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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의 백성을 털끝 하나 다치게 한다면 이는 기독교 국가간의 불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기독교 세계에 대한 자극이므로, 베네치아의 수장은 신앙을 버렸다 할 수 있으며 이는 반드시 파문받아야 할 것이다!

 
— 1066년, 스웨덴 국왕 에리크 2세

개요

1066년, 스웨덴의 사절단이 베네치아의 군부 쿠데타 집권으로 인해 발생한 국내 정세 혼란이 가중되면서 베네치아에 갇히자 발생한 사건. 이 사건 이후로 베네치아는 스웨덴, 포메라니아, 교황령 등등 가톨릭 국가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북방 기독교 국가들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들의 국력이 신장되게 된다.

전개

스웨덴의 對3국 사절단 파견

1066년에 스웨덴의 국왕 에리크 2세는 주변국과의 관계 증진을 위해 포메라니아, 노르망디, 베네치아 3국에 사절단을 보냈다. 그들은 포메라니아를 방문하여 빈란드 개척에 대한 다짐을 굳히고[1], 노르망디를 방문하여 그들이 잉글랜드를 정복할 것이라는 정보를 얻은 뒤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베네치아 군대의 도제 축출과 집권

그러나,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은 귀족들의 집권과 마법 연구를 지지하던 군대의 도제 축출로 인해 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이 과정에서 군사정권의 지나친 외국인 탄압으로 인해 스웨덴 사절단은 꼼짝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러던 중 사절단의 인원 일부가 스웨덴에 '사절단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밀지를 보낸다.

스웨덴의 공문

이 밀지를 받은 스웨덴의 왕 에리크 2세는 크게 분노했으며, 즉시 베네치아에게 신변 보호를 요청하는 공문을 써 보냈다. 또한 교황청에 스웨덴 대주교를 보내어 상황을 알리고는, 교황청의 지지를 촉구했다. 이에 교황청은 마법을 연구하는 베네치아에 대항해 마법을 이단으로 규정하며 스웨덴 편에 섰고, 그렇게 베네치아는 점점 밀리게 된다.

베네치아 원정

공문을 보낸 후, 베네치아가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답장을 제대로 못 해줄 것이라고 판단한 스웨덴은 배를 타고 베네치아 원정을 시작했으며 또한 그 원정에는 포메라니아도 참가했다. 다만 이름만 원정일 뿐이지, 그냥 베네치아 해안에서 사절단을 풀어달라고 요청할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네치아 정부가 사절단의 신변 보호에 대하여 간접적인 긍정으로 답하자, 스웨덴도 베네치아로의 항해를 멈추고 포르투갈에서 군대를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지브롤터 백국의 탄생

하필이면 이 소식을 듣지 못한 포메라니아가 계속 항해를 이어가던 중, 지브롤터에 위치한 무라비트 왕조에게 습격을 받았다. 지브롤터와 포메라니아의 거리 때문에 정부가 지원을 해줄수 없어 원정대의 미래는 불투명했지만, 다행히 그들은 무라비트 왕조를 상대로 대등하게 싸웠으며 결국 그들의 항복을 받아내고 지브롤터에 포메라니아의 속국인 '지브롤터 백국'을 세웠다.

교황청의 베네치아 파문과 정교회의 입장

한편, 베네치아는 사절단 신변 보호에 응한 후에도 사절단을 돌려보내지 않았으며, 오히려 모든 내국인, 외국인의 입/출국을 금지시켰다. 또한 교황이 마법을 이단으로 규정한 이후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는데 1038년 당시 '마법교육헌장'까지 발표하며 지금까지 마법 교육을 계속했던 것이었다.

교황은 급기야 베네치아를 파문하고 성직자들을 귀환시키기로 결정했으며, 평신도에 대한 위협을 가하면 성전을 일으키겠다며 경고했다. 베네치아로 향한 교황청의 분노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총대주교청은 성직자를 철수하는 등 교황의 행보에 "불쌍한 베네치아 시민들을 방치하는 행위"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또한 세계총대주교청은 베네치아 군부에 전향적 태도 변화를 촉구하며 신자들을 보호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의의

  1. 자세한 건 빈란드 개척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