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조베폴레 대훈장 수훈자 (Vp RZP in 1669)
에세르 초대 총리
에세르 민족독립군 공동 총지휘관

그란치프 제국 에세르 자치령 마지막 총독 (민선)
자치령 종말기 에세르 민족의회 의장
에세르당 초대 당수
St.Ob. Pan
Vít Václavek
비트 바츨라베크 경
출생 1599년 6월 18일
에세르 마가드
사망 1669년 12월 8일 (70세)
에세르 코네운체
국적 에세르 에세르
임기 초대 국가재상
1664년 6월 9일 ~ 1665년 1월 2일
원로 대신
1665년 1월 2일 ~ 1669년 1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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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보후밀 바츨라베크(Bohumil Václavek), 어머니 바르보라 비스코칠로바(Barbora Vyskočilová)
형제자매 2명[1]
배우자 블라스타 야노우슈코바(Vlasta Janoušková)
자녀 1남 1녀
학력
그란치프 그란치프 에세르 자치령 마가드 제2대학교 군사대학(중퇴)[2]
그란치프 그란치프 에세르 자치령 마가드 제1대학교 행정학과(학사 졸업)
종교 씨앗교 (세속주의)
소속 정당 에세르당
의원 선수 A174[3]
의원 대수 1
약력 에세르당 초대 당수

개요

에세르의 정치인, 군인, 관료, 독립운동가.

현임 빅토르 도치칼 총리 이전까지 에세르에서 그의 생은 매우 파란만장하기로 유명했다.

생애 초기 그는 마가드 제2대학교 군사대학에서 차석의 성적을 거둘 정도로 뛰어나, 육군장교 임관을 위해 그란치프 본국으로 무료 유학까지 제안받을 정도였지만 젊은 날의 투심 탓이었는지 아니면, 투철한 민족심 따문이었는진 몰라도 "그란치프에 대한 반발심"을 이유로 들며 거절한 뒤 중퇴했고, 행정관료로 자치령 정부에 입관하여 고공행진한 끝에그란치프 제국 에세르 자치령 총독까지 역임했다. 총독으로 재임하던 1650년, 키르수스 제국과 그란치프 제국 양국간 전쟁이 발발했고 중앙정부와의 연결은 얼마 가지 않아 끊겼다.

42살의 나이, 단기에 은퇴 후 귀농생활을 꿈꿨던 중년의 총독은 전쟁으로 본국에게 버려진 땅에서, 하루만에 수천 만의 겨레를 살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종이쪼가리와 다름없는 총독위를 벗어던진 그는 사회당 대표였던 바실 카슈파레크 및 뜻이 맞는 호걸들과 손을 잡았고, 에세르 민족독립군을 창설하여 게파르토군과의 전투를 지휘했다.

게파르토군에 대항하며 지하에서 게릴라 전투를 이어가던 그는 게파르토가 에세르를 키르수스에 할양하자 국가 건립의 적기라고 판단했고, 키르수스 정계와 연줄이 있던 에세르 왕가와 접촉하여 키르수스에 접근했으며 에세르 왕국이 세워지자 그는 초대 국가재상으로 취임하여 재임기 동안 국가의 기틀을 닦았다.

고령으로 인해 재상직을 퇴임한 그는 원로대신으로 활동하며 에세르군 증강에 나섰다. 퇴임 후 대장으로 군에 복귀한 그는 사망하기까지도 에세르 병사들의 사기를 고취시키고자 전국을 순회했다.

1669년 12월 8일 바츨라베크는 코네운체의 에세르 군단 기지에서 에세르군 장교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행사에 이틀 연속 참여했으며 이틀째 밤에 잠을 취하다가, 다음날 지역 군단 사열식을 앞두고 7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수도로 옮겨졌다. 사후 대원수의 칭호와 루조베폴레 대훈장이 추서됐으며 장례식은 에세르 국왕과 씨앗교 성직자들, 에세르 군인들을 비롯한 내빈들이 대거 참여한 동시에 국장으로 치뤄졌다. 그란치프 제국 고위 관료의 양식으로 장례를 치뤄야 하느냐 아니면 옛 에세르 제국의 장군 양식으로 장례를 치뤄야 하느냐 등의 방법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장례는 논쟁 끝에 에세르 군인들의 전통 양식으로 치뤄졌다.

이듬해 1670년 1월 24일, 시신 가운데 머리카락과 심장은 에세르의 무장 독립운동가들이 잠든 제메파네 소재 "에세르 영웅능묘"에 원수 양식 기념비로 안장하고, 나머지는 역대 그란치프 제국 에세르 총독들의 능묘에 안장한 뒤 무덤은 그란치프 제국 고관 양식으로 조성하여, 그제서야 바츨라베크는 안식을 취하게 되었다.

  1. 누나와 남동생이 있었지만 누나는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남동생은 4살 때 병사했다.
  2. 동기 가운데에서 차석이었으며 그란치프 육군 장교 과정을 위해 그란치프 수도로 파견되기를 강요받았으나 바츨라베크는 총장의 권유를 다음과 같이 거부했다고 전해진다.

    총장님, 전 에세르인의 군주도 아닌 다른 민족의 군주를 위해서 봉사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에게 있어 일생동안 충성한다는 것의 전부는 오직 에세르의 백성들 뿐입니다. 저는 이 과정이 ᆢ(중략) 전 그래서 총장님의 권유를 받을 수 없습니다. 고향에서 농부로 일생을 보낼지언정, 외세 제국의 수도에서 그들의 황제를 위해 싸우지는 않겠습니다.
  3. 에세르 초대 왕국의회는 초대 의원들 하나하나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선수 앞에 A를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