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이어 공국
Herzogtum Wernheir
583년 - 현재
국화 물푸레나무꽃
국조 물수리
표어 Das Vaterland segnet nur die Zukunft derjenigen, die qualifiziert sind.
( 조국은 오직 자격있는 자의 미래만을 축복한다. )
수도 외텔슈비어
최대 도시 외텔슈비어
면적 312,100 km²
노이펠트-베른하이어 연합 583년~675년
라그렌센트 연합왕국 675년~1497년
베른하이어 공국 1497년~현재
인문 환경
인구 전체 인구 30,233,500명 (1672년 기준)
민족 구성 인간 89.1%
스키네 7.5%
기타 3.4%
인구 밀도 약 94명/km²
출생률 0.77%
출생 인구 약 232,800명
사망률 1.43%
사망 인구 약 432,300명
기대 수명 79.2세
성비 0.766
공용어 키르수스어
공용 문자 키르수스 문자
군대 베른하이어 공국군
세부 군대 육군 베른하이어 지상군
해군 베른하이어 해상군
베른하이어 해병대
공군 베른하이어 항공군
기타군 지역방위대
행정구역
행정
구역
8개 주
37개 시
203개 구
특별시 1개 특별시
자치령 3개 자치령
정치
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국가
원수
대공 다니엘 베른하이어(Daniel Berünhaior)
정부
요인
총리 카를 무어(Karel Moore)
총무부 장관 빌름 리히터(Willem Lichter)
국무부 장관 존 피엘(John Piel)
외무부 장관 피터 그라프(Peter Graf)
재무부 장관 한스 라인스트(Hans Reinst)
국방부 장관 마르크 스텔리(Marc Sterlee)
과학부 장관 라이네스케 데코닝크(Rheineske Deconink)
교육부 장관 빈센트 멜리슨(Vincent Melison)
도시부 장관 에릭 데미스터(Erik Demeester)
산업부 장관 피터 슐츠(Peter Schultz)
보건부 장관 에레스 멜리슨(Eress Melison)
문화부 장관 하인리히 베르누이(Heinrich Bernouit)
지식부 장관 마그누스 레빅(Magnuss Levick)
농림부 장관 라이누스 샤퍼(Reinous Schaper)
해양부 장관 한스 드롱엘런(Hans Drongelen)
경제
경제 체제 자본주의 시장경제
명목
GDP
전체 GDP 1289억 3350만Ǥ, 465억 4340만ℳ
1인당 GDP 4,266Ǥ, 1,540ℳ
화폐 공식 화폐 길더스 (Ǥ)
통계
자료
경제성장률 3.8%
고용률 71.9%


개요

베른하이어 공국(Herzogtum Wernheir)은 헤스페로스벨트 남단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자 키르수스의 독립제후국이다. 과거 슈베로니아 제국의 멸망 이후 슈베로니아의 귀족가문이었던 베른하이어 가문이 세운 라그렌센트 왕국에서 기원했다. 수도는 외텔슈비어이며 현 총리 카를 무어 내각이 집권 중이다. 북으로는 키르수스, 동으로는 코르보날, 서로는 에르미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을 주도했으며 국가 차원에서 과학기술 발전에 투자하는 헤스페로스의 전통적인 부국이자 마그니우스와 더불어 대표적인 식민제국이다.

상징

국호

베른하이어 공국(Herzogtum Wernheir)이라는 국호는 1497년, 슈베른란트 통일전쟁에서 패배한 아렌트 베른하이어가 키르수스로부터 독립국임을 인정받는 조건으로 키르수스 제국의 공작위를 서임받으면서 기존의 라그렌센트 연합왕국(Ragrencent Vereinigteshofigreich)이 공국으로 격하되면서 당시 왕가였던 베른하이어 가문의 이름을 따서 정해졌다.

국기

베른하이어의 국기
100%
베른하이어의 정부기
100%

현재 사용되고 있는 베른하이어 공국의 정부기는 건국력 1627년, 추성협상 이후 이델스테르트 대회의에 의해 제안되었다. 푸른 배경에 흰색 별 13개와 띠, 국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단 13개의 백색성(白色星)은 베른하이어의 위대한 학자 13인을 상징하며, 하단의 흰 띠는 자유를 의미한다. 가운데의 월계수 잎과 책으로 이루져 있는데, 월계수잎은 지혜와 영광을 상징하며 중앙에 책은 지식의 추구를 의미한다.

행정 구역

자치령

특별시

역사

12세기 이전

베른하이어의 기원은 한때 헤스페로스벨트를 호령했던 슈베로니아 제국의 베른하이어 공작에서 출발한다. 제국력 582년에 게이먼 족의 침략으로 슈베로니아가 멸망할 때 같은 슈베로니아 공작이었던 노이펠트 가문과 노이펠트-베른하이어 연합을 결성한다. 슈베로니아의 후예를 자칭하는 아슈트카이트 국가연합 가입에 거절당한 노이펠트-베른하이어 연합은 남쪽에서 세력을 건설한다. 두 가문에서 번갈아가며 연합군주를 배출하였으나 6대 군주였던 밀레우스 베른하이어는 노이펠트 가문을 무력으로 복속시키고 주변의 도시국가들을 통합하여 세력을 확장한다. 결국 675년, 남쪽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획득한 밀레우스 베른하이어는 국호를 토착어로 '남쪽의 영광'이라는 뜻을 가진 라그렌센트(Ragrencent) 왕국으로 정하고 초대 국왕의 자리에 오른다.

한편 8세기, 라그렌센트는 주변국들이 전쟁하는 동안 중립을 선언하며 내정에 힘쓰며 사회와 경제의 안정을 꾀했다. 여러 민족들을 통합하고 농업을 발전시키는 한편 아슈트카이트의 서부정벌과 서부의 오공작 전쟁으로 인해 남쪽으로 밀려난 인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특히 학자와 기술자, 상인 출신을 우대했는데 이를 통해 여러 지역의 문화와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고 각종 상공업이 빠르게 발전했다. 이후 뛰어난 농업생산량과 린츠펠 산맥에서 나는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전쟁 중인 국가에 무기와 식량 등을 공급하여 단기간에 부유해졌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자 정부는 도로와 수로를 정비하는 등 도시 인프라를 발전시키고 상업에 투자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라그렌센트가 헤스페로스벨트 중남부의 교통 및 물류이동 중심지로서 입지를 다지는 것에 기여했다.

교통 요충지가 된 라그렌센트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세력들에게 노려질 위험성이 있었다. 전쟁에 휘말리게 되면 지금처럼 전쟁 중인 국가에게 물자를 공급하며 편하게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지금의 위치를 잃게 되는 것이므로 라그렌센트는 최대한 군사적 충돌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주변국들에게 물자와 식량의 핵심공급망으로서 역할을 강조하고 각국의 주요 귀족들과 혼인을 맺어 평화를 도모했다. 또한 군대 대부분을 치안유지에 활용하는 대신 다양한 국가 출신의 용병을 고용해 외침에 대비했다.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라그렌센트는 11세기 초까지 군사적 마찰 없이 지역 간 무역과 통행세만으로도 큰 수익을 낼 수 있었고 헤스페로스벨트의 부국으로 자리매김한다.

황금기

평화와 경제적 풍요 속에서 라그렌센트 국민들 사이에서는 학문과 예술이 유행했다. 한편 젊고 부유한 청년들 사이에서는 모험의 꿈을 품고 먼 바다로 떠나는 모험가 계층이 생겨났는데 마침 왕실이 적극적으로 이를 지원하면서 먼 바다를 항해하며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기 것이 라그렌센트 내에서 유행이 되었다. 물론 처음의 몇십년 동안은 신대륙을 발견하기는커녕 먼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였으나 항해기술이 발전하고 정보가 축적됨에 따라 점차 항해거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1142년과 1165년에 라그렌센트 모험가들은 각각 동양과 신대륙을 발견하는데 성공한다. 동양과 신대륙에는 각각 호기심 많은 모험가들을 흥분하게 할만한 새로운 동식물과 문명이 존재했는데 이들이 이를 본국에 가져가서 보여주자 상인들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항해를 나가기 시작했다.

동양과 신대륙에 도달한 상인들은 처음에는 그들과 활발히 교역했지만 상인들의 교역규모 확대가 거부되자 군사력을 동원해 강제로 정복하여 식민지로 삼았다. 그리고 식민지인의 노동력을 착취해 농사와 채광을 시키고 강제적으로 약탈한 귀금속과 철광석, 향신료 등을 헤스페로스벨트로 운반해 비싼 값에 수출했다. 특히 각종 자원이 헤스페로스벨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던 모르티민에 설립된 모르티민 종합식민회사를 포함해 상인조합들은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식민회사들은 설립했고 이로서 각국 식민지의 금과 은은 물론 식민지에서 착취한 자원으로 무역하면서 얻은 금과 은까지 라그렌센트 상인들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또한 식민회사들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주식의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했고 외텔슈비어의 세계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설립되면서 이전까지와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자본을 얻은 상인들은 본격적으로 금융업의 막을 열게 된다.

물론 라그렌센트가 식민지 경영과 국제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창출할동안 다른 국가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13세기 중반 통일을 이뤄낸 에르미니아 왕국과 마그니우스 섬 세력도 뒤늦게 항해에 뛰어들었지만 라그렌센트와는 항해술의 격차도 이미 컸을 뿐 아니라 규모와 체계 면에서 보더라도 라그렌센트의 적수가 되기는 어려웠기에 사실상 독점적인 위치에 설 수 있었다. 이렇듯 수백년동안 외부의 방해없이 라그렌센트는 엄청난 부를 쌓는 동시에 학문과 예술, 교육을 독보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영광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었는데...

쇠락기

산업혁명기

근현대

정치

자세한 내용은 베른하이어/정치를 참고.

경제

개요

1인당 국민총생산 세계 1위
상장기업 시가총액 세계 1위
중앙은행 금보유량 세계 1위
"Unser Geld ist das Geld, das die Welt bewegt."
"우리의 돈은 세상을 움직이는 돈."
-베른하이어 재무부
"대공황에는 정말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지만 결정타는 베른하이어 증시의 폭락이었습니다. 11월 26일의 아침을 시작으로 전 세계 금융이 무너지기 시작했죠." 
-마그니우스 왕립은행 직원

베른하이어는 헤스페로스벨트 최대의 부국이자 전세계에서 가장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는 국가이다. 200년간의 독점적인 식민지 경영으로 축적한 부와 압도적인 과학기술력을 기반으로 금융업, 중공업, 해운업, 철강업, 에너지산업, 전자장비제조업 등을 주력산업으로 하며 특히 전 세계 주식시장의 절반을 베른하이어 자산가들이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세계금융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베른하이어/경제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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