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역사 분기점 문서 목록
  • 세 개의 제국의 작중 설정과 실제 세계와의 분기점을 정리한 문서입니다.

국가적 분기점

열강 3국

독일 D e u t s c h l a n d
1701년 프로이센을 형성하며 새로운 군사 강국으로 성장했으나, 나폴레옹 전쟁에서 연달아 패배하며 1807년 틸지트 조약으로 프랑스의 속국 상태가 된다. 여기에 쾨니히스베르크의 난으로 왕국이 건립되었고 프로이센은 브란덴부르크로 개칭되어 사실상 분열된다. 전쟁이 끝난 후 라인 동맹과 함께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으나 1848년 혁명으로 독립되었다. 1862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에 의해 철혈 정책을 추진하여 독일 통일에 앞장섰으며 1870년 독일이 통일되었다. 독일 통일 이후 게르만 동맹을 맺었으나 신생 동맹의 영향력에 밀리게 되고, 결국 1912년 빈 선언을 통해 패권 강화를 추진했다. 한편 1900년대부터 독일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미텔오이로파 계획을 기획해 세계 정복을 추진하려 했고, 1910년 삼국 협정을 맺어 삼국 연합의 형성이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1914년 대전쟁에서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삼국 동맹을 무찔렀고, 이렇게 해서 독일은 미텔오이로파와 함께 큰 영향권을 가질 수 있었다.
→ 실제 역사 보기
1701년 프로이센을 형성하며 새로운 군사 강국으로 성장했으나, 나폴레옹 전쟁에서 연달아 패배하며 1807년 틸지트 조약으로 프랑스의 속국 상태가 된다. 그러나 1812년 다시 대프랑스 동맹에 참여하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신성 동맹을 맺어 자유주의 운동을 탄압, 1848년 혁명에서도 프로이센의 탄압으로 자유주의를 억압해 지주 지배 체제를 강화시켰다. 1862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에 의해 철혈 정책을 추진하여 독일 통일에 앞장섰으며 그 결과 1871년 독일이 통일되었다. 하지만 독일의 통일 이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고, 전후 공화국이 수립되었지만 히틀러의 등장과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으로 히틀러의 나치당이 승리해 1933년 총통으로 취임했다. 베르사유 조약을 묵인하여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1945년 패망할 때까지 영국, 미국, 소련, 프랑스 등의 연합국과 싸웠고, 패망 이후 연합국에 의한 군정을 거쳐 독일의 분단이 일어난다. 그렇게 탄생한 동독과 서독은 각각 공산 진영과 자유 진영에 가담했고, 1961년에는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면서 두 나라 간의 갈등이 깊어졌으나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한 끝에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재통일되었고 현재까지 높은 복지, 높은 경제 규모, 높은 군사력을 가진 유럽의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프랑스 F r a n c e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왕국이 혼란에 빠진 사이 1791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등의 반혁명 세력들의 참전으로 프랑스 혁명 전쟁이 발발했다. 제1공화국으로 출범한 프랑스는 입법의회, 국민공회,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를 거쳐 총재정부를 통해 공화정 체제를 유지했으나 1799년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실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이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확대되었고 결과적으로 러시아 침공 당시 러시아-페르시아 전쟁과 겹치며 러시아를 뚫고 들어오는데 성공한다. 이후 유럽의 패권을 장악한 프랑스는 다수의 식민지를 차지하며 경제 성장을 촉진시켰으나 1848년 혁명에서 식민지 일부를 잃었고 대부분 식민지에 자치권을 부여해야만 했다. 심지어 1868년 장 알렉산드르 크로이스혁명으로 보나파르트 왕조가 몰락했고, 이는 후에 있을 영국과 프랑스 간의 교류가 시작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대전쟁에서 삼국 연합을 이끌며 전쟁을 승리로 가져오게 되었으며 추가로 대프랑스 연합을 결성해 현재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실제 역사 보기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왕국이 혼란에 빠진 사이 1791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등의 반혁명 세력들의 참전으로 프랑스 혁명 전쟁이 발발했다. 제1공화국으로 출범한 프랑스는 입법의회, 국민공회,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를 거쳐 총재정부를 통해 공화정 체제를 유지했으나 1799년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실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이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확대되었고 결과적으로 프랑스의 패배로 끝난다. 프랑스가 패배하자 부르봉 왕조의 왕정복고을 거쳐 7월 왕정을 이루었으나 2월 혁명으로 제2공화국이 수립된다. 1851년 쿠데타로 인하여 제2제국이 수립되고, 1870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으로 알자스를 잃어 다시 공화국으로 회귀했다.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은 물론,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전국이 되었다. 현재 프랑스는 제국주의의 유산으로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데도 프랑코포니를 이끌며 여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영국 B r i t a i n
영국은 대항해시대를 겪으며 식민지 개척에 나섰고, 연합법 제정 이전까지 스코틀랜드잉글랜드로 분리되었지만 사실상 동군연합에 불과했다. 그러다 1707년 연합법이 제정됨에 따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수립되었다. 수립 이후 1801년에는 아일랜드까지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으로 확대되었다. 이후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나폴레옹 전쟁에 참여하였으나, 1810년 반전 운동의 여파로 전쟁에서 빠지게 된다. 비록 전쟁에서는 패배했지만 영국은 남아메리카에서 패권을 쥐게 되었고, 빅토리아 시대 기간 동안 프랑스가 혁명으로 위기를 맞은 사이 경제 면에서 프랑스를 따라잡기에 이른다. 그러다 1880년대에 들어서며 프랑스와의 동맹을 추구했고 그 결과 앵글로-프랑스 동맹을 결성했다. 이 동맹은 2차에 걸쳐 결성되었고 훗날 타 동맹과의 경쟁이 대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만다. 그러나 대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밸푸어 선언을 발표, 영연방을 결성하며 자국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 실제 역사 보기
영국은 대항해시대를 겪으며 식민지 개척에 나섰고, 연합법 제정 이전까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로 분리되었지만 사실상 동군연합에 불과했다. 그러다 1707년 연합법이 제정됨에 따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수립되었다. 수립 이후 1801년에는 아일랜드 왕국까지 합병하며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으로 확대된다. 이후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나폴레옹 전쟁에 참여하였고, 이후 워털루 전투에서 프랑스를 완전히 저지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로 빅토리아 시대를 열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대영제국의 팽창주의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된다. 이로 인해 '팍스 브리타니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국에 의한 평화 시대가 1914년까지 이어진다. 영국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후 국제 연맹의 일원이 되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크게 활약하며 독일과 일본을 저지시키는데 한 몫 했다. 영국은 전쟁이 끝나면서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창립국에 들어가 미국과 함께 자유 진영을 이루었고, 냉전이 끝난 후에도 영연방이란 국제 기구를 만들어 자국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시대·사건적 분기점

나폴레옹 전쟁 G u e r r e N a p o l é o n i e e n n e s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지 약 10년이 지나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브뤼메르 쿠데타가 발생하며 제1통령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이에 영국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은 혁명 전쟁을 계속했지만 1802년 아미앵 조약을 체결함에 따라 혁명 전쟁이 종료된다. 2년 뒤 프랑스의 국민투표를 통해 프랑스 제국을 수립함에 따라 아미앵 조약을 파기하고 영국에 선전 포고를 감행한다. 이렇게 해서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이 결성되며 프랑스에 대한 전쟁을 개시하게 된다. 그러나 프랑스는 엄청난 군사력으로 대프랑스 동맹은 전투에서 패배할 수 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신성 로마 제국이 1806년 몰락하고 프로이센이 1807년 휴전을 선언한데다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와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면서 대프랑스 동맹을 탈퇴하는 등 큰 타격을 입기에 이른다. 그리고 트리팔라 해전에서 프랑스가 패배함에 따라 대륙봉쇄령으로 영국을 봉쇄하고자 했으나, 봉쇄 이후 양국 모두 경제적 불황이 일어났지만 영국에 경제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영국은 1810년 불황과 함께 반전 운동이 일어나 프랑스와 휴전을 맺고 전쟁에서 빠졌으며, 1812년 러시아가 페르시아와 전쟁을 벌이는 사이 러시아 침공을 시작한 끝에 양쪽에서 밀리던 러시아는 평화 조약을 끝으로 전쟁이 종료된다.
→ 이후 상황 보기
영국은 결과적으로 대륙봉쇄령으로 경제적인 타격을 입었고, 1810년 경제 불황과 함께 반전 운동으로 전쟁에서 이탈했기에 상당히 큰 피해를 입었다. 이 때문에 조지 3세는 물러났고, 대륙봉쇄령으로 무역을 할 수 있는 지역이 차단되자 프랑스가 유럽의 패권을 쥐는 사이 남아메리카에서 패권을 쥐게 되는 원인이 된 것이다. 이후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로 영국은 사실상 전성기를 맞게 되었고, 1848년에 일어난 혁명으로 프랑스의 패권이 점점 약화되는 사이 영국이 다시 유럽의 패권을 쥐게 되었다.

프랑스는 나폴레옹 전쟁의 승전국이 되었고, 대륙봉쇄령에 의한 경제 불황과 물자 부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원정에 대한 적절한 시기, 강한 군사력 등으로 승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패권을 쥐게 되어 영국 입장에서는 꽤 충격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로써 프랑스는 황금기를 맞기에 이르렀는데 영국과의 패권 경쟁은 여전했고, 나폴레옹의 사망 이후 루이 나폴레옹이 통치하며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가 1848년 유럽에서 국민주의 혁명으로 일부 식민지들의 독립을 인정하거나 자치권을 보장해야 했다.

독일은 전쟁이 끝나고 라인 동맹과 함께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물론 프로이센은 전쟁 당시 프랑스에 밀리며 틸지트 조약을 맺은 것과, 쾨니히스베르크의 난으로 인해 왕국이 분열되었던 것도 프로이센의 위기를 가져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샤른호르스트 등의 개혁파들이 프랑스의 주둔 아래 탄압을 당하게 되고 국민들은 프랑스에 의한 핍박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다 1848년 3월 혁명으로 독일 국민주의와 자유주의를 외치기 시작해 결론적으로 북독일과 남독일로 독립하게 이르렀고 이는 1870년 독일의 통일의 원인이 된다.

러시아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프랑스의 침공을 막지 못해 사실상 프랑스의 동맹국 신세가 된 것은 물론, 캅카스 일부 지역과 부하라, 히바 지역을 잃었다. 이렇게 러시아는 프랑스의 공격으로 제대로 된 성과도 없이 패배해버리며 국력이 손실되었으나, 1860년대에 다시 강대국 지위를 회복하였고 1895년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맺으며 삼맹 시대에서 두 번째로 큰 군사 동맹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대전쟁에서 삼국 동맹에 참여하였으나 또 패배하며 영토 자체까지 상실하며 멸망의 길을 걷는다.

스페인, 포르투갈은 반도 전쟁에서 패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식민지 신세가 되어버리면서 그야말로 이베리아의 두 제국을 프랑스가 몰락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스페인은 후에 카스티야가 되었고, 포르투갈은 식민지 전체를 프랑스에 넘기는 대신 경제 원조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1848년 카스티야와 포르투갈의 국민들은 자치 혹은 독립을 요구하였고 그 결과 프랑스가 이 곳에 자치권을 주게 되었다. 그러나 자치권 부여에 반발한 시민들은 현재까지 독립운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이념적 분기점

제국주의 I m p e r i a l i s m
제국주의는 작중 세계관에 등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상으로, 영국의 대영제국, 프랑스와 독일의 식민제국, 일본의 일본 제국 시대 등을 그 일부로 보고 있다. 제국주의가 시작된 것은 17세기 후반부터 시작되었고 대항해시대가 정점에 달하던 18세기 때부터 그 존재감이 드러냈으며 더 많은 식민지를 확보하기 위해 나라 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국 뿐만 아니라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 오스만 등의 유럽 열강부터 아시아의 유일한 열강인 일본까지 다양한 열강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1880년대 이후 게르만 동맹, 러시아-튀르크 동맹, 앵글로-프랑스 동맹의 등장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삼맹(三盟)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런 양상은 1900년대부터 깨지기 시작해 결국 대전쟁에서 삼국 연합과 삼국 동맹으로 찢어지는 결과를 낳았으며 결국 삼국 연합의 승리로 삼국 동맹을 포함해 비삼국 열강들은 완전히 몰락한다. 그러나 아메리카 전쟁 이후 많은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1969년 PLB 선언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반삼국 운동을 전개해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반제국주의적 운동을 펼치게 되었고, 그 결과 영국, 프랑스, 독일은 이 선언을 통해 독립보다는 자치를 택하면서 강압적 제국주의를 포기하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완전히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현재까지 식민제국주의 국가이며, 여전히 독립을 요구하는 세력이 남아있어 삼국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고 있다.
→ 관련 국가
프랑스 식민제국 (1534년 ~)
대영제국 (1607년 ~)
독일 식민제국 (1884년 ~)

오스만 제국 (1299년 ~ 1920년)
포르투갈 식민제국 (1415년 ~ 1812년)
스페인 식민제국 (1492년 ~ 1812년)
덴마크 식민제국 (1536년 ~ 1848년)
네덜란드 식민제국 (1602년 ~ 1828년)
스웨덴 식민제국 (1638년 ~ 1721년)
  합스부르크 제국 (1719년 ~ 1915년)
러시아 제국 (1721년 ~ 1921년)
미국 식민제국 (1817년 ~ 1940년)
일본 제국 (1860년 ~ 1926년)
→ 관련 인물·단체
→ 관련 사건
대항해시대 (1492년 ~ 18세기 말)
나폴레옹 전쟁 (1803년 ~ 1812년)
1848년 혁명 (1848년 ~ 1849년)
독일의 통일 (1870년)
삼맹 시대 (1872/1895년 ~ 1914년)
대전쟁 (1914년 ~ 1926년)
반삼국 운동 (1940년 ~ 1969년)

자유주의 L i b e r a l i s m
자유주의는 제국주의에 대응되는 이념으로 개인의 자유를 지향하고 경제적, 사회적 자유를 보장하려는 사상이다. 자유주의는 명예혁명, 미국 독립 전쟁, 프랑스 대혁명, 신해혁명 등에 철학적인 기반을 이뤘던 사상이지만 작중 세계관에서 자유주의 운동은 1848년 유럽에서 일어난 국민주의 혁명과 반삼국 운동이 대표적이다. 자유주의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토마스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그 기원으로 보고 있다. 그러다 존 로크와 몽테스키외에 의해 자유주의를 정초하였고, 이후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를 기반으로 현대적 자유주의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사상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거쳐 1848년 국민주의 혁명으로 유럽의 패권을 쥔 프랑스를 굴복시켰고, 이후 1940년 반삼국 운동으로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전 세계적인 자유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으로 인해 1969년 PLB 선언을 통해 영국, 프랑스, 독일도 자유주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인권과 자유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 관련 인물·단체
→ 관련 사건
명예 혁명 (1688년)
미국 독립 전쟁 (1775년 ~ 1783년)
프랑스 혁명 (1789년)
1848년 혁명 (1848년 ~ 1849년)
신해혁명 (1911년 ~ 1912년)
반삼국 운동 (1940년 ~ 1969년)
PLB 선언 (1969년)

공산주의 C o m m u n i s m
공산주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다'라는 핵심 원칙을 통해 인간의 평등을 저해하는 부와 계급을 철폐하고 생산 수단을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상이다. 공산주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에서 비롯되었으나 플라톤의 《국가론》,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등에서 기원된다. 최초의 공산주의 운동은 1870년 파리 코뮌으로, 이 운동 이후 사회주의 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하지만 1922년 소비에트 봉기, 1924년 울란바토르 봉기가 실패하면서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운동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반대로 1921년 중국공산당, 1922년 일본공산당, 1925년 조선공산당의 창당으로 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 운동이 등장했다. 유럽에서는 스탈린과 트로츠키가 등장하며 세력을 넓혀갔고, 아시아에서는 추수폭동, 3·15 봉기 등을 일으키며 조직적 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1933년 러시아에서 PCRS국제혁명기구가 조직되었고, 1940년대부터 반삼국 운동을 포함해 무장 투쟁, 민중 봉기를 지속해나갔다. 그 후 1960년 극동 대투쟁을 시작으로 1968년 68혁명을 통해 역사상 최대 사회주의 운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재정 부족과 함께 영국, 프랑스, 독일의 탄압으로 약화되었고, 이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또한 온건 좌파(사민주의와 진보주의) 계열 역시 반공주의 이념을 따르며 이를 배제하는 시도를 하고 있어 공산주의의 종말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 관련 인물·단체
→ 관련 사건
공산당 선언 발표 (1848년)
파리 코뮌의 수립 (1870년)
소비에트 봉기 (1922년)
추수폭동, 3·15 봉기 등 아시아 사회주의 운동 (1927년 ~ 1931년)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조직 (1933년)
반삼국 운동 (1940년 ~ 1969년)
극동 대투쟁 (1960년)
68혁명 (1968년)
붉은 발칸의 날 (1992년)
공산당의 돌풍 (2002년 ~ 2014년)

전체주의 T o t a l i t a r i a n i s m
전체주의는 공동체와 국가를 개인보다 최우선으로 하고 개인을 전체의 발전을 위한 수단의 일부로 삼는 사상이다. 전체주의에서 좌파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우파는 파시즘으로 나타낸다. 우파에서의 시작은 조반니 젠틸레에 의해 이론적 기초를 세웠고, 그 후 베니토 무솔리니가 미래주의 선전을 통해 파시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리고 1922년 로마 쿠데타를 일으키며 최초의 파시스트 국가의 건국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1930년대에는 불의 십자단으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극우 운동에 의해 유럽 내 파시스트들이 유럽파시스트행동을 결성하고 유럽 지역에 반란을 시도했다. 뿐만 아니라 1920년대 독일에서는 나치당의 등장으로 당시 독일의 제국주의 체제에 반대하기도 했다. 유럽파시스트행동은 1954년 해산될 때까지 강경한 무장 투쟁을 주도했으나, 1970년대 이후부터는 극우정당의 주류적인 형태로 나타내게 되었다. 현재는 거의 사라졌으나 여전히 파시즘을 표방하는 정당이나 정치 단체들이 주도하고 있기에 영향력이 남아 있다. 좌파에서는 볼셰비즘을 따르는 스탈린의 독자적 사상인 스탈린주의가 유일하며 이후 중국공산당, 러시아 소비에트 임시위원회 등의 단체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라 포장된 이념을 받아들이며 세계 공산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1970년대 후반 공산주의 운동이 약화되면서 스탈린주의도 자연스레 사라져갔고, 1990년대에는 소수의 스탈린주의 세력만 남게 될 정도로 입지가 크게 줄었다.
→ 관련 인물·단체
→ 관련 사건
로마 쿠데타 (1922년)
뮌헨 폭동 (1923년)
추수폭동 (1927년)
유럽파시스트행동의 결성 (1930년)
독일 자유우국단의 결성 (1933년)
2·26 사건 (193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