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에발트 폰 아우엘스텐베르크

모몬가 대공국 국가평의회 의장
구스타프 에발트 폰 아우엘스텐베르크
Gustav Ewald von Auelstenberg
파일:아우엘스텐베르크 가문.png
출생 1930년 6월 3일 (92세)
모몬가 대공국 아우엘스텐베르크 주
국적 틀:나라자료 모몬가 대공국
재위 모몬가 대공국 국가평의회 의장
1980년 4월 12일 ~
모몬가 대공국 국방군최고사령부 총장
1963년 5월 19일 ~ 1967년 2월 13일
1977년 7월 8일 ~ 1980년 1월 28일
아우엘스텐베르크 후작 (가우라이터)
1963년 5월 19일 ~ 1967년 2월 13일
1977년 7월 8일 ~
아우엘스텐베르크 가문 수장
1963년 5월 19일 ~
작위 후작 (1963년 ~ )
서명 파일:샤를로테 서명.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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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아우엘스텐베르크 가문
부모 부친 후작 에른스트 에발트 폰 아우엘스텐베르크
모친 후작부인 레오니 요제피네 폰 아우엘스텐베르크
배우자 배우자 마를레네 구드런 폰 아우엘스텐베르크
리나 아멜리에 폰 아우엘스텐베르크
카타리나 헬레나 폰 아우엘스텐베르크
이리스 율리아 폰 아우엘스텐베르크
형제자매 5남5녀 중 장남
자녀 슬하 12남16녀[1]
친인척
신체 174cm, A형
종교 모몬가 정교회
소속정당 Partei für die Stabilisierung der Lebensgrundlage
의원 선수 11
선거구 게로이트호펜슈타트 3구 (Geläutehoffenstadt)

개요

모몬가 대공국의 귀족. 현재 11선 의원으로 모몬가 대공국의 국회인 국가평의회 의장을 맡고 있다.

그의 가문인 아우엘스텐베르크 가문은 모몬가 가문의 최측근 가문으로 후작 가문이기 때문에 가문 수장인 구스타프 에발트 폰 아우엘스텐베르크는 게프하르트 크루프 폰 뮐렌 뮐렌 후작과 더불어서 대공가 아래 모든 모몬가 대공국의 귀족 중 최선임자이다.

작위

논란 및 사건사고

증손녀뻘 정부(情婦)만 2명 논란

배우자인 마를레네 구드런 폰 아우엘스텐베르크 외에도 49살 연하의 리나 아멜리에 폰 아우엘스텐베르크(43), 무려 78살이나 차이나는 카타리나 헬레나 폰 아우엘스텐베르크(14), 79살 차이인 이리스 율리아 폰 아우엘스텐베르크(13)라는 정부(情婦)를 두고 있다.

첫번째 정부인 리나 아멜리에 폰 아우엘스텐베르크가 세간에 알려졌을 때부터 모몬가 정교회의 교리나 모몬가 대공국 법률상 일부일처제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큰 논란을 야기하였고 모몬가 정교회 중앙회에서는 파문까지 거론되었다.

샤를로테 폰 모몬가와의 부적절 관계 의혹

여담

하얀 정장을 선호해서 '백의 신사'라고 불린다.

의외로 샤를로테 루이제 폰 모몬가와 단둘이서 술을 마시거나 시찰을 다닐 정도로 정도로 친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직 샤를로테에게만 '아저씨'라고 불리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구스타프와 샤를로테 간의 관계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샤를로테의 혼전임신 의혹에서 구스타프가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샤를로테와 구스타프의 사생아가 존재한디는 의혹이다. 모몬가 가문아우엘스텐베르크 가문 대변인실은 모든 의혹을 "반박할 가치도 없는 허위 사실"이라며 부정했다.

전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치는 모몬가 대공국의 금융재벌이자 대기업인 콘라트-앙케의 대표이사 회장이다. 콘라트-앙케는 본래 아우엘스텐베르크 가문 소유 기업이지만 원래 자신이 아닌 동생이 상속받은 기업이라 구스타프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1977년 7월 7일 7.7혁명의 결과로 공산세력에 적극 협조했던 당시 CEO이자 동생인 베르너 에발트 폰 아우엘스텐베르크가 소련으로 망명, CEO 자리가 공석이 되자 본인이 추대되었다.

모몬가 대공국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아우엘스텐베르크 주 전체를 통제하는 아우엘스텐베르크 후작이라는 지위 때문에 국가평의회에서 아우엘스텐베르크 주에 배정된 의석 모두를 공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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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8남12녀는 첩 소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