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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플란트 사회당
Szozialisismustich Patia Auflanden
약칭 SPA, 사회당
표어 Geszet und Arbeit und Freiheit hoch
법률과 노동과 자유 만세
상징색 빨간색
이념 사회민주주의
유럽 통합주의
스펙트럼 중도좌파
당원  (2018년) 1,094,821명
당직자
대표 아를비트 텔만
부대표 프리드리히 카를
역사
창당 1849년 1월 9일
의석
대국민의회
142 / 300
유럽 의회
8 / 14

아우플란트 사회당(화령어:Szozialisismustich Patia Auflanden조지알리스무스티시히 파티아 아우플란덴)은 아우플란트 최대의 정당이다. 이념은 사회민주주의, 중도좌파를 표방한다. 약칭은 공식적으로 SPA를 쓰고있다. 1849년 창당된 이래 아우플란드 사회주의 정치 세력을 이끌어왔다.

역사

사회당은 1848년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 자극을 받아 마스베르크의 한 술집에서 3명의 대학 교수들이 모여 창당했다. 당시의 슬로건이 공산주의가 우리의 진정한 미래이다(Kommunismustich ist bir traue future)일정도로 공산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그러나 1871년 독일의 침공을 받은 이후 정당이 지하조직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당원들이 총살당했다. 이 과정에서 베른슈타인의 사회민주주의 이론을 받아들여 수정주의 노선을 표방하기도 하였는데 여기에 반발한 몇명의 당원이 현재의 혁명적 공산주의자 연합의 전신인 아우플란트 사회주의혁명당을 창당했다. 1918년 아우플란트 혁명 당시 사회주의혁명당에 외면하여 결정적으로 아우플란트 독립운동이 무산되게 하였으며, 따라서 민족주의자들에게 비판받는 점으로 작용되기도 하였다.

사회당은 1946년 독립 직후 치뤄진 총선인 아우플란트 1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하였으며, 전체 2위를 차지하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고, 아우플란트 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처음으로 총리를 배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1968년 68혁명으로 인해 당세가 위축되기도 하였으나 당내 개혁파인 발터 텔만이 대표로 선출되어 위기를 넘겼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 노선을 일부 인정하여 좌파들에게 비난받았고, 이런 우경화 현상은 2010년까지 이어져 15-M운동에 간접적 원인을 조성하기도 했다. 2012년 당내 좌파라고 부를수 있는 아를비트 텔만이 당수로 당선되어 다시 정권을 잡게된다.

이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