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 입법원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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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116석

15석
야당

102석

5석

5석

2석

2석
무소속 3석
재적 250석
구주국민당
九州國民黨 | Nationalist Party of Gujyu
약칭
국민당, NPG
표어
구주가 우선이다
창당일
1929년 1월 15일 (창당 선언)
1947년 1월 1일 (정당 등록)
이념
자유보수주의
보수주의
보수자유주의
사회보수주의
근왕주의
불교 민주주의
삼민주의 (1920~40년대)
사회민주주의 (1920~1930년대)
스펙트럼
중도우파
총재
금민철
부총재
서신우
사무총장
금현진
국회
102석 / 250석 (40.8%)
자치단체장
4석 / 11석 (36.4%)
당색
남색 (#004B96)
당가
구주번영의 노래
국제 조직
중도민주 인터내셔널
당원 수
100,000명 (2020년)
학생 조직
구주 학생당
청년 조직
국기청년단
당보
신국민일보

개요

구주의 정당이며, 현재 구주에서 가장 큰 보수 정당이다.

역사

1920년대, 구주의 온건파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의 중국 국민당에서 영향을 받아 구주의 현실에 맞는 개혁을 주창하며 창당하였다. 초창기에는 온건 좌파 계열이었지만 1930년대 이후 우익 정당으로 변모하였다. 1945년, 구주가 독립한 이후 국민당 당수이자 독립 운동가였던 한희덕이 약 10년간 집권하였다. 이후 1970년대까지 독주하였으나, 1970년대 사회 개혁 운동으로 1972년 처음으로 진보 야당인 화평당에게 정권을 내어줬다. 1974년 다시 정권을 잡은 이후, 장희윤이 8년간 집권하며 다시 독주 체제가 시작되나 싶었지만 82년에 정권을 화평당에 내어주면서 화평당과 좌우 양당 구도를 형성하게 된다.

2015년, 국민당 소속 의원 3명이 부패 혐의로 구속되면서 큰 타격을 입고 결국 2016년 화평당에게 정권을 내줬다. 2020년 총선에서는 우선경, 임창준 등 청년·개혁보수들의 활약으로 화평당의 단독 과반을 막으며 그나마 선방했지만, 정권 재창출에는 실패하였다.

성향

상술했듯이 창당 초기에는 온건한 사회민주주의 좌파 성향이었으나 1930년대 강경한 반공보수주의 성향으로 바뀌었다. 1970년대 사회 개혁의 요구가 있었을때 이를 수용하여 상대적으로 좌경화되었고 1980년대 신보수 운동으로 잠깐 다시 우경화되었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자유보수주의 및 중도우파 성향을 강하게 띈다. 특히 2010년대 후반 이후로는 우선경, 임창준을 필두로 한 청년·개혁보수 세력들이 서서히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단 구주국민당의 청년·개혁보수 세력은 2020년 이후 한국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우익 청년세력'과는 성격이 다르며, 우선경 역시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한국의 에펨코리아 등지에서는 구주국민당의 청년·개혁보수 세력 역시 자신들과 비슷한 부류인줄 알고 상호간 연대를 추진했지만 구주국민당에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다.

역대 총재

한국과의 관계

화평당, 구주민정당 등과는 달리, 한국의 보수정당과는 별다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한나라당 시절에는 교류 관계를 가졌으나 2017년 자유한국당 창당 이후 국민당 측에서 끊었다. 이후 바른미래당, 새로운보수당과는 협력 관계를 가졌지만, 정통 보수계열과는 거리를 두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한국의 보수정당과 국민당의 관계는 어색한 사이다.

다만 이준석이 당대표로 선출된 이후 국민당과 국민의힘간 관계 정상화가 이뤄지고 있으며 2022년에 다시 교류 관계를 복구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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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의 정당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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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좌 ● 구주공산당, ● 혁명자유공산당, ● 반미투쟁위원회
진보 ● 구주민정당(15석), ● 충승공화당(5석), ● 남성의당, ● 진보정의당
중도좌파 ● 화평당(116석), ● 녹색연대(2석), ● 자유민주당, ● 민주온건당
개혁보수 ● 청민당(5석), ● 청년당
보수 ● 구주국민당(102석), ● 정통보수당, ● 신자유당, ● 우파연합
극우 ● 시민권리당(2석), ● 불교혁명당, ● 반공투사연대, ● 반동성애국민연합, ● 국가사회주의구주노동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