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로마와 동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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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Βασιλεία τῶν Ῥωμαίων
국기
준국기 국장
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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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군주국
Βασιλεία τῶν Ῥωμαίων(그리스어) | Imperium Romanum(라틴어)
로마 주권국
Árchē tōn Rhōmaíōn(그리스어)
로마 공화국
Πολιτεία τῶν Ῥωμαίων[1] | Res Publica Romana
(라틴어)
Βασιλεύς Βασιλέων,

Βασιλεύων Βασιλευόντων
임금들의 임금, 통치자들의 통치자
☧ ἐν Χριστῷ κατανικῶμεν τὸν Οἰκουμενικόν ☧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세계를 평정하노라

국가 없음(공식)
콘스탄티노스의 행진(관습적)
국조 보라색 바탕에 황금색 쌍두독수리
위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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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국 건국 기원전 27년
  • 트라키아 완전 복속 46년
  • 최초의 동서 로마 분할통치 286년
  • 사두정치의 시작 293년
  • 밀라노 칙령 313년
  • 콘스탄티누스 1세의 제국 재통일 324년
  • 노바 로마 천도 330년
  • 기독교 국교화 380년
  • 최종 분할 395년
  • 서방 영토 상실 476년
  • 니카의 반란 532년
  • 이탈리아 재정복 552년
  •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626년
  • 니네베 전투 627년
  • 야르무크 전투 636년
  • 우마이야 왕조의 콘스탄티노폴리스 포위 674년
  • 카르타고 상실 698년
  •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717년
  • 성상 파괴령 726년
  • 라벤나 총독부 상실 751년
  • 성상파괴령 철회 843년
  • 안티오키아 수복 969년
  • 불가리아 정복 1018년
  • 동서 교회의 상호 파문 1054년
  • 만지케르트 전투 패배 1071년
  • 왕조 교체, 알렉시오스 1세 즉위 1081년
  • 1차 십자군 원정 1096년
  • 베로이아 전투 1122년
  • 십자군 사변 1204년
  • 테오도로스 1세 라스카리스의 對서방 전격 투쟁 선언 1205년
  • 라틴 군대의 콘스탄티노플 불법점거 1204년 ~ 1261년
  • 요안니스 4세 폐위로 팔레올로고스 단독 왕조 수립 1261년 12월 25일
  • 안드로니코스 2세 폐위, 암피클리토스 왕조 수립 1287년
  • 경기장 반란 1488년
  • 10여년간의 혼란 1489년~1497년
  • 테오도로스 마크렘볼리티스의 등극 1497년
  • 요안니스 암피클리토스 복위 1501년
  • 발루아의 루도비코스 즉위 1610년
  • 루도비코스 폐위, 바실리오스 마브로예니스의 등극 1612년
  • 카라카시스로 왕조 교체 1803년
  • 옛 로마법들을 성문화한 로마국 대헌법 선포 1822년

동서 최종 분할 이전 로마 제국의 왕조

  •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기원전 27년 ~ 68년
  • 네 황제의 해 68년 ~ 69년
  • 플라비우스 왕조 69년 ~ 96년
  •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96년 ~ 192년
  • 다섯 황제의 해 193년 ~ 211년
  • 세베루스 왕조 193년 ~ 211년, 218년 ~ 235년
  • 군인 황제의 시대 235년 ~ 285년
  • 양두 정치 285년 ~ 305년, 285년 ~ 315년(서방)
  • 사두 정치 285년 ~ 313년
  • 콘스탄티누스 왕조 306년 ~ 363년
  •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364년 ~ 378년

동서 최종 분할 이래 로마 제국의 왕조

  • 테오도시우스 왕조 375년 ~ 457년
  • 레오 왕조 457년 ~ 518년
  •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518년 ~ 602년
  • 이라클리오스 왕조 610년 ~ 695년, 705년 ~ 711년
  • 20년 간의 혼란 695년 ~ 717년
  • 이사브리아 왕조 717년 ~ 802년
  • 니키포로스 왕조 802년 ~ 813년
  • 아모리아 왕조 826년 ~ 867년
  • 마케도니아 왕조 867년 ~ 1056년
  • 두카스 왕조 1059년 ~ 1081년
  • 콤니노스 왕조 1057년 ~ 1059년, 1081년 ~ 1195년
  • 앙겔로스 왕조 1195년 ~ 1204년

십자군 사변 후 지방정권 니케아 제정기

  • 라스카리스 왕조 1204년 ~ 1261년
  • 팔레올로고스 왕조 1258년 ~ 1261년

미하일 8세의 콘스탄티노플 회복 이래 로마 제국의 왕조

  • 팔레올로고스 왕조 1261년 ~ 1287년
  • 암피클리토스 왕조 1287년 ~ 1487년, 1501년 ~ 1610년
  • 10여년 간의 혼란 1487년 ~ 1497년
  • 마크렘볼리티스 왕조 1497년 ~ 1501년
  • 제2차 프랑코크라티아 (발루아 왕조) 1610년 ~ 1612년
  • 마브로예니스 왕조 1612년 ~ 1803년
  • 카라카시스 왕조 1803년 ~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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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및 최대도시 노바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면적 877,231.48km2
접경국 이집트, 아르메니아, 시리아,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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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97,754,681명
민족 로마인 91.2%, 슬라브인 7.2%, 튀르크인 1.5%, 기타 0.1%
공용어 그리스어
공용 문자 그리스 문자
종교 국교 정교회
분포 동방 정교회 92.8%, 기타 7.2%
군대 로마군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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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구(Διοίκησις) 총 25개

유럽
수도 관구
트라키아 관구
마케도니아 관구
파라도나본 관구
실리스트라 관구
불가리아 관구
세르디키 관구
시르미온 관구
디오클리온 관구
뒤라키온 관구
니코폴리스 관구
테살로니키 관구
그리스(엘라도스) 관구
크레타 관구
키프로스 관구
케르손(케르소노스) 관구

소아시아
니케아 관구
사몬 관구
트라케시온 관구

아나톨리아 내륙
아나톨리콘 관구
폰토스 관구
메소포타미아 관구
셀레우키아 관구

시리아ㆍ동남부 국경지대
시리아 관구
페니키아 시리아 관구
주(Περιφέρειες) 총 90개 지방 자치체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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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입헌 군주정, 양원제, 의원내각제, 단일국가
바실레프스 테오도로스 카라카시스
(Θεόδωρος Καρακάσης)
카이사르 디아도코스 프로피로예니토스 로마노스Ρωμανός
세계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1세Βαρθολομαίος Α
행정원
각료
수상 넥타리오스 예르마노스Νεκτάριος Γερμανός
청색당
제국재무성 서기장관 마누일 킬레타Μανουέλ Κιλέτα
체신부 서기장관 포티오스 야눌리스Φώτιος Γιαννούλης
목마부 서기장관 예오르요스 야나리스Γεώργιος Γιάνναρης
법률부 서기장관 미나스 예르마누Μηνάς Γερμανού
시민권부 서기장관 파나요티스 카라만리스Παναγιώτης Καραμανλής
수도행정부 지사 아담 마리나키스Αδάμ Μαρινάκης
입법 및 사법
수반
최고 재판소장 아르이로스 멜레토풀로스Αργυρός Μελετόπουλος
전국 민회 의장 스틸리아노스 야노풀로스Στυλιανός Γιαννόπουλος
원로원 의장 라카시스 마리토스Λακάσης Μαρίτος
여당 사회연합당
야당 보수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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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자본주의 혼합경제,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소유권 절대의 원칙, 사적 자치의 원칙, 과실책임의 원칙
GDP
(명목)
$3,001,166,461,381(2022년 1월)
1인당 $30,701(2022년 1월)
신용 등급 무디스 A1
S&P A-
Fitch A-
화폐 공식화폐 로마 노미스마(νόμισμα, 라틴어 표기는 nummum)
ISO4217 RON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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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우주력(공식적인 표준), 서력기원(비공식적인 제2의 표준)
시간대 UTC+3(로마 제국 표준시, 콘스탄티누폴리스)
도량형 SI 단위
ccTLD
.ro
국가 코드
ROM, RM, 300
전화 코드
+30

로마 제국(그리스어: Βασιλεία τῶν Ῥωμαίων 바실레아 로마이온[*],(라틴어: Imperium Romanum 임페리움 로마눔[*]은 발칸 반도 남부, 그리스와 아나톨리아 일대에 위치한 준 입헌 군주정 국가이다. 유럽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로마 제국이 395년 분할된 이후 콘스탄티누폴리스, 혹은 (라틴어: Nova Roma 노바 로마[*]를 수도로 한 동방의 제국을 일컫기도 한다. 서부 유럽의 교황을 위시한 가톨릭 국가들은 과거 노바 로마의 이름이었던 비잔티움(그리스어: Βυζάντιον 뷔잔티온, 비잔티온[*], 라틴어: Byzantium 비잔티움[*])으로 하여금 서유럽 중심의 역사 사관을 위해 비잔티움 제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제국은 서쪽으로 불가리아를, 동쪽으로는 아르메니아와 시리아를 접하고 있다.

제국의 정치체제는 옛 로마 공화정의 공화주의적 면모와 6세기 경 유스티니아누스 1세 치세 이후 발전한 황제의 전제정이 절충된 로마적 군주제에 기반하고 있다.

역사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의 서거 직후 로마 제국은 그의 두 아들에 의해 분리되었으며, 두 형제는 각각 서방 황제, 동방 황제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두 제국을 물려받았다. 4세기 이래 제정의 권위와 부를 독점하였던 동방 제위는 장남 아르카디우스가 물려받았다. 아르카디우스의 아들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제국은 무너져가는 서방의 제국을 뒤로 하고 수도 콘스탄티누폴리스에 그의 이름을 딴 삼중성벽을 건설하는 등 다시 한번 제국의 강건성세를 약속할 수 있었으며, 6세기경의 유스티니아누스 왕조의 제국은 전 왕조 황제들의 공헌으로 하여금, 충분한 재정을 활용하여 유럽과 소아시아, 서 아라비아 일대와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강대한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서방 재정복 활동 당시 제국의 부는 과도하게 소비되었으며, 당대 발병한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으로 인해 백여년간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대제의 붕어 후 100년도 되지 않아 그가 정복한 영토는 거의 소실됐다. 이로써 유스티니아누스 왕조의 야망은 사실상 실패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정복을 위해 소비된 부는 사산 왕조와의 전쟁이나 신흥 강자인 이슬람 제국의 침략같은 연이은 혼란으로 인해 회복되지 못하면서 제국의 국운은 기울어갔지만, 7세기의 황제 이라클리오스[2]가 약화된 제국에 맞는 효율적 행정체계를 개편하고 국력의 약화를 막아 제국은 유지될 수 있었으며 그가 만든 새 체계의 근본적인 부분 역시 현재까지 어느정도 이어온다.

11세기에 이르러 제국은 마케돈 왕조의 정복활동에 힘입어 제국은 7세기 이후 최대의 판도를 이룩하였지만 제국 내의 연이은 내란과 셀주크 제국의 침략으로 인해 한때 제국은 아나톨리아 전역에서의 지배력을 잃었지만, 11세기 말부터 12세기 중후반까지 군림한 콤니노스 왕조와 13-15세기의 앙겔로스 왕조 때 튀르크 부족들에 유화적인 외교 정책을 시행하였으며, 친로마 성향의 부족의 수장들을 국경의 군사 요직으로 임명함과 동시에 이들과 함께 모든 튀르크 귀족들을 제국에 복속시킨 뒤 로마인으로 동화시킴으로써, 점진적으로 아나톨리아 전역을 수복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콤니노스 왕조와 앙겔로스 왕조의 중간기, 1204년에는 서방에서 베네치아 공화국을 비롯한 4차 십자군의 침공으로 제국이 멸망당할 뻔 하였으나 콤니노스 왕조 말대에 구축한 군사적 효율과 앙겔로스 왕조의 노력, 소아시아와 주변 도시에 있던 로마 함대의 지원으로 공성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15세기의 끝을 장식한 팔레올로고스 왕조는 콤니노스 왕조가 시행하였던 족벌화 정책을 해소하고 강한 황제권과 로마의 공화주의적 전통이 공존하는 체제를 형성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잦은 재난과 말대 황제의 중대한 실책으로 인해 성립 68년만에 붕괴했다. 15세기 말에서 17세기 초반까지 군림한 마크렘볼리티스 왕조는 다시금 황제의 권한을 강화하였고, 군림하였던 한 세기 반 동안 서유럽에 대한 의존을 대폭 감소시켰으며 아나톨리아 재복속과 함께 더 커진 영토를 위한 적합한 행정 및 경제 개혁(테마 제도 복구[3] 및 정치적 근대화와 신대륙 탐험[4])을 완성하여 제국의 위엄을 11세기 중후반의 "만지케르트 전투" 이전으로 되돌렸다. 또한 콤니노스 왕조의 족벌정책을 완전히 해소하여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미완되었던 목표를 달성했다. 근세 제국의 군사령관과 원로원의원, 아나톨리콘의 세습 통치자가 여럿 배출되었던 명문가, 마브로예니스 왕조는 팔레올로고스 왕조와 마크렘볼리티스 왕조의 황제들이 시행한 족벌화 해소 정책의 성과를 이어 받아 11세기 중후반 두카스 왕조 이후 처음으로 콤니노스 왕조의 피가 섞이지 않은 첫 왕조가 되었다. 1765년에는 마브로예니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앙겔로스 왕조 중기부터 그리스 지역의 토주와 둑스 출신의 귀족가문 카라카시스의 수장 요안니스가 후임 황제로 선포되었다. 카라카시스 왕조의 황통은 현재에까지 이어오며, 現 로마 황가 역시 카라카시스다.

행정구역

로마 제국의 행정구역은 최상위 광역지방으로 관구, 이하 지방자치단체로 를 두고 있다.

관구(διοίκησις)는 테마들과 에파르히아(속주)[5]의 후신으로, 1837년 설치되어 현재 25개의 관구에 이른다. 관구의 장인 에파르호스(ἔξαρχος)는 지방에서의 황제 대리인으로 명목상 민정을 통솔하지만 전통적인 지방의 결합을 대표하고 황제의 권위를 대표할 뿐 지방에 대한 행정 실권은 없다.

주 또는 지방(περιφέρειες)은 1822년 제헌헌법에서 규정된 지방들의 자치 행정체로, 명목상으로는 관구 밑의 행정구역이지만 사실상 독립되어 있다. 역시 주지사(περιφερειάρχης)가 지방 행정부를 통솔한다. 주지사는 각 주민들이 5년마다 보통선거를 통해 선출하며, 페리페리아 내에는 수도의 원로원과 평민회와 분리된 페리페리아 의회(περιφερειακό)가 입법을 관할한다.

정치

바실레프스(Βασιλεύς)라 불리우는 로마 황제는 제국의 국가 원수로, 제국민과 군대, 원로원의 지지가 동반된 전제 하에 제국을 통치할 권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명목상일 뿐인데 그 이유는 6세기에 재위했던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게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당시 로마 제국은 전차 경주에서 비롯된 청색당과 녹색당이 둘로 나뉘어 정치세력화하였는데,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청색당을 지지하자 녹색당의 가속화된 불만으로 인해 경주가 끝나자 폭동이 일어났고, 황제는 그들을 철저히 탄압하였으며 이 사건을 니카 반란 혹은 니카 폭동이라 부른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6세기 니카 반란을 통하여 황제의 불가침적인 전제권을 확립하였고 후대 로마 제국의 황제들도 전제권을 물려받게 되었다. 그러나 공화적 전통의 산실인 로마에서 시민, 원로원, 군대의 권위가 사라지지는 않아 명목상의 권위는 여전히 남았고, 이후에도 로마를 상징하는 그 자체로 남았다. 17세기 이후에는 원로원이 재부흥하여 19세기 즈음에는 영국과 유사한 입헌 의회로 변모하기 시작하였고, 1822년 제헌 헌법 제정 이후에는 사실상의 입헌군주정 정치 형태가 되었다. 현대 원로원은 중세 시대의 전통을 이어받아 황제에 대한 보편적인 우호와 동의를 주요 기준으로 유지하고 있고, 황제 역시 원로원을 존중해주고 있다.

로마군 역시 로마 제국의 정치에서 뺄 수 없는 주요 상징이다. 비록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 로마군은 황제도 폐위시키고 군인 황제도 여럿 나온 만큼 막강한 정치적 기관이었다. 일례로 1059년부터 1067년까지 재위한 두카스 왕조의 콘스탄티노스 10세는 파플라고니아의 유력한 군사 귀족이었으며, 그가 황제가 될 시점에서 로마군은 그의 손 아래에 있었다. 또한 두카스 왕조 이래 로마노스 4세와 니키포로스 3세 등의 황제는 모두 군인 황제였고, 앙겔로스 왕조 초기 아우구스타를 여럿 배출한 명문가인 바타치스와 라스카리스 가문 역시 제국군 총사령관을 여럿 배출하였다. 그러나 팔레올로고스 왕조 이래 황제들이 로마군에 대한 전격적인 견제에 들어감에 따라 로마군은 다른 유럽국들의 군대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군주의 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여전히 로마 제국의 원로원과 로마군은 고대 말에서 중근세 시대에 정립된 정치적 질서에 따라 황제의 산하에서 가장 오래된 정치적 기관으로 유지되고 있다.

로마 제국의 원로원은 옛 이탈리아에 있었던 로마 원로원(Senatus)와 수도 콘스탄티누폴리스에 현존하는 원로원(Σύγκλητος)이 있는데 이 문서에서는 후자를 다룬다. 제국 분할 직후 서방 제국의 본토에 있었던 로마 원로원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당하면서 점차 그 실권과 형태를 잃어 갔다. 비록 동방에 건재하던 동로마 제국과 교류를 하거나 축전을 보내는 등의 사료가 남아 있으나 단지 그 뿐이며 그마저도 몇세기 못가 603년 포카스 황제의 즉위를 축하하는 문서를 콘스탄티누폴리스에 보낸 이후 기록이 끊겼다. 630년에는 교황 호노리오 1세가 구 원로원 건물(쿠리아 율리아)을 성당으로 개조하면서 이미 이 시대에 로마 원로원은 소멸했다. 1145년에 시민들의 코뮌 산하 조직으로 추인받았다고는 하나 로마 제국에서는 이미 7세기 초중반에 로마 시의 원로원이 불가역적으로 소멸했다고 판단하였다.

동방 콘스탄티누폴리스 원로원은 현재에도 이어져온다. 동방의 원로원은 현재까지도 원로원과 상원으로 나뉘어 운영되는데, 이것은 11세기 재위했던 콘스탄티노스 9세가 대중 의견의 더욱 폭넓은 개진과 원로원 개혁을 위하여 시행한 것이었다. 원로원의 경우 지정된 품계 이상이 참여할 수 있었다면 상원은 이러한 제한이 풀려 황제의 의중으로 지정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참여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다. 13세기 앙겔로스조 이후 로마 제국 그 자체이자 후계정권이었던 니케아의 라스카리스 왕조는 니케아에서 원로원을 유지하였다.

사회

제국의 역사적 사회는 고대(Αρχαίος), 즉 A.D.27년부터 A.D.395년 제국 분할까지, 그리고 동서분할사후(Μετά το διαχωριστικό Ανατολής-Δύσης), A.D.395년부터 A.D.476년까지, 그리고 중세(Μεσαίωνας), A.D.476년부터 A.D.1204년, 회복(Ανακτήσεις), A.D.1204년부터 A.D.1489년, 불안정(Ασταθής), A.D.1489년부터 A.D.1497년, 준근세(ένας ημιμοντέρνος), A.D.1497년~A.D.1688년, 마지막 혼란(Τελικά μπερδέματα), A.D.1688년부터 A.D.1694년, 근세(Ημιμοντέρνος), A.D.1694년부터 A.D.1803년, 현대(Μοντέρνοι), A.D.1803년부터 현재까지 내려온다.

800년경 샤를마뉴가 로마 교황에게 대관받아 서로마의 참칭 황제로 등극하였을 때 유럽은 두명의 황제라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교황의 독단에 즉각 반발한 로마 제국은 "서쪽의 비정통 황제 참칭 왕국"이었던 신성 로마 제국에 대항하기 위하여 황제의 칭호에 "로마인의 황제"를 붙였고, 11세기경에는 "및 전제자"를 추가하여 황제의 권위를 보호하고자 하였다. 1806년에 허울뿐이었던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면서 역대 황제들은 다시 공통의 하나가 된(기존에도 로마 제국 황제는 신성 로마를 로마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로마 제위의 주인으로써 제호를 원래 한 명의 황제가 다스리던 고대 제국의 전통에 걸맞게 복원하고자 하였으나 천 년간 이 칭호를 사용하였기에 제국 내의 반발에 부딪혀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역대 로마 황제 일람


로마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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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정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아우구스투스 | 티베리우스 | 가이우스(칼리굴라) | 네로
네 황제의 해 갈바 |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 | 비텔리우스
플라비우스 왕조 베스파시아누스 | 티투스 | 도미티아누스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네르바 | 트라야누스 | 하드리아누스 | 안토니누스 피우스 | 공동 즉위 루키우스 베루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콤모두스
다섯 황제의 해 페르티낙스 |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 페스켄니우스 니게르 |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세베루스 왕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 공동 즉위 게타카라칼라
- 마크리누스
세베루스 왕조 엘라가발루스 |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군인 황제 시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 공동 즉위 고르디아누스 1세고르디아누스 2세 | 공동 즉위 푸피에누스(막시무스)발비누스 | 고르디아누스 3세 | 필리푸스 아라부스 | 데키우스 | 공동 통치 데키우스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 공동 즉위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호스틸리아누스볼루시아누스 | 아이밀리아누스 | 공동 즉위 발레리아누스갈리에누스 |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 퀸틸루스 | 아우렐리아누스 | 타키투스 | 플로리아누스 | 프로부스 | 칼루스 | 공동 즉위 누메리아누스카리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등장
- 카리누스 | 디오클레티아누스
서방
동방
양두 정치 막시미아누스 양두 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사두 정치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우스 1세 |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 막센티우스 | 2차 재위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누스 1세 사두 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 갈레리우스 리키니우스 | 막시미누스 다이아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누스 1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공동 즉위 콘스탄티누스 2세 · 콘스탄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 요비아누스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서방
동방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 그라티아누스 | 발렌티니아누스 2세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스
비정통 에우게니우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통일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서방
동방
테오도시우스 왕조 호노리우스 | 콘스탄티우스 3세 | 요한네스 | 발렌티니아누스 3세 테오도시우스 왕조 아르카디우스 | 테오도시우스 2세 | 마르키아누스
비정통 콘스탄티누스 3세
최후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 아비투스 | 마요리아누스 | 리비우스 세베루스 | 안테미우스 | 올리브리우스 | 글리케리우스 | 율리우스 네포스 |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 레오 왕조 레오 1세 | 레오 2세 | 제노 | 바실리스쿠스 | 2차 재위 제노
동방
레오 왕조 2차 재위 제노 | 아나스타시우스 1세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유스티누스 1세 | 유스티니아누스 1세 | 티베리우스 2세 | 마우리키우스
- 포카스
이라클리오스 왕조 이라클리오스 1세 | 공동 즉위 콘스탄티노스 3세이라클로나스 | 콘스탄스 2세 | 콘스탄티노스 4세 | 유스티니아노스 2세
20여년간의 혼란 레온티오스 | 티베리오스 3세 | 2차 재위 유스티니아노스 2세 | 필리피코스 | 아나스타시오스 2세 | 테오도시오스 3세
이사브리아 왕조 레온 3세 | 콘스탄티노스 5세 | 아르타바스도스 | 2차 재위 콘스탄티노스 5세 | 레온 4세 | 콘스탄티노스 6세 | 아우구스타 이리니
니키포로스 왕조 니키포로스 1세 | 스타브라키오스 | 미하일 1세 랑가베스
- 레온 5세
아모리아 왕조 미하일 2세 | 테오필로스 | 미하일 3세
마케도니아 왕조 바실리오스 1세 | 레온 6세 | 알렉산드로스 2세 | 콘스탄티노스 7세 | 로마노스 1세 | 로마노스 2세 | 니키포로스 2세 | 요안니스 1세 | 바실리오스 2세 | 콘스탄티노스 8세 | 로마노스 3세 | 미하일 4세 | 미하일 5세 | 공동 즉위 아우구스타 조이테오도라 | 콘스탄티노스 9세 | 2차 재위 아우구스타 테오도라
- 미하일 6세
콤니노스 왕조 이사키오스 1세
두카스 왕조 콘스탄티노스 10세 | 미하일 7세 | 로마노스 4세 | 니키포로스 3세
콤니노스 왕조 알렉시오스 1세 | 요안니스 2세 | 마누일 1세 | 알렉시오스 2세 | 안드로니코스 1세
앙겔로스 왕조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3세 | 알렉시오스 4세 | 알렉시오스 5세
니케아 망명기
라스카리스 왕조 테오도로스 1세 | 요안니스 3세 | 테오도로스 2세 | 요안니스 4세
동방
팔레올로고스 왕조 미하일 8세 | 안드로니코스 2세
암피클리토스 왕조 콘스탄티노스 11세 비정통 요안니스 비정통 알렉시오스 | 테오도로스 3세 | 요안니스 5세
10여년간의 혼란 비정통 바실리오스 아르메니코스 | 테오도로스 4세
암피클리토스 왕조 요안니스 5세 | 레온 7세 | 콘스탄티노스 12세 | 레온 8세 | 알렉시오스 6세 | 요안니스 6세 | 테오도로스 5세 | 이사키오스 4세 | 콘스탄스 3세 | 로마노스 5세
  1. Politeia tōn Rhōmaíōn(그리스어)
  2. Ἡράκλειος, Φλάβιος Ἡράκλειος Αὔγουστος. 그의 치세 도중에 제국의 공식 국어가 모두 그리스어로 전환된 것이기 때문에 라틴어로는 에라클리우스 (Flavius Heraclius Augustus)라고도 부른다.
  3. 이 때 도입된 것이 현재까지 제국의 기본적 행정구역으로 기능하고 있는 신 테마 (Νέος Θέμα)이다.
  4. 원로원의 영향력 증대, 카리브해 식민지 신설
  5. 1504년에 테마 및 프로니아를 철폐한 후 대체하여 제정한 제국의 행정구역 제도. 1822년까지 황제가 파견하는 속주 지사에 의해 실질적으로 운영되었으나 제헌헌법에서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