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ARSAW FICTIONAL PROJECT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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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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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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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인도차이나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아체 인도네시아* 파푸아*
* 기준에 따라 일부 혹은 전체 지역이 오세아니아로 분류되기도 한다.

아세안(ASEAN) 회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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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မြန်မာ
Myanmar
국기 국장
상징
국가 조국이여 (ါ့တိုင်းပြည်)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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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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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으로부터 독립 1948년 1월 4일
  • 1962년 미얀마 쿠데타 1962년 3월 2일
  • 8888 항쟁 1988년 8월 8일
  • 문민 정부 수립 2015년 11월 13일
  • 2021년 미얀마 쿠데타 2021년 2월 1일
  • 신헌법 개정 2022년 12월 1일
  • 군사 정권 부활, 문민 정부 폐지 2022년 12월 20일
  • 2024년 미얀마 쿠데타 2024년 6월 1일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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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양곤
최대 도시
양곤
면적
676,578㎢
접경국
인도, 방글라데시, 인도차이나, 남중국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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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53,582,855명
밀도
76명/km2 | 세계 125위
인종
버마족 95%, 샨족 2%, 카렌족 1%, 기타 민족 2%
공용어
버마어
공용 문자
버마 문자
종교
국교
상좌부 불교
분포
불교 96%, 기독교 1%, 이슬람교 0.2%, 무종교 및 기타 2.7%
군대
미얀마 국가방위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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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구
7개
7개
자치구
6개
수도령
1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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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단일 국가, 양원제, 직선제, 다당제, 문민통제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67위 (결함있는 민주주의)
국가 원수 (총리)
아웅산수치
정부
요인
대통령
윈 민
최고사령관
앙 플리항
여당
민족민주동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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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 시장 경제
GDP
(PPP)
전체 GDP
$4,506억 5,201만
1인당 GDP
$7,104
GDP
(명목)
전체 GDP
$815억 6,600만
1인당 GDP
$1,605
국부
$2,500억
화폐
공식 화폐
(ကျပ်, K)
ISO 4217
MMK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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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6:30
도량형
SI 단위
ccTLD
.mm
국가 코드
104, MY, MYM
전화 코드
+95


미얀마(버마어: မြန်မာ, Myanmar)는 동남아시아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이다. 북서쪽으로 인도, 북동쪽으로 남중국, 동쪽과 남동쪽으로는 태국인도차이나가 자리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안다만해벵골만이 있다. 2017년 기준으로 약 5,300만 명으로 수도는 네피도, 최대 도시는 양곤이다.

역사

버마는 북부에는 쀼족, 남부에는 몬족이 거주하여 왕국을 세웠으며 9세기 경 버마족이 들어오면서 1044년 버간 왕국을 세우고 버마족들이 믿는 상좌부 불교와 언어, 문화를 통한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몽골에 의해 몰락하고 그 자리에 소왕국들이 들어서며 패권 다툼을 벌이다가, 16세기 따웅우 왕조에 의해 통일되며 잠깐 동안 최대의 제국이 되었으나 19세기 초 꼰바웅 왕조가 미얀마 지역은 물론 마니푸르아삼 지역까지 차지하여, 영국-버마 전쟁으로 영국 동인도 회사에 국권 침탈을 당하기까지 최후의 왕조로 지속되었다.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에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의 침략을 받아 지배를 받았지만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고 1948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다. 하지만 독립한 지 약 14년이 지난 1962년 네 윈 장군이 이끄는 군부에 의해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고, 결국 "사회주의로 가는 버마의 길" 일명 버마식 사회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한 버마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들어선다. 1988년 경제 침체를 겪은 버마는 국민들의 자발적 반군부 시위인 8888 항쟁을 일으켰고, 군부는 이들을 탄압하였지만 국제 사회의 지탄을 받으며 끝내 군부 내 쿠데타로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를 구성하며 명칭도 '미얀마 연방'으로 변경하였다.

이후 1990년 총선에서 아웅산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가 392석을 얻는 대승을 거두는데, 군부는 이를 승인하지 않아 2011년까지 국가평화발전협의회(SPDC)는 미얀마를 통치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 시기에 소수 민족과 군부 간의 갈등이 터지며 내전을 벌인 적도 있었다. 2006년에는 기존의 수도인 양곤에서 네피도로 수도를 이전했고, 2010년 총선에서도 통합단결발전당(USDP)가 승리하였지만 국제 사회와 인권단체들은 군부가 부정선거에 개입했다며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총선 이후 정권을 민간에 이양하면서 개혁 정책을 펼치기 시작해 민주주의로의 과정을 조금씩 밟아 나갔고, 2014년에는 아세안 의장국을 맡기도 하였으며 2012년 재보궐선거에서 NLD의 후보를 허가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그리고 2015년 총선에서 NLD가 압승함에 따라 군부 정권이 몰락하고 마침내 문민 정부가 수립된다.

2016년에는 틴초 대통령이 처음으로 비군부 출신으로 취임하였고, 수치 역시 국가고문직에 오르게 되었다. 2020년 총선에서도 NLD가 476석 중 396석을 차지하며 대승을 거두었지만, 군부는 USDP의 결과(33석)을 인정하지 않고 선거를 부정했다. 하지만 선거위원회는 아무런 부정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재선거가 실시되더라도 국민의 뜻을 뒤집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2021년 2월 1일 민 아웅 흘라잉 장군이 이끄는 군부의 쿠데타로 다시 정국이 시끄러워지면서 국민들의 반발을 일으켰다. 심지어는 수치 등 정부 인사들은 물론이고, 반정부 지도자들을 구금하거나 시위하는 사람들에게 총을 쏘아대는 등 강력한 탄압을 자행했으며, 미국남중국 간의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남중국군이 미얀마 군부에 무기를 지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다 2022년 10월 30일 흘라잉 장군은 스스로 총리에 취임함과 동시에 헌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12월 1일 민주주의 요소들을 대거 삭제해버린 헌법 개정이 공포되어 국호를 다시 '버마'로 바꾸고 사실상 네 윈 이후 독재 정권 시기로 회귀되었다. 결국 국민들의 분노로 인해 소수 민족 세력이 이들과 연합해 미얀마 민주해방전선을 결성하고 내전을 치르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흘라잉 장군의 지원으로 버마군의 젊은 장교들이 주축이 되어 사조직인 '국가보위청년단'을 결성해 시위 진압과 사회 통제에 집중하였으며, 거기다 국가에 대한 모독이나 최고사령관에 대한 비판을 하면 가차없이 끌려가 잔인한 고문과 학살을 당해야만 했다. 그런데 2024년 1월 19일 네피도의 주민 5,000여명이 국가보위청년단과 군인들을 앞세워 학살을 저지르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는 국제 사회와 인권 단체들의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버마군은 흘라잉 정권에 불만을 가지고 장교들 간의 권력 다툼까지 벌어지는 판국에서 제대로 된 대처도 없었다.

결국 앙 플리항 장군들과 버마군 출신 장교들은 MDLF에 참여함에 따라 버마군은 사실상 두 개의 세력으로 분열되었다. 하지만 장기적인 전투로 양측 모두 타격을 입은 내전은 휴전에 들어갔고, MDLF에 참여한 플리항 장군은 최고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2024년 6월 1일, 플리항 장군과 MDLF 소속 장교를 포함한 약 2,600명의 군인들이 구 대통령 관저와 방송국, 국가의회 의사당을 장악하며 쿠데타를 벌였고, 최종적으로 버마의 내각과 군의 권한을 운영하고 있는 중앙본부를 완전히 점령시키며 흘라잉 장군과 내각 인사들을 체포하기에 이른다. MDLF는 쿠데타 이후 문민 정부 구성을 위한 공약을 발표해 조기 총선과 문민 정부 회복을 약속했다.

이렇게 해서 버마의 2차 군사 독재 시대가 막을 내렸고, 곧이어 치러진 조기 선거에서 해산되었던 NLD가 무려 400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군의 약속대로 버마는 명칭을 다시 '미얀마'로 바꾸면서 군의 권한과 간섭을 대폭 축소시켰으며, 구금에서 풀려난 아웅 산 수 치를 총리로 선출하기에 이른다. 더군다나 현행 헌법을 폐지하고 기존 헌법에 민주주의와 시민의 자유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신헌법을 통과시켰지만 군사 독재의 잔재로 불렸던 국가보위청년단은 해산과 동시에 출신 장교들이 전부 사형을 선고했으며, 흘라잉 장군과 각 장교들이 영구 구금되었다. 문민 정부 수립 이후 무역 시장의 활성화와 항구도시의 발전을 위해 수도를 네피도에서 다시 양곤으로 이전했으며 이는 현재까지 경제 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