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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요약) 고대 중국의 “제국”적 특성 - 이념적 측면에서의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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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즈

고대 중국의 “제국”적 특성
- 이념적 측면에서의 고찰

 

 

.머리말

 

문명을 이해하는 다양한 요소 중 민족, 종교 문화권, 국가와 더불어 제국이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역사상 고대 문명이 고대 제국과 거의 동시에 출현했다는 사실을 통해 문명사의 이해에서는 제국을 필연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제국의 등장은 도시의 확대, 분업 및 전문화 등 도시의 사회팽창의 결과, 이질적인 문화와의 교류와 융합의 결과이자 동질적인 국가 통합에 의한 국가의 확대과정이 제국의 등장 요인이기도 하였다. 제국의 정의자체가 제국이라 칭하는 모든 국가들을 이렇다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이에 저자는 중국 고대 국가의 제국적 특성을 재검토를 통해 제국이라는 개념이 무엇인가, 고대 중국이 과연 유기적 통일체로서의 제국이었는지, “제국이었다면 어떠한 형태와 여하한 성격의 제국이었는지 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대 중국국가를 제국이라 칭할 때 번역어로서의 제국Empire과 정치제제의 개념인 제국帝國으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이미 진시황秦始皇이 중국 통일 후 왕 중의 왕황제라는 호칭을 창안하였고, 이를 청조까지 사용했기에 통일 중국을 제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어색한 일은 아니다.

 

다만 고대 중국을 제국Empire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면, 제국을 종주국이 다른 지배-피지배 관계를 맺는 일이라고 정의하거나, 다른 민족을 정복과 통제를 통해 착취하는 제국의 속성이 과연 고대 중국에서 나타나는 가 볼 필요성이 있다. 제국帝國을 제국Empire으로 바꿔 부를 수 있는지의 문제를 곧 중국이 이상적 지향점으로써 어떠한 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었는지, 구성원으로서의 제국인식의 문제, 천하를 이념적으로 통하한 유교이념의 가치관의 어떻게 확대 변화하는가 살펴보고자 한다.

 

.소국과민과 일통

 

서주西周 이래 자율적인 권한을 가진 제후국은 통치의 이상적인 단위였다. 제후국은 사국으로 칭해졌고, 천자가 거주하는 도읍은 중국middel Kingdom으로 불렸다. 은 가족 공동체로서 가와 함께 국가체제를 형성하는 한 기준이었으나 제국적 의식을 반영하는 천하일가의 관념이 형성된 상태는 아니었다. 후대 천자 등의 명칭과 천자로서의 위상을 보증하는 제도들이 구비되었다. 당위적 이념적 영역으로서의 천하관이 형성되면서 천하일가라는 관념의 단어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천자이기 때문에 온 천하를 다스려야 했던 중국은 오복과 구복의 세계관을 만들었고 이 영역에 거주하는 천하인들은 민족적 구분에 따라 제하諸夏와 이적夷狄으로 구분하였지만, 실질적 지배대상으로서의 편호제민編戶齊民을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국가영역이 존재했고 이를 천하영 국가 혹은 이적을 포함한 중화적 세계제국으로 칭하거나, 제국이라 하더라도 도시국가에서 전국시기 지역국가를 거쳐 통일제국으로 단계적 확대되었다는 관점이 있다.어떠한 명칭이든 제국Empire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노자에 나타나는 소국과민은 소국을 이상적인 사회로 보는 노자의 관점이 반영되었다. 욕심이 본성을 잃게 하는 명의 현실에 대해 강한 부정이 내포되있다. 다만 인간의 정치적 공동체의 가장 이상적인 범위를 소국으로 설정했다는 점에 그 의미가 있다. 허나 지리적 범위는 태고사회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이며 적은 구성원에 의한 공동체라도 내부의 갈등과 모순이 없을 것이라 보는 것은 낭만적인 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소국의 의미를 생활 속에서의 인정, 민심이 소통되는 지역이라는 의미로 볼 때 춘추시대의 일종의 피난처로 종독 단위의 소규모 집단 정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공동체의 경우 인간사회가 추구하는 자급자족과 평등 및 개인의 개성이 국가에 의해 억압당하지 않는 자유가 실현되는 사회가 형성될 수 있다. 그러나 소국과민식의 국가는 현실에서 형성된 것 보다, 춘추전국시기 개인의 생명과 가치를 존중하는 선에서 제후국간의 공존을 추구하는 관념도 형성되었다. 이러한 관념은 상대에 대한 간섭을 제외하고 자존의 기능성을 타진한 것은 사실이나, 논리적일 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한나라 초기 소국과민이나 자유방임식 국가운영이 시도되었다. 황노술黃老術의 유행과 황노정치의 현실 정치에서의 실현은 두태후竇太后 지지 하에 일시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여 문경지치라는 성공을 거둔건 사실이나, 지방정부의 반란과 내부으 정치 투쟁으로 종언을 고하여 실현이 불가능함을 증명하였다. 자연에 순응한다는 원칙이 전제 통치권력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진의 교훈을 얻은 한의 통치자는 이 이념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군현에 의한 직접지배를 가치로 내건 한무제의 중앙집권정치의 등장 배경도 이와 연관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한 것은 대일통大一統이었다. 제국Empire의 특징을 내포하고 있으며, 왕조의 기능 역시 제국Empire으로 규정 지을 수 있는 대표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편년체 역사서인 춘추는 시간의 기준의 설정을 일통의 강조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였다. 형식적으로 년과 월 사이 사계절과을 집어넣어 왕의 정통이 하나로 계승되는 사회를 이상적인 국가로 설정하였다. 동일한 혈연과 동질적인 문화를 갖는 국가 간의 통합과 일통체제 구축을 통한 대국 지향하는 일통의 관념이 내포되었고 이는 춘추·전국을 걸쳐 얻은 역사경험의 소산이다. 이는 천하의 분란을 극복하고 안정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덜재적 지배자인 천자의 등장과 하나로 통일된 국가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관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일통 국가의 유지는 다양한 중앙집권정책 모색의 계기가 되었을뿐더러 제국Empire으로 길을 여는 한 방편이었다. 일통 유지와 존중의 관념에 의해 춘추를 중심으로 하는 유교적 이념의 정착 과정은 일통관념의 승리과정이었고 일통은 중국을 하나의 제국Empire로 인식하게 하는 이념적 토대였다.

 

. 제국의식의 형성

 

국가구성원이 실제로 왕조를 제국으로 인식하고 신민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제국의식의 측면을 검토함으로써 고대 중국이 제국Empire으로서의 기능 수행하는지 설명 가능하다. 진시황의 통합정책은 일원화된 통일국가 형성을 시도하였다. 중앙정부의 명령이 지방관에게 도달하는 문서 전달의 계통 체계가 유기적으로 작동한 것이 밝혀지면서 법령과 행적의 측면에서 진한 왕조의 제국적 면모들이 분명해지고 있다. 진한시대 강제 이주나 농읍도시 건설 과정에서 제국의 기능과 제국의 신민으로서의 역할을 인식 할 수 있었고 변경으로의 이동을 통한 국경과 경계에 대한 인식이 생성되었고, 관리의 출장이나 여행을 통해 황제 명령에 의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제국의 실상을 알 수 있고 이러한 것을 통해 전한왕조에서 제국의식이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반 민의 제국에 대한 체험이 제국에 대한 복속과 귀속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지만, 당시 사회 통합을 천하라는 범주의 문화저 동질성을 통해 접근 해보고자 한다.

 

진의 육국 통일후 천하라는 용어의 등장은 현실에서 실질적인 국가의 범위로 등장한 개념을 의미한다. 이러한 천하는 지리적 동질성을 강조한 것이다.

 

고대 중국인은 이르면 춘추전국시기부터 자신을 동질한 문화적 단위로써 자칭 화하華夏혹은 제하諸夏로 생각하였고, 공통된 조선의식 및 영토관념으로서의 중국 및 천하관도 형석되기 시작하였다.

 

첫째, 종족적 측면에서 진과 초가 어떻게 화하에 포함하게 되었는지 문제이다. 여러 문헌을 통해 서주에서 춘추전국 시기에는 이들 종족이 제하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중원 왕조와 문자와 생활풍습이 다른 점이 많았다. 이러한 차이가 언제 극복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초대부 자낭이 주공왕의 시호를 논할 때 자칭 제하에 속한다는 의식을 내보낸 것은 초가 제하에 편입 됬음을 알 수 있는 실마리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오기가 초나라에 변법을 주도하여 화하문화를 전파한 것도 동류의식을 갖게된 원인으로 볼 수 있으며, 진 역시 스스로 화하임을 선언하여 자아의식의 표현을 함으로써 춘추시기 진이 화하로서의 자부심을 가진 것을 사실로 볼 수 있다. 물론 화하가 다층적인 개념임이 분명하나 적어도, 춘추말기 이들 지역과 종족이 다양한 정치문화적 교류와 융합을 통해 하나의 동일한 족류로 등장하여 동류의식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둘째는 동질한 통치범위로서의 중국과 천하라는 용어의 이해문제이다. “중국=천하라는 관념은 오랫동안 그리고 독자적으로 사용되었다. 기존 연구에서는 중국은 지역과 문화개념을 포함한 국가정권의 의미였다. 지리적 관념으로 중심국이라는 영역을 표시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진의 통일 후 정치적 함의를 포함하기 시작하였는데, 군현의 범위로 구체화 되기 시작하여 중국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지리적가 아닌 현실적인 통치범위를 지칭하게 되었고 그 영역을 천하로도 지칭하기도 하였다.

 

상서천자는 국을 세우고, 제후는 가를 세운다.” 라는 언급은 국가 과는 별개의 관념이고, 각기 천하를 구성하는 개별단위로 구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서구의 국가(State)라는 관념에는 국은 있어도 가의 관념은 포함되지 않는 점과 구별된다. “천하하늘아래라는 영역의 의미 보다 넓게 가에서 국을 거쳐 천하로 확대되는 최종 정치단위로 이해해야 한다.

 

『예기의 예운편을 통해 예악을 중심으로 통치되는 동질적 통치단위로서 천하가 가의 관념 속에 포함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천자는 민의 부라는 비유의 개념도 이해가 가능하다. 이러한 비유는 민과 천자가 하나의 가족이 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천자가 통치해야할 관념적인 영역인 동시에 혈연을 기준으로 동질화된 하나의 가족으로서의 부모 자식 관계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영역으로서의 천하관에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 준 것은 한무제 시기 장건의 원정이다. 원정의 정보로 외부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가 자극되어 지속적인 서역 탐방과 활발한 인적 교류의 촉매 역할을 함으로써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외부세계와의 교류도 나타났다. 하지만 새롭게 접한 서역 문명은 중국에 거센 도전을 주지 못하였다. 무제 시기 일정한 성공을 통해 대국으로서의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천하의 범위를 벗어난 이역으로서의 서역은 호기심의 대상이기 보다는 이민족에 대한 차별과 무시를 전제로 하는 이질적이면서 교화 혹은 위복의 대상으로써 인식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알려진 천하의 범위에 벗어난 서역세계에 대해 외국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이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인식이었으며 중국과 다른 이질적인 곳으로 통치 영역의 천하에 포함시키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한문제 시기 양주 등의 호칭이 등장하였다. 즉 천하에 흉노의 선우와 함께 공치하는 국면을 인정하자 하며 장성을 세워 양주의 영역을 나누었다. 장성의 이북은 선우가 장성의 이남은 한의 천자가 통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성은 단순히 중국과 비중국, 농경과 유목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이 아닌 천자에게는 천자의 덕이 부족하여 사해를 아우르지 못함으로 진정한 천자가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으로 일종의 무능과 수치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는 별도로 천하의 현실적 영역이 있음을 인정함과, 천하를 농경사회 등 동질적 범위로 축소 설정하는 인식임을 알 수 있다.

 

세계문명사적 관점에서 볼 때 제국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갖고 있고 일정 지역에서의 유일권력에 대한 욕구를 갖고 그것을 추구하고 있는 점이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대로 로마인이 자신들이 세계 중심이라는 인식을 가졌다는 사실을 통해 스스로 세계중심에 놓았던 것은 공통현상임이 확인되고 있다. 이는 다른 지역에 대한 몰이해, 자기문화의 우월성에 대한 과신 등에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자신과 타자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문화적 자신감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런 화이관은 자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넘어 이적을 금수로 인식하는 극단적인 무시로 나타나며 이들을 교화의 대상일 뿐, 정복이나 통치의 대상으로 아니었다. 반고는 이 점을 잘 지적하였고, 그 결과 화와 이의 구분이 종족이 아니라 전적으로 문화에 의해 결정된다는 동질문화공동체라는 발상이다.

이를 통해서 고대 중국에서의 천하는 이민족과의 통합이 아닌 동질적이거나 동질화된 문화와 민족 간의 통합으로 인식했으며, 국가와 가족을 하나로 통합하는 제국화된 관념으로 기능했다. 고대 중국은 이질적인 민족 간의 통합의 경우 민족의 개념을 확대 시켜 문화적으로 동질화 시켜나갔다. 무화적 동질성 속에 정치 사회경제적 사회경제적 사회통합의 제도가 정착되면서 하나의 제국으로서의 귀속의식도 형성되었을 것이다.

 

. 유교적 관념의 확대와 변화과정

 

전국시대 분열을 해소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전쟁의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 그 시기 각종 전쟁의 명분과 인의에 의한 전쟁 등에 관한 논설이 강조되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넓어진 영역과 혈연사회를 통합하기 위한 과정으로 전쟁 보다 통합을 유교적 이념의 확대를 통해 국가의 통합성을 증대하였다. 유교는 한무제 이후 중국을 통합하는 중요한 이념이었으나 쫑족적 질서 속에서 형성될 때 원초적 유교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다. 특히 효는 단지 자신의 부모에 대한 순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군주와 국가에 대한 복종과 종속을 의미하는 관념으로 확대되었다.

 

통일 이전에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몸을 전쟁터에서도 보존하는 것이 효였더라면 통일 이후는 전쟁에서 자신의 모을 돌보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고 희생하는 것 즉 국가에 대한 충이 최대의 효라는 식으로 여겨졌다. 즉 효는 가족 윤리를 넘어 국가의 윤리로 기능하였고 천하일가의 관념이 고대왕조의 지배이념으로 가능하게 진 것이다.

 

한편 부권과 군권을 우선시하는 논리의 구축과정이 진행되었다. 초기에는 부자윤리와 군신유리 간의 충돌이 존재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는 혈연관계가 사회적 관계보다 우선시 되는 시대였기에 상호 모순 될 경우 천륜에 속하는 부자관계를 우선하는 원칙을 따졌고 군신관계는 후천적 선택 관계로 여겼다 이 시기를 친족질서를 존중하는 전통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민과 다른 초월성과 신성성을 갖는 천자는 상제의 분신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군신관계에서 가족윤리를 뛰어넘는 절대성을 갖는 논리가 생겨났다. 일원화된 통일적 지배를 강조하는 제국화된 국가에서 군신관계는 가장 중요한 인륜관계였다. 한 대에 군주가 가부장적 지위를 획득하여 효를 통해 통치의 안정을 보증하고 충을 요구하기 위한 전제로 성립 된 것이다. 이는 혈연과 지역을 넘어선 제국화된 국가에서 친족윤리의 배타성이 군주통치의 절대성과 양립이 힘든 상황에서의 이념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군신관계를 우위로만 둔 것이 아니라 효를 충으로 전환 시켜 양립의 논리를 만들고 군신과 부자 윤리의 절충을 택하기도 하였다. 그 예로 부모이 원수에 대한 복수 허용, 부모의 죄에 대한 은닉허용의 관습, 아버지의 상 중 군주의 상이 있는 경우 등 국가윤리와 가족윤리의 양립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백호통을 통해서 유보규정을 이야기 하였다. 이는 주로 가족관계상의 위계 질서로 인해 군신관계가 성립 될 수 없는 경우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가와 국이라는 통일국가의 두 근간을 양립시키면서 통일국가의 지배체제를 확립하려는 의도가 분명하지만, 이상화된 통일국가의 논리만으로 혈연관게를 과도하게 규제할수 없었던 후한대의 사회 상황과도 관련이 있을수도 있다. 결국 군권은 혈연관계의 부권이 발전 한 것이라는 근본적인 인식은 완전히 무시 될 수 없었다.

후한대 황제들은 자신들만이 의도하는 이상적 국가상을 정책집행을 통해 실행시켜 일정한 효과를 거두고자 하였으나, 이는 집권자의 통일국가관에 불과하여 민간사회의 도덕과 국가윤리와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었다. 결국 후한 국가의 재 통일국가의 구축은 합리적 근원을 갖는 군주에 충성을 주장하는데 그친 실천윤리의 강조는 보편적이고 태평한 이상사회를 실현하는 논리로 승화되지 못했다. 그 결과 고대 통일국가는 이념적으로 붕괴도었고, 중국은 다시 한 번 분열로 접어들게 되었다.

 

. 맺음말

 

고대 중국은 대일통이라는 관념하에 영역의 확장성과 중국을 동질적인 종족 문화 영역으로 인식하는 제국의식을 공유하고, 원시 유교이념의 확장과 절충에 의해 통일적인 이념을 구축해내었다. 영토확장과 동질화라는 측면에서 고대 중국 통일국가 성립은 제국Empire으로 볼 충분한 근거가 가능하다. 그러나 진한제국은 중화제국이라 불리는 당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영토상 당의 영토가 훨씬크고 민족성에서도 한족이 주체된 진한제국은 호를 포함하여 중화민족을 구축한 당과 크게 다르다. 진정한 의미로서 제국Empire은 당 제국이 어울릴 것 같다. 다만 시기상 진한제국은 고대 로마제국가 대비되며, 다른 지리적 환경에 있으면서 정치-사회적 체제나 제도 등에서도 상당한 유사성이 있기에 자주 대비된다. 그렇지만 로마와 진한의 차이는 정복과 통일의 차이가 있다. 또한 로마는 기독교와결합한 것과 달리 유교의 종교성 여부를 제쳐두고 진한제국은 종교와의 결합이 없었다는 점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부분에서 중국 고대국가를 제국Empire로 정의하기는 애매하다. 그러나 그 정의가 애매한 만큼 그 양상도 다양하고 역사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역사 속 제국이 동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고대 중국의 통일 국가역시 넓은 범주에서 제국Empire의 유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참고 문헌>

최진묵, 『고대 중국의 "제국"적 특성 - 이념적 측면에서의 고찰』,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인문논총 제72권 제3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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