세계, 우주와의 공속감을 배양하는 것이죠. 유럽에서는 기독교의 신이 그러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으로 폭발한 인간 중심주의는 영원불변한 신의 법을 인정하지 않아요. 마치 지상의 인간이 이 세계의 주인인양 착각하면서 주권을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버크는 혁명 직후부터 세속화가 초래할 장기적 효과를 근심했던 것입니다. 돌아보면 중세의 귀족과 성직자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만들어진 전통'일 수 있어요. 승자가 쓴 역사, 즉 부르주아가 서술한 역사에 의하여 귀족과 성직자가 문명을 존속시키기 위한 역사적 진화의 소산이었다는 점을 외면해 버린 것이죠. 버크가 <성찰>에서 거듭 귀족이라는 말 대신에 신사라는 개념을 썼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사는 신분제적 위계로서 귀족과는 다른 개념이죠. 품성과 자질을 갖춘 신진지배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견해입니다. 생득적 신분이 아니라 후천적 학습을 통해서 말이죠. 고귀한 가치와 태도를 귀족이나 성직자 같은 특권층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는 '문명화'를 지향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버크가 표방했던 것은 복고적 중세사회가 아닙니다. 더욱 고등한 문명사회라고 할 수 있어요.

이병한 : <성찰>의 통찰이 러시아혁명에도 통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국혁명에도 적용될 수 있겠죠. 혁명은 일시적, 단속적이고, 문명은 장기적이며 항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긴 : 자코뱅과 볼셰비키, 홍위병들의 공통점이 있죠. 단순하고 무식합니다. 단정적이고 교조적입니다. 어떠한 사회도 혁명파의 언설처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무 자르듯 갈라지지 않습니다. 본래 사회구조는 다층적으로 형성되기 마련이에요. 분업화가 덜된 농경사회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계급투쟁으로 양극화, 양분화 시키는 것은 정치적 결집을 위하여 유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혁명 과정을 통하여 망라적이며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실제 사회 질서는 완전히 헝클어지고 엉클어지고 맙니다.

 

혁명 이후 대혼란이 일어나고, 그 대혼란을 평정하기 위해 더욱 극심한 독재체제가 도래하는 까닭입니다. 즉 문명사회는 혁명파의 시각처럼 지배와 피지배의 단순 구도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공생관계 속의 차등으로 작동합니다. 그 차등이 얼마나 합당하고 합리적이냐의 여부를 따질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생생한 현실을 부정하면 문명이 파괴됩니다. 그래서 순수한 민주주의가 순수한 폭정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위아래와 높낮음이 사라지면 만인이 만인과 투쟁하는 야만 상태로 떨어집니다. 약육강식 논리가 횡행하는 것은 문명이 상실되었기 때문입니다. 강약과 대소가 없을 수 없습니다. 문명이란 그 대소와 강약과 상하를 조화시키는 세련되고 우아한 기술입니다. 대소와 강약과 상하가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혁명은 기만입니다. 우리는 문명을 사수해야지 혁명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병한 : 최신 용어로 거버넌스(Governance)가 아닐까 싶습니다. 에드먼드 버크 또한 '좋은 거버넌스'를 숙고했던 실학자라고 평가하고 싶고요. 그런데 혁명이 아니라 문명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씀이 자칫 반동파의 주장처럼 들릴 수도 있거든요? 서구에서는 러시아 보수주의의 상징으로 선생님을 거론하기도 합니다. 해명 또는 반론을 듣고 싶습니다.

 



3. 유기적 민주주의


두긴 : 없습니다. 전혀요! (웃음)

이병한 : 보수주의자십니까?

두긴 : 그렇습니다.

이병한 : 우파이신가요?

두긴 : 아닙니다. 좌파도 우파도 다 진보주의자이죠.

이병한 : 어떤 의미에서 보수주의자이신지요?

두긴 : 우파도 좌파도 변화를 섬깁니다. 저는 아무리 세상이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원하고 항구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매순간 진화하는 형이하학의 세계 너머로 3차원적 시공간을 초월하는 형이상학적 세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세계를 무시하지 않겠다는 태도로서 저는 보수주의자를 자처합니다. 즉 과거를 보존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전통을 고수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시간에 대한 다른 이해를 뜻합니다. 그래서 과거를 더 우선시하거나 중시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분절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과거보다 현재를, 현재보다 미래를 중시하는 불평등한 시간관을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 보수주의입니다.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현재합니다. 오늘날의 모든 것이, 그리고 미래의 모든 것이 과거로부터 비롯합니다. 현재와 미래의 모든 가능성이 과거에 담겨 있습니다. 고로 과거는 영원합니다. 보수주의야말로 영원한 미래파입니다. 그러한 시간관이 훨씬 더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앞의 탁자 위에 화분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뿌리에서 줄기가 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뿌리에서 줄기가 자랐다고 하여 줄기가 뿌리보다 더 진보한 것입니까? 열매가 꽃보다 더 진보한 것입니까? 뿌리는 과거의 것이 아닙니다. 뿌리는 열매와 현재를 공유합니다. 꽃은 시들고 열매는 떨어지지만, 뿌리는 생명이 있는 한 지속합니다. 즉 근간이고 근본인 것이지, 선/후가 아닙니다. 과거-미래는 더더욱 아닙니다. 보수주의란 최종적인 열매만 편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뿌리까지 동시에 숙고하는 전체적이고 유기적이며 항상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속성 재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스탈린의 좌파 혁명도 옐친의 우파 혁명도 금방 주저앉습니다. 이유는 동일합니다. 뿌리가 튼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푸틴을 지지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러시아의 문명적 뿌리에 가닿은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푸틴은 좌파나 우파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러시아의 보수주의자입니다. 그래서 과거를 위해서 투쟁하지도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소련 시대를 낭만적으로 회고하며 과거로 역사를 돌리려고 합니다. 자유주의자들이 1990년대를 장밋빛으로 회상하며 역사를 뒤집으려고 합니다. 그들이야말로 '보수파'입니다. 저와 같은 보수주의자, 유라시아주의자들이 '미래파'입니다. 인간과 사회와 국가와 문명의 근본과 근원을 따지기에 영원한 미래파입니다.

이병한 : 그런 태도는 선생님 독자적인 것인가요? 버크를 읽고 학습하신 것입니까? 혹은 러시아의 어떤 전통적 사유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요?

두긴 : 도스토예프스키가 중요하죠. 18세기 버크가 프랑스혁명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며 우려했던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관찰한 인물이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였습니다. 19세기 중반 파리에 체류했거든요. 계몽주의에 신랄한 비판을 가합니다. 종교개혁 또한 기독교를 왜곡한 것이라고 성토했습니다. 루터가 바티칸의 부정부패를 비판한 것은 백번이고 지당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 수도사들이 천오백년 간 온축해온 인생의 비결을 송두리째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얕디얕은 인문주의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일개 인간, 철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강등시키고 말았습니다. 구세주로서 부활의 기적을 기각시키고 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인간을 부정하고 나면 인간의 변화, 즉 '성화'(聖化)의 가능성이 차단되고 맙니다. 신의 왕국을 구현하겠다는 이상적 유토피아의 길 또한 봉쇄되고 맙니다. 기독교의 실천적 윤리학과 정치학이 누락되는 것입니다. 즉 개신교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가톨릭의 위계를 타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체의 권위를 모두 부정하는 역설로 귀착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을 혼자 읽기만 하면 성령이 강림합니까? 영성은 독서만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고 수도해야 합니다.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일상을 성스럽게 만들어야 합니다. 종교개혁은 신학을 인문학의 하나로 전락시키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을 영성의 차원에서 이성의 영역으로 끌어내린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을 과신하는 악령의 길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계몽도시 파리에서 기독교 낙원의 상실, 실낙원을 목도한 것입니다.
 

그에 반하여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정교세계는 여전히 기독교 본래의 순연한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후기 작품은 모두 이러한 주제를 다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톨스토이가 무교회주의를 표방하면서 독자적인 <성경>을 다시 쓰게 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지요. 서유럽에서 기독교가 타락하고 있음을 목도하며 러시아야말로 전 세계를 향하여 새로운 말씀을 전도해야 한다는 메시아적 사명감을 가지게 된 것이죠. 그 도덕적 각성과 영성적 분투가 '서구화'를 추구하던 러시아제국의 붕괴를 가져 온 것입니다. 고난과 고행, 수난과 수련 속에서 러시아의 정신이 부활한 것입니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위대한 문학작품이 봇물처럼 쏟아질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당시 서구에서 밀려오던 과학적 합리주의와 공리주의에 저항하면서 기독교 문명을 수호하는 최후의 천사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허나 그 찬란한 정신적 도약이 공산당 집권으로 다시 사그라들고 말았던 것이죠. 조악하고 천박하며 가벼운 소비에트 팝아트가 유행했습니다. 또 다른 진보주의자들의 전제에 맞서서 소련의 '민주화'를 촉발한 작가 솔제니친 역시도 정교사상가였음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병한 : 흥미롭습니다. 서방기독교와 동방정교의 차이를 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두긴 : 도스토예프스키 후기 작품의 열쇠말로 '리치나스찌'(ли́чность)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동방정교의 핵심을 담는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동방정교에서는 서방의 스콜라 철학 같은 논리와 사변이 발달한 것이 아닙니다. 신을 직접 체험하는 수련과 수양이 발달합니다. 그래서 글보다는 이미지가, 아이콘(Иконка)이 발전했습니다.

이병한 : 저도 그리스의 아토스 산에 가보았습니다. 사흘 동안 정교식 수련도 해보았고요. 미셀 푸코가 말년에 고대 그리스인들의 세계를 재해석하면서 길어 올린 '자기 수양'이라는 개념도 정교세계와 더 어울리는 것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언뜻 들더군요. 그리스의 진정한 후예는 서유럽이나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일었고요.

두긴 : 동방정교의 요체는 신의 존재에 대한 논리적 증명이 아닙니다. 신을 직접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 체험을 통하여 인간을 성화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은 신의 모양을 본 따서 만들어진 존재라고 했습니다. 고로 그 내재하는 신성을 갈고 닦으면 성화에 이를 수 있습니다. 즉 동방정교는 인간 한 명 한 명이 자기 내면으로 품고 있는 신의 모습을 잊지 말고 잃지 말면서, 신과 영적으로 교감하여 신에 더 가까운 인간, 더더욱 인간다운 인간으로 고양되는 것을 중시합니다.
 

<죄와 벌>이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쏘냐는 수많은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죄 많은 이웃 또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왜? 쏘냐의 마음속에도 신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빛을 주면, 은총을 받으면, 마음을 먹으면, 누구나 바로 그 순간부터 다른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일순이 영원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즉 죽는 순간까지 인간은 무궁한 참회와 무한한 회개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죄를 짓는 이웃도 사랑할 수 있고, 원수마저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고통을 나눌 수도 있고, 기꺼이 대신 벌을 받는 대속도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동방정교의 세계관이 응축된 작품이 <죄와 벌>이라고 하겠습니다.
 

반면 <지하실의 수기>는 서구의 계몽주의,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신랄한 냉소를 그린 작품이죠. 인간이 각자의 사리사욕을 이성적으로 추구하는 합리주의가 결국은 타자의 이익과 사회 의 공익을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이고 낙천적인 세계관을 거침없이 조롱합니다. 인간의 이성을 과신하는 사회는 결코 이 세상의 불행과 불운을 해결할 수 없다며 맹렬하게 성토하죠. 신의 은총과 인간의 사랑에 의해 인격을 완성함으로써만이 공동체의 평화도 완수된다고 역설합니다.

이병한 : 다시금 동방식으로 옮기면 경천애인(敬天愛人)입니다. 성공회 신자였던 버크와 정교도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자유' 개념이 흡사한 것도 같습니다.

두긴 : 도스토예프스키가 옹호한 자유 또한 자유주의보다 훨씬 차원이 높고 고상한 자유입니다. 자의식를 떨쳐내는 자유, 자기 이익을 포기하는 자유, 남을 사랑하고 희생할 수 있는 자유, 십자가를 지고 벌을 대신 받을 수 있는 자유의지를 옹호한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궁극의 자유이죠. 자유의 궁극은 자아로부터의 해방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애로부터 보편애로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에서 그려지는 이상적인 인물상은 모두 자아 극복을 연마하는 동방 정교의 정수를 구현한 사람들이죠. 그것이 바로 '리치나스찌'입니다.

이병한 : '리치나스찌'를 사전 그대로 풀면 인격, 정도 될 텐데요. 동방정교의 어감을 잘 살려서 옮긴다면 유교의 '대아'(大我), 불교의 '진아'(眞我)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극기복례를 이룬 대아, 탐진치를 극복한 참나, 라고나 할까요. 각자 신성과 천성과 불성을 구현한 인격을 일컫습니다.

두긴 :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공산주의의 프롤레타리아트나 자유주의의 부르주아를 기각하는 것입니다. 다들 제 계급적 이해에 충실한 소인들입니다. 보수주의자는 모든 인간이 위대한 인격으로 도약할 수 있음을 의심치 않습니다. 담대함과 대범함과 원대함을 옹호합니다. 대인배(Homo maximus)를 지향합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살아가는 태도에 따라서, 소시민으로 안주하지 않고 위대해 질 수 있습니다. 위대해진다 함은 부와 권력과 같은 세속적 가치를 쥔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두가 예수처럼 고귀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이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종속도 굴종도 아닙니다. 신의 정언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만 우리는 세속의 권력에 비굴해지지 않는 진정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주체성과 자율성과 독립성을 위해서라도 늘 신과 함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계몽주의 이후의 인간들은 스스로 '자유로운 개인'을 선언함으로써 욕망의 노예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어요. 일생 동안 소유하고 소비하는 양은 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질과 격은 현저하게 떨어졌습니다. 그 결과 탈인간화, 포스트-휴먼을 운운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죠. 이성적 인간이 결국은 비인간적인 인간으로 귀착된 것입니다. 고로 신의 죽음과 인간의 죽음은 직결되어 있습니다. 주체의 죽음, 저자의 죽음 등등 포스트모더니즘의 소란스러움을 지나 포스트-사피엔스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지요. 인공지능 시대, 이성적 인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이병한 : '유기적 민주주의'와 '순수 민주주의'를 분별하십니다. 유기적 민주주의란 무엇입니까?

두긴 : 사회의 수평화, 유동화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제 자리에 제 사람을 반듯하게 배치하는 것, 인물과 역할의 조합을 최적화하는 것이 문명입니다. 다종다양한 존재의 연쇄를 통하여 유기적인 통일체를 이루는 것이 문명이지, 만인이 자유롭고 만인이 평등한 사회가 만능이 아닙니다. 만능은커녕 애당초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온갖 감언이설로 그런 사회를 구현하려고 좌파와 우파가 시도했기에 억지스러운 평준화와 균질화가 빚어졌던 것입니다. 문명사회가 파괴되고 독재와 전제가 만연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개개인을 에고이스트적 욕구, 소유와 소비의 욕망에 종속시키는 자유민주주의도, 개개인의 개성을 박탈시켜 전체주의에 복속시키는 평등민주주의도 거절하는 것입니다. 무분별한 자유도 인위적인 평등도 아닌 자연스러운 조화를 꾀합니다. 저는 이를 유기적 민주주의라고 표현합니다.

이병한 : 푸틴이 말하는 '주권 민주주의'와 선생님의 '유기적 민주주의'는 같은 개념입니까?

두긴 : 아닙니다. '주권 민주주의'는 1990년대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에 터하여 나온 도구적 개념입니다. '유기적 민주주의'는 보수주의의 이념형을 구현했다고 할 수 있는 비잔티움제국의 정체로부터 빌려온 발상입니다.

 

 

▲ 알렉산드르 두긴. ⓒ이병한

 

 


4. 비잔티움 제국 2.0 : 심포니와 하모니


이병한 : 저도 오늘의 러시아를 이해하는데 비잔티움제국이 매우 중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던 차였습니다. '다른 로마', 동로마제국에 대한 공부가 크게 부족했음을 실감했죠. 서로마가 쇠락한 이후에도 무려 천년이나 지속한 또 다른 로마제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비잔티움제국 재인식이 향후 세계사의 전망에도 필수적이라고 보입니다.

두긴 : 서로마제국이 멸하면서 서유럽은 교황청의 종교적 권위로 작동하는 중세로 진입합니다. 그러나 동로마제국은 달랐어요. 지중해 서쪽의 라틴어세계와는 달리 동쪽의 그리스어세계는 성이 속을 압도하지 못합니다. 세속의 권력과 종교의 권위가 상호 견제하고 침투하면서 공존합니다. 국가와 교회가 협치를 합니다. 황제와 총주교가 연정을 합니다. 즉 동방정교는 세속국가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교와 국가는 배척하고 배타하는 상극이 아니라, '교향'(交響)하는 상생 관계입니다. 응당 성과 속의 분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아니 애당초 불가합니다. 바람직하다고도 여기지 않습니다. 성과 속은 공진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리스어 세계의 전통이고 정통입니다. 때문에 라틴어 세계처럼 교황의 전일적 권력으로부터 군주들이 독립해가는 세속화 투쟁 자체가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세속권력을 초월한 종교적 권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통을 표방하는 정교세계에서는 보편을 주장하는 가톨릭처럼 바티칸과 같은 유일한 종교권력의 원천이 부재했습니다. 중앙집권적이지 않고 연방제적 속성이 강한 것이지요. 그리스정교회, 러시아정교회, 조지아정교회, 불가리아정교회 등등 지방분권적이고 연방제적 성격이 농후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교회의 권력이 분산적이었기 때문에 국가와 종교의 관계 또한 도리어 더욱 돈독할 수가 있었던 것이죠. 서로마 서유럽과는 전혀 다른 다중심적이고 다극적인 세였어요. 그래서 총주교 또한 네 곳이나 자리했죠.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이집트), 안티오키아(시리아), 예루살렘에 권위와 권한이 분산되었습니다. 그 서로 다른 네 종교적 중심과 세속권력의 상호관계 속에서 비잔티움제국은 운영되었던 것이다. 그만큼 유연한 연합체이고 유기적인 조직체였습니다.

 

 

▲ 불가리아 소피아의 성 알렉산드르 네브스크 성당. ⓒ이병한

 


이병한 : 동방정교세계가 연방제적 성격을 가졌다는 말씀은 몹시 인상적입니다. 러시아제국의 속성, 나아가 20세기의 소비에트연방, 21세기의 러시아연방공화국과도 무관치 않을 것 같습니다.

두긴 : 비잔티움제국의 소멸 이후 동로마제국의 전통과 정통을 계승한 국가가 러시아입니다. 그리스세계의 속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습니다. 교회와 국가는 하나도 아니지만, 둘도 아닙니다. 국가와 교회는 무관해야 한다는 서로마-서유럽의 역사적 경험을 러시아에 투영해서는 안됩니다. 종교로부터 국가의 자율성을 획득하고, 그 국가로부터 다시 시민사회가 자립해가는 라틴어세계의 천년사와 국가와 종교와 민간이 공진화하는 그리스세계의 천년사는 전혀 상이했으니까요. 국가와 사회와 종교는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한다는 것이 동방정교의 핵심 사상입니다. 성과 속을 조화롭게 운영하는 고도의 기제를 세련되게 단련시켜온 것입니다. 흔히 심포니와 하모니로 비유하죠. 다채로운 음색의 악기들이 어울어지는 교향과 조화를 추구합니다. 따라서 정교세계는 결코 개개의 종파와 민족적 특성을 소거시키지도 않아요. 기독교를 넘어서서 이슬람세계와 불교세계와의 유기적 융화가 가능했던 것도 이러한 '교향적 인격주의'에 바탕한다고 하겠습니다.

이병한 : 그 비잔티움제국의 성격과 유기적 민주주의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 

두긴 : 비잔티움제국은 공화국이었습니다. 서로마제국의 제국상을 가지고 동로마제국을 인식하면 안됩니다. 공화국은 군주제와 귀족제와 민주제가 상호 견제와 균형으로 고도의 교향을 추구하는 체제입니다.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키케로도 모두 군주제와 귀족제와 민주제의 조화를 구했지, 어느 하나의 제도가 독점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상태를 우려했습니다. 즉 군주제가 압도해도, 귀족제가 돌출해도, 민주제가 독주해도 공히 전제정치로 귀결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러시아에서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리스 고전을 원전으로 공부합니다. 러시아 교양의 양대 축이 정교와 그리스 사상입니다. 고전의 가르침이 왜곡되지 않고 계승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의 눈에 1990년대의 체제 이행은 명백하게 균형이 무너진 민주제 독점 시대였습니다. 아니 사실상의 귀족제로의 타락이었습니다. 그래서 '올리가르히'라는 그리스어 기원의 개념을 떠올린 것이죠. '순수 민주주의'는 공화국을 위태롭게 만듭니다. 민주정과 귀족정과 군주정의 속성이 균형을 이루는 '유기적 민주주의'가 작동해야 공화국도 장기 지속할 수 있습니다. '비잔티움 공화국'이 인류 역사상 최장의 제국이었음은 그리스의 지혜에 기초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병한 : 그리스-로마 문명의 적통으로 러시아를 자리매김하는 것인데요. 20세기 미국과 소련의 헤게모니 다툼 또한 현대적인 로마의 적자 대결이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얼핏 듭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그리스-로마로만 한정되지 않는 문명적 자산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유라시아주의자로서 아시아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하십니까?

두긴 : 유라시아는 점진적으로 통합과 통일의 과정을 밟아왔습니다. 스키타이인, 투르크인, 몽골인에 이어서 러시아인에 의해서 대통합의 경험을 해보았죠. 문자와 종교에서는 그리스의 계승자로서, 그리고 지리적으로는 스키타이-투르크-몽골을 잇는 후예로서 러시아를 자리매김합니다. 그래서 '아테네의 스키타이인'이라는 표현으로 러시아인을 표상하기도 하죠. 모스크바가 그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동방정교의 신앙을 동양의 풍수지리를 빌려서 구현한 도시가 모스크바이니까요. 모스크바의 차르는 세례를 받은 칸이었습니다. 러시아는 태생적으로 기질적으로 규모적으로 다민족, 다문명, 다문자, 다종교를 아우르는 유라시아적 귀속의식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서쪽의 가톨릭문명, 남쪽의 이슬람문명, 동쪽의 유교와 불교문명과 대등한 독자적인 세계문명공동체로서 러시아-유라시아를 사유해야 합니다.

이병한 : 러시아 또한 중국이나 인도처럼 국민국가가 아닌 것이죠. 제국입니다.

두긴 : 그렇습니다. 러시아는 일개 국가가 아닙니다. 문명국가입니다. 보수주의와 유라시아주의에 기초한 국가세계(a state-world)입니다. 러시아를 하나의 국가로 간주하면 서구의 표준으로부터 유리된, 이탈한 존재인양 파악하게 됩니다. 러시아의 서구파들, 민주파들, 자유주의자들의 인식이 그러하죠. 러시아의 고유함을 비정상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러시아를 개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러시아를 지우고 프랑스 같은, 미국 같은 나라로 만들자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러시아의 미래를 '유사 서구'(Fake West)에서 구하는 것이죠. 서구의 아류, 이등국가, 이류국가에 그칩니다. 왜 지는 싸움을 하겠습니까? 중국처럼, 이란처럼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독자적인 문명국가의 노선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유라시아 정교대국'이 바로 그런 모델이죠. 때문에 러시아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같은 배타성을 배격합니다. 영원하고 고귀한 것을 추구합니다. 보수주의는 현실 정치체로서 제국과 조응합니다. 제국은 천상과 지상을 매개하는 정치체이기 때문입니다. 차이를 차별로 삼지 않고 포용하고 통합합니다. 국민국가는 태생적으로 배타적입니다. 위계적입니다. 제국의 지구력을 담보할 수가 없습니다. 보수주의 없이는 제국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소련의 조기 몰락은 진보주의 때문입니다. 보수적 제국이야말로 인간이 형성할 수 있는 최상의 정치 공동체입니다. 고귀한 인간들의 집합체, 연합체. 종교를 비롯한 고등한 문명이 바탕이 되어야 제국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유라시아 제국입니다. 비교의 대상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국민국가가 아니라 EU, 힌두문명, 이슬람문명, 중화문명 등 문명적 단위로 러시아를 접근해야 합니다.

이병한 : 중국이 동쪽에 치우쳤고, 인도가 남쪽에 자리한다면, 러시아는 북방제국일까요?

두긴 : 러시아의 공간적 특징은 중앙성에 있습니다. 동과 서의 상호 접촉을 기반으로 진화해가는 유라시아 문명권의 주체입니다. 북방제국보다는 '중앙제국'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서구도 아니요, 동방도 아닌, 양자를 아우르는 고유함과 독보적인 성격을 중앙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가톨릭세계와 이슬람세계와 불교세계와 유교세계를 모두 접하고 있는 지구상의 단 하나의 문명이 러시아-유라시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병한 : 중앙과 중심은 다른 개념인가요?

두긴 : 중심성은 서유럽의 가톨릭문명이나 동아시아의 중화제국에 더 어울리는 개념 아닐까요? 혹은 현재의 미국이 중심성이 강합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중앙성이란 중간 개념에 더 가깝습니다. 중심에서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에서 매개하는 역할을 더 강조합니다.

이병한 : 흔히 유라시아주의를 러시아판 제국주의, '팍스 로시카'로 비판하기도 하는데요?

두긴 : 러시아는 제국주의를 추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제국이 선물로 주어져 있습니다. 은총처럼 천혜의 광활한 영토를 갖추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사명은 이 광대한 영역의 안과 밖으로 조화를 이루는 일입니다. 러시아인들은 서유럽인들과는 아시아에 대한 태도가 다릅니다. 위대한 종교와 문명의 요람으로서 고대의 동양문화에 대한 선망이 있습니다.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심을 품고 아시아를 바라봅니다. 스키타이와 투르크와 몽골의 피와 살과 뼈가 러시아를 이루고 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서구와 미국의 제국주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이병한 : 제국성을 부정하지 않기에 푸틴을 차르에 빗대는 것 아닐까요?

두긴 : 제국과 황제는 불가분의 관계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황제 없는 제국의 사례는 많았습니다. 미국은 제국이 아닙니까? 선출된 귀족들이 이끌어가는 제국입니다. 공화당과 민주당 외에는 선택지가 없지 않습니까?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산당이 권력을 독점하는 제국입니다. 미국도 중국도 황제 없는 제국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제국에서 더 중요한 것은 황제냐 차르냐 칼리프냐 대통령이냐 하는 제도적 측면이 아닙니다. 보편적 사상과 이념입니다. 비잔티움의 카이사르와 오스만의 칼리프는 종교적 사명을 가졌습니다. 서로마제국과 몽골제국은 시민적 사명이 있었습니다. 중화제국과 페르시아제국은 문명적 사명이 있었습니다. 미국과 소련은 이념적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 보편적 사명으로 다민족과 다인종을 통합해내었던 것입니다. 유라시아제국으로서 러시아에 관건적인 것 또한 그러한 보편적 사명을 제시할 수 있느냐입니다.


이병한 : 정교대국과 대유라시아연합이 푸틴의 사명 같던데요?

두긴 : 제가 생각하는 러시아의 사명은 크게 둘입니다. 첫째 신학을 제자리에 돌려두는 것입니다. 신학은 과학과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신학은 영혼의 과학입니다. 신학 없는 인문학은 사소해집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그 시시한 사기극들을 복기해 보십시오. 신학은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넘어서는 과학입니다. 과학 중의 과학이 신학입니다. 모든 학문이 신학으로 귀결됩니다. 물리학을 하면 할수록, 생물학을 하면 할수록 신학으로 이어집니다. 변화하는 것을 중심에 두고 정립된 현대적인 학문체제를 영구적인 것, 영원한 것을 기초로 삼는 학문체계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근본과 근원을 바탕에 두고 표면의 변화도 연구해야 합니다. 본말이 전도되었습니다. 둘째 세계를 제 자리에 돌려두어야 합니다. 서구적 근대를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러시아는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러시아 문명의 내재적인 발전 논리에 따라서 독자적인 종교와 역사적 사명을 가짐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러시아는 세계의 다극화와 민주화에 공헌해야 합니다. 이 민주적 세계화의 동반자로서 중국과 인도와 이란과 시리아와 터키와 브라질 등등과 함께 연대해 가야 합니다.


푸틴의 현재 지지도가 80% 안팎입니다. 러시아를 문명국가, 정교대국, 유라시아국가로 생각하는 민초가 전체 인구의 7할을 넘습니다. 헤겔이 나폴레옹에게 수여했던 '시대정신'이라는 말을 저는 푸틴에게 헌사하고 싶습니다.

 

 

▲ 알렉산드르 두긴. ⓒ이병한

 

 


5. 페레스트로이카 2.0


이병한 : 보수주의, 유기적 민주주의, 유라시아주의가 합류하여 페레스트로이카 2.0을 이룹니다. 페르스트로이카 1.0과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두긴 : 페레스트로이카 1.0은 1980~90년대를 일컫습니다. 탈소련, 탈공산주의를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서구(Global West)의 일원으로 러시아가 편입되는 것에 그쳤습니다. 문명국가로서 러시아의 입지를 제대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당시 권력을 쥔 자유주의자들은 러시아를 다시 유럽의 일국으로 간주했습니다. 모스크바대학에서 영어강의가 늘어나고, 러시아문학과 러시아역사, 러시아예술은 '낡은 전통'으로 치부되었습니다. 그들이 집권을 계속했더라면 모스크바의 정치적 주권은 브뤼셀로 양도되고 경제적 주권은 뉴욕에 종속되었을지 모릅니다. 군사적 주권을 NATO에 헌납했을 지도 모르죠. 페레스트로이카 2.0은 그 시행착오로부터의 탈각을 의미합니다. 지구적 근대성(Global Modernity)을 구성하는 하나의 축으로서 러시아를 재정립하는 것입니다. 러시아는 러시아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수호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러시아는 정당하고 온당합니다. 러시아는 러시아의 이익을 보호할 것입니다. 그래서 러시아는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러시아는 러시아문명으로서 부활하고 재기할 것입니다. 중국의 중국화, 인도의 인도화, 이란의 이란화, 터키의 터키화와 궤를 같이 합니다. 탈서구적 세계화, 민주적 세계화의 주축으로서 러시아는 페레스트로이카 2.0을 추진합니다.

이병한 : 지정학의 대가로도 불리시지요. 페레스트로이카 2.0은 자연스레 대전략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긴 : 다극적 세계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첫째 가장 중요한 전략으로서 유럽과 미국을 분리시켜야 합니다. 유럽을 대서양문명이 아니라 지중해문명으로 되돌려야 합니다. 1991년 소련의 해체로 유럽과 미국의 분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소련이라는 단일한 적이 사라짐으로써 미국과 유럽은 이해관계를 달리하게 됩니다. 2001년 9.11 이후 일관된 현상이지요. 2003년 이라크전쟁부터 갈등이 표면화되었습니다. 독일도 프랑스도 미국 주도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했습니다. 미합중국과 유럽연합 사이 대서양동맹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독일과 프랑스와 입장을 같이 한 국가는 러시아였습니다. 유럽과 러시아는 갈수록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지중해의 반대편 이슬람세계의 혼란이 유럽에도 러시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세계관과 가치관도 더 유사해질 것입니다. 유럽도 보수주의의 기반이 역력합니다. 아방가르드 외에는 전통과 정통이 부재한 아메리카와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지중해를 공유하는 유럽,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독자적인 외교안보기구를 형성함으로써 미국이 주도하는 NATO형 패권질서를 타파해야 합니다. 지중해문명공동체로서 대서양동맹을 대체해가야 합니다. 둘째, 이슬람문명과의 공존체제를 이루어야 합니다. 정교세계와 이슬람세계의 평화공존을 실현함으로써 서구와는 다른 기독교문명의 전범을 러시아가 세워야 합니다. 터키와 이란, 파키스탄 세 나라가 핵심입니다. 러시아는 이슬람 대국들과의 협력기구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셋째 중국과의 협력을 더욱 심화시켜야 합니다. 포스트-아메리카 시대의 주축이 중국이 될 것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유라시아의 독자적인 문명국가라는 점에서도 러시아와 중국은 비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병한 : 반미(反美) 유라시아 연합처럼 들립니다?

두긴 : 반미가 아닙니다. 미국이 추구하는 세계의 획일화에 대한 저항입니다. 미국이 먼로주의로 돌아가서 아메리카 대륙에 자족하면 저항할 이유도 없습니다. 다양한 가치 구조를 인정하고 다양한 문명이 공존하는 세계체제를 지향할 뿐입니다. 비잔티움제국이 구현했던 심포니와 하모니의 연방제적, 다중심적 세계상을 지구적 차원에서 실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먼로 독트린이 선포된 것이 1823년입니다. '유럽인의 아메리카'에서, '아메리카인의 아메리카'를 선언한 것이죠. 신대륙이 구대륙으로부터 독립한 것입니다. 2023년 '구대륙 독트린'이 필요합니다. 아메리카인의 유라시아에서 유라시아인의 유라시아를 선포하는 것이죠. 신대륙으로부터 구대륙이 독립하는 것입니다. 저는 SCO(상하이협력기구)가 구대륙 독트린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신대륙과 구대륙간의 심포니와 하모니의 관계를 정립할 수 있습니다.

이병한 : 저는 2040년 전후, 아편전쟁 200년쯤 되어야 서구와 비서구 간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비로소 균형을 찾을 것이라고 전망했었는데요. 2023년이면 불과 6년 후입니다. 푸틴의 다음 임기 중에 성과를 내겠다는 뜻일까요? 혹시 트럼프도 재선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웃음) 무엇보다 서구와 비서구가 아니라 구대륙과 신대륙이라는 발상이 신선합니다. 프레임 전환, 패러다임 교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긴 : 유럽과의 제휴, 이슬람과의 공존, 아시아와의 연대를 통하여 다극화세계를 형성하면 종언의 위기에 빠졌던 역사 또한 재출발하게 될 것입니다. 다극화세계의 형성에 실패하면 포스트-역사의 국면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포스트-모던, 포스트-웨스트, 포스트-투르스, 포스트-휴먼의 시대가 열립니다. 천상과 지상을 매개하는 사피엔스의 역할이 더 이상 필요로 없는 세계가 시작될 것입니다. 저는 진정한 휴머니스트, 신실한 신자로서 반드시 이 흐름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수주의도 유라시아주의도 그 근본 취지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다운 인간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계몽주의로 빈사 직전에 처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진보주의의 귀결은 단속적 시간의 유희와 탐닉으로 귀착되었습니다. 시간 죽이기가 만연합니다. 생을 낭비하기, 삶을 허비하기가 넘쳐납니다. 무의미한 인생이 널려있습니다. 살아나야 합니다. 깨어나야 합니다. 문명을 되살려야 합니다. 종교와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영구적이고 영원하며 항상적인 인간의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보수주의적 인간관은 재귀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할 것입니다.

이병한 : 정치학자, 사회학자, 지정학자 등으로 불리지만 근간은 역시 신학자이신 것 같습니다. 오랜 말씀 감사드립니다.

 



6. 범이슬람주의, 범투르크주의, 범아시아주의


인터뷰를 마치고 트루베츠코이의 <유럽과 인류>를 구해 읽었다. 1920년에 발간된 책이다. 분량이 짧다. 팜플릿에 더 가깝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민족주의에 혹독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흡사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을 압축해둔 것 같다. 량치차오의 <구유심영록>(歐遊心影錄)도 떠올랐다. 1919년에 출간된 서적이다. 중국 계몽의 기수 량치차오 또한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을 견문하고 중국의 서구화에 급제동을 걸었다. 1920년대 중국사상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동서문화논쟁을 촉발시킨 책이다. 비슷한 시기에 키릴문자 공론장에서는 유라시아주의자들이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견주어 살펴볼만하다.
 

그 사이 바다를 건넜다. 북쪽 바다의 섬(北海島), 홋카이도에 머물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삿포로이다. 본래는 2주 만 머물려고 했다. 그러나 홋카이도 대학의 도서관이 워낙 훌륭했다. 북해도와 연해주(沿海州)는 물론 동시베리아 일대의 자료까지 광범위하게 수집해두었다. 왕년의 동북제국대학, 북방진출의 전초기지였던 것이다. 인터뷰를 정리하다가 무심결에 트루베츠코이를 검색해 보았다. 놀랍게도 실시간으로 일본어로 번역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번역 주체는 더욱 흥미롭다.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이른바 '만철'이다. 특히 소련 전문가로서 맹활약한 시마노 사부로우(嵨野三郞)가 주도했다. 일본에서 가장 잘 만든 러시아어-일본어 사전 편찬자로도 명성이 높은 지식인이다. 모스크바대학에서 철학을, 상태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한 러시아 통이었다. 범아시아주의자이기도 했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아시아 단위에서 결합한 대아시아 구상을 주창했던 인물이다. 1926년 <유럽과 인류>를 <서구문명과 인류의 장래>로 번역한데 이어, 1932년에는 <동방으로의 출구> 중 일부를 발췌하여 <일만공복주의>(日滿共福主義)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1932년이면 만주국이 들어선 직후이다. 1929년 대공황 이후이기도 하다. 유럽에 이어 미국까지 서구문명의 몰락이 더욱 확연해 보이던 무렵이다. 동방의 유토피아, 만주국 건설을 위한 이데올로기 작업으로 유라시아주의를 전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금 더 살펴보니 만주국은 유라시아주의 문헌 번역을 전담하는 기구도 만들었었다. 동유라시아의 신생제국 일본의 사고와 사유의 사이즈가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짐작컨대 일본어 번역을 통하여 유라시아주의는 중국과 조선, 대만 등 한문공론장에도 유통되지 않았을까 싶다.
 

 

▲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쿠르반 알리, 오른쪽 끝이 시마노 사부로우. ⓒwikipedia

 

 

시마노는 한발 더 나아가서 소련을 등지고 일본으로 망명한 러시아의 무슬림 지식인 무함마드 쿠르반 알리(Мухаммед Габдулхай Курбангалиев)와도 깊숙이 관계를 맺었다. 타타르스탄의 이맘의 아들로 태어나 공산혁명에 저항하며 일본에서 '도쿄 회교단'을 만들고 시부야에 마드라사를 세운 터키계 지식인이다. 오스만제국의 황혼을 뒤로하고 대일본제국의 여명에 일생을 투신한 문제적 인물이다. 일본에 거점을 두고 조선과 만주 등에 거주하는 극동 무슬림을 규합하여 동유라시아로부터 서구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를 넘어서는 이슬람세계의 복원을 꿈꾼 혁명가이기도 하다. 즉 흑해의 무슬림이 동해 건너 황도(皇都) 도쿄에 모스크를 짓기까지 192-30년대 유라시아는 동서남북으로 긴밀하게 공진화했던던 것이다. 다시금 하늘 아래 새 것이 없음을 확인한다. 20세기 초반에 이미 유라시아주의와 범이슬람주의와 범투르크주의와 범아시아주의는 공명하고 회통하며 지구적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었다. 포스트-국민국가, 포스트-민주주의, 포스트-자본주의, 포스트-민족주의, 새 천하와 새 천년을 탐구하는데 소중한 유산이 되어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 궤적과 흔적들은 중앙아시아와 일본 견문에서 따로 살펴보기로 한다.

 

아직은 러시아 견문을 더 잇는다. 18세기 '서구로의 창'이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도 변화의 조짐이 여실했다. 서유라시아의 지각변동을 확인시켜 준 행사가 6월에 열린 국제경제포럼이었다. 변심에서 회심의 장소로 전변하고 있는 백야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간다.

 

 

 

 

 

-. 출처

'도둑맞은 혁명', 소련은 왜 망했나?―[유라시아 견문] 신유라시아주의 : 페레스트로이카 2.0 <上>

'페레스트로이카 2.0'을 말하는 까닭?―[유라시아 견문] 신유라시아주의 : 페레스트로이카 2.0 <下>

 

 

 

댓글
2
  • 모니터링
    2022.03.05
    이렇게 알찬 글은 개같이 추천
  • 이종준
    이종준
    내댓글
    2023.12.14
    그동안 꽁떡 어플이랑 채팅사이트 여러개 쓰면서..
    나름 어디가 꽁떡하기 좋았는지 정리해 볼겸 끄적거려봄.


    1. 달*한**

    실시간 다수 매칭이라서 경쟁 타야함 막판에 긴장감 오짐
    처음이 어렵고 살아남으면 이후로는 수월함
    요즘은 심사가 까다로워져서 새로운 남여 유입이 없어보임

     
    2. ㄷ단*

    한창 랜덤채팅 인기탈때 흥했던 곳으로 홈런후기도 많았고
    나같은 평민들도 이곳에서 꿀 많이 빨았음 최근에 다시 깔아봤는데
    사람도 없고 조건글로 넘쳐난다. 쪽지 보내고 기다리다 보면 간혹
    월척이 뜨기는 하는데 여유 시간 많을때 해야함 강태공들이
    많으니 월척 톡아이디 받으면 곧바로 다른쪽으로 이어가야함

     
    3. 슈**ㅌ

    여긴 작년에 핫 했음 이메일로만 가입하고 먼저 접속한 사람을
    밀어주는 매칭 방식이라서 일반 랜덤 방식이랑 확실히 틀려 가끔
    재미 보는데 기다리기 짜증나면 기본 택시비 정도로 만날 수 있음

     
    4. ㅎ*유

    최근에 누가 기혼녀 만난 후기썰 올려 유명세 탄 곳으로
    짧은 거리순으로 먼저 매칭돼서 경쟁타며 시간뺏길 염려가 적음
    요즘 유행하는 채팅이고 만나서 꽁떡하기까지는 여기가 가장 쉽다
    조건거는 일부 생계형 여성들 차단하고 대충 쪽지만 몇개 날려도
    바로바로 답장옴 의외로 오전에도 많고 여자들도 찾기 귀찮으면
    가까운 거리순으로 살펴보기 때문에 기다리면 쪽지도 먼저 온다

    (좌표: https://bit.ly/3XAXItp (PC 가능))
     
     
    지금 대학생들 공강 많아서 사람도 많고 나는 4번 같은 경우가
    귀찮게 설치 안해서 좋고 목적이 확실한 애들로 걸러져 있어서 쉽다
    간혹 근거리에 30대 후반이 보이기는 하는데 지금은 들어가서 근거리
    접속자만 봐도 20대 여자가 더 많다는걸 확실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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