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월본은 인구도 적지 않고 스포츠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 수영 등의 생활체육과 연계된 스포츠가 발전한 국가 중 하나이다. 프로야구는 지역별 구단과 지역팬들을 주축으로 야구 인기몰이를 하고있으며 전통적인 인기 스포츠인 월본 축구 리그 역시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더운 국가로 인식되지만 북도, 신설 등의 지역에서는 동계 스포츠도 발달하였으며 현재 동계 스포츠 투자도 아끼지 않고 있다. 도신설은 고산지대와 설산지형이어서 스키분야도 집중 양성할 계획이다.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 분야에서도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가 급등하고 있고, 컬링과 아이스하키 역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하계스포츠

축구

월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축구가 들어왔으며, 아시아 최초의 축구 구단인 FC 도유(1858년 창단)가 존재하는 국가이다. 월본은 1990년대 이후 세계 축구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여 월드컵에서 5번의 토너먼트 진출을 이뤄냈고, 1990년에는 아르헨티나를 이기고 4강에 오르는 밀라노의 기적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자세한 것은 상위 두 항목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야구

야구는 축구와 함께 양강 체제를 이루는 인기 스포츠이다. 아시아권에서 최정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 대만보다 한 수 위의 전력으로 평가받는다. WPB 리그에는 많은 기업들이 팀의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상위 두 항목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사이클

월본은 섬나라라는 특징이 있어 바다와 육지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낸 자연이 발달하였기에, 예로부터 해안선을 따라가는 도로가 많이 자리 잡아 현대에 많은 자전거 도로를 개설할 수 있었다. 따라서 국민들의 많은 자전거 사랑 덕분에, 사이클 종목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산악자전거 종목은 유난히 약한 편이다. 아무래도, 산지에 자전거도로가 많지 않고, 월본인들은 자전거는 풍경을 보고 다니는 수단이다.라는 인식이 많이 있어, 자전거를 이용한 묘기 등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도로를 빠르고, 오랫동안 달리는 로드 사이클 종목은 강한 편이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월본의 사이클 전설이라고 불리는 신재호 선수와 그의 아들 신주건 선수가 있으며, 신재호 선수는 월본 로드 사이클 대회 2008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은퇴를 선언하였고, 그 후 그의 아들 신주건 선수가 뒤를 잇고 있다. 특히 신재호 선수는 월본 사이클 하면 딱 떠오르는 인물로, 세계적인 실력을 선보여, 유명 인사가 된 인물 중 하나이다. 그의 아들 신주건 역시 피는 못 속이는지, 현역에서 엄청난 기량을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투르 두 프랑스에서 노란색 저지를 입어본 적이 있다. 또한, 월본 로드 사이클 대회 2007에서 신재호 선수와 신주건 선수가, 서로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1등을 경쟁했던 승부는 월본 로드 사이클 대회 중에서 손꼽히는 명승부이다.

또한 항상 좋은 성적을 거두는 선수로는 조태현, 김진우, 강삭현, 박나연 선수 등이 있으며, 모두 월본 로드 사이클 대회에서 금메달을 한 번씩은 수상했던 경력이 있다.

2019년 UVN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는 조태현, 김진우, 신주건, 강삭현, 오승훈, 이태훈 선수가 출전하게 된다.

마라톤

대표적으로 가장 약한 종목이다. 예로부터, 월본은 이동 수단이 발달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였고, 또한 섬나라라는 특성으로 인하여 육지 스포츠보다는 수상 스포츠가 매우 강하다.

현재 활동 중인 선수로는 강지선, 바로한, 윤민우, 성민교, 김민규 선수가 있으며, 김민규 선수는 최근 월본 월드 마라톤 대회에서 금메달을 거머쥐며, 월본 마라톤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은퇴한 선수로는 신동현 선수가 월본 월드 마라톤 대회에서 세계 1위 기록을 찍으며, 경신하였다.~~ 물론, 그다음에 바로 따라잡혔다..~~

수상스포츠

월본의 수상스포츠는 세계구적인 실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섬나라라는 특성으로 인하여 수상스포츠가 생활 체육으로 자리잡았으며 그 중에서도 수영은 국민스포츠로 여겨지며 초중고 교육에서도 수영이 의무적으로 편성되어 있다. 특히 윈드서핑과 다이빙, 파도타기를 잘한다. 시나 도 차원에서 운영하는 시/도립 수영장 시설이 잘 되어 있으며, 이용료는 사실상 무료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수영

수영 같은 경우는 위에서 서술되어 있듯이 국민스포츠 수준이다. 특히 도유 같은 경우 바닷가에 인접해 있는 특성으로 인하여 해수욕장이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발달되어 있다. 도유 같은 경우 행정촌별로 도립 대형 수형장이 조성되어 있고 인구밀집지역에는 심지어 촌별로 조성되어 있다. 이런 환경이니 수영에 유능한 인재들이 대거 양성되는 것은 당연하며 교육과정에서는 각 학교에서 인근 수영장을 방문하여 정기적으로 수영을 교육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특히 수영은 모든 분야가 뛰어나다. 피튀기는 경쟁을 거쳐서 간신히 올라온 이들이므로 국가대표들의 실력은 말할 것도 없다. 가족 단위로도 도립 수영장을 자주 방문하므로 어릴 때부터 재능을 찾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취학 후에는 학교의 수영 동아리 등에서 수영 강습 뿐만 아니라 물과 친해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실력이 못할 수가 없는 것. 여태 도핑 테스트에서 적발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압도적인 피지컬과 숙련된 기술로 상대를 늘 압도해 온 것이다.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월본의 진석정 선수가 전설로 떠올라 현재는 코치 활동 중이다. [1] 진석정 선수는 베이징올림픽 이후 런던올림픽을 거쳐 인천 아시안게임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였다.

남자수영에 진석정 선수가 있다면 여자수영에는 전설적 선수로 하시연 선수가 꼽힌다. 하시연 선수는 1968년생으로 어릴 때부터 재능이 인정받아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처음 등장,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였다가 은퇴를 번복하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다시 나타난 특이한 경우이다. 이 경우 그녀는 33세였고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나타났기에 기량을 많이 걱정했으나 그녀가 거머쥔 결과는 자유형 1위, 혼영 3위. 현역 전기 때보다 더욱 기량이 좋아진, 정말로 특이한 경우이다. 이 때 성적 때문에 도핑테스트를 받긴 했으나 결과는 당연하게도 음성. 세계적으로 이 때 월본의 수영 실력이 알려지게 된다.

유명 선수로는 진석정, 하시연, 조창신, 고대훈, 관야지인, 전해인 선수가 있으며 특히 관야지인 선수는 다이빙 하면 세계적으로 거론되는 선수. 신인으로 최근 떠오른 선수는 1998년생의 전해인 선수이다. 최근 엄청난 기량을 뽐내며 2019 UVN 멕시코시티 올림픽 출전을 준비하고 있다.

현역 유명 남자 선수는 관야지인, 고대훈, 전해인, 석상기, 우도윤, 서울경 선수 등 있으며 여자 선수로는 신기효원, 정다인, 소이현, 손아인, 최도아, 사마인현 선수 등이다.

손아인 선수 같은 경우는 이력이 상당히 특이한데 손 선수는 해군 복무 중 긴급구조훈련 과정에서 재능을 발견하여 뒤늦게 전향한 케이스다. 운 좋게도 그녀를 지도한 코치가 조창신 구 월본 국가대표 메달리스트여서,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국가대표팀에 들어가게 해주었다. [2]

카누

섬나라이기에 옛날엔 대학가 중심으로 조정이 발달했다. 그런데 조정은 재미없다(...)는 이유로 어느 순간 쇠퇴했다. 뒤를 보고 가기 때문인 듯. 그 때문에 생각보다 월본에서 카누는 역사가 깊은 스포츠(...)다. 물론 당시에 발달한 것은 조정이 재미없었기 때문에(...) 발달하여 새롭게 이름붙여진 신소정이라는 경기였다. 빠르고(迅) 작은(小) 배(艇)이라고. 문제는 이게 카누와 비슷해서, 들여오자마자 매우 빠르게 대체되었다. 카누는 생각보다 늦게 들어왔는데 1980년대 중반에 들여온 것이다.

월본은 강이 적지만 물살이 제법 빠른 곳과 느린 곳이 적절히 조화되어 있고 강폭 변화도 다양해서 전지훈련 한 번 가면 빡시게 각 잡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나라이다. 때문에 이것도 대학교 MT때 많이 하였고 지금도 많은 대학에서 즐기고 있다. 월본은 조정 때 대학가 중심으로 발달한 문화가 카누에 그대로 전승되었기 때문에 카누 선수들은 고학력자들인 경우가 많다.

특히 2004년 아테네올림픽 카누 1,3위를 차지한 성지욱·조병기 선수는 각각 도유대학교 경제학과기부사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출신이다. 안타까운 것은 성지욱 선수가 2009년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오랜 친구이자 동고동락했던 선배인 조병기 선수의 자서전 <내가 탄 조각배>에서 두 선수의 발탁 과정 내용이 자세히 서술되고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들은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3] 내용은 대충 MT에서 잘 한다고 사람들이 추천해 주어서 나갔다는 것인데 그 이후의 과정이 꽤나 험난했던 모양이다.


동계스포츠

스피드 스케이팅

월본의 동계 스포츠는 스피드 스케이팅이 가장 인기있으며 발달했다. 주요 도시에는 대형 빙상장이 있으며, 기타 중소형 도시에도 소규모 빙상장이 하나씩 건설되어 있다. 겨울이 아니더라도 12개월 상시 운영중이며 스피드 스케이팅을 배우는 인구는 많은 편이다. 1900년대 네덜란드로부터 스피드 스케이팅 문화를 수용한 뒤 흥미를 가진 당시 가미네 친왕의 보급에 따라 민간에서도 인기를 끌게 된 것이 스피드 스케이팅의 시초이다. 현재는 네덜란드, 한국, 일본과 함께 스피드 스케이팅 강국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며, 다크호스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주경은 선수가 1000m에서 네덜란드 선수들을 꺾고 금메달을 따낸 것은 스피드 스케이팅 역사 사상 최대의 이변으로 손꼽히고 있다.

쇼트트랙

쇼트트랙은 스피드 스케이팅의 관심이 높아짐과 함께 동시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70년대 흑치정우 선수를 필두로 한 선두들이 1972년 삿포로 올림픽과 1976 인스브루크 올림픽에서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한 것이 시발점이 되어 동계스포츠 유망주들이 쇼트트랙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쇼트트랙은 개인 단위의 스피드 스케이팅과 달리 단체전인 관계로 많은 대중화를 이끌지는 못하였지만, 앞서 서술한 흑치정우가 1990년대 감독으로도 부임하며 체질 개선과 국제 대회에서의 실력 상승을 이끌어 내었고, 현재도 아시아에서 쇼트트랙 강국으로 손꼽힐 정도로 성장하였다.

아이스하키

아이스하키는 1950년대 시작되었으며, 민간에 보급되지는 않았고 주로 엘리트들의 사교 모임이나 대학 시합 정도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1980년대 월본-캐나다 혼혈 출신이자 197cm라는 피지컬을 보유했던 마수익 선수가 주장으로 활동하며 월본 아이스하키는 점차 실력을 쌓아가기 시작했다.마수익은 데뷔하자마자 대활약으로 리그를 평정했고, 월본 아이스하키를 홀로 지탱하면서 젊은 인재들을 모으는 버팀목이 되었다. 그 결실은 라이트윙 이정우, 레프트윙 김직인, 센터 부여성천, 골리 흑치지우 등이었다. 80년대 후반 마수익이 홀로 국대를 지탱하면서 모인 젊은 재능은 1990년 결실을 맺어 아시아컵 우승을 이뤄내었다. 하지만 이때의 성공도 잠시, 팀을 홀로 이끌던 마수익은 호지킨씨병 진단을 받아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 정도로 큰 고통때문에 경기를 뛸 수 없었고 국대도 위기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마수익은 국대의 몰락을 막기 위해, 자신이 직접 팀의 재건에 나선다는 제의를 하고 선수 은퇴와 동시에 국대 감독에 오른다. 그런 각고의 노력과 시민들의 관심, 투자로 인해 국대는 다시 실력을 서서히 되찾았고, 건강을 회복한 2000년 국대의 아시아컵 우승을 위해 마수익이 선수로써 깜짝 복귀해 팀을 4강에 이끄는 등 국대를 겨우겨우 지켜낸다.

그 뒤로도 현재 마수익은 국대 감독으로 부임하며 아이스하키의 진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월본도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경쟁력을 가진 국대로 남는데 성공하였다.

컬링

월본에서 컬링은 비주류의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2006 토리노 올림픽에서 "Joo Team"의 4위 진입을 시작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해 현재는 올림픽에서 인기 있는 종목 중 하나로 성장하였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컬링 붐 이후로 투자가 시작되어 조치대컬링훈련장 건립, 초중학교에서의 컬링부 창설 등이 이뤄졌으며 최근에도 주목받기 시작해 국제 대회에서의 성적이 기대되는 상태이다.


  1. 월본은 오래 뛰어봐야 국제경기 3회 출전이다. 재능을 썩히고 있는 후예들이 많기에 대부분 1~2회 출전 이후 그만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2. 바다, 조창신 저, 수보문화출판사, 2017
  3. 내가 탄 조각배, 조병기 저, 마치서고,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