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ID/PW 찾기
아직 회원이 아니신가요? 회원가입 하기

퍼시픽 게이트 -3-

Profile
Korhal

1657435727.jpg

 

코네토 대위의 목소리가 점점 가라앉으면서, 말 수가 적어지기 시작한 걸 감지했을 땐 이미 코네토는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자네, 괜찮나? ”

 

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안부를 물어봤다. 그의 털복숭이 귀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눈에 띌 정도로, 그는 매우 불안해 보인다.

 

 

“ 미.. 미안, 친구. 난 괜찮아. ”

 

“ 잠깐 한대 피겠나? ”

 

 

나와 코네토는 잠시 사무실을 나와, 곧장 흡연장으로 향했다. 도로에는 자동차 몇대 만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고, 거리도 매우 한적했다.

호주인들은 아직 아인종들에 대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가 본다면 강아지 모양을 한 꼬마가 성인 남성이랑 걸어가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처럼 보일 것이다.

 

 

“ 후우… ”

 

 

코네토가 벌벌 떨리는 손으로 허연 연기를 내뿜으며, 빨간색 상표가 그려진 미국산 담배가 타들어가는 모습을 빤히 바라본다.

 

나 또한, 그가 가진 담배와 똑같은 담배를 입가에 머금으며 그간 있었던 일들을 곱씹어본다.

 

 

 

 

 

“ 이제 좀 괜찮아 졌나? ”

 

 

“ 좀 낫군. ”

 

 

 

 

 

 

 

 

--------------------

 

 

 

 

 

마을에 살던 어린 시절. 나는 항상 점심이 끝나면 마을의 소꿉친구들과 같이 집 근처의 초원으로 곧장 가곤 했다.

 

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엉성한 집, 우리들의 비밀기지에 모여 장난을 치기도 하고, 나무타는 것이 지겨워지면 개울가로 가고, 그 반대로 놀았던 때도 있었다.

 

배고플 때면, 언제나 들리던 식료품 가게에 팔던 조잡한 간식들을 사들고 초원 언덕으로 갔다. 초원 언덕에 앉아있으면, 저 멀리 옛날에 살던 우리 집이 보였다.

 

내가 살았던 곳은 수인 마을이다. 물론 수인들이 많긴 하지만, 이름만 수인 마을이라서 엘프도 살고 마족들도 살고 있다. 우리 수인 마을에 항상 하루 건너 한번씩 들르던 고블린 경찰 아저씨는 우편물들과 함께 외부 소식을 들고왔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 아저씨에게 ‘이야기꾼’이라고 부르곤 했다.

 

마을에 첫 전보기가 들여져 왔을때, 나는 ‘고양이 잭’, 기타 꼬마들과 옆집에 살던 하이엘프 소녀와 같이 정신없이 회관 주변을 뛰어다니곤 했다.

 

모두 익숙한 얼굴들이다. 옆집에 사는 하이엘프 소녀는 항상 자전차를 타고 채소 배달을 나선다. ‘고양이 잭’은 망할 꼬리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골목길을 휘젓곤 했다. 

 

 

이런 따뜻한 기억이 떠오르는 건 정말 간만이다.

 

 

 

 

 

 

 

 

 

.

.

.

.

.

 

 

 

 

 

 

 

 

 

“ 코네토! 코네토! ”

 

 

누군가가 내 뺨을 때리며 연신 외쳐댄다.

 

 

“ 야 이 새끼야! 정신차려! ”

 

 

바자로.. 바자로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

 

마루를 짚고 일어서려는 순간, 머리 둔부에 엄청난 통증이 밀려온다.

쓰러져 있던 내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이번에는 허리 쪽에 강한 통증이 몰려왔다.

 

“ 큭.. 씨발.. ”

 

분명 나는 함교로 가는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보조 격납고에 누워 있었다. 겨우겨우 비스듬하게 벽을 기대 앉으면서 뒷머리의 털들을 만져보니, 온통 뒷머리가 따뜻한 피로 젖어있었다. 뒤로 넘어지면서 찢어진 상처인 것 같다.

 

시끄러운 차임벨이 내 골통을 이리저리 뒤흔들고, 간만에 떠올린 따스한 옛날 기억들은 이미 저 편으로 빠르게 사그리지고 있었다.

 

정신을 어느정도 차린 나는 어제 있었던 상황함교 회의와, 방금 전까지 있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 이.. 이게 무슨.. 어떻게 된 거야? ”

 

 

“ 당했어, 코넷. 놈들이 먼저 수를 썼다고. ”

 

 

 

 

 

 

 

 

 

 

 

 

 

 

 

“ 씨바알!!!!! 씨바아알!!!!!!!! ”

 

자신의 양쪽 팔이 뼛조각과 혈흔을 짙게 흩뿌린채 저쪽 편으로 날아갔다는 사실을 모르는 어느 수공병이 연신 비명을 질러대고, 근처에선 비명소리와 함께 폭발에 휘말려 죽은 수공병들의 시체가 타는 냄새가 매캐하게 피어오른다.

 

그 주위로는 자신의 전석보총이 어디있는지도 모른 채 살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 다니는 수공병들이 눈에 띈다. 

 

“ 앞이 안보여… 앞이 안보여…!  앞이 안보여!!! ”

 

파편에 눈을 맞은 취사분대 고블린 주방장이 양 쪽 눈에서 꿀럭꿀럭 터져나오는 짙은색의 선혈을 어떻게든 양 손으로 막아보며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었고, 그 뒤로는 하체밖에 남지 않은 하이엘프 8대대 병조장의 몸뚱아리가 아무렇게나 내던져져 있었다.

 

황동색 빛과 적색 혈흔이 퍼져있는 함교와 복도 사이에는 유독가스 누출을 알리는 차임벨이 날카로운 소리를 연신 내며 터질것같이 울리고 있었고, 그 밑으로는 방금 전 날아온 발사체에 의해 우현 함교가 폭발하면서, 생사를 오가는 장교와 병사들이 널려있었다.

 

 

그야말로 비공정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나는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한 차례 구석에서 구역질을 쏟아낸 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어느 수공병에게 다가가 어떤 상황인지 물어봤다.

 

“ 대체 무슨 공격을 받은거지? ”

 

“ 지평선에서.. 길쭉한 추진체가 날아와 곧장 비공정 옆구리를 들이박았습니다. ” 

 

“ 공정총관, 공정총관 각하는, 어디계셔? ”

 

“ 그 폭발로 지휘부가 몽땅 휘말려 산화했습니다! ”

 

‘ 지휘부가 날라갔다고? ’

 

비공정의 지휘부가 전부 산화할 정도면, 비공정 전체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말이다. 폭발력이 상당한 전탄이 비공정의 측면부에 직격해도, 보통 지휘부에 사상자가 나오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 야! 야 이 새끼들아! 빨리 부상병부터 격납고로 데려가! ”

 

본부중대 일등부관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절반이 중상자인 수공병들에게 명령을 내리면서 그나마 가망이 있어보이는 부상병을 격납고로 데려간다 쳐도, 아마 열에 다섯은 오늘 안에 생을 마감 할 것이다.

 

널려있는 부상병들 사이에서, 저 만치 구석에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설마, 자라트는 아니겠지. 제발…

 

 

“ 이런 씨발.. 자라트! ”

 

바자로가 허둥지둥 달려가며 그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그의 팔뚝 한쪽에는 상황장교를 뜻하는 명찰이 파편과 함께 팔뚝 사이에 깊숙히 꽃힌 채, 혈흔을 내뿜으며 이리저리 휘날리고 있었다. 그가 항상 사용하던 책상 주변의 군용 전보기는 완전히 박살나있었다.

 

" 헉.. 허억.. 의, 의무관, 후욱.. "

 

땅달막한 체구의 왼쪽 다리가 없어진 자라트는 간신히 옆구리의 흘러나온 내장만을 처절하게 붙들고 이미 포격에 산화해버린 의무관만을 찾고 있다.

 

" 자라트, 잠깐 여기서 기다려, 의무관! 의무과안!!!! "

 

내가 의무관을 애타게 찾는 비명을 외치는 순간, 좌현 쪽에서 무서울 정도의 진동이 우리를 집어삼킨다. 모두가 충격파의 여파로 휘청거리며 쓰러진다. 

 

순간,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거대한 폭음이 들려오고 화염이 좌측의 무기고에서 화악 피어오른다. 동시에, 저 멀리서 또 한차례 거대한 폭발음이 울린다.

 

부상자들이 애타게 찾던 이미 죽어버린 의무관의 예하 의무사병들이 들 것들을 들고 부상자들을 데리고 격납고로 들어가려던 찰나, 무기고에서 피어오른 화마에 들것에 들린 부상자들과 의무사병들이 직격당한다.

 

" 으.. 으아.. 칵.. "

 

" 끄아아아아아악!!! "

 

온 몸에 불이 붙은 채 천천히 걸어나오며 비명을 질러대는 의무사병 하나는 쓰러지면서 비명을 연신 질러대다 숨이 멎어버렸고, 들것에 실린 부상자는 불길에 자신의 체액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코에서부터 쏟아져 나와 들것의 싸구려 천에 이리저리 흩뿌려지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고통스럽게 화마에 휩싸여 죽어버렸다.

 

 

이런 인외마경의 현장 속에서, 급하게 윗층으로 올라 온 비교적 멀쩡한 수공병 여럿이 강습선으로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 가.. 강습선, 강습선으로 달려! 한번 더 직격맞아서 전석구동계가 폭발하면, 우리 모두 죽는다! "

 

간신히 살아남은 곳으로 보이는 같은 10수공정대 소속의 특등부관 베리스가 그나마 멀쩡한 병사들을 이끌고 가까운 강습선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 바자로! 베리스를 따라 강습선으로 가! 곧 뒤따라 갈게! "

 

" 자라트를 여기 남겨둘 순 없어, 이 자식아! "

 

일홀, 일메리가 아쉬운 상황에서 바자로와 목숨을 건 실랑이를 벌이던 찰나, 어디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요들 라나였다.

 

" 코네토! "

 

" 라나! "

 

" 씨팔, 모두 죽어버린 줄로만 알았다고... "

 

" 모.. 모.. 모두 주.. 주.. 주.. 죽었.. 흑.ㅡ 흐흑.. "

 

완전히 패닉 상태가 되어버린 채 벌벌 떨면서 울고 있는 에기스를 데리고 연구개발실에서 빠져나온 라나는 살아남은 과학장교 몇몇과 함께 종이뭉치들을 들고 곧장 강습선 도크로 달려 왔다. 그녀 또한 나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 자라트는? "

 

" 강습선의 도크로 일단 달려가, 당장! "

 

라나와 에기스는 자라트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잔류 과학장교들과 강습선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바자로가 나의 만류를 뿌리치고 달려가 그를 부축하려고 다가갔을 때, 그는 이미 숨이 멏은 지 오래였다.

 

자라트는 필사적으로 부여잡던 내장을 그의 다리가 있어야 할 위치에 모두 쏟아낸 채 힘없이 앉아 있었고, 드워프 스타일의 특유의 수염은 온통 혈흔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눈을 부릅뜬 채 헤르메시아급 전광석비공정 제 3호의 최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나와 바자로가 본 자라트의 마지막 모습이였다.

 

 

 

 

 

 

" 빨리! 뛰어! 뛰어! 뛰어! "

 

" 총과 탄약만 챙겨라! 부수기재들은 버리고 빨리 달려와! "

 

" 해치를 닫겠습니다! 빨리 와서 당겨! 빨리! "

 

 

 

가까스로 부상병들과 잔류 병력들을 이끌고 강습선에 올라 탄 우리는, 곧바로 좌석에 앉아 만약 있을 충돌에 대비했다.

대부분은 정신없이 달려와서 전석보총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였고, 과학장교들은 그나마 가져온 종이뭉치들도 절반 가까이 잃어버린 상태였다.

 

" 바자로 중위님! 조종석으로 가십시오! 폭발이 머지 않았습니다! "

 

" 알겠어, 베리스! 알겠다고. "

 

 

바자로가 유일하게 강습선을 조종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곧장 조종석으로 향했고, 이내 목숨을 건 출항 준비에 착수했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바자로는 심각하게 당황하며 도크로부터 쉽게 출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 바자로! 빨리 하강해! 그 망할놈의 노란 줄을 당기란 말이야! "

 

" 그래, 씨팔! 나도 노력하고 있.. "

 

 

그 순간, 엄청난 폭음이 중심부로부터 들려왔다. 전과는 다른, 거대한 규모의 폭발이 중심부에서 터져 나왔다.

엄청난 진동이 강습선을 뒤흔들면서, 그 직후 여러 차례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전석구동기가 폭발한다! "

 

이내, 충격파가 비공정을 뒤흔들면서 다른 강습선들을 연결하고 있던 도크가 부러졌고, 그 여파로 우리가 탑승했던 강습선을 연결하고 있던 도크에 맞아 비공정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강습선은 끄트머리 근처에까지 밀려나 곧 완전히 폭발할 비공정의 도크 아래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리고 있었다.

 

 

" 바자로! 거기 빨간 줄! 빨간 줄을 빨리 당겨! "

 

" 당겨지지 않아! "

 

 

노란 줄을 당기면 주 동력원이 가동되지만, 강습선이 이미 걸레짝이 되어버린 지금은 빨간 줄을 당겨 비상시에만 가동하는 예비 마력으로 강습선의 동력을 점화시켜야 한다.

만일, 이대로 줄이 끊어져 저 밑의 바다로 자유 낙하를 한다면 강습선은 산산조각이 나버릴 것이다.

 

" 같이 당겨, 셋 하면 당긴다. 하나, 둘, "

 

" 셋! "

 

" 다시 한번 당겨. 하나, 두울.. "

 

" 셋!! "

 

나와 바자로가 같이 줄을 당기자, 기적같이 비상 동력원이 점화되었고 강습선은 빠르게 비공정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 출발한다, 동력원이 점화됐다! "

 

" 출력을 최대로 올 ... "

 

모두가 가까스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무렵, 비공정의 전석구동기가 노심융해를 일으켜 완전히 폭발했다.

 

폭발 직후, 도크에 널려 있던 비공정의 잔해들이 강습선을 강타하면서, 그나마 어느정도 항로 조정이 가능했던 강습선은 그 마저도 고장나 이내 어느 화산섬 제도의 섬 한가운데로 빠르게 낙하하기 시작했다.

 

내가 추락 직전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충격에 대비하라는 바자로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 꽉 잡아, 충격에 대비하라! "

 

 

" 으아아아아아악!!!! "

 

 

 

 

 

 

.

.

.

.

.

 

 

 

 

 

 

매캐한 연기가 불시착한 강습선 주변을 가득 메웠다. 다행히도, 불은 붙지 않은 것 같다.

 

마지막에 착륙하기 직전, 오작동으로 누르지도 않은 비상 낙하산이 펼쳐져 충격을 그나마 어느정도 상쇄한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일부 사람들은 경착륙의 엄청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편에서 바자로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모두들 괜찮나? 콜록, 콜록. "

 

 

" 커헉.. 큭.. 이상 없습니다, 중위님. "

 

" 4대대 잔류 인원들은 … 모두 무사합니다. "

 

" 관측분대 전원 이상 무. "

 

" 중상자 두명을 제외하면 모두 이상 없습니다. "

 

 

충돌 직후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는 인원들의 상태를 재빨리 점검한 뒤, 급히 전보기를 켜 상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 망할 전보기.. 이 따위 구식 물건을 여전히 전장에서 사용하다니.. "

 

일말의 희망을 가진 채 천천히 전보기를 켜자, 다른 공정대와 수공병대들의 전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여긴.. 8대대 통신장.. 하박 대위다. .. (잡음).. 인원의 절반도 살아남지 못했다. ..(소음).. 총원 117명, 현 인원 37명. 보고 종료. "

 

" 6대대, 전멸. 7대대, 전멸. 3대대, 생존 인원, 19명. … 보고 종료. "

 

" 이 곳은 헤르메.. (잡음)..  전광석비공정 5호기, .. (잡음)..공정총관.  명예로운 순국을 맞이하겠다. 모두들 지금까지 고마웠다. (잡음)..  "

 

" 2수공정대 캉 병조장, 제2수공정대대는 나를 제외한 모두가 전멸했다. "

 

" 4대대 제메토 소위, (잡음) … 대대원, 7명 생존. (잡음) … 그중 4명은 중상자이다. "

 

" … "

 

" … "

 

 

상황을 확인하자,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현재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비공정 대원들과 수공정대는 하늘 위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강습선들도 대부븐 우리만큼 운이 좋진 못했다.

 

 

 

" 자.. 자라트는? "

 

비틀거리며 다가온 에기스가 나에게 그의 행방을 물어본다.

 

 

" 자라트는.. 비공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어. "

 

 

 

 

 

" 씨발!!! 씨바알!!!!! "

 

 

고장난 군용 전보기를 향해 마구 발길질을 하며 화풀이를 하는 바자로는 자신의 귀 한쪽이 거의 잘린 채 덜렁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모르는 것 같았다.

 

 

" 저.. 저.. 코네토.. 라.. 라나가.. "

 

에기스가 라나를 가리키자, 시끄럽던 강습선의 내부는 일순간 조용해진다.

 

 

" 컥.. 커억. 케겍.. 크흑.. "

 

요들 라나가 거친 숨을 몰아쉴 때 마다, 그녀의 입가에는 점점 더 많은 양의 피가 흘러 내려왔다. 그녀는 작은 체구의 왼쪽 가슴팍을 관통한 파편 조각 사이로 터져나오는 피를 막아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 라나, 라나! "

 

" 사..사.. 살려줘, 커헉.. 컥.. … "

 

의사 경력이 있는 과학장교 한명이 어디선가 붕대와 거즈를 들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 라나, 정신 꼭 잡고 있어. 여기서 죽으면 안돼, 제발, 라나.. "

 

눈물 범벅으로 엉망이 된 에기스가 이미 피칠갑이 된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간절히 그녀의 정신을 붙잡는 동안, 의사 출신의 과학장교가 응급 처치를 시작했다.

 

" 피가 너무 많이 흘러 나오고 있어요. "

 

" 일단 기계 보행기부터 치워, 빨리! "

 

" 꽉 잡으세요, 중위님. "

 

 

 

 

 

그 순간, 어디선가,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잠깐.. 이게 무슨 소리지? "

 

경계 자세를 취하던 특등부관 베리스가 뭔가 이상한 소음을 감지했다. 그 소음은 점점 더 커지면서, 이제 베리스 뿐만이 아닌 강습선 내부의 대부분이 감지할 수 있었다.

 

 

쇳덩이가 회전하는 소리인 듯한, 둔탁한 소음이 저 편의 멀리서 점점 커져오기 시작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누구도,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 한 소리였다.

 

이미 모두가 절망에 빠진 가운데, 이번에는 모두에게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댓글
0
Profile

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ID/PW 찾기
아직 회원이 아니신가요? 회원가입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