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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13, 15대 행정원장
마잉주
간체:马英九 정체:馬英九
국적
중화민국 (우리들의 제국) 중화민국
출생 1950년 7월 13일
중화민국 상하이직할시
재임기간
제20대 내정부장
1997년 5월 3일 ~ 1999년 1월 5일
상하이직할시 제2대 민선 시장
1999년 8월 10일 ~ 2003년 8월 9일
중국 국민당 제25, 27대 중앙위원장
2006년 12월 10일 ~ 2011년 6월 20일
2013년 7월 13일 ~ 2019년 7월 4일
제13대, 15대 행정원장
2007년 8월 10일 ~ 2011년 7월 30일
2015년 8월 7일 ~
배우자
저우메이칭, 슬하 1남 2녀
종교 가톨릭
학력 상하이국립대학 법학 학사
뉴욕대학교 법학대학원 석사
하버드대학교 법학대학원 박사
정당 중국 국민당

개요

중국의 현임 12대 행정원장이자 정치인.

정치 이력

정치 입문 이전

1973년 상하이국립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2년 4개월간 복무한뒤 대위로 전역하였다.
군복무 당시 중위이던 1975년 2월 신도 사건 당시 신도면으로 들어온 부대의 간부중 하나였다. 3개월 동안 주둔하다가 철수하였는데 2008년 조중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총리에게 침략 행위에 대한 사과를 전했다.

전역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석박사를 취득한 후 1980년 중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곧바로 총통부에 들어가 옌자간 총통의 통역 비서로 1년간 일하다 화궈펑으로 총통이 바뀌자 총통부를 나와 국민당에 입당하였다.
1982년 장징궈 외교부장의 천거로 외교부 대변인이 되었고 이때부터 매체에 자주 등장하며 ‘잘생긴 외교부 대변인’ 이미지로 중국내에서 유명세를 쌓았다.
80년대 중반부터 롄잔과 쑹추위의 갈등으로 인해 국민당이 혼란에 빠진 와중에 마잉주는 비교적 소수파이고 조용한 편이었던 원자바오 입법위원과 함께 활동했고 이는 이후 그의 정치 경력에 어마어마한 강점이 된다.
마잉주도 입법위원으로 당선되긴 했지만 87년 입법위원 선거에서 반쪽의 승리라도 달성한 국민당은 91년 총선에서는 공산당의 과반만 간신히 저지하는 수준인 원내 2당으로 다시 밀려났다.
이에 따라 당내 갈등만 부추긴 롄잔과 쑹추위를 비판하는 여론이 거세게 불었으며 원자바오 위원은 이를 이용해 ‘제3자론’을 내세워 94년 중국 국민당의 중앙위원장으로 선출되어 당권을 잡는데 성공한다.
이때 마잉주도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95년 총선에서 공산당을 두배 차이의 의석으로 따돌리며 압승을 거뒀다.

선거 후 출범한 원자바오 정권의 신몽장위원회 위원장을 97년까지 역임하며 라싸 협의를 이끌어내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아울러 97년 말에는 내정부장에 임명되어 경찰조직 개혁을 단행했으며 소방, 방제 체제를 현대식으로 개편하는 공을 세웠다.

상하이 시장

99년 1월 인기가 상당히 높아진 그는 상하이 시장으로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내정부장직을 내려놓은뒤 5월 상하이 시장 후보로 공식 지명되었다.
당시 상하이 시장은 공산당 소속인 왕후닝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마잉주는 ‘쾌남(好汉)’, ‘잘생긴 외교부 대변인’으로 자신을 이미지 메이킹하고 왕후닝을 약간 음침한 느낌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설상가상으로 왕후닝 시장은 두차례의 TV 토론에서 마잉주의 공격을 몇차례 받아치지 못하며 지지도를 크게 잃었고 결국 61%대 30%라는 더블스코어로 마잉주에게 대패, 시장직을 넘겨주고 말았다.
왕후닝은 이 선거의 패배로 인해 한순간에 몰락하고 말았으며 리커창과 반목하다 탈당한다.

마잉주는 시장이 된 후에 경제발전에 힘입어 여러 대규모 토건사업을 개시했는데 2000년에는 대양산도, 소양산도를 간척하여 상하이항의 물동량을 분산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고 2001년에는 중앙 정부, 자싱시, 닝보시와 합작하여 항저우만 대교를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상하이 중심가의 무지막지한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해 진산, 쑹장, 푸둥 남구에 대규모 주택 단지와 철도 인프라를 부설하여 인구 분산을 노렸다.

국민당 중앙위원장 당선과 집권 1기

2011년 동시선거 참패 이후

화려한 복귀, 재집권

2019년 동시선거와 7월위기

2019년 7월 3일, 입법위원 선거에서 목표한 의석수를 얻지 못한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모든 당직에서 사퇴했다. 지방공직인원 선거에서는 39명중 25명을 당선시키면서 체면 유지는 했지만 라이벌 야당인 광둥 민주당에게 인구 1억이 넘는 광둥성의 성장을 빼앗기며 선거 패배 책임론 자체는 피하기 어려운 모양새다.
7월 5일, 사회당의 연정참여에 대해 동의했으며 만일 연정협상이 실패할 경우 행정원장직도 내려놓고 정계를 떠나겠으며 또한 이번 입법위원 임기를 끝으로 행정원장직을 내려놓겠다는 초강수를 두었다. 국민당 내 연정 반대 세력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7월 10일, 중화민족당이 3당 대연정에 동의했다. 마잉주를 행정원장, 사회당 당수 웨위안쥐를 외교부장 겸 부원장에 임명하고 정무위원중 일부를 사회당, 중화민족당 정치인에게 배분하기로 합의했다.
7월 15일, 3당 연정협상안이 각 당 중앙위에서 일괄 타결되었으며 8월 1일 22대 입법원 개원과 동시에 행정원장을 선출하기로 합의했다.
7월 16일, 민주당상하이 시민회가 느슨한 연립체제인 신임과 보완에 참여하기로 했다. 공산당은 입법위원 선거에서 꽤나 선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외받고 있는 상태가 되었다. 마잉주 행정원장과 국민당은 사회당과의 연정 파기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신임과 보완에 참여하기로 한 두 당이 사회당과 연정 협상이 파기되어도 참여를 유지한다면 사회당에게 굳이 정무위원을 배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당과 연정을 무단 파기한다면 민주당과 상하이 시민회에도 신뢰를 주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7월 20일, 민주당과 상하이 시민회는 국민당, 중화민족당, 사회당과의 연정에 상관없이 신임과 보완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7월 21일, 마잉주 행정원장은 연정 파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표했다.
7월 26일, 사회당 당수 웨위안쥐가 외교부장 직을 본인이 맡지 않고 국민당이 지명한 인사에 찬반 여부만 가리겠다고 밝혔다.

집권 3기

2019년 8월 12일 입법원에서 행정원장으로 지명되어 집권 3기가 시작되었다.
8월 25일, 현행 헌법을 개정하자는 발언을 했다. 뒤이어 롄성원 전 국민당 중앙위원장 또한 이에 찬성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원자바오를 위시로 한 ‘원파’는 반대하는 모양새로, 롄잔파의 직계인 마잉주가 현임 총통인 원자바오의 권력을 완전히 빼앗고 행정원장이 모든 행정권을 휘두르려는 의도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8월 26일, 공산당측에서는 명분없는 개헌논의라고 비판하면서도 현행 헌법을 현대 규범에 맞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는 뜻을 밝혔다. 8월 30일, 사회당 당수 웨위안쥐와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개헌안 수립 절차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9월 4일, 개헌특위가 활동을 시작했다.
9월 19일, 외교부장과 국방부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항공모함 중산급 광둥함을 타고 파격적인 남중국해 순방에 나섰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는 즉각 반발했고 중국 대사를 초치했다. 9월 24일, “남해(남중국해)는 중국 고유의 영역이며 11단선 원칙에 따라 그 부속도서는 모두 중국의 영토다.”라고 발언했다. 필리핀은 즉각 주중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10월 5일, 남중국해 순방을 마치고 “중국 영역을 침범하려는 어떠한 도전도 단호히 대응하겠다.”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으로 인해 한동안 호전되는듯 했던 대미관계가 급속하게 악화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총통은 ‘남중국해의 안보불안은 중국이 야기하고 있다. 매우 좋지 않은일’이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10월 10일, 국민당 창건 100주년과 신해혁명 108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중국의 위대한 부흥은 주변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세계가 바라는 모습의 중국이 되는 것으로서 시작한다.”라고 발언했다. 급작스런 남중국해 순방에 대한 간접적인 사과라고 분석된다. 10월 13일, 초치되었던 주중 필리핀 대사 페르난도 모디칼리가 다시 파견되었다.
10월 20일, 문재인 총리가 방중하여 조중정상회담을 가졌다.
11월 7일, 개헌안이 수립되는 과정에 있으며 이달말 공개를 목표로 삼고있다고 개헌특위 위원장 탕화옌이 밝혔다. 하지만 개헌안 공개는국민당내의 반발로 지지부진하다. 결국 2020년 새해가 밝아서도 개헌안은 끝내 공개되지 못했고 개헌특위는 2월 해체되었다.

2020년 5월 12일, 원자바오 총통이 고령을 이유로 연임 도전을 포기하면서 국민당이 선거체제로 돌입하였고 국민당 선임선거감시위원이 되었다. 25일, 본인은 행정원장 임기를 마칠 것이라며 11월 대선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대신 원 총통과의 불화로 인해 어떻게서든 마잉주 본인 정책에 반대하지 않는 인사를 총통직에 진출시켜야 하기 때문에 고심에 빠져있을 것으로 보인다.

평가

긍정적 평가

대미관계 개선

급속 경제성장 유지

문민통제 강화

부정적 평가

무리한 인프라 투자

집권1기에 간쑤성 란저우와 위구르자치성 우루무치를 잇는 란무치 고속도로 계획을 세우고 일사천리에 진행시켰는데 국민당 내에서도 과연 이 도로가 필요한가에 대해서 논란이 일었으며 공산당에서는 국가재정을 낭비한다며 비판했다. 비판하는 측에서는 란저우-우루무치 구간은 이미 고속철이 지나고 있어 승객 수요가 적당하며 현재 있는 일반국도만으로도 운송, 여객 수요가 충당되어 쓸데 없는 재정낭비라고 말한다.

난샹권 밀어주기

중국의 수도권인 난샹권(南上, 난징과 상하이를 아울러 일컫는 말)을 지나치게 몰아주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코드 인사 논란

기타

  • 모어가 표준중국어이다. 하지만 오어또한 모어로 구사할 수 있다. 태어난 곳도 상하이이고 일생의 대부분을 오어가 주류언어인 난샹권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 때문에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표준중국어만 썼다고한다.

같이보기


중화민국 행정수반
국민정부 국무총리 (군정-훈정)
1대 2대 3대 대행 5대
쑹자오런
왕징웨이
탄옌카이
쑹쯔원
왕징웨이
6대 7대 8대 대행 9대
천밍수
왕징웨이
쿵샹시
장제스
10대 대행 11대 대행 12대
왕징웨이
옌시산
쿵샹시
장쉐량
13대 14대 대행 대행 대행
옌시산
쿵샹시
탄옌카이
허잉친
장제스
15대 대행 16대 17대
허잉친
쑹자오런
저우언라이
중화민국 행정원장 (헌정)
1대 대행 대행 2대 3대
저우언라이
쑹자오런
옌시산
다이지타오
성스차이
4대 5대 6대 대행 7대
쑨커
천청
옌자간
천청
8대 9대 10대 11대 12대
허잉친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후야오방
원자바오
13대 14대 15대
마잉주
리커창
마잉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