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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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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테먀옹

부수적인 낙 없이 평범한 요소들로만 채워져 있어도 나는 스스로 흡족했다. 나와는 명백히 다른 사람들이 걱정 없이 즐기는 화목한 일상들은 내게 화중지병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청명한 하늘 아래 명징한 강물에 투영된 자신의 앳된 자태를 계속 들여다봤다. 주먹구구로 세어봐도 십수 년이나 되는 시간을 살아왔음에도 물거울 속의 나는 세월의 흔적 하나 보이기는커녕 내가 처음으로 본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나도 길거리에 거니는 사람들처럼 긴 행복을 경험하고 싶었다.


일반적으로 대중들은 괴이한 형상을 띄고 있는 생물을 지칭할 때 괴물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평범한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도 그 단어를 사용해 간접적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나도 그 괴물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사실은 나를 두렵게 했다.


지금의 내가 더욱 피폐해진 요인은 곁에 둔 죽마고우같이 좋은 사람의 최후를 눈앞에서 직관하는 비애에 있었다. 이젠 그 사람의 마지막 순간도 떠오르지 않아 극단적인 시도는 이미 여러 번 해봐서 곤란해질 지경에 도달했다. 한때는 특이한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뛰어들려는 나를 말리거나 힘으로 제압해 저지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들은 내 가족관계에 대해 질문해 왔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모든 생물은 저절로 발생하지 않고, 모두 각각의 부모가 존재한다는 건 현대에 고착될 정도로 저명이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나라는 존재의 근원이 될 부모님은 없었다. 가장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도 연무 속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오리무중이었다. 마치 누가 일부러 내 기억을 건드린 것만 같았다.


나의 정체는 무엇이며, 어디서 시작되었으며,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할 조금의 실마리라도 찾는 건 이제 지쳤다. 발견한 유일한 단서는 '물'과 가까워질수록 내 안에 '무언가'로 충전된다는 느낌이다. 그 '무언가'의 실체가 나의 한정된 지식으로는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게 문제였다.


지금도 내 뒤 너머에 있는 수상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마 그 제복을 입은 자들과 연루되어 있을 터였다. 또 내가 강물 속으로 투신할 걸 우려해서 그런 거겠지. 나에겐 그저 쓸데없는 배려심에 불과했다. 물에 빠져도 아무렇지 않은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내 예상과 달리 마냥 지켜보기만 할 줄 알았던 염탐자는 일부러 조심스럽게 잔디를 밟는 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음향의 깊이가 여태 봐왔던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밝고 높은 발소리로 보아하니, 나이는 비교적 적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한테 도달하기까지 대략 스무 걸음 남아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을 때, 여전히 쓸데없이 잔재하는 호기심이 고개를 발소리 쪽으로 돌리도록 만들었다.


내 정면에는 한 소녀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는 걸 자각하더니 보속이 점점 느려졌다. 게다가 그 소녀는 나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안에서 소득이 생긴다는 기대감이 자라나고 있었다.


천천히 일어나 그 소녀와 눈을 제대로 마주쳤다. 그리고 가까이에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을 쭉 훑어보았다. 모발의 모근 쪽은 흑색으로 보였으나 끝으로 갈수록 갈색에서, 마지막은 상아색이 보였다. 마치 머리카락에 선염법을 크게 취한 듯 화려했다. 모발이 온통 칠흑인 나와는 확연한 차이였다. 눈동자는 청색을 지닌 나와 정반대인 주황색이었다. 동공은 특이하게도 새의 발자국 모양과 유사했다.


"드디어 만났네."


그녀는 확실히 나를 알고 있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접근한 게 아닌, 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내가 기억이 뿌연 이유 또한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누구⋯ 저를 아시나요?"

"⋯역시."


정색하며 무언가를 깊게 확신한 듯한 표정의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나는 그대로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터⋯ 저를 보고 계셨나요?"

"처음부터 쭉 지켜보고 있었어. 그동안은 사람들이 방해했는데, 이제야 얼굴을 마주 보네."

"⋯네?"


한 소설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란다면 그 소망을 이루어 줄 신비로운 요정이 나타나 소원이 성사된다는 단순한 내용이었다. 읽을 당시에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부분이었지만, 참사의 파도를 이미 많이 겪어버린 나에게 그녀란 구원이나 다름없었다.


"혹시, 제 소원을 이루어주는⋯ 요정님이신가요?"

"요정이라,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럴 수도."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 황홀함에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뒤에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소원이 뭔데? 말만 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자신감에 처음에는 목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가, 금방 정신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이 지겨운 악순환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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