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의 함락
제11차 십자군의 일부

위그 4세메카 입성을 묘사한 삽화
날짜1453년 4월 2일 - 5월 29일
장소하심 왕조 메카
결과

십자군의 완승

교전국

교황령

다마스쿠스 공국
동로마 제국
메디나 공국
아라곤 연합왕국
알레포 공국
예루살렘 왕국

이집트 왕국

잉글랜드 왕국
프랑스 왕국
카스티야-레온 왕국

하심 왕조

지휘관
갈리스토 3세
로베르 3세
콘스탄티노스 11세
엔리케 1세
알폰소 5세
보에몽 2세
위그 4세
루이 3세
헨리 6세
샤를 7세
후안 2세
바라카트 1세
알무아이야 후세인
병력
약 150,000명 약 5,000명
약 2,000명의 맘루크
피해 규모
알려지지 않음 대부분의 수비군 사망
약 4,000명의 민간인 사망

메카의 함락1453년 5월 29일 하심 왕조의 수도이자 이슬람교 제1의 성지인 메카십자군에게 점령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약 400년간 지속되었던 십자군 전쟁이 막을 내렸고, 예루살렘 (도시)알아크사 모스크메디나를 포함한 이슬람교의 3대 성지가 모두 로마 가톨릭교회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카바를 포함한 이슬람교의 성원들이 유럽인들에 의해 크게 훼손되면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양 종교간 갈등의 전조가 되었다.

하심 왕조의 상황

개전 전의 상황

공성전과 총공격

5월 24일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었다. 달은 이슬람교의 상징이기도 했는데, 때마침 그 날 월식이 있었다. 이를 메카의 시민들은 도시가 패망할 흉조라고 여겨 수비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5월 29일 십자군의 총공격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공격은 5만여명의 시리아인 징집병들로 이루어졌다. 징집병들의 무장은 형편없었지만, 엄청난 규모로 밀고 들어와 수비군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이 징집병들이 퇴각하고 곧바로 예루살렘 왕국의 정예군인 티베리아스 군단의 공세가 이어졌다. 도시 북서쪽의 약한 성벽에 집중된 이 공격으로 점차 도시의 방어선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수비군에게 쉴 틈도 주지 않은 채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장 강력한 군사집단인 성전기사단의 공세가 이어졌다. 이때 맘루크의 대장 아쉬라프 이날이 심각한 부상을 당해 후방으로 실려갔다. 이에 맘루크의 전열이 무너져버렸고, 이 틈을 놓치지 않은 성전기사단이 외성벽을 치고 들어와 성벽탑에 성 게오르기우스 십자가 그려진 깃발을 꽂는 데 성공했다. 이에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진 수비군은 앞다투어 퇴각하기 시작했고, 십자군은 성문을 열고 밀려들어왔다.

정복

방어선이 무너지자 십자군은 부채꼴 모양으로 급속히 도시로 퍼져 나갔다. 엔리케 1세메디나에서 그랬던 것과 같이 도시가 완전히 폐허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요 건물에는 미리 호위병을 보내어 파괴를 막았다. 그는 이 도시를 아라비아 왕국의 새로운 수도로 정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도시 내부에 있는 시민들은 카바로 대피하여 마지막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에 십자군들 또한 자연스레 카바로 몰려들면서 신전을 지키려는 수비군들과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졌으나, 이내 신전의 문은 맥없이 무너졌다. 반항하는 시민들은 그 자리에서 살해되었고, 예배를 드리던 나머지 시민들은 포로로 잡혔다. 이후 카바는 메카 대성당으로 개조되었고, 이슬람교의 성유물인 검은 돌은 베네치아인 상인들에게 팔려 유럽 전역을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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