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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성적우수 특별임관자
특채 임관자
육군
이주환 윤승재 나후미 박채아 유성현
해군
권성민 김정혜 유채연 이보현 이시훈
공군
박지은 김예빈 이유리 민희진 이예린
정보군
문혜주 이보람 김다윤 최재혁 김민재
황실군
한예슬 황석현 문채월 설은지 설은정
시바오카 나후미
芝岡 奈史
SHIBAOKA NAFUMI
생애 1997년 2월 18일(1997-02-18) (27세)
출생일 1997년 2월 18일(1997-02-18) (27세)
출생지 청화국 청화국 금양부 해령구 나산읍
부모 시바오카 나오츠네
母 시바오카 카나미
친척 시바오카 히카리(동생)
학력 군천황립대학교 군사대학 군사학 학사
복무 청화국 청화국
복무 기간 2016년 7월 8일 ~ (현재)
최종 계급 중령
근무 청화국 국가 방위군
지휘 제20전투단
주요 참전 분리수거 작전
서훈 내역 국가무공훈장 분리수거 작전 훈장

최초의 일본인 출신 청화국 군인이자 분리수거 작전의 입안자로서 수백의 난민학살을 전두지휘한 여성 그덕에 입관 2년차에 중령에 오른 인물

개요

시바오카 나후미(일본어: 芝岡 奈史 (しばおか なふみ), 1997년 2월 18일 ~ )는 청화국의 일본인 출신의 군인이다. 분리수거 작전의 최초 입안자이며 직접 작전에 참여하여 당시 작전 총책임자였던 국방대신 최동균으로부터 국가무공훈장분리수거 작전 훈장을 수여받았다. 분리수거 작전에 대한 일부 아이디어를 동생인 시바오카 히카리에게 제공받아 작전을 계획했다고 한다.

군천황립대학교 군사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동생과 함께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청화국 국적을 취득했다.

생애

1997년 4월 1일 금양국립대학병원에서 당시 주청 일본 대사 시바오카 나츠오네 부부의 장녀로 태어났다.

외교관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청화그룹이 운영하는 금양의 현일초등학교와 금양 현일여자중학교를 거쳐 금양 현일여자고등학교에 수석 입학했다. 현일여자고등학교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으며 현일여자고등학교 2학년 때 청화예술대학교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2014년에 아버지인 시바오카 나츠오네 대사가 미사키 준이치로 후임대사와 교체되며 본국으로 소환되게 되면서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능숙하지 않은 일본어 실력과 청화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영향으로 일본에 대해 느끼는 부담감 때문에 결국 현일여자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여동생 시바오카 히카리와 함께 청화국에 남기로 했다. 몸만 일본인이었지 가치관과 생활방식은 청화인이었기에 남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이후 여동생인 시바오카 히카리와 지내면서 청화예술대학교에 진학하려고 노력하던 중에 우연히 본 청화국 간부모집광고를 보고는 방송인의 꿈을 접고 군천황립대학교 군사대학을 지망하게 되었다. 군천황립대학교 군사대학[1]에 진학하게 위해서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청화국 국적을 취득했다. 2016년 현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사히 군천황립대학교 군사대학에 입학해서 훈련 및 교육을 받으면서 생활하던 중에 입학한 지 1년도 안 되서 장성 정년은퇴자가 급증하면서[2] 그 빈틈을 메우려고 급히 기존의 영관, 위관 장교를 진급시키고 나서 보니까 위관장교가 턱없이 부족해지자 김재윤 내각의 간부충원계획에 의해 군사대학 통합 성적상위 2%에 선정되어 2016년 7월 10일 바로 소위로 임관하게 되었다.[3]

처음에 배치된 곳이 제15전투단이었는데 난민특수거주구역을 감시하게 되었으며 2017년 4월 군사대학 재학중이던 시바오카 히카리에게 아이디어를 제공받아 제15전투단 본부에 분리수거 작전에 대한 초안을 보고하기도 했다.
그렇게 분리수거 작전의 개시일과 세부사항이 정해지자 새로 만들어진 제 20전투단으로 전출되며 대위로 2계급 진급했다. 20전투단 2대대장으로 직접 분리수거 작전에 참여하여 정부에 추방조치에 저항하여 난민들이 만든 이슬람 자유연합을 쓸어버리라고 지시하기도 했으며 자신이 직접 선봉에 서서 공격해나갔다. 분리수거 작전 성공 이후 작전을 계획한 공과 선봉에 서서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어 대위에서 중령으로 2계급 진급이 이루어지고 국가무공훈장과 분리수거 훈장을 수여받았다.

2018년 2월 13일 오정훈 대령이 준장으로 진급하면서 공석이 된 제20전투단의 단장에 임명되었다.
2018년 6월 2일 대령 진급 대기자 명단에 오른 것이 확인되었다.

여담

각주

  1. 군사대학은 내국인만 입학 가능하다.
  2. 2016년에 정년 은퇴한 사람들의 평균 나이가 69.7세인데 보통 1970년부터 1975년까지 입관한 사람들이며 이때 9·1전쟁으로 부족한 간부를 충원하려고 간부모집이 다른 연도에 비해서 몇 배나 높았던 시기이고 전쟁 끝난 이후로도 국토방위 명목으로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역시키지 않고 군비확장정책에 맞물려 계속 남겨뒀었다. 그게 이때 터져버린 것.
  3. 사관학교 상위2%, 원래 군사대학은 4년제지만 그 해 2%로 선정된 인원들은 모두 소위로 바로 임관했다. 그야말로 사관학교와 군사대학을 통틀어서 2016년 기수들은 운이 좋았던 것. 1년 뒤 특채로 상위 2%를 또 선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