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코리아
State of South Korea
파일:사우스코리아 주기.png 파일:사우스코리아 휘장.png
주기 문장
상징
별명 The Sunrise State
모토 Freedom and Peace
자유와 평화
주가(州歌) Korea, Beautiful Land
주조(州鳥) 까치
주목(州木) 소나무
주화(州花) 무궁화
행정
국가 미국 미국
지역 태평양 (Pacific)
시간대 UTC+9 (도쿄 표준시)
주도/최대도시 서울
주 의사당 소재지 1 M Yeoui St, 서울, 사우스코리아 76716
하위 행정구역
카운티 63
502
인문 환경
면적 100,432㎢
인구 41,660,032명
인구밀도 414.8명/㎢
역사
미합중국 가입 1948년 6월 25일 (49번째)
경제
명목
GDP
전체
GDP
$2조 5067억(2019년) / 세계 8위 상당
1인당
GDP
$60,174(2019년) / 세계 8위 상당
정치
주지사 찰스 터너

사우스코리아 주(영어: State of South Korea)는 미국의 본토에서 8,500Km 가까이 떨어져 있는 가장 먼 주로,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이다.

현재의 주지사는 존 앤드류 리이다. 주요 대도시로는 서울, 부산, 인천, 대전이 있고, 주도인 서울이 있다.

북쪽으로 노스코리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동쪽으로 일본을 동해를 끼고 접한다. 서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서해를 끼고 접하여 항상 안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주는 네모난 형태로, 최북단의 도시 포천노스코리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주의 남서부에는 호남평야가, 동쪽은 동해, 북쪽은 백두 산맥, 남쪽은 남해에 둘러싸여 있다. 서쪽에는 황해가 있다. 호남평야는 사우스코리아 농업의 중심이며, 주 식량 생산의 약 3분의 1을 생산하고 있다.

전반적인 스윙스테이트[1]이다. 물론 편입 후 30년 간은 미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블루스테이트였다. 하지만 최근 선거 결과를 보면 2000년, 2004년 조지 W. 부시에, 2008년 버락 오바마에, 2012년 미트 롬니, 2016년 도널드 트럼프에 표를 줬고 상기한 5번의 선거 모두 3%p 차도 나지 않는 초접전이었음을 감안할 때 사우스코리아가 한쪽에 치우친 성향을 가진 주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역사

미군정

1945년 일본 제국이 패망한 이후 북쪽에는 소련이 남쪽에는 미국이 각각 진주하게 된다. 이후 김일성 등이 소련에 남부 미군에 대항할 새 공화국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소련 역시 이에 동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승전국의 회담에서 스탈린의 원래 목표였던 일본 분할 점령은 미국의 GHQ에 원천 봉쇄 당하고, 한반도를 38도선으로 완전히 나눠버리게 되자 회담에서 스탈린은 불안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 당시 미 군정이 조선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소련은 조선인민공화국의 사회민주주의 계열 인물들을 포섭하게된다. 조선인민공화국의 사민계열 구성원들은 1947년 9월 평양으로 건너가 조선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하였다. 이에 당시 주석이었던 이승만은 큰 위기감을 느끼고 미 군정과 미 의회에 도움 요청을 긴급 타진한다.

이승만은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상원의원들과 접촉하며, 남한지역의 미합중국 편입을 역설하였다. 상원에서는 8000km밖에 떨어진 남한지역이 과연 미합중국에 어떤 안보·경제상 이득을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이에 이승만은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 NATO와 남쪽 끝인 남아공과 더불어 미국이 굳이 당시에 안보상 이유를 제외하고 매우 무가치했던 땅인 알래스카를 매입한 이유와 같이 동쪽 끝인 한반도가 유일하게 소련에게 족쇄를 채울 수 있는 위치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상원은 이러한 주장에 미온적으로 반응하였다.

상원의 미온적인 반응에 이승만은 당시 종전 직후 계속된 낮은 지지율로 다음 선거로 고심하고 있던 해리 S. 트루먼을 찾아가 남한이 미국의 주로 편입되면 대통령은 다음 재선과 의회 문제를 고심하지 않으셔도 된다며 사우스코리아 주가 가지는 정치적 위상을 꽤나 공들여 설명했다. 이후 철저한 반공노선을 설명하고 자신이 이 주를 미국 내에서 여론을 규합하는 반공의 최전선이자, 아시아의 불침항모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잠시 고민하더니 1948년 3월 사우스코리아의 주 편입 문제를 언론에 띄웠다. 당시 공화당은 심각히 반발했으며, 민주당 내에서도 여론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한동안 워싱턴 정계는 대부분 처음 듣는 사우스코리아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되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겉으로는 계속해서 아시아의 불침항모, 소련의 족쇄임을 강조했다. 그러던 6월 베를린 봉쇄가 터지며 사회의 반공 여론이 높아진 상황에서 트루먼 대통령이 민주당 의원들을 소집해 책상의 팻말을 짚으며 "책임은 내가 진다"며 사우스코리아 주 승인법의 통과를 주문했다.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강경파를 지도하던 태프트 상원의원이 당시 대세 주자인 듀이를 꺾고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전당대회 직전에 사우스코리아의 편입을 환영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1948년 6월 11일 상정된 법안은 18일 하원을 통과하고, 19일 상원을 통과해 25일 공포되었다.

미합중국 편입

미소한반도영유권협정

경제

미국에서 두 번째로 경제규모가 큰 주다. 만약 사우스코리아가 미국으로부터 독립한다면 G7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경제규모가 크다.[2] 사우스코리아 주 하나가 세계 GDP 10위 수준이다. 특히 미국이라는 압도적 국력을 가진 국가의 수혜를 입은 것도 크게 작용했지만, 대부분의 경제력이 70~80년대 집권한 주지사들의 강력한 공업화 정책 때문이기 때문에 독립하더라도 연방정부에서 부담하는 예산 없이도 운영이 가능한 몇 안되는 주이기도 하다. 물론 바로 위에 코리아 소비에트가 존재하기 때문에 독립 직후 많은 기업들이 빠져나가 경제력은 더 떨어질 것이 확정적이다.

사우스코리아 광역권에는 판교테크노밸리가 위치해있다. 쓰리스타, SK, 네이버, 카카오 등등 쟁쟁한 IT 및 첨단전자 산업 본사가 이곳에 위치해 있으며, 서울에 본사가 있는 LG, 모던, 롯데, 코파[3], 한진, 플로우마운트[4] 역시 판교테크노밸리에 사무실이 있다. 게임제작사의 상당수도 사우스코리아에 위치하고 있다. NEXON이나 NC SOFT도 사우스코리아에 위치해 있다.

군산 인근에는 전 세계 2위 규모의 군산복합 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미 태평양 함대 일부가 이곳에 정박하고 있으며, 사우스코리아 주 방위군의 사령부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군산부터 대전까지 이어지는 금강공업벨트는 전투기, 탱크, 군함들을 생산하는 시설이 틈틈이 이어져 있다. 말 그대로 군사도시인 셈이다. 남해안을 따라 조선업이 발달해 있으며, 판교테크노밸리에서 서남쪽으로 50km 정도 떨어진 지점에는 사우스코리아 최대의 일반 공업지대가 위치해 있다.

2차~3차 산업이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1차 산업은 잘 발달하지 못한 모양새다. 산간이 많아 농사를 짓기에는 다른 주가 훨씬 적합하기도 하고, 인구가 많아 지대가 비싸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2차, 3차 산업의 경우 규모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미국이 만약 분열된다면 가장 먼저 분리를 시도할 주로 다른 주와 함께 항상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첫 번째 주는 당연히 텍사스 주이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픽션에서 미국에 편입되지 않은 코리아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런 특징 때문에 1998년 MLB에서 태평양 지구로 새로 분류해 사우스코리아 주와 하와이 주, 알래스카 주를 이 지구에 포함 시켰다.[5] 물론 아메리칸 리그에서나 내셔널 리그에서나 다른 지구들 보다 경기력이 한 층 떨어진다고 인식된다.[6] 그러나 지구를 새로 부여 받은 만큼, 태평양 지구에 할당된 8개 구단 모두가 연고를 사우스코리아로 두고 있다. 구단은 대구 라이언즈, 서울 히어로즈, 인천 랜더스, 판교 다이노스, 대전 이글스, 백사 베어스, 광주 챌린저스, 잠실 드래곤즈이다.

미국 내에서 마약류와 총기류에 관한 단속이 가장 엄한 지역이다. 총기 문제 때문에 주기적으로 NRA에게 주지사가 항의를 받는 곳이 바로 사우스코리아이다.[7]

다만 어두운 면도 엄연히 존재하는데, 소득에 비해 집값 및 생활비가 비싸다는 점, 부유한 서울-판교라인을 벗어나면 상대적으로 가난한 동부가 문제되고 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인구과밀로 인한 교통체증이다. 사우스코리아는 1km제곱당 무려 400명이 넘게 생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심부로 다가갈 수록 고층 멘션으로 도배된 도시를 볼 수 있다.

사회

인구

미국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주이다. 1990년까지는 가장 인구가 많은 주였으나, 1991년 캘리포니아 주가 제쳐 가장 인구가 많은 주라는 타이틀을 넘겨주었다.

인종 비율은 코리아계 아시아인 95.1%, 백인 3.3%, 기타 아시아인 1% 정도이다. 지난 2000여 년 간 단일민족 국가였던 것이나 미국 본토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주라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코리아계 아시아인의 비율이 압도적이며, 이외에는 투자나 사업을 목적으로 이곳을 새 정착지로 택하는 백인이 소수 있는 정도이다. 반면 흑인 인구의 비율은 역시나 미국 전체에서 가장 낮은데, 당장 경제적 이유로 당시 흑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먼 지역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하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요 대도시에서는 흑인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인종 구성이 굉장히 단순하기 때문에 다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지 않아, 가끔씩 인종 갈등 상황이 뉴스에 나오는 경우도 존재한다.

코리아계 아시아인이 꽉 쥐고 있는 주 답게 코리아어가 널리 두루두루 쓰이고, 웬만한 공공시설에는 코리아어가 병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단지 등도 영어와 코리아어 두가지 버전으로 배부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외에도 코리아계 미국인 또는 코리아계 아시아인이라는 명칭으로 분류되는데, 이 수가 약 5~6천만 명이다. 사우스코리아 주 자체의 인구는 4천만 명 수준에서 머물러 있지만, 본토로 진출한 코리안 아메리칸이 15백만에서 18백만 가까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 인구가 대략 3억 9천만 명이니 15% 가까이가 코리아인인 셈이다. 특히 본토 거주 코리아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은 캘리포니아 주로 본토 코리안의 약 20%가 이곳에 산다고 한다. 그 다음은 텍사스이다. 대략 15%.

교육

주립대학인 사우스코리아 대학교(University of South Korea, USK)가 교육 프로그램이 빡빡하기로 유명하다. USK계열은 미국 내 주립대학 중 UC계열과 함께 최강의 시스템을 갖춘, 자타공인 미국 국공립 교육기관 최정상이다. UC 버클리와 함께 주립대학 최상위 레벨로 이름이 올라가 있는 캠퍼스는 USK 서울이다. 그 외에도 USK 대전, USK 송도, USK 울산 등이 이 주에 위치한다. 사립대학교도 그로스 대학교, 코리아 대학교, 사우스코리아 공과대학교(SKIT) 등 유명한 학교들이 많다.

다만 예술 쪽으로는 부진한 지역이다. 순수미술이나 상업예술 두 분야 모두 본토의 대학교보다는 못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그래서 보통 예술 계열 학생들은 사우스코리아 내에서 있으려 하지 않고 본토 대학을 많이 알아보는 편이다. 그나마 유명한 대학교는 코리아 예술학교(Korarts) 정도이다. 물론 콜라츠도 산업 디자인이 주력이긴 하다. 그래도 콜라츠 덕분에 사우스코리아 주의 공업회사들이 본토까지 인재를 구하러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나마의 위안이다.

정치

사우스코리아 주의회의 원내 구성
South Korea State Legisl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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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야당

사우스코리아 민주당
 23석 46석 

사우스코리아 공화당
 18석 36석 
재적 상원 41석 · 하원 82석

1948년 연방에 편입될 때만 해도 미국 내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지만, 70년대와 80년대에 급속한 공업화를 겪으며 지금 생활 수준은 미국 평균 수준으로 올라왔다. 물론 인구는 1948년 당시부터 1991년 캘리포니아에게 제쳐질 때 까지 압도적 1위를 유지했었다. 이에 따라 하원의원과 대통령 선거인단 배정 숫자도 48명으로 2번째이다. 앞과 뒤의2개 주가 민주당/공화당 지지성향이 거의 고정적인데 반해[8] 사우스코리아는 1996년 이후 선거 때마다 중도층이 주도하는 대표적인 스윙스테이트[9]인지라 양당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전체적으로 금강과 영산강 유역은 민주당 텃밭, 서울 등의 대도시는 민주당 경합 우세지역이며, 낙동강 유역, 농촌지역, 은퇴자들이 거주하는 교외 지역은 공화당의 텃밭인 형국이다. 투표원 인종 구성은 2010년 기준 코리아인이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보수성향이 강한 한국계 아시아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주임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이 이곳을 장악하지 못하고 스윙스테이트 내지는 민주당 약우세 지역이라고 평가받는 까닭은 바로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영향 때문이다.[10] 사우스코리아는 민주당 출신의 트루먼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비율은 다른 모든 주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특히 편입 당시의 결단과 그것을 지지해준 민주당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좋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사우스코리아의 투표율이 60%를 넘은 경우 공화당이 선거에서 승리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선거인단이 사우스코리아 선거인단 수로 뒤집힐 상황에서 초접전 상황이던 사우스코리아 주가 1,400여표 차로 승패가 갈리며 재검표까지 가기도 했는데, 이런저런 사유로 대통령 취임 일정까지 꼬이게 되자 연방대법원 직권으로 재검표를 중단하면서 결국 앨 고어가 패배를 인정하고 조지 워커 부시가 잠정 수천 표 차로 진땀승해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었다. 다만 당시엔 이 재검표 중단으로 인한 부정선거 논란이 한동안 거세게 일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 미트 롬니 후보를 약 7만 5천여표, 0.43%p 격차라는 근소한 차이로 패배시킨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49.9%로 승리했는데, 11월 6일에 선거를 했지만, 11월 9일 밤이 되어서야 개표가 끝났다. 2016년 대선 때에는 49.9%를 득표한 트럼프가 49.7%를 득표한 힐러리를 상대로 0.2%p차이로 사우스코리아에서 근소하게 승리하였다. 그리고 사우스코리아의 선거인단이 48명이나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트럼프의 대선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11]

2020년 대선에서도 여론조사 기관들은 역시나 경합으로 분류하고, 트럼프의 경합 우세로 예상하고 있었으나[12] 실제 결과는 바이든이 10.7%p차로 트럼프를 상대로 압승했는데[13], 이는 트럼프가 노스코리아 문제를 언급하며 코리아 주의 연합 또는 새로운 주의 연방 가입을 시사하며 고령층과 코리아주의자들에게 어필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이 이번 선거에서 이 지역의 유권자에게서 이전 선거보다 더 많은 표를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투표하지 않던 낙동강 유역의 표심이 상당수 바이든을 향해 세간의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보는 것처럼 사우스코리아는 공업화가 완전히 끝나고 첨단화가 시작된 시기인 1990년대 즈음부터는 노동자의 힘이 굉장히 강해졌다. 또 첨단화가 지속되면서 현재 민주당의 주류 지지층이 형성되었다. 노동자층은 2016년 트럼프를 선택했고, 막상 트럼프가 사우스코리아 노동자와 본토 노동자 사이에 차별적인 정책을 들고 오자 표심은 완전히 기울어 2020년 바이든이 노동자 계층의 몰표를 받게 된다.

민주당 오픈프라이머리가 열리면 보통 캘리포니아나 뉴욕과 같은 인구가 많은 주와 함께 경선을 치르지 않고, 하와이나 알래스카와 함께 경선 일정이 잡히는 편이다. 공화당의 경우 슈퍼 화요일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다. 사우스코리아에서 프라이머리가 벌어지는 주의 전 주가 되면 대통령 후보들과 주변인들이 모두 꼬박 밤을 새고 사우스코리아까지 날아와 선거유세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코리아계 아시아인의 미국 내 인구가 55백만임을 감안해 사우스코리아에 왔을 때 미숙한 코리아어를 가끔씩 선보이기도 하는 등 정말 맞춤형 선거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민주당 프라이머리의 경우 보통 캘리포니아와는 다른 날에 경선을 치르기 때문에 경선에서 크게 뒤지는 후보가 사우스코리아에서 역전할 발판을 마련하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14] 그런 후보의 경우 보통 슈퍼화요일 이후에 바로 사우스코리아로 날아와 대부분의 경선 일정을 소화한다.

1996년 이전

물론 1996년 이전에는 그런 경향은 거의 없었다. 1996년 이전 공화당이 사우스코리아에서 승리한 경우는 로널드 레이건 1번과 조지 H.W. 부시 2번으로, 둘 모두 사우스코리아에 직접 와서 가족애에 기반한 보수주의에 대한 열정적인 신념, 그리고 사우스코리아 공업지대에 대한 전폭지원 지원을 이야기하고 나서 사우스코리아의 선택을 받았다. 당시 사우스코리아는 블루스테이트라는 인식이 이미 널리 퍼져있어, 해리 S. 트루먼 대통령 이후 존 F.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대통령을 제외하면 아무도 대통령 신분으로 사우스코리아를 방문하지 않았었다. 특히 닉슨의 경우에는 대통령 재임 중에 "왜 미국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한 사실이 밝혀져[15] 2기 재선 때 닉슨의 재선을 위협하기도 했다.[16][17]

사우스코리아의 공화당에 대한 분노가 풀어진 것은 1979년의 레이건 방문 때로, 아직 선거 기간이 아니었지만 사우스코리아에 직접 와서 소외된 선거구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바로 승리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사우스코리아에서 무려 48%를 득표해 카터 대통령과 1%p 수준의 초접전 끝에 선거인단 획득에 패배한 것이라 시사하는 바가 컸다. 레이건은 지지율이 고공행진하는 순간에도 주요 일정에서 사우스코리아 방문을 빼놓지 않았고, 이는 재선 때 확실한 효과를 발휘해 로널드 레이건은 공화당 후보 중 최초로 사우스코리아 주의 선거인단을 획득하는 주인공이 되었다.[18]

1976년까지 사우스코리아는 모두 민주당 후보를 선택함과 동시에 항상 60% 이상의 지지를 보내던 충성심이 강한 곳이었다. 1948년 승인 직후에 치러진 대선에서 트루먼 대통령이 88.45%를 득표해 총 10,108,327표를 받은 이후로 득표율은 당연히 넘은 후보가 없었고, 득표 수는 2020년에 와서야 바이든이 1183만 표를 받으며 이를 넘어섰다.[19] 트루먼 대통령 이후에도 아이젠하워가 압도적으로 승리한 1952년과 56년의 선거에서도 사우스코리아는 상대 후보인 애들레이 E. 스티븐슨에게 76%, 70%의 지지를 보내줬다. 60년 존 F. 케네디가 71%, 64년 존슨이 76%, 68년 험프리 63%, 72년 무스키 79%, 76년 카터 75%로 48년부터 7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모두 민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주었다.

이런 민주당 지지세가 꺾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 대통령의 재임기였다. 당시 카터 행정부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막 중공업 단지를 조성하던 사우스코리아 주는 당연히 극심한 침체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경기 불황이 닥쳐오자 사우스코리아 내에서 민주당에 대한 지지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급격히 증가했으며, 동시기 카터가 사우스코리아를 방문한 적이 없는 것과 더불어, 레이건이 선거 유세에서 사우스코리아에 직접 찾아와 자신이 생각하는 가족에 기반한 신보수주의[20]와 군수산업 단지 조성에 적극적인 투자를 약속하면서 선거 전 여론이 요동쳤다. 결과적으로는 카터가 49%, 레이건이 48%를 얻어 레이건이 패배하기는 하였지만, 레이건이 받은 48%는 당시 역대 공화당 후보가 받은 그 어떤 지지보다 많았으며, 직전 선거에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받은 23.9%를 두 배 이상 뛰어넘은 대 기록이었다.[21]

레이건이 재선에 나섰을 때 사우스코리아에서 얻은 득표율인 55.24%는 전후의 어떤 공화당 후보도 넘지 못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22][23]

역대 주지사

대수 이름 취임일 퇴직일 정당
1대 싱먼 리 1948년 9월 10일 1963년 1월 20일 민주당
2대 케이든 허트 1963년 1월 20일 1967년 1월 20일 민주당
3대 제임스 파월 1967년 1월 20일 1975년 1월 20일 공화당
4대 리처드 리 1975년 1월 21일 1979년 1월 20일 민주당
5대 조지프 스펜서 1979년 1월 20일 1987년 1월 19일 공화당
6대 딜런 켈리 1987년 1월 19일 1995년 1월 19일 민주당
7대 헤일리 파월 1995년 1월 19일 2003년 1월 19일 공화당
8대 놀란 하퍼 2003년 1월 19일 2007년 1월 19일 민주당
9대 이선 웨스트 2007년 1월 19일 2015년 1월 19일 공화당
10대 제임스 홀 2015년 1월 19일 2019년 1월 19일 공화당
11대 찰스 A. 터너 2019년 1월 19일 현직 민주당

상기한 내용과는 달리 대통령 선거가 아닌 주지사 선거에서는 이미 1960년대에 공화당이 주지사를 배출하기도 하는 등, 공화당이 생각보다 선전하고 있다. 공화당 소속의 헤일리 J. 파월(7대, 1995~2003)이 당선되어 재선까지 성공했지만 재정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하지만 헤일리 주지사는 개인적으로 첫 여성주지사이기도 했고, 그의 아버지가 사우스코리아의 공업화의 기틀을 마련한 제임스 파월 주지사였기 때문에 엘리트라는 인식이 박혀있어 이미지가 집권 내내 좋았던 것도 있다.

헤일리 파월 주지사가 집권한 1995년 이후 28년간 민주당 주지사는 2002년과 2018년 겨우 두 명 뿐이었다. 그나마 둘 중 하나인 하퍼 주지사는 방만한 재정운영으로 재선 도전 의사를 밝혔지만 경선에서 떨어져 버린다. 초기에 하퍼는 교육 개혁을 주도하며 긍정적인 여론이 우세했으나,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재정 악화로 민심을 잃었고, 결국 재선 도전 의사를 밝혔지만 자당 경선에서 선택 받지 못한 유일한 현역 주지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 때의 여파가 웨스트 주지사의 2연승, 그의 법무장관이었던 홀의 신승으로 이어지며 사우스코리아 민주당의 10년이 넘는 암흑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018년에는 민주당 찰스 터너가 주지사가 정권을 탈환했는데, 정권 초기에는 과학단지 조성 및 판교테크노밸리에 대한 집중적 지원, 인접 산업단지로의 유기적 결합 정책으로 지지세가 높았지만 2020년 판데믹 사태가 터지자 지지율이 곤두박질 쳤다. 방역 실패 때문이 아니라, 본토와 사우스코리아 사이의 물동량이 급감하면서 경제가 심각히 침체되었기 때문이다.[24]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압도적인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해 사우스코리아 민주당이 암흑기를 완전히 탈출했다고 평가받는다.

사람들과 성향

스윙스테이트이자 유일한 아시아 주라는 것에서 짐작하겠지만 미국 본토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1950년대에는 농업과 전통을 강조하는 배타성이 높은 주였지만, 1960년대 제임스 파월 지사가 주도한 사우스코리아의 미국화 정책(Americanization Policy)에 큰 영향을 받아 공업과 산업사회, 자유로운 분위기가 퍼졌다. 1970년대 말에는 미국화 정책이 거의 완성되어 본토와의 가치관 차이는 약간 더 보수적인 수준으로 정착하게 되었다.[25] 인종 구성도 95% 가까이가 같은 인종이다 보니 본토에서 한창 떠들썩한 PC문화는 미디어에 의해 학습되긴 했지만, 실생활에서 직접적으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본토에서 관광이나 사업 차 주에 들려서 깜짝 놀라는 리버럴 인사들이 꽤 많다.[26][27]

기독교가 75%를 넘게 차지하는 만큼 생활 상은 보수적이다. 어떻게 이런 주가 스윙스테이트인지 의문이 들 만큼 보수적이어서, 가끔 사우스코리아 출신의 민주당 상하원 의원들이 발언할 때 민주당 소속 의원이 맞나 싶은 상황이 자주 연출 된다.[28] 하지만 표현의 자유, 특히 검열과 감시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이기도 하는 등 모든 면에서 보수적인 면을 보이지 않고 사우스코리아 지역의 특성이 가미된 성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각주

  1. 민주-공화당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표를 던지는 주를 말한다.
  2. 이미 캐나다, 이탈리아의 GDP를 넘어섰다.
  3. KOPA, 구 Korea Powder
  4. Floumount, 구 Mountain Flour
  5. 당시 서부, 중부, 동부의 3리그 시스템에서 서부, 중부, 동북부, 동남부, 태평양의 5리그 시스템이 되었다. 각 리그마다 4팀이 존재하게 되었다.
  6. 다른 리그보다 적은 인구와 협소한 지역에서 치러지기 때문이다. 또한 선수들이 대부분 본토에서 지내고, 리그 전체의 경기력을 위해 사우스코리아의 연고지에서 경기를 치르는 달을 아예 정해 놓기 때문에 시즌 대부분을 어웨이에서 보내기 때문인 점도 있다. 이 때문에 몇몇 구단은 합심해서 본토에 부경기장을 세우기도 했다.
  7. 연방 정부의 총기 관련 규제 시도에서 가장 자유로운 주이기도 하다. 애초에 빡빡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본토의 총기 관련 논쟁에서 한발 짝 물러나 있는 셈이다.
  8. 한 표라도 더 많이 얻는 후보가 특정 지역의 선거인단을 싹쓸이하는 미국 대선 제도에선 각 주별 지지율이 중요하다. 캘리포니아-민주당, 텍사스-공화당은 거의 고정이라 그 사이인 사우스코리아가 중요해진다. 참고로 4위는 플로리다주.
  9. 부동층이 많아서 선거 때마다 좌우로 흔들리는(swing) 주(state). 이중에서도 인구가 많은 사우스코리아나 플로리다 등에서 우세한 정당이 주로 선거에서 승리한다. 물론 2012년 미국 대선처럼 여기서 지고도 전체 선거에선 이기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10. 보통 미국인들의 대통령 호감도를 물으면 1위 링컨, 2위 워싱턴, 3위 FDR이 나오지만 사우스코리아 주는 언제나 1위로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이 나온다. 2위부터는 FDR아니면 아이젠하워, LBJ, JFK, 레이건이 돌아가면서 나오는 등 트루먼 대통령이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11. 당시 결과는 트럼프 314, 클린턴 226로 사우스코리아의 선거인단 결과가 뒤집혔다면 트럼프 266, 클린턴 274로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것이다.
  12. 특히 7월에는 7%p까지 이기는 여론조사까지 발표된 상황이었다.
  13. 특히 낙동강 유역에서 힐러리는 30%p이상 차이로 트럼프에 패배했으나, 2020년 대선에서는 트럼프가 이 지역에서 바이든에게 7.3%p밖에 차이를 벌리지 못하는 데 그쳐 바이든이 사우스코리아에서 트럼프를 꺾는데 큰 역할을 한 일등공신 지역이 되었다. 만약 이 지역에서 트럼프가 바이든을 지난 2016년 대선 때의 격차인 30% 이상의 격차로 이겼더라면 승부는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었다.
  14. 2016년의 샌더스가 그랬다. 사우스코리아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건 덤. 물론 경선 자체는 수백 표 차로 힐러리가 이겼다.
  15. 이른바 코리아 게이트다.
  16. 닉슨은 첫 선거에서 사우스코리아에서 당시 공화당 주자 중 유일하게 33%를 받았지만, 두 번째 선거에서는 23%도 얻지 못했다. 그만큼 사우스코리아 사람들은 미국인에서 배제되는 것에 대한 분노가 심했다.
  17. 이후 워터게이트가 터지며 대통령이된 제럴드 포드 역시 선거에 나서서 사우스코리아에서 카터에게 50%p 이상의 대패를 당하며 고배를 마실 수 밖에 없었다. 이유는 당연히 "닉슨의 부통령"이었기 때문.
  18. 특히 레이건은 닉슨과 포드 행정부가 임기 내내 사우스코리아 출신의 양원 의원들의 번번한 비협조에 부딪히는 것을 보고 사우스코리아를 공략하지 않으면, 당선되더라도 제대로 된 정책을 실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이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19. 이 때 상대 후보인 트럼프는 952만 표를 받아 사우스코리아에서 역대 공화당 후보들 중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후보가 되었다.
  20. 미국 내에서도 사회, 문화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인 축에 속하는 사우스코리아에서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당시는 극심한 경제불황으로 가정의 권위가 무너지고 대가족이 해체되는 것이 사회 문제로 떠오른 상황이었다. 또한 사우스코리아 주민의 74%가 개신교를 믿는 등의 종교적 이유도 있을 것이다.
  21. 당시 존 B. 앤더슨을 선택한 유권자는 사우스코리아가 가장 적었는데, 이는 사우스코리아가 미국의 모든 주를 통틀어 사표심리가 가장 큰 주였기 때문이다.
  22. 당시 상대 후보였던 월터 먼데일은 민주당 주자 중 가장 낮은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로 남게 되었다. 득표율은 42.11%.
  23. 반대로 생각해보면 민주당은 단 한번도 사우스코리아에서 40% 밑으로 득표한 적이 없단 것이 된다. 물론 공화당도 1980년대 이후로 40% 밑으로 득표한 적이 없긴 하지만, 그만큼 민주당에 대해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24. 물론 이것은 주의 거시경제적 상황이 그렇다는 것이고 역점 사업으로 추진한 판교와 인근의 유기적 결합은 굉장히 잘 이루어져, 당시 판교와 주변 지역은 판데믹 기간 유례 없는 대 호황을 맞았다.
  25. 1930년대부터 진행되던 민주당의 이념적 변화가 공존하던 시기에 연방에 가입했기 때문에, 딱히 민주당의 어느 이념을 지지하던 느낌이 아니었다. 그러다 1980년 레이건 행정부 이후 본격적으로 본토와 같이 대도시에서 친민주당 성향, 농촌과 교외에서 친공화당 성향을 보이게 된다.
  26. 물론 그렇다고 사우스코리아를 계몽하겠다고 나서지는 못하는 것이, 사우스코리아는 대선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인데다 사우스코리아에 대해 악담을 퍼부은 대통령과 그 후계자가 사우스코리아에서 철저히 외면 받은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조심하는 것에 가깝다.
  27. 아직도 사우스코리아에서 닉슨과 포드는 미국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힌다. 보통 이유를 물으면 "분리되지도 나누어지지도 않는다"라고 답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표어인데, 당시 닉슨의 상대였던 무스키가 인용하면서 사우스코리아에서 유명한 인용구가 되었다.
  28. 가령 쟁점으로 분류되는 낙태 문제에 있어서도, 사우스코리아 의원들이 가장 많이 소속된 청견연합의 대부분은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