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u
[ 연재 세계관 목록 ]
연습장 1 연습장 2 연습장 3 연습장 4


Liberal Party
한국어 명칭 자유당
덴마크어 명칭 frihed parti
통합한 정당 민주당 (1981년 9월 1일 흡수합당)
창당일 1842년 7월 21일
주소 크리스티아나 리보르 주 리보르
Suite 920 350 Albert Street, K1P 6M8
대표 에릭 빌라센
총리 알렉스 요하네센 / 8선 (42-43대)
스펙트럼 중도~우익
상원 12석 / 181석 (7%)
하원 102석 / 293석 (35%)
주지사 5석 / 7석 (71%)
주의원 188석 / 725석 (26%)
웹사이트 엉어 / 덴마크어

개요

자유당은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이며 현재 크리스티아나의 집권 여당이기도 하다. 보수정당 중에는 세가 가장 컸으나, 경기침체 등의 이유로 2010년대 들어서부터는 새롭게 창당된 혁신당에 그 자리를 위협당하고 있다.

성향

현재는 그냥 보수정당으로 보면 된다. 대략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자유주의자들이 주류였으나, 1차세계대전 이후 몰아닥친 대공황을 완전 최악으로 대처해버려 대거 숙청당하며 자유당은 천천히 보수화되어가다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아예 보수주의 정당으로 당의 정체성이 바뀌어버렸다.

역사

| 창당과 전성기
자유당은 19세기 덴마크로부터 독립하자는 분리독립주의자들이 만든 정당인 독립당에서 시작된다. 크리스티아나가 독립한지 얼마 안되었을때 정당명을 자유당으로 바꾸었다. 1847년 첫 집권에 성공했으며, 헨손 내각이 미국-유럽간 중개무역을 활성화시키며 크리스티아나는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하게 되고, 자유당의 1차 전성기 또한 찾아오게 된다. 이후 1861년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터지자 남부에 온갖 물자를 팔아대며 경제가 더욱 발전하자 자유당의 지지율은 하늘을 뚫을 기세였다.

| 쇠퇴와 대공황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선 이후 유능한 리더의 부재, 내부 분열 등의 악재가 겹쳐 1905년 라이벌 정당이였던 사회민주당에 정권을 빼앗긴다. 1907년 핸더슨 일행의 탈당 후 민주당 창당으로 잠시 제3당으로까지 추락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1차세계대전때 하필이면 독뽕에 가득 차있던 사회민주당의 윌리엄 브린센이 총리자리에 있던 상황이라 사회민주당은 그가 독단적으로 ‘대서양의 독일’을 외치며 동맹국 편으로 참전하려는 것은 막았지만 사회민주당은 이미 국민의 신임을 잃은 상황이였고, 자유당은 10년만에 다시 정권을 되찾는다. 1차세계대전 이후 1923년 탄생한 엘런 내각은 철저한 자유방임주의를 핵심이념으로 내세워 크리스티아나 안의 대기업을 팍팍 밀어줬고, 그것은 결국 이 국가를 파멸로 몰아넣게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의 정책은 양극화의 심화같은 몇몇 문제들은 있었지만, 어쨌든 경제는 착실하게 발전시켜나가게 했고,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하지만 엘런 내각의 핵심과도 같은 대기업들은 문어발식 확장으로 엄청난 부채를 껴안은 상황에 세계 각국이 보호무역으로 돌아선 까닭에 수출로 먹고살았던 그들에겐 이미 위기가 찾아왔었다. 하지만 1929년 월스트리트 폭락으로 발생한 ‘검은 월요일’이 순식간에 크리스티아나로 쳐들어오면서 엥겔 그룹의 파산을 시작으로 여러 대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하며 경제가 파탄나버린다. 이때 대공황 전부터 엘런에게 큰 불만을 갖고있던 몇몇 노동자 단체들이 폭주해 엘런을 암살하고 뒤이어 총리직을 승계한 볼드윈도 별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구조조정만 좀 시도하다가 자진사퇴한다. 이후 집권한 사회민주당 제스퍼 내각은 일단 사회주의자들을 진정시킨 후 케인스주의를 받아들이고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을 모방해 경제를 회복시켜 사회민주당의 전성기를 시작하게 했고, 반대로 자유당의 쇠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자유당은 경제회복이 어느정도 된 후 치뤄진 하원 선거에서 민주당에도 뒤쳐진 전체 227석중 43석만을 획득하여 제2야당이 된다.

| 2차세계대전과 기나긴 야당생활
2차세계대전때는 주요 격전지였던 유럽에서 멀리 떨어져있어 이렇다 할 타격은 없었기에 사회민주당이 무난하게 정권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반대로 자유당에겐 기나긴 야당생활이 시작되는 순간이였다. 이후 자유당은 80년대까지 단 한번도 약 40년동안 하원 내에서 다수당이 된 적이 없었고, 총리도 딱 2명밖에 배출해내지 못하게 된다. 전후 최초로 치뤄진 선거인 1946년 하원 선거에서는 사회민주당이 141석, 자유당이 71석, 민주당이 68석으로 사회민주당이 전체 파이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나머지를 자유당과 민주당이 나눠먹는 결과가 나왔다. 이후로 조금씩 사회민주당의 세가 줄어드는 추세였긴 하나 민주당은 언제나 사회민주당 편이였으므로 영원히 사회민주당이 여당, 자유당이 야당일것 같았으나..

| 어부지리
당시 리보르를 거점으로 두고 활동하던 2류 신문지였던 ‘더 팔로우’지의 기자 ‘제릭 함브로손’이 사회민주당의 이러이러한 이상한 행동을 발견했고, 그 내용을 그대로 기사로 작성, 크리스티아나 정계를 발칵 뒤집힐 기사가 탄생한다.

| 새천년과 함께온 대침체

| 십년총리의 탄생과 코로나

역대 선거결과

의원그룹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