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생애

(광복 이전 생애 생략)

정치인 시절

건국 준비 위원회를 창설해 건국 산업을 진행하려 했으나 미군정에 의해 건준이 해산되었다. 건준의 해산 후 박헌영과 연합해 남조선 공산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박헌영의 영향으로 남조선 공산당이 좌경화되자 탈당하고 공화인민당을 창당했다. 그는 본인이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회민주주의자, 중도주의자로 규정했고 이승만,김구와 함께 남한 단독 선거를 주장했다. 남한의 단독 선거로 이루어진 1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제1대 대통령 재임기

초대 대통령으로 복지 정책의 기틀을 다졌다고 평가받는다. 당시 말이 많았던 족청을 해산시켰다. 이 일로 이범석과 여운형의 관계는 파국으로 간다. 대외적으로 여운형 독트린을 발표해 대마도, 독도, 울릉도를 한국령으로 편입했다. 또한 미국의 주선으로 장개석 대만 총독, 요시다 시게루 일본 총리와 함께 상호 방위 조약을 체결했다. 내치적으로는 당내 좌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을 외교부 장관에 임명하는 등 중도 내각을 지향했지만 조봉암 국무총리가 저격 당하는등 사회 혼란이 지속되었다. 당시 토지는 일부 지주에게 집중되었는데 그는 이에 앞서 토지 조사로 은결을 확보했다. 이후 지주들의 토지를 매입해 토지의 재분배를 실현했다. 여운형은 무상급식, 무상교육을 주장했으며 실제로 초•중학교는 무상 교육이 실시되었다.

6•25 전쟁

1950년 6월 5일 북한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했다. 여운형은 징병제를 실시하고 지청천, 이범석등 노련한 지휘관을 등용하는 한편 미국, 영국과 동맹 관계를 강화하는등 전쟁 대비에 힘썼다. 이 준비에 힘입어 한성 전투에서 승리해 남진을 저지했다. 한편 북측에서 박헌영이 권력을 장악하자 전쟁의 중단을 요청했다. 강원도 북부와 황해북도를 양도하는 조건으로 휴전 협상을 맺었다.(원산 협약)

제2대 대통령 재임기

그는 6•25전쟁중 실시된 2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2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미국의 원조 지원을 요청했으며 방직업을 중심으로 경공업을 양성했다. 이시기 최저임금을 도입했다. 정치적으론 부분적인 지방자치를 실시했다. 문화적으로 스포츠 진흥 정책을 실시했다.

통일 전쟁

임시 정부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