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요사기(大要史記)의 내용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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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태우정복만무치세장회종황제(太宇政匐萬武治世將懷宗皇第)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복전쟁을 통해 세력을 확장한 무왕(武王)

즉위 초기

요 회종(遼 懷宗) 야율전수(耶律戰隧)은 1245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신요의 제2대 황제가 되었다. 『대요사기(大遼史記)』에 의하면 요 회종 야율전수(耶律戰隧)는 용모가 단정하고, 무(務)력이 뛰어나 풍채가 대단하다고 하였는데, 이는 요 회종이 군사적인 부분에서의 부강을 이끄는 계기가 된다. 요 회종은 즉위한지 3년이 되던 1248년, 1만의 대군을 편성하여 자신이 직접 친정하여 서사할린 산맥을 넘어 동부의 오로크 족속들을 평정하고 프로나이스크 구 지방의 말들을 키우는 도축업과 유목의 중심지로 키우려고 하였다. 또 요 회종 이해만은 지금의 프로나이스크 구 프로나이스크 시 근방에 '포로나이'란 이름을 붙이고 거란족 일파들을 보내어 오로크 족을 통치하여 살게 하였다. 포로나이 외에도 네벨스크, 홈스크 , 코르사코프 , 돌린스크 , 아니바 등지에 담당 추장들을 뽑아 보내어 그 지역을 지키게 하였다. 당시 신요는 왕이 있는 나라이긴 왕 아래에 여러 고을부족을 관장하는 추장들이 황제에게 복종하는 연맹체 단계의 부족국가였다.

즉위 막바지

1264년, 마침내 원나라신요의 위치를 헤아려 군대를 보내 이들을 치게 하였다. 그들은 라페루즈 해협을 건너 먼저 북쪽에 나브히 족나나이 족을 복속시키고, 동부의 오로크 족을 연이어 복속시켰으며,이내 남진하여 신요의 수도 수수야 강에 이르렀다. 이에 신요 태종 야율전수(耶律戰隧)은 이들의 기세에 놀라 원나라에게 절대복종을 약속하고 결국 항복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아이누 족속들도 원나라에게 항복하였다. 원나라는 이들을 살려두는 대신에 매년 원나라에게 조공을 바치고 원의 관리를 파견하여 이곳을 관리하게 하였다. 1277년 요 회종 야율전수(耶律戰隧)은 태자에게 칸 자리를 물려주고 사망하였다.

업적과 특징

  • 사할린 북방이민족을 멸망시킴.
  • 영토 확장
  • 연맹단계의 국가기틀을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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