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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박덕 (盧博德, 1959년 11월 20일 ~ 현재)은 대한제국의 정치인이다. 소속 정당은 자유한국당으로, 현 제20대 의정원에서 경기도 개성시 갑 지역구 위원을 지내고 있다.

생애

정계 입문 이전

1959년 11월 20일 경기도 양주군 은평면 진관리 (현 한성특별시 은평구 진관동)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개성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실향민 출신이라고 한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성대학교에 재학 중, 반독재 시위에 대해 "북괴의 사주를 받는 빨갱이 무리의 분탕질"이라고 공공연히 비난하여, 당시 운동권이었던 총학생회에서 "요주의 인물"로 지목한 바 있다. 대학교 4학년이던 1985년 6월 16일, 서울대입구역에서 시위를 하던 학생들에게 여느 때와 같이 비난을 하다가 몰매를 맞았고, 이 기사가 대서특필되자 그를 평소부터 눈여겨보던 민주정의당 서울시당의 스카우팅으로 안승완 전국구 의원의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안승완 의원도 은평구를 기반으로 하는 실향민 출신이었으나, 1988년 김재광 통일민주당 의원에게 패배하고 삼당합당 이후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로 인해 별볼일 없는 보좌관으로 사라지는 듯 했으나, 통일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다!

눈물겨운 의정원 도전기

그쪽이 보기에 공화제 개헌이 완벽한 대안이라고 보는가? 우리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한제국 황실은 600년 동안이나 이어져 왔고 그 동안 많은 재산과 인력을 끌어 모았다. 또 언론에서 황실이 민주화 운동을 지원한 것을 퍼뜨리면서 지지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어설프게 쫓아내겠다고 집적대다 도대체 뒷일을 어떻게 감당할 셈인가?[1]

 
— 1992년 총리선거 당시, 민주자유당-통일국민당 부대변인 토론회에서. 상대는 엄석대] 현 의원이었다.

민주자유당에서 김영삼의 민정계 청산 작업에 반발하여 탈당한 노박덕은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에 입당하여, 대한제국 제14대 의정위원 선거 (1992년)에서 청년 몫의 부대변인으로 임명되어, 이북 지역에서 통일국민당 지지를 호소하는 유세단으로 앞장섰다. 정주영이 이북 지역 (원산) 출신임이 크게 작용했는지 통일국민당은 아쉽지 않을 정도로 의석을 확보하였다. 노박덕 또한 이 공로로 통일국민당 개성시 당협위원장으로 임명되어 다음 선거를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정주영이 대선에서 낙선한 이후, 통일국민당 소속 의원들이 모두 민주자유당으로 입당하는 와중에도 노박덕은 자리를 지켰는데, 이는 민주자유당 내부의 민주계에 대한 그의 혐오에서 비롯된 것이라 사료된다.[2]

통일국민당은 1994년 신민당을 거쳐, 1996년 김종필 (JP)를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연합 (자민련)으로 재편된다. 노박덕은 자민련 소속으로 개성시·장풍군 선거구에 출마하나, 신한국당의 잔류민정계 문재홍 후보에게 3% 차이로 석패한다. 개성 송도 상인 가문 출신이었던 문재홍 후보의 지역 기반이 더 단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낙선 이후 노박덕은 1998년 제일자유방송이라는 "자칭 대한민국 최초" 인터넷 방송사를 세웠다. (PC통신 기반) 제일자유방송은 당시 PC통신 유저층들의 친김대중 여론 때문에 자리를 잡지 못했던 친한나라당, 친자유민주연합 성향의 보수 유저들이 단합하는 자리가 되었으나, DJP 연합 성립 이후 한나라당 지지자와 김대중과 단일화한 JP의 자민련 지지자가 피말리는 키배를 벌이는 장소가 된다. (..)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자유민주연합의 공천을 받아 경기도 개성시장으로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한나라당 박기선 후보에게 2% 차이로 석패하였다.

2000년 대한제국 제16대 의정위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통합 개성시 선거구에 출마하나, 다시 한나라당 문재홍 후보에게 패배해 낙선하였다. 낙선 후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제일자유방송을 운영하는데 전념하면서,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개성시장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의정위원 당선 이후

2004년 대한제국 제17대 의정위원 선거에서는 개성시 선거구가 로 분구되었다. 문재홍 위원이 을 선거구로 출마함에 따라, 노박덕 위원은 갑 선거구로 출마했다. 당시 한나라당, 자민련, 새천년민주당이 대한제국 황실 폐지안를 추진해 날치기로 통과시켰다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당하며 세 당이 제대로 역풍을 맞는 상황에서, 황실에 대한 지지도가 특별히 높은 개성 구시가지인 개성시 갑에 출마한 노박덕을 비롯한 이북 지역의 한나라·자민련 후보들이 당선될 수 있을까가 최대의 이슈였으나, "국민 여러분, 저는 찬성하지 않았습니다!"를 외치며 무소속 출마를 한 덕택인지(?) 열린우리당 곡승환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3]

2006년 자유민주연합이 한나라당과 통합을 결행하는 세력과 심대평을 중심으로 국민중심당을 창당해 빠져나가는 충청계 (훗날 선진당계)로 분열될 때 한나라당으로 입당하였다. 이후 여당 대표 선거에서 박근혜를 지지하면서 친박계로 분류되었다.

2008년 대한제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개성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친박계로 분류되어 여당 대표 경선에서 이명박을 앞장서서 견제했음에도 공천 학살되지 않은 게 의외라는 평이 많은데, 이는 노박덕이 정계에서 좋은 소리는 못 듣지만 지역구 관리를 잘 하기 때문이다. 수도권 전철 경의급행선 개성역 연장 추진에 앞장서는 등으로 지역구 주민들의 점수도 후하게 받고 있다. 선거 당시 상대 후보는 통합민주당 곡승환 후보, 민주노동당 이기철 후보. 본인의 인기와 더불어 야권 후보의 단일화 실패 후광으로 70%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2012년 대한제국 제19대 의정위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아 개성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상대 후보는 민주통합당 곡승환 후보. 총리를 뽑는 여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박근혜의 상대 후보인 김문수를 상대로 "한번 빨갱이는 영원한 빨갱이" 발언을 하였다가 물의를 빚는다.

2016년 대한제국 제20대 의정위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되었다. 선거 당시 상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오현태 후보.[4]

20대 국회에서는 친박을 넘어 진박 (진실한 친박)으로 분류되어, 박근혜 수호에 앞장섰다. (...) 박근혜 내각의 각종 인선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이 비판을 하면, 해당 야당 의원의 흑역사를 미리 뒷조사해서 들춰내어 망신을 주는 졸렬한 방법으로 물타기를 시전하며 비난을 받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친중반미 성향의 황실이 문재인과 결탁해 박근혜를 끌어내리려 한다"며 맹비난하며, 태극기 시위에 꾸준히 출석하고 있다. 이후 새누리당 혁통위에서 이인제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았으며, 2017년 1월 바른정당 분당 당시에도 잔류해 현재 자유한국당 소속이다.

의정 활동

17대 의정원에서는 국방위원회, 18대 의정원 당시부터 국토교통위원회 (당시 명칭 건설교통위원회)에서 일해왔다. 본인이 철도와 버스 등 대중교통에 관심이 많은 관계로, 비판받는 정치 성향과는 관계없이 대중교통 정책에 있어서는 탑을 달린다고 평가받는다. 경의고속철도 추진, 대중교통 통합환승할인제 추진 등이 노박덕의 총대를 통해 이루어졌다. 친박으로 비뚤어진게 안타깝다고 말하는 철도 동호인들이 있을 정도.

이야기거리

박근혜바라기와 시대에 떨어지는 반공주의로 개성시의 이름을 먹칠하는 의원.

반황실사상과 친박 사상에 입각한 각종 막말과 만행으로, 이주혜 현 황제를 지지하는 친황실 청년층으로부터 박덕빌런, 노라박덕[5] 이라 조롱당하며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반공주의자

  • 2016년 4월 29일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 "노박덕의 자유개성 만들기"에 "더불어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좌파 빨갱이 세력이, 620년 동안 온갖 사보타주로 자유민주주의를 음해해왔다."는 주장글을 써 파문이 일었다. 어버이연합이 얼씨구나 좋아요를 눌러줘서인지 좋아요 수는 0.5만개나 된다 더불어민주당 측은 즉각 고소하겠다며 맞불을 놓았고, 노박덕은 "620년은 오타이고 62년이다. 오타에 대해서는 사과드린다"고 대응했다가 의원 상실 위기에 놓이자 태세전환을 하여 공식 사과글을 올렸다. 이정현 대표, 정진석 등 중진 의원들에게 비난당한 것은 덤.

황실에 대한 혐오

황실에 대한 혐오로 유명하며 온갖 발언으로 구설수를 만들었다. 노박덕은 "황실이야말로 우리 보수를 혐오하지 않는가. 전부 빨갱이들에 세뇌되어서 그렇다"고 우기고 있지만... 우선, 민정··친박에 대하여 황실이 강한 거부감을 표하는 이유를 살펴야 한다. 이들은 과거 군사 쿠데타로 내각과 황실을 겁박하고 27년간 무단 통치를 벌인 박정희·전두환 정부에서 관직을 했거나 어떻게든 연관이 되어있던 사람들이다. 민정공화계는 유신 정부와 5공 정부 당시 황실의 재산을 빼돌리고, 나아가서는 황실 자체를 허수아비화하고 일본의 자유민주당처럼 완전 의원내각제로 천년만년 해먹기 위한 각종 계획들을 세웠다. 하지만 시민들의 요구로 총리 직선제가 도입되고 황실이 목소리에 힘을 얻기 시작하면서 민정공화계는 존폐의 위기에 몰렸고, 삼당 야합을 통해 어떻게든 살아남았던 것이다.[6]

노박덕 또한 민정계의 일원으로서 정치를 시작했고, 이후 박정희 시대를 사모하는 친박 세력의 돌격대장으로 힘써왔다. 사실 30대까지만 해도 실향민 집안의 영향으로 반공 사상이 투철했던 것만 빼면 나름대로 의원 내각제애 대한 철학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아왔으나, 의정원 입성을 전후해서 사람이 돌변했다. 노박덕 본인은 노무현 총리 해임안 거부 사건 당시 이원 황제가 거부권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황제가 민주주의에 도전한다. 세습된 권력이 의회민주주의를 짓밟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진실은 불분명. 물론 선거 운동 당시 말마따나 대한제국 황실 폐지안 결의 당시 원내 인사가 아니었으므로 당연히 "찬성표는 던지지 않았지만", 자민련 대변인으로서 황실을 상대로 "의원내각제 받아들이던지, 아니면 물러나시죠 ㅡㅡ^"를 외치며 도발을 해온 것 때문에 한나라당 입당 이후 친이계에게 "위험한 자"라며 기피당하면서 정치적 생명이 끝장날 뻔했다. 그런 노박덕을 받아들인 사람이 황실 폐지안을 주도했던 박근혜였고 당연히 노박덕은 박근혜에게 충성하게 된 것. 물론 황실에서는 여느 친박과 마찬가지로 기피 대상이었고, 노박덕 또한 황실을 극도로 혐오하고 있다.

  • 2016년 5월 22일, 서청원 궁내처장관 청문회에서 "서(청원) 의원님이 아깝다. 가만히 앉아서 세금이나 뜯어먹는 부처에 장관이 왜 필요한가. 황실에 가는 세비 50%만 절약해도 경의고속철도를 5년 안에 자기부상열차로 지을 수 있다."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 2017년 6월 10일, 이홍철 후임 궁내처장관 청문회에서 "그렇게 말해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가. 세금 낭비하는 궁내처야말로 적폐이다. 한시라도 바삐 잘라버려야 한다."고 이홍철 후보에게 궁내처를 비난하는 엉뚱한 발언을 했다가 옆동네 의원인 진경환 의원에게 "혹세무민으로 금배지를 달고 황실을 괴롭히는 당신이야말로 적폐"라는 핀잔과 함께 "고종태황제 시절이었으면 역모죄로 능지처참당할 자들이 어디서 큰소리를 치느냐"는 샤우팅을 먹었다. 이에 노박덕도 지지 않고 "지금 나를 능지처참하겠다는 거요, 뭐요? 계속 헛소리 하면 가차없이 잘라버립니다."라는 협박을 하며 응수하고, 자유한국당 박용철 의원 등이 가세하며 청문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렸다.
  • 박근혜 총리를 해임한 이주혜 황제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아보인다. 2017년 3월 10일, 덕수궁 대한문앞 광장에서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하여, 연사 발언으로 "대한제국이가 어디 뭐 사우디아라비아입니까? 국민이 뽑은 총리를 자기가 뉘라고 해임합니까? 뭔데 20살 짜리 꼬꼬마가..."라고 발언하다 당황한 변이재 대한제국어버이연합 대표가 보낸 회원들에 의해 제지당했다.[7]

선거 이력

연도명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년 제15대 총선 (개성시·장풍군 선거구) 자유민주연합 46.1% 낙선 (2위)
1998년 제2회 지방거 (개성시장) 자유민주연합 41.0% 낙선 (2위)
2000년 제16대 총선 (개성시 선거구) 자유민주연합 40.6% 낙선 (2위)
2004년 제17대 총선 (개성시 갑 선거구) 무소속 33.6% 당선 (1위) [8][9]
2008년 제18대 총선 (개성시 갑 선거구) 한나라당 70.1% 당선 (1위)
2012년 제19대 총선 (개성시 갑 선거구) 새누리당 59.8% 당선 (1위)
2016년 제20대 총선 (개성시 갑 선거구) 새누리당 49.2% 당선 (1위) [10]

각주

  1. 노박덕이 의정원 진출 이후 황실 폐지안 결의에 앞장서며 반황실 전선에 뛰어드는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모습이다. 물론 부대변인이었으니 자민련의 입장을 전달한 것 뿐이겠지만.
  2. "부모가 난리통에 고향을 잃고 은평 땅에 어렵게 자리잡아 살았다. 이게 다 북괴 때문이다. 나는 북괴와 평화 통일을 운운하는 자들은 용납할 수 없었다. 내 눈에는 김영삼이나 김대중이나 다 똑같은 무리였다." <조직선에서의 헌신> (2011)
  3. 한편 을 선거구의 문재홍 의원은 기어이 열린우리당 진경환 후보에게 압살당하며 (21% : 67%) 정계를 은퇴하게 된다. 2017년 자유한국당 상임고문으로 위촉되어 숙적(?) 노박덕과 한솥밥을 먹게 됐다.
  4. 곡승환 후보는 개성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5. 노박덕 + 포켓몬스터의 "고라파덕"
  6. 그렇다고 신한국당 시기에 들어온유승민·이명박·홍준표·이재오이회창계나 상도동계가 황실의 지지를 받는 것도 아니다. 재산을 빼돌리거나 독재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황실 폐지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완전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황제의 눈치를 보는 정치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대한제국 황실 폐지안 입안을 했다가 대한제국 제17대 의정위원 선거에서 줄낙선하는 수모를 겪는다.
  7. 황실에 대한 근거없는 모독은 법적 위반 행위이며 민형사상의 고발을 당할 수 있다.
  8. 노박덕이 자유민주연합에서 공천 배제되자 무소속 출마를 단행하는 한편으로,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민주노동당, 여타 군소정장 등 후보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열린우리당 곡승환 후보와 경합 끝에 252표차로 당선되었다. 곡승환 후보는 32.9%를 기록.
  9. 2005년 3월 11일 자유민주연합 복당, 2006년 4월 7일 한나라당과 합당.
  10. 2017년 2월 13일, 자유한국당 당명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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