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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얻은 모래시계가 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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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을 던진다.

기다린다.

끌어올린다.


동작은 단지 이것뿐이지만, 이것은 머리로는 이해하기 쉬워도 실천에 옮기려고 하는 순간부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게 된다. 그물에 한가득 들어찬 난쟁이다랑어 떼를 감당할 수 있는 팔 힘이 있다고 해도 그물을 제때 들어올리지 못하면 난쟁이다랑어가 그 날카로운 이빨로 그물을 끊고 달아나 버리고, 반대로 너무 일찍 그물을 들어올리면 당연히 어획량이 엄청나게 줄어든다.

내가 열네 살 때부터 두 형을 따라 이 일을 시작한 이후로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역시 난쟁이다랑어를 잡는 어부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아무리 해도 나와 피터의 호흡은 좀처럼 내 두 형처럼 환상적으로 맞아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마치 불협화음처럼 어딘가 계속 엇나가기만 했다.

"영-차! 여엉차-!"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리려 큰 소리로 기합을 넣어 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솟아난 땀에 시야가 점점 뿌옇게 흐려졌고 팔은 계속 아래로 처졌으며, 힘마저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으랴랴!! 허억... 허억..."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두 사람이 그물을 바다에 빠뜨리지 않고 무사히 건져올렸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대가라고 해야 하나, 나는 힘이 완전히 빠져 이번 작업을 마치자마자 갑판에 철퍼덕 드러누웠다. 피터 역시 나 못지않게 힘들었던 건지, 그 애도 갑판에 걸터앉아 말했다.

"한 시간 동안 네가 던진 그물을 성공적으로 회수한 건 딱 두 번이었어. 어디 보자, 오늘은 총 열여섯 번이네. 아쉽지만 오늘 글라차열매 주스는 에드먼드, 네가 사야겠는걸?"

하지만 나도 질 수 없다는 생각에 피터에게 맞받아치며 말했다.

"하지만 네가 건져올린 스무 번의 그물 중 두 번은 빈 그물이었고 다섯 번은 난쟁이다랑어가 아닌 이상한 잡어들만 잡혔잖아.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열세 번이나 다름없지. 그러니까 글라차열매 주스는 네가 사는 게 맞을 거 같은데."

그 말을 듣자 피터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네, 네."

나와 어렸을 때부터 어울려 놀았던 둘도 없는 소꿉친구이자 이 푸르고도 끝없는 바다에서 어부 일을 하는 단짝이기도 한 피터. 내가 녀석과 함께 이 푸른사자 호에 올라타서 어부 일을 하고 있는 것도 벌써 3년째이다.

다섯째 달도 이미 절반 넘게 지났다. 소금기를 머금은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우리 둘의 땀을 식혀 주며 머리카락을 간질였고, 어느새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이걸로 우리들의 이번 주 조업은 모두 끝났다.

마침내 며칠간의 조업을 모두 마치고 귀항하기를 기다리며 쉬는 동안, 우리들은 잠시 미리 챙겨 온 감귤류 주스가 든 유리병의 병마개를 따고 주스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솔직히 감귤류 주스가 내 입맛에 맞냐 하면, 그럭저럭이라고밖엔 말 못하겠다. 하지만 이렇게 감귤류 같은 과일을 항해 도중 수시로 섭취해야만 뱃사람들이 흔히 시달리는 '해왕의 벌'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해왕의 벌.

바다의 신인 해왕이 자신의 영역인 바다에 발을 들여놓은 뭍의 백성, 즉 인간에게 내리는 신벌이라고 했던가. 

해왕의 벌의 초기 증상은 기본적으로 무기력감, 나른함 등 만성피로와 유사하게 나타난다. 이어서 권태감, 식욕부진, 피부건조 등이 나타나며, 피부에 출혈이 나타나기도 한다. 병이 심하면 잇몸 등에도 출혈이 나타나며 잇몸이 약해져 치아가 흔들흔들거리는 증상이 발생한다.

해왕의 벌은 보통 먼 거리를 항해하는 여행자들이 시달리지만, 우리들 같은 어부도 해왕의 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기에 해왕의 가호를 받는 과일인 감귤류를 자주 섭취하는 것만이 해왕의 벌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

아무튼 감귤류 주스를 마시다 문득 떠오른 해왕의 벌 관련 이야기를 이런 내용으로 피터와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배는 브리타인 섬의 메르카 항구에 도착해 있었다.

브리타인 섬. 다른 이름은 알비온 왕국.

이 드넓고도 험난한 해왕의 해역에서 뭍의 백성이 해왕의 분노를 피해 살아가기에 제일 적합한 곳 중 하나이다. 그와 동시에 남서해에서는 보기 드물게 왕국이 들어서 있는 규모의 섬이기도 하다.

메르카 항구에 도착하고 뭍에 발을 내딛자마자, 익숙하고도 향긋한 흙내음이 느껴졌다. 언제나 그리운 이 흙내음은, 마치 섬이 우리에게 어서 오라고 다정하게 인사하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해 주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메르카 마을은 브리타인 섬의 작은 항구 마을이었다. 이곳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해산물 시장이 열린다. 우리들은 그 시장에서 물고기를 파는 어느 상인에게 난쟁이다랑어를 파는 식으로 돈을 벌고 았다.

하지만 그 속물적인 상인을 만나는 일만 생각하면 기분이 나빠지곤 했다.

***

"한 사람당 7하이 주도록 하마. 이 정도면 많이 쳐 주는 거다."

그럼 그렇지, 상인 녀석은 우리들이 며칠간 힘들게 잡은 난쟁이다랑어를 또다시 터무니없는 헐값에 사가려고 수작을 부린다. 나와 두 형은 어이가 앖었지만 장사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우리로서는 항의해 봤자 또 조목조목 논파당할 게 뻔했기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터는 그래도 뭔가 항의해야겠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이봐요, 아무리 우리가 어린애라지만 이건 너무 헐값이잖아요.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난쟁이다랑어 한 상자가 5하이이고 총합 12상자를 저희가 납품했으니, 4분의 1을 한다고 쳐도 인당 15하이는 줘야 맞는데 말이죠."

상인도 피터의 그 말을 듣자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전과 같이 차분했지만, 그의 얼굴은 분노로 붉으락푸르락 하게 변해 있었다. 그는 어떤 수를 써서든 우리에게 제값을 치르지 않기로 마음먹었는지, 이제는 아예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너희가 뭘 모르나 본데, 내가 굳이 너희한테서 반드시 생선을 납품받아야 할 이유는 없어. 또 그러라는 법도 없고. 게다가 내가 너희에게 굳이 제값을 주고 생선을 사야 하니?"

바로 그때, 우리의 뒤에서 당찬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그러한 행위를 강제하는 왕국법은 없어. 하자만 이 마을의 법규에는 '수산물 상인은 난쟁이다랑어를 마을 어부들에게서 살 때 한 박스당 4하이 미만의 가격으로 사들이는 것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있는 거, 모르는 거 아니지? 당신이 하고 있는 짓은 메르카 마을법을 위반하는 행위야. 따라서, 메르카 촌장의 딸이자 차기 촌장으로 내정된 내 권한으로 당신을 처벌하는 게 가능하단 소리지."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를 지닌 소녀의 그 말을 듣자 상인은 할말을 잃은 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듣자 놀라서 말했다.

"마가렛?! 대체 언제 온 거야?"

우리의 등 뒤에 서 있는 사람은 뒤쪽으로 길게 한 갈래로 땋은 찰랑거리는 금발 머리와 새푸른빛의 맑고 청아한 벽안이 인상적인, 미모를 보유한 우리 또래의 열일곱 살 소녀였다. 그녀의 미모는 한눈에 보기에도 또래의 여느 여자아이들을 가볍게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누구라도 한눈에 반해버릴 것만 같은 외모를 지닌 그녀는 우리를 보자 미소지으며 말했다.

"소꿉친구들이 악덕 상인에게 시달리는 걸 그냥 놔두는 건, 촌장의 딸로써도 친구로써도 자격이 없는 거 같아서 말이야."

결국 그녀의 위세에 눌린 상인은 우리에게 제값을 주고 생선을 사갈 수밖에 없었다.

***

"고마워, 마가렛. 너 아니었으면 완전 호구 잡힐 뻔했어."

"감사는 됐어. 그보다 너네 아직 점심 못 먹었지? 잘 됐네. 아까 집에서 청어 파이를 구워 왔는데, 같이 먹을래?"

우리 둘은 바로 즉답했다.

"물론이지!!"

사실 메르카의 명물이 청어 파이이긴 하지만, 우리들은 어릴 때부터 질리도록 청어 파이를 먹어 왔기 때문에 그닥 내키지만은 않는 음식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얼굴 보기도 힘든 마가렛과 같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

그렇게 우리가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먹던 파이 조각을 들고 있는 채로 시장에서 웅성거리던 군중 틈에 끼어들었고, 이내 피터와 마가렛도 내 뒤를 따랐다.
 

군중들 사이에서 이따금씩 신기하다는 듯 들려오는 웅성거리는 소리. 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역시 드레이크야! 이번 이야기도 되게 재미난걸?"

나는 우리 셋보다 먼저 가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둘째 형에게 물었다.

"저기, 형. 혹시 저 사람들이 이야기한 드레이크가 내가 알고 있는 그 '허풍선이 드레이크'는 아니지?"

"어, 에드먼드구나! 생각보다 감이 좋은데? 그 드레이크가 바로 허풍선이 드레이크야."

역시, 그 이야기꾼이 또 온 모양이네.

***

유스터스 드레이크, 통칭 허풍선이 드레이크.

자칭 탐험가라지만, 뱃사람이란 것 외에 그의 신원은 일절 밝혀진 바가 없다.

그는 자신이 어디선가 얻어온 보물들을 늘어놓고 그 보물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신이 지목한 사람에게 보물 중 좋아하는 것 하나를 고르라고 시킨 뒤 그 보물을 공짜로 선물해 주는 괴짜였다. 거기다가 그 보물들은 감정받았다 하면 전부 진품이라는 결과가 나오곤 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마침 드레이크의 이야기가 거의 끝나가던 참이었다. 군중들을 비집고 맨 앞 줄까지 나아간 내 눈에 일생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신기한 보물들이 들어왔다.

흑진주를 엮어 만든 목걸이, 딱정벌레가 들어 있는 호박 브로치, 분홍빛을 띠는 아름다운 산호 오브제. 그리고—

왠지 모르게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금빛 모래가 들어 있는 모래시계.

내가 보물에 정신이 팔린 사이, 드레이크가 누군가를 호명했다.

"오늘의 행운의 주인공은… 맨 앞 줄에서 모래시계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밀색 머리카락의 소년이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에?! 저, 저요?"

사실 물을 필요도 없기는 했다. 여기 모인 군중들 중에서 밀색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고, 그중에서도 맨 앞 줄에서 모래시계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건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드레이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바로 너 말야! 여기 있는 보물들 중에서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앞으로 나와서 하나 가져가도록 해. 너에게 내가 주는 선물이다!"

나는 드레이크의 말을 듣자 앞으로 나왔다. 

하지만 다른 보물들은 전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단 하나.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망설임 없이 모래시계를 집어들었다.

드레이크는 내가 모래시계를 고른 것을 보자 좋은 선택을 했다는 듯 말했다.

"오, 그 모래시계를 고른 거냐? 역시 보물 보는 눈이 있구만! 그 모래시계, 내가 듣기론 일곱 개의 몽환 아이템들 중 하나라고 들었어."


그 말을 듣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
 

몽환 아이템.

이 세계에 총합 7개가 존재하며, 하나하나가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특별한 보물들.

하지만 선택받지 않은 자가 소유할 수는 없으며, 그러한 인간이 함부로 주인이 되려고 시도해 봤자 아이템 안에 깃든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그 말을 듣자 의아해서 드레이크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이 모래시계는 몽환 아이템 중 하나, 몽환의 모래시계라는 건데… 이렇게 귀한 걸 저에게 줘도 괜찮은 거에요?"

"확실히 이 아이템은 귀하지. 그치만 말야, 아무래도 난 모래시계에게 선택받은 자가 아닌 거 같더라고."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몽환 아이템을 손에 넣게 되었다.

***

내가 몽환의 모래시계를 집에 가져갔을 때, 가족들은 몽환의 모래시계의 처분을 두고 의견이 사분오열되었다.

이런 아이템은 값이 많이 나가니 팔아야 한다는 삼촌과 첫째 형.

분명 이 아이템을 노리는 해적들이 쳐들어올 테니 비밀리에 처분하자는 할아버지와 엄마.

이 문제에 대해 단 1나노그램도 관심이 없어 보이는 둘째 형.

마지막으로 내가 직접 고른 물건이니 내가 가지는 게 맞다는 아빠와 누나까지.

나는 이렇게 귀한 아이템을 내가 가져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과 가지고 싶다는 소망 사이에서 갈등하느라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던 때, 둘째 형이 말했다.

"다들 그만. 이 모래시계는 어차피 에드먼드가 가져온 거잖아요? 그러니까 에드먼드에게 어떻게 할지 결정하게 하는 건 어떨까요?"

다들 그 말을 듣자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당황해서 잠시 동안 결정을 내리지 못헀다.

분명 이 모래시계는 비싸게 팔릴 거다. 그러면 우리 가족의 생계에도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저는... 이 모래시계를 꼭가지고 싶어요."

내 입에서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말은 그거였다.

***

그리고 이후 일은 일사천리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이 모래시계를 잘 간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모래시계를 내게 정식으로 주었다.

그로부터 한동안 나는 이 모래시계를 무슨 부적마냥 가지고 다녔다.

항해를 할 때에도, 조업을 하지 않을 때면 심심풀이로 모래시계를 뒤집어 보고는 했다.

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점차 나는 이 모래시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햇빛을 받으면 아무리 모래시계를 뒤집어도 모래가 내려가지 않고, 햇빛이 없는 곳에서 뒤집으면 조금은 큰 모래시계임에도 불구하고 모래가 다 내려가기까지 11초라는 아주 짧은 시간이 걸린다.

나는 뭔가, 모래가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이 모래시계의 진정한 힘을 알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

내가 모래시계를 얻은 날로부터 1년 가까이 지난 백룡력 379년 셋째 달.

여느 때처럼 조업을 마치고 돌아온 나와 피터는 마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눈치챘다.

특히 촌장님이 절망에 빠져 있는 것을 보니,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을의 민병대 대장인 가리타 아저씨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곧이어 돌아온 답은 충격적이었다. 마을 북쪽에 있는 해왕의 요새에서 모습을 드러낸 수수께끼의 갑옷 마물들이 우리들이 없는 사이 마을에 쳐들어와 사람들을 끌고 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끌려간 사람들 중에는 마가렛도 있었다는 말을 듣자, 내 가슴은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절망에 빠져 넋두리를 하듯 말했다.


"그럴 수가.... 그렇다는 건 마가렛이 죽었을 거란 거잖아...! 거짓말이야... 그런 건 거짓말이라고...! 대체 어쨰서 아무 잘못 없는 마가렛이...!!"

내 눈에서는 이내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이내 나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상하리만큼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던 피터가 말했다.

"아저씨. 마가렛이 해왕의 요새로 끌려간 지 시간이 얼마나 됐어?"

"글쎄, 지금으로부터 30분 정도 지났을걸. 그런데 그건 왜?"

나 역시 피터의 이상하리만큼 침착한 태도에 오열하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일어나서 피터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눈에서는 각오의 불꽃이 강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피터는 해왕의 요새로 쳐들어갈 생각인 듯했다.

가리타 아저씨도 그걸 눈치챘는지 놀라며 말했다.

"설마 해왕의 요새에 갈 생각인 거냐?! 그만둬! 거긴 걸어다니기만 해도 생명력을 빼앗기는 곳이란 말야! 그 안에서 3시간 이상 있으면 살아남는 것조차 힘들다고! 몽환 아이템이 있으면 몰라도..."

"그래, 나한텐 몽환의 아이템이 없어. 하지만 얘한텐 있잖아."

그렇게 말하고서 피터는 나를 가리켰다. 나는 그걸 보자 깜짝 놀랐다.

분명 내가 가진 몽환의 모래시계는 몽환 아이템의 일종이다. 그런데 해왕의 요새랑 그게 무슨 상관이지?


바로 그때, 예전에 내가 책에서 읽은 게 생각났다.

해왕의 요새에 몽환 아이템을 소유한 사람이 발을 들여놓으면 생명력을 잃지 않고 신전 안을 걸어다닐 수 있다고.

분명 피터는 자신이 직접 가려고 할 것이다. 그렇기에 몽환의 모래시계를 잠시 빌려달라고 하겠지.

하지만, 어쨰서인지 나는 본능적으로 피터에게 모래시계를 빌려줘서는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머릿속에서 내려진 결론은 단 하나.

"그렇다면, 내가 직접 갈게."

 

***

나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해왕의 요새 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어두운 요새 안을 비추는 등불.

그리고 내 16번째 생일 날 지금까지 모은 돈을 털어 산 한손검과 방패.

그리고 목에 걸고 간편하게 뒤집을 수 있도록 목걸이의 형태로 가공한 몽환의 모래시계.

마가렛이 요새로 끌려간 지 3시간이 되기까지는 앞으로 1시간 30분이 남았다.

 그 안에 요새의 곳곳을 뒤지려면, 시간이 그렇게 많이 주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지금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

하지만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다 한들, 해왕의 요새는 결코 만만하게 볼 만한 곳이 아니었다.

곳곳에는 시 고블린(Sea Gobiln)들과 박쥐들이 넘쳐났고, 조금만 내가 소리를 내도 별의별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거나 온갖 함정이 작동해 나를 곤혹에 빠뜨렸다. 거기다가 마가렛 말고도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해야 했기에 수시로 왔던 길을 돌아가야 했다.

결국 나는 지하 3층까지 가는 데만 무려 35분을 잡아먹었다.

천신만고 끝에 지하 3층에 들어선 나는 혹시나 마가렛이 깨어 있을까 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소리를 크게 쳤다.

"마가렛-!! 어디 있어-?!"

바로 그때, 작게나마 마가렛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드...먼드...?! 여기야...!! 빨리...구해 줘.,.!!"

마가렛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 봐선, 분명 그녀는 이 층에 있는 무수히 많은 방들 중 어딘가에 갇혀 있다.

하지만 지하 3층에는 방이 너무 많았고, 결국 나는 마가렛이 있는 방을 찾는 과정에서 15분을 추가로 날려먹었다,

***

그렇게 도합 50분이 지나 마가렛이 있는 방에 도착했을 때, 시간을 너무 잡아먹은 탓에 그녀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해져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금발은 심하게 헝클어져 있었고, 그녀의 몸 곳곳에는 마치 집단구타라도 당한 것 같은 멍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거기다가 요새에 너무 오래 머물러 생명력을 많이 빼앗긴 상태였는지, 그녀는 간신히 의식을 유지하며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구하러 와 줬구나... 다행이다..."

나는 마가렛에게 손을 내밀고 일으켜 세워주려 했지만, 그녀는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린 건지 일어서려다가 비틀대며 다시 주저앉았고, 나는 결국 그녀를 등에 업고 출구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

다시 올라가는 데는 불과 3분 남짓한 시간이 걸렸지만, 입구까지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갑자기 뭔가 싸한 기운이 들었다.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최대한  낮게 숙였고, 순식간에 거대한 대검 한 자루가 우리 둘의 머리를 빗겨가서 벽에 박혔다.

"...사라져라... 이곳은 뭍의 백성이 감히 발을 들여놓아도 되는 곳이 아니다. 거기다가 우리가 사로잡은 몽환의 무녀를 빼돌리려 하다니... 이곳에 들어온 이상... 빠져나가게 두지 않겠다!"

그 말과 함께, 거대한 갑옷을 입은 마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마물은 아무래도 해왕을 섬기는 마물 같다. 그렇다는 것은 대화가 통할 상대는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나는 말없이 검을 빼어들었다.

마물 역시도 또 한 자루의 대검을 빼어들었다.

이윽고 잠시 동안의 긴장이 감돌던 나와 마물 간에는 곧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검과 검이 치열하게 부딪히는 치열한 승부가 이어졌지만, 점점 검을 부딪히는 횟수가 늘수록 내가 밀리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난 마물과 달리 검을 사기만 해 놓고 제대로 잡아본 적도 없었으니까. 거기다가 나는 마가렛을 한시라도 빨리 데리고 이 요새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확실히 내가 지닌 한손검으로도 타격이 들어가는 듯 했지만, 이대로 전투를 속행하기엔 너무나도 피해량이 적었다.

바로 그때였다.

달칵-

전투의 충격으로 인해 몽환의 모래시계가 뒤집혔고, 이윽고 모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주위로 푸른빛 파동이 퍼져나가더니, 나와 내 등에 업힌 마가렛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추었다.

***

처음에 나는 상황을 파악하는 데 2초 정도 걸렸다.

아니, 정확히는 2초가 지나도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든 생각은 이거였다.

"지금이 아니면, 빠져나갈 기회는 없어!!"

나는 재빠르게 마물의 등 뒤로 돌아서 나가려다가 멈칫했다.

마물의 등 뒤에 눈 비스무리한 무언가가 달려 있었다. 아무래도 흔히 말하는 '약점'이라는 것이겠지.

나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마물의 약점을 검으로 찌른 뒤 다시 달려나갔고, 내가 요새를 빠져나온지 단 1초 뒤 모래가 전부 내려가더니 마물의 비명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내가 요새 입구 근처에 있는 들판에서 마가렛을 내려놓은 채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등 뒤에서 백허그와 함께 마가렛의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다른 사람이라면, 일생을 살아도 한 번 들을까 말까한 앵앵대는 사근사근한 목소리겠지.

"있지, 에드먼드... 구하러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 정말 무서웠어..."

나는 대답 대신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마치 안심해도 된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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