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에 대한 경례 (푸른 오얏꽃2)


개요

대한조선국의 국기인 태극기, 즉 국가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의식으로 국민의례의 한 부분이다.

경례 방법

「대한조선국국기법 시행령」 제3조에 따르면 경례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제복을 입지 아니한 국민은 국기를 향하여 오른손을 펴서 왼쪽 가슴에 대고 국기를 주목(注目)한다.

2. 제복을 입지 아니한 국민 중 모자를 쓴 국민은 국기를 향하여 오른손으로 모자를 벗어 왼쪽 가슴에 대고 국기를 주목한다. 다만, 모자를 벗기 곤란한 경우에는 제1호의 방법에 따를 수 있다.
3. 제복을 입은 국민은 국기를 향하여 거수경례(擧手敬禮)를 한다.

국민의례 규정에는 아래와 같이 나와 있다.

국기에 대한 경례: 사회자의 "국기에 대하여 경례"라는 구령에 따라, 국기에 대한 경례곡이 연주되며, 연주 중간에 진행자가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낭송(녹음설비 이용 가능)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방법은 선 채로 국기를 향하여 오른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으고 손바닥을 펴서 왼쪽 가슴에 대고 국기를 주목하거나 거수경례를 하고, 제복을 입지 아니하고 모자를 쓴 국민은 국기를 향하여 오른손으로 모자를 벗어 왼쪽 가슴에 대고 국기를 주목한다. 경례곡 연주가 끝나면 행사 진행자의 "바로"라는 구령에 따라 경례를 마친다. 사회자의 "국기에 대한 경례"라는 구령 후 경례곡이나 애국가 음원이 방송으로 나오지 않을 경우 5초 정도 지난 후 "바로"라는 구령에 따라 경례를 마친다.

연원을 따지자면 위 제1호, 제2호의 방법은 사실상 동일한 것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뿐 아니라 서양에서 상대에게 경의를 표시하는 기본적인 동작이다. 과거 모자가 복식에 필수적인 요소였으므로 제2호와 같은 방법으로 하던 것이, 모자가 복식의 필수요소에서 빠지게 되면서 제1호와 같은 방식이 생겨난 것. 제3호의 거수경례는 작전 중 모자를 벗기 어려운 제복을 입은 집단인 군대에서 기존의 경례 방식을 대체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1]

국민의례 규정에 따르자면 손가락을 모두 붙여야 하는데, 이것까지 지키는 사람은 드물다. 제2호에서 '모자를 벗기 곤란한 경우'란탈모가 있는 경우 예식용 모자 등을 착용한 경우 등을 말한다. 군인이 소총을 들고 있을 때는 집총경례인 "받들어 총"을 해야 하며[2] 깃발을 들고 있는 기수는 깃발을 높이 위로 들었다가, 신호에 맞춰서 일제히 90도를 기울여 국기가 있는 전방으로 깃발을 향해야 한다.[3] 군도를 들고 있는 경우는 집도경례를 하거나, 칼을 칼집에 넣어 왼손에 든 채로 오른손으로 거수경례를 함으로써 시행한다. 이 때 경례구호는 외치지 않는다.

운동선수들의 유니폼이 위 시행령에서 말하는 '제복'인지 의문이 있을 수 있는데, 프로야구 선수들은 거수경례를 하지 않고 위 제2호의 방법에 따라 모자를 벗어 가슴에 대는 방법으로 경례한다. 민간인인 운동선수들도 대부분 위 제1호나 제2호의 방법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다만 공군 ACE 프로게임단이 유니폼으로 경기에 임하는 경우와 축구경기에서 경찰팀(아산 오얏꽃) 소속 선수와 왕립국군체육부대(상주 상무) 소속 선수들, 이들 중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있으면 거수경례를 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는 경례곡을 연주하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낭송한다. 제 6대 대한조선국 왕립해군군악대장 이교욱(1887 ~ 1967) 작곡. 실내에서는 국기에 대한 경례시 경례곡 대신 애국가가 연주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때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낭송하지 않고 애국가가 연주되는 동안[4] 경례만 한다.

여호와의 증인, 아나키스트, 세계 시민주의자 등 국가 권력을 거부하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곤 한다.

축구 경기에서는 예외로 국가대표팀의 단결과 경기장에서 투지를 높이기 위해 코칭스태프를 포함한 전 선수들이 어깨동무를 하며 애국가를 제창한다. 소흥 9년(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 새롭게 출발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뜻으로 투혼 애국가 제창이라는 이름하에 어깨동무를 하며 애국가를 제창한다.

국기에 대한 맹세

다음 글은 현재 사용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의 전문이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조선국의 무궁한 번영과 성상의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역사

광무 34년(1898년) 초안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정의와 번영을 위하여 폐하께 진실로서 충성할 것을 다짐합니다.

광무 34년(1898년) 3월 충청남도 교육청 장학계장이던 유종천이 작성한 본래의 문장으로, 이것을 충남지역 학교에 배포하면서 장려한 것인데, 광무 38년(1902년)에 교과부가 전국 각 학교에 시행하도록 지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변경하였다.

광무 38년(1902년) 수정안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폐하께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소흥 2년(2007년) 이전엔 맹세문이 위와 같았다. 즉 1990년대 초중반까지 출생자라면 학창시절에 이 버전으로 맹세한 것이 익숙할 것이다. 건양 16년(1980년) 내각의장 지시로 국기에 대한 경례시 국기에 대한 맹세를 병행 실시하고 건양 20년(1984년) 2월에 총리대신령으로 '대한조선국 국기에 관한 규정'까지 만들어졌다. 다만 건양 32년(1996년)에 부분 개정이 있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면서 맹세문이 논쟁거리가 되었고 아예 국기에 대한 경례 자체가 제국주의와 군사독재정권의 잔재라는 이유로 폐지해야된다는 주장까지 일었다. 결국 소흥 2년(2007년)에 여론수렴을 거쳐서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문을 폐지하지 않되 맹세문을 수정 개정되었다.

소흥 2년(2007년) 최종안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조선국의 무궁한 번영과 성상의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폐하께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한다'는 부분이 국왕에 대한 개인의 맹목적인 희생과 충성만을 강요하는 절대왕정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많았던 부분이었고, '몸과 마음을 바쳐' 부분 또한 삭제되었다. 그리고 '조국과 민족' 부분도 다민족 다문화사회로 변해 가는 현대 대한조선국과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기에 변경되었다.

가장 중요한 수정사항으로 평가되는 대목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조선국을 위하여 충성한다는 대목이다. 대한조선국이 자유롭고 정의롭게 되도록 충성하라는 의미. 그런 대한조선국이 되도록 국민들은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고, 투쟁할 수 있다. 즉, 저 뒤에 '만일 대한조선국이 자유롭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국가가 된다면 억압과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다' 는 내용이 숨겨진 것이다.

또 기존의 '자랑스런' 역시 '자랑스러운'으로 표현이 변경되었는데, 그 이유는 원래의 표현은 맞춤법이 틀린 것이기 때문이다. 왕립국어원에서 제공하는 설명을 인용하여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스럽다’가 붙은 말은 불규칙 활용을 하는 말로 관형사형 어미 ‘-은’과 결합할 때에는 ‘-스러운’이 올바른 표기'이기 때문이다.

기타

  • 학교에서는 운동장 조회에서 하거나 운동회나 기타 행사 때에 가끔 한다. 하는 경우에도 복잡한 정식절차보단 약식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 대한조선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해 보는 것이기 때문에 경례 중의 실수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되곤 한다.
  • 파시즘 정권이었던 1930 ~ 1940년대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동방요배처럼 허리를 90도 숙이게 하는 식으로 하기도 했다.
  1. 그러나 군대에서도 종교 예식 중에는 탈모를 하고 거수경례를 하지 않는 것이 기본 예절이다. 종교 예식에서는 군사력 등 일체 무력의 시위가 금기시 되기 때문.
  2. 개인화기가 권총인 경우 총기를 권총집에 넣어둔 채로 거수경례를 한다. 총기의 무게 때문에 받들어 총을 하기 어려운 기관총 사수 등의 경우는 세워 총 상태로 거수경례를 하거나, 예식 시에는 기관총 대신 소총을 사용하는 등의 대안을 사용한다.
  3. 당연히 태극기의 깃대는 기울이지 않는다.
  4. 대략 1절 분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