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가/대한 (푸른 오얏꽃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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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9세기의 대한은 한국사상 가장 역동적인 시기였다. 국가의 정치·경제·사회·군사 등의 전반적인 인프라가 정미개혁, 광무개혁, 칭제건원으로 인해 송두리째 바뀌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바뀌자 그 나라에 속한 군대도 변화를 겪었다. 그러한 군대에서 사용된 군가는 당시의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19세기 말 ~ 20세기 초 황립군이 사용했던 군가엔 대부분 황제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을 강조하는 시적인 가사와 약동감 있는 행진곡풍의 곡이 조화를 이룬 군가가 대량으로 제작됐다[1].

하지만 대한제국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하고 대한조선국이 출범하면서 군가의 사용과 작곡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범석의 군부독재가 정권을 잡자 군가 사용에도 박차가 가해졌다. 당시 군가는 제국 시절 군가와 매우 다른 형태를 띠었다. 지도자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을 강조하는 가사가 담긴 곡은 많았지만 황립군의 군가와는 달리 비장한 곡조에 구슬픈 내용의 가사나 의무감을 고취시키는 가사가 담긴 곡이 매우 많았다[2].

조선 관군 (대한제국 성립 이전 ~ 칭제건원)

  • 대취타 행진곡 - 18세기

대한제국 황립군 (칭제건원 ~ 제1차 세계 대전)

대한조선국 왕립국군 (제1차 세계 대전 ~ 현재)

왕립육군

  1. 당시 한독동맹을 맺고 있었고, 그 영향이 컸다.
  2. 대표적으로 아리랑 겨레, 전선을 간다
  3. 작곡 당시엔 '낙일의 횃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