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ἶδος

시간대는 고대 이전의 지질시대적으로 고진기 시대의 초고대문명사이다. 모든 문명의 중심은 파라테티스 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가장 서쪽부터 작은 바다를 "토로(τολό)", 중간의 바다를 "아키아(Αρχία)", 동쪽의 바다를 "탄티아(Τάντια)" 라고 칭한다. 이 바다는 아직 보스포루스 해협이 막혀있으므로 지중해와는 개별적으로 폐쇄되어있는 바다이며, 독자적인 생태계가 갖추어져 있다. 가상의 영역으로, 이당시 인류는 현생인류와 같지는 않아도 단일된 종족으로 구성하도록 한다.

지중해 지역의 바다는 "테오토키아(θεότοκία)" 라고 칭해지며, 이는 가장 포괄적인 명칭이다. 파라테티스는 "판토라시아(παντορασια)" 라고 칭한다. 테오토키아의 바다는 크게 지금의 그리스인 마나스타시 반도(Μαναστάσι)를 중심으로 동서로 구별하는데, 서쪽은 세상의 끝으로 여겨져, 두려움과 미지의 공간으로 여겨지기에 혼돈, 혼란이란 뜻의 아크(Ακ)에서 파생되어 "아크라시아(Ακρασία)"라 칭해지고, 동쪽은 문명의 권역으로 여겨져 이곳의 바다를 최초로 정복해낸 민족인 펠라기아인들에게서 파생된 "페리페로아(περίπτεροα)"라 불린다.

아크라시아에서 사람이 갈 수 있는 한계는 실제 발레아레스 제도 자리의 섬들, 세계관에서는 섬을 예언한 지식인인 아이살로스의 이름을 따 아이살리아 제도로 불리는 곳이 한계이며, 존재는 알려져 있으나 사람이 사는지조차 모르는 지브롤터쪽에 위치한 아크리아 제도가 세상의 끝이자 문명의 끝이다. 실질적으로 문명은 아이살리아 제도에서 끝난다. 대륙의 북쪽으로는 습지와 밀림밖에 없으므로 해안의 일부 도시만이, 주된 농사를 위한 식민화는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세부적인 페리페로아의 지명으로, 아드리아 해 부근은 "오스포스(Όσπος)", 크테시아 섬(키프로스)의 인근 바다는 "니사코스(Νισάκος)"라 불린다. 육지의 지명으로는 그리스와 불가리아 등의 일련의 지역을 "에스탈리아(Εσταλία)", 좁게는 아나톨리아와 그 근처만을, 크게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까지 합쳐서 이곳을 "옵티마르시아(οφτιμάρσια)"라 부른다.

문명

가족단위를 넘어서 도시국가를 이룩해낸 공동체는 최초로 "필-로스(Φιλ-Ρος)"라 알려져 있다. 각각 필과 로스의 합성어이며,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으나 두 집단이 합쳐진것은 유추할 수 있다. 이들은 옵티마르시아와 에스탈리아의 중간지역, 필라시아 지방에서 처음 탄생하였다. (필라시아도 필로스에서 유래했다.) 다만 필로스가 문헌과 증거상 최초이지, 이들의 시대에 경쟁상대가 없던것은 아니었다.

필로스의 주된 호적수라 할만한 문명은 토로해의 패권을 갖고, 남하를 시도한 "세살르디아(Σεσάλδια)", 니사코스에 해안도시들을 세우고 항상 서로를 견제한 토그지아(Τοχζιά)가 있었다. 세살르디아는 지상에서 여러 전투를, 토그지아와는 해상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였는데, 초기 필로스는 해상패권에서 밀린 이들이었다. 왜냐하면, 토그지아는 여러 도시국가들의 하나의 운명공동체적 연합이었기 때문이며, 필로스는 두 이해집단의 통합정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된 주적은 세살르디아였다. 세살르디아와 전쟁의 과정에서 필로스는 귀족공화정 체제가 생겨났는데, 세살르디아와의 10년 전쟁의 기록에서 무장을 시민들이, 특히 중보병을 귀족들이 맡고 시민들의 선봉이 되는 이들이 생기며 정착한다. 세살르디아는 과두공화정의 형태인데, 투표를 통해 신임을 얻은 정해진 5개 가문이 돌아가며 지도자와 중직을 맡았다. 토그지아는 완전한 도시 공화정이었고, 토그지아에서 평등의 원칙은 신성히 여겨졌다. 왜냐하면 토그지아는 상업이 흥했으므로, 대부분의 시민들이 절대 복종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토그지아는 전시엔 모든 도시의 신임을 통해 독재자를 선출했다. 이후 이 제도의 병패로 멸망하게 된다. 이 모든 기록의 주체는 필로스로서, 대부분의 설정상 자료의 출처는 필로스의 기록과 아주 일부의 독자적 기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