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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아웬. 네가 나보다 먼저 죽을 일은 없어. 죽으면 늘 맨앞에 있는 내가 먼저 죽겠지. 도망간다고? 도망 갈 수도 없어. 우리가 직접 왔다고? 아니야. 이 모든 상황이 우리를 여기로 내몰았을 뿐이고. 네가 직접 자진해서 왔다는 착각을 하고 있을 뿐이야. 네가 그렇게 용기있었다면 한스가 죽었을까? 넌 존나 비겁하고, 망상 가득하고, 너만 피해자고, 너만 세상 정의로운 척 하는거야. 나도 내가 여기있는 게 죽을만큼 싫다고...
윈테라 2부 025편, 한스의 죽음 이후 아웬과의 말다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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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제목 내용
21 절망 그것은 사고였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22 저주받은 자 누구를 위한 삶이고 누구를 위한 자신인가
23 혹한의 전쟁터로 그 얼어붙은 전쟁터조차 아이에겐 아버지보다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24 타인이라는 것 아르크는 로운을 이해할 수 없다.
25 혹자의 죽음 아웬의 실수로 일어난 일. 분노는 더 큰 분노를 일으키고..
26 벼랑 끝으로 아르크는 로운에 대해 호기심을 느낀다.
27 새로운 방면 신참이 들어오고 다시 반복된 작전, 그러나 아르크는 길을 잃고.
28 안케나의 귀신 아르크는 누군가를 만난다. 그게 우연이든 운명이든.
29 조직개편 마음을 죽이자
30 전조 전쟁을 끝낼 방법을 찾다.
31 새벽숲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32 생환자 살아남았다고해서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으니.
33 하늘베기 한 번의 싸움이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걸 바꾸다.
34 다로시 나아진 전황, 부드러운 분위기 속. 의문의 여성이 말을 걸어온다.
35 진실 자신이 몰랐던 무지함.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36 서약 이것이 본래 나의 길이다.
37 돌아보며 어떤 변수도 자신을 흔들 수는 없다.
38 계획 모든 것은 제자리로
39 진실을 향하여 마침내 시작된 작전, 그러나 예상치 못한 적이 등장하고 마는데..
40 돌아본 자신 쓰러진 아르크는 로운에게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전해주고자 한다.



021 절망

1부의 마지막 시점으로부터 다시 4년 전. 이야기는 아르크를 중심으로 시작된다. 아르크는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부모님과 함께 환한 세상을 맞이했을 언젠가. 잠에서 깨어난 아르크는 다 부숴져가는 침대에서 일어난다. 술병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고함을 지르는 아르크의 아버지. 아르크는 두려움에 가득 차 아버지에게 술을 가져다주지만 늦었다는 이유로 아르크를 때린다. 구석에 숨어 아르크를 지켜보는 두 동생. 그곳은 낡고 허름한 대저택이다. 언젠가 웅장했을 집안은 이제 구석구석 거미지고 삭은 나무판들의 습한 냄새만이 가득 차있다. 아르크와 마찬가지로 붉은 머리를 가진 아버지는 술에 잔뜩 절었다. 그는 쓰러진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리와라.
주먹을 불끈 쥐며
잘못했어요..

다시 깨어났을 때 아르크의 주변은 두 동생[1]이 곁을 지킨다. 라한은 형에게 많이 아프냐며 묻지만, 아르크는 라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말한다. 아르크는 고작 열 다섯살의 소년이다. 질병으로 어머니가 죽은 이후 아버지는 술중독과 난폭함이 갈수록 심해져간다. 매일매일 자신들의 돈을 갚으라며 찾아오는 중앙마법사들. 이제 더 이상 당신은 의원이 아니라며 원로회로부터 온 파면장. 아버지. 그 중년은 모든 것을 잃고 망연자실한 상태다. 그래서 답도 없이 아들을 패고 집안의 패물들을 팔며 삶을 유지하고 있다. 아르크는 때때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울던 아버지가 안쓰럽기도 했으나, 그런 날은 줄곧 폭력이 찾아오곤 한다.

같은 하루의 반복. 아르크는 매순간이 고통스럽지만 두 동생이 맞는 일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날. 어느날 갑작스레 아버지가 지하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나오지 않자 한동안 폭력없는 날이 이어진다. 라한은 어린 아리사를 꼭 안고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가 자신들을 안때린다며 기뻐한다. 정말 아버지가 마음을 고친 것일까. 그때 아버지는 다정한 음성으로 삼남매를 지하로 부른다.

그것은 아르크를 비극으로 빠트린 첫번째 사건이었다.

아버지를 용서해다오. 이게 다 가문을 위한 일이다.. 너희는 이해해야 한다.

저항하는 아이들을 강제로 속박하고는 알 수 없는 마법진 위로 올리는 아버지. 아르크는 대체 무슨 짓이냐며 소리치지만, 이미 그는 정신이 반즈음 나간 상태다.[2] 아르크는 직관적으로 위험하다고 확신하고, 어릴 적 그의 어머니가 알려준 마법으로 힘겹게나마 밧줄을 끊어낸다. 붉은 광원과 함께 웅웅거리는 주변. 아르크는 몰래 동생들의 밧줄을 끊고 아버지에게 저항한다. 아버지는 왜 자신의 뜻을 몰라주냐며 소리치고, 아르크도 서슴치않고 덤벼든다. 곧 쇠고랑을 든 아르크는 아버지의 다리를 찍어누르고, 두 동생은 울먹이며 마법진 주변을 서성인다.

마지막으로 아르크가 아버지의 상처를 한번 더 짓이긴다. 아르크는 무의식 중 아버지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고, 다시한 번 쇠고랑으로 내려 찍자 그 의지대로 마법이 시전되며 아버지는 그 순간 뜨겁게 끓어오르는 것처럼 연기에 뒤덮인다. 고통에 울부짖는 그. 아르크 역시 마법에 영향을 받는다. 곧 아버지와 마도구의 힘이 어린 아르크의 몸으로 흘러들었고 아르크는 의도치않게 아버지를 죽이고 집안의 힘을 계승받은 것이다. 머지않아 누군가 현관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022 저주받은 자

역시나 평소처럼 돈을 받기위해 방문한 남자들. 반응이 없으니 문을 열고 들어온다. 곧 동생들의 울음소리가 1층까지 퍼지고, 이상한 느낌을 받은 그들은 지하로 뛰어내려간다. 그곳엔 형태가 일그러진 시체와 피를 덮어 쓴 아르크가 있다. 두 사람은 기묘한 장면에 두려움을 느끼며 뒷걸음질치고 도망친다. 그런데 아르크는 뭔가에 홀린듯 그들을 쫓아가서는 도망치는 남자의 다리를 짓뭉게버린다. 늘 아버지에게 폭력적으로 맞던 아르크는 알 수 없는 쾌감을 느끼고, 한 사람이 도망치는 사이 다리가 부러진 남자를 봐주지 않고 무참하게 살해한다. 정신을 차린 건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자신을 아버지를 보듯 처다보는 라한. 아르크는 자신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그제서야 깨닫는다.

형.. 형 금방 올게.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응? 알겠지?
잔뜩 얼어붙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동생에게

아르크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집을 뛰쳐나온다. 그리고 어디로든 뛰어간다. 이제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리고 앞에 펼쳐진 빈민과 고아들이 아르크를 바라본다. 아르크는 이제 자신이 저 고아들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저들보다 더 불쌍한 존재가 아니었는지 되뇌인다. 허탈하게 웃는 아르크는 모든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들 사이에 섞여들어 잠을 청한다.[3] 두 동생의 행방도, 자신의 처지도 모든 것을 잊자고. 하지만 정말 저주라도 씌인걸까. 세상은 아르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악마가 침입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

그러던 어느 겨울. 야만과의 전쟁의 시작점. 이방인의 습격이 시작된 날. 이방인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보이는 족족 모든 사람들을 살해한다. 아르크와 함께 지내던 아이들도 살해당할 무렵. 아르크는 멍하니 그들을 본다. 몸에 이상한 그림과 탈을 덮어쓴 사람들. 아르크는 아무래도 좋았다. 화풀이를 하듯 맨손으로 이방인을 살해하는 아르크. 그리고 그 장면을 도시 수비대가 아르크를 목격한다.[4] 이내 지쳐서 쓰러진 아르크. 수비대 중 한 사람인 노베른이 안아주고 쏟아졌던 이방인들이 다시 후퇴하면서 싸움이 끝나게 된다. 그것이 야만의 습격이었다.


023 혹한의 전쟁터로
이곳이 이제부터 네가 일할 곳이다. 아르크
노베른이 짐수레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내려주며, 얼어붙은 들판에서 허름하게 세워진 천막들이었다.

원로회는 아르크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받으며 충격을 받긴 하지만, 별 다른 대처없이 전쟁터로 보내기로 한다. 그러나 노베른은 그래봤자 어린아이라며 상부의 의견을 무시하고 몰래 아르크를 치료병동으로 보내게 된다. 노베른은 최대한 아르크와 대화하려고 해보지만, 쉽지 않다.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과묵한 아르크. 마찬가지로 병동에 있던 남자애 시빌렌더는 아르크보고 농아라는 별명을 지어준다. 아웬은 아르크에게 왜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느냐며 한 소리를 하지만 아르크는 역시나 과감하게 무시해버린다. 누구하나와도 제대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야 당연히 아르크는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늘 깨어나는 아르크는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린다. 심하게 땀을 흘리는 아르크. 그때 옆자리에서 자던 한스는 아르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르크는 처음으로 신경끄라는 말을 내뱉는다. 한스는 아르크가 말하는걸 처음본다는 식으로 말하고, 자신이 알 순 없겠지만 아르크에게도 힘든 게 있을거란 식으로 말한다. 천하태평한 말투에 아르크는 짜증을 내면서도 내심 한스가 마음에 든다. 이후 점차 대화할 기회가 많아진 한스와 아르크. 덩달아 한스의 쌍둥이동생인 한트도 함께다닌다. 서먹서먹한듯 하면서도 아르크는 이런 시끄러운 분위기를 나쁘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나타난 이방인 하나가 환자들과 아이들이 있는 의료병동까지 도착하고 마구잡이로 환자들을 살해한다. 아르크는 그것을 보고 자신이 이방인들을 막으려고 하지만, 한스와 한트는 위험하다며 아르크를 잡는다. 그 사이 아웬이 무기를 들고 이방인을 살해하게 된다. 손을 부르르 떠는 아웬. 아르크는 비슷한 또래이지만 아웬에게 측은함을 느낀다. 저것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고통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다행히도 머지않아 노베른이 도착하고 상황이 진정된다. 하지만 시빌렌더한트처럼 아이들은 아웬을 두려운 눈초리로 처다보게 된다.

아웬이 왜? 아웬은 우리를 지켜준거잖아.

그러나 한스만은 아웬에 대해서 옹호한다. 이후 한스는 계속 아웬의 이야기만 늘어놓고, 질릴대로 질린 아르크는 아웬 얘기를 작작하라며 한소리를 한다. 한트는 우스갯소리로 좋아하는 게 아니냐고 묻지만, 한스는 뻔뻔하게 그렇다고 대답한다. 아르크는 어이가 없는듯 한스를 툭치고 어깨동무를 한다.[5]


024 타인이라는 것
너희는 이제부터 하나다.
남은 아이들에게 위고가 한 말

여전히 의료병동에서 일하던 아이들. 어느날 노베른이 아이들 중에서 체격이 좋고 눈치있는 아이들을 뽑아 데려간다. 모두가 영문을 모르는 상황. 그들 앞에 젊지만 노련한 여성 마법사가 선다. 자신을 위고라고 밝힌 그녀는, 앞으로 적진을 드나들며 정보를 수집할 부대를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이 일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의료원에서의 일보다 훨씬 위험한 일이라고. 그러니 가고싶다면 가도 된다는 마지막 선택지를 제시한다. 하지만 아르크는 남았고, 아르크를 포함해 한스, 아웬, 로운 등 11명이 남는다. 마침내 위고 분대가 탄생한 순간이다.[6]

아..안녕!
아웬에게 부끄럽게 인사하는 한스

며칠간의 훈련. 늘상 아웬을 바라보던 한스는 우겨넣기로 아웬에게 인사한다. 한트는 돌아온 한스에게 대체 왜 저런 사람을 좋아하는 거냐고 묻고 따지지만, 오히려 한스의 눈엔 완벽할 뿐이다. 아르크는 괜히 지켜준다느니 하다가 등신같은 사고만 치지말라며 한 소리를 한다. 뻔히 로운의 존재가 있는데도 아웬에게 살랑거리는 모습이 누가보아도 답답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런 유치한 이야기도 잠시 아이들은 머지않아 위고 분대로서의 임무를 할당받고 바로 바로 투입된다. 처음에는 모두가 두려워했지만, 위고는 최대한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안전한 선택을 지속한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날.

결국 적들을 마주친 위고 분대. 위고는 매번 그러했듯이 재빠르게 회피하려고 했지만, 대기하고 있던 이방인 전사들과 마주치면서 즉각 전투가 벌어진다. 이어지는 추격전 속. 미처 적을 발견하지 못한 아웬은 위기에 빠지고 그걸 한스가 구하면서 치명상을 입게된다. 피를 토해내며 부들부들 떠는 형의 모습에 한트는 충격을 금치 못하고, 뒤늦게 달려온 아르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죽음을 지켜본다. 죽음은 단지 한스 뿐만이 아니었고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다. 결국 시체들을 제대로 거두지도 못한 채 도망치는 분대. 다시 수거한 건 그로부터 한참이나 지난 후였다.


025 혹자의 죽음
웃기지. 누가 죽는 게 생소한 일도 아니고, 특별한 일도 아니라니.
위고노베른과 대화하며

그로부터 며칠 후. 죽음은 덧없다. 한스는 죽었다. 그러나 죽음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한스 뿐만 아니라 그 주에 전사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장례식을 치룬다. 그렇게 누워있는 수십명의 사람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아이들은 마음껏 소리내어 울 수도 없다. 아르크는 그 죽음으로부터 슬픈 감정에 앞서 자신들이 소모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없다. 나를 포함한 우리들은 특별하지 않다. 언제나,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 모든 기대감을 내려놓고 살아가야 한다고 혼자 속삭인다.

그렇게 한스의 장례식이 끝나고, 아르크는 자신의 빈 옆자리 침대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때 나타난 한트는 한스의 유품을 정리하고,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아르크를 보곤 물건을 건네준다.

잘 모르겠지만, 형은 널 좋게 생각했어. 그러니까 받아..

받은 물건은 한스의 장갑 한쪽. 아르크는 고맙다며 물건을 받고, 한트는 곧이곧대로 대답하는 아르크에게 크게 놀란다. 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르크는 내심 자신이 한스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소리내면서 울 수도 없는, 소비재에 불과한 자신이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우습다. 아르크는 씁쓸한 표정과 함께 한트에게 죽지 말라고 말한다. 한트는 콧웃음을 치곤 짐을 챙겨서 나간다. 곧 물건들은 관례대로 대부분 태워버리고 한스가 입던 옷들은 정리되어 다른 곳으로 보내진다. 그 사이 한트에게 사과하는 아웬을 보게된다.

아웬은 울먹이며 한트에게 사과한다. 아르크는 그 장면에 알 수 없는 불쾌함을 느낀다. 엄연히 말하자면 한스가 죽은 건 결국 아웬과 로운 탓이다. 두 사람이 자기 몫만 잘 했더라면 과연 한스가 죽었을까. 그럼에도 저런 알량한 모습으로 사과하는 걸 아르크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곧 아르크는 아웬이 나오자마자 참지 못하고 공격적으로 말한다.

너때문에 죽은 게 맞아. (중략) 그리고 로운, 너도 똑같은 놈이야.
네가.. 네가 뭔데 그런식으로 말해?
아웬이 눈물을 글써이며 말한다.

아웬과 이어지는 말다툼. 로운은 곧장 말리지만, 결국 흐지부지 대화가 끝난다. 아르크 자신도 알고있다. 이것은 화풀이라고. 너때문에 내 친구가 죽었다는 걸 다른 방식으로 말할 뿐이다. 한트에게 제대로 위로해줄 용기조차 없는 자신이, 남을 상처입히는 것엔 두려움이 없는 거다. 로운은 그런 아르크가 측은해보였는지 뒷모습을 계속 바라본다.

곧 다시 모인 아이들. 숙연해진 분위기 속, 나타난 노베른이 아르크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격려를 해보려고 하지만. 잔뜩 격앙되어 있는 아르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우리가 다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거잖아요. 틀려?

안그래도 잔뜩 우울한 아이들이 그 말을 듣자, 은연 중 끄덕인다. 하지만 먼발치에 앉아있던 아웬은 바로 아르크에게 반박한다.

네가 겁먹었으면 우리도 다 겁먹어야해? 대답해.(후략)
네가 나보다 먼저 죽을 일은 없어. 죽으면 늘 앞에 있는 내가 먼저 죽겠지.(후략)

상처 뿐인 대화 후, 결국 이도저도 아닌 결론. 분노한 아르크는 말이 아니라 주먹으로 아웬을 치려고 하지만, 힘을 행사하려는 아르크를 로운이 단숨에 무력화하고, 아르크는 이를 갈며 일어나지만 이를 연이어 위고가 막는다. 어찌저찌 마무리 된 상황. 하지만 로운은 여전히 두 사람 모두가 안쓰러울 뿐이다.


026 벼랑 끝으로

다시 시작된 임무. 위고로운아르크를 한 조로 묶는다. 과묵한 두 사람이지만 몇시간 전 일을 여전히 상기하고 있다. 로운은 아르크에게 어떤 과거를 살았냐고 묻자, 그 순간도 아르크는 한스를 떠올린다. 오히려 아르크는 되묻는다. 너에게 아웬은 무엇이냐고. 하지만 로운은 어김없이 말한다.

내 전부.

황당한 대답에 아르크는 짜증을 내밀지만, 곧 다문 입을 열고 말한다.

인간관계라는 건 속고 속이는 반복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넌 더더욱 멍청해보여서 걱정되고.

로운은 인간을 부정하려고 해봤자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결국 인간은 인간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 이어지는 토론 속 당연히 답이 나올 리는 없지만, 로운은 결국 아르크의 인간혐오가 되려 자만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완연하게 자신의 의력을 피력하지만 아르크의 속내로는 스스로에게 한번 더 묻게 된다. 자신이 여태껏 한스에게 의지했던 것이 아니냐고. 그나마 이 장소에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건 한스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러던 중, 아무것도 발견하지 모해서 그리고 약속 장소로 돌아가는 두 사람. 이때 갑작스레 적의 기습이 시작된다. 이 모든 건 함정이었던 것. 평원 한가운데 생겨난 큰 마을은 도시 안은 미궁같고 바깥으로 나가려면 말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적들은 위고 분대를 포위한 셈. 다행히 눈앞의 적을 물리친 아르크로운한트를 만나 추가적인 설명을 듣는다. 짧은 추론 후 로운은 결론에 도달한다. 자신이 시선을 끌테니 한트가 주변을 돌아다니며 함께 탈출을 권유한다.

한트는 제정신이냐고 묻지만 아르크는 오히려 자신도 로운을 돕겠다고 말하고, 둘은 마법으로 이방인들에게 큰 혼선을 준 뒤 말을 노획하고 달아난다. 예정대로 한트는 아군들의 위치를 파악한다. 이제 남은 것은 아르크로운이 이방인들의 추격으로부터 달아나는 것. 둘은 가시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적들이 쏘는 활에 아르크의 말이 적중하고 아르크는 말에서 굴러떨어지며 크게 다친다. 로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낙마한 두 사람은 이방인들에게 계속 맞서지만, 머리를 부딪힌 아르크는 어지러움을 호소한다.

뇌진탕으로 인지력이 한참 떨어진 아르크는 마법을 제대로 시전할 수가 없다. 죽음을 직감하는 아르크. 이방인에게 공격당하는 순간, 급했던 로운은 사용해보지 않은 마법을 시전한다. 그 순간 쓰러진 아르크를 제외한 주변이 갈기갈기 찢겨나간다. 수많은 인간들과 나무들이 해체되는 지옥도가 펼쳐진다. 조금이라도 방향이 엇나갔다면 아르크도 그렇게 될만한 일. 하지만 결과적으로 둘은 살아남았다. 피를 덮어 쓴 로운은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서 쓰러진다. 토를 하는 로운. 의식이 흐렸던 아르크도 로운에게 기어간다. 마법의 부작용이었다.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 아르크는 자신 역시 딜레마에 빠진다. 얼마 남지 않은 체력. 자신은 본능적으로 로운을 처다본다. 쓴웃음을 보이는 아르크. 알 수 없는 유혹에 시달렸다. 그 유혹이란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얻은 힘. 마력을 빼앗는 힘이다. 아르크는 자신이 쓰러지기 직전인데도 그 강렬한 유혹을 견뎌내고는, 로운을 업고 죽기살기로 돌아간다.


027 새로운 방면
네가 싫어. 그래도 고마워.[7]

다음날. 보기드문 화창한 날에 로운아르크가 살아돌아온다. 빈사 직전의 아르크는 도착하자 쓰러진다. 아르크 자신이 눈을 떴을 때는 아웬이 보였다. 아웬은 퉁명스럽게 입을 꼭 다물다가도 아르크에게 네가 싫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고맙다며 예상 외의 반응을 보인다. 아르크는 특별히 답하지는 않았지만 썩 편안한 표정을 짓는다. 이후 두 사람은 지속적인 치료 후 남들보다 빠르게 쾌유하던 어느 날. 노베른은 회복된 아르크를 찾아온다. 늘 노베른을 무시하던 아르크는 처음으로 노베른에게 인사하고, 그는 아르크에게 지난 몇 주간 심경의 변화가 있다는 걸 직접 확인한다. 그만큼 아르크의 정서는 과거에 비해 월등히 좋아진 상태였다.

처음엔 그렇게 대들더니. 지금은 좀 나은가보구나.
노베른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한다.

그렇게 회복하던 어느날. 위고 분대에 신참들이 들어온다. 에버른을 비롯한 열댓명의 신참들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상태다. 뭔가 잔뜩 긴장된 몸짓. 위고는 되도 않는 꼰대짓은 하지 말라며 경고하고 돌아가지만, 역시나 시빌렌더는 그들 앞에서 어깨를 피며 이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를 설명한다. 어이가 없어서 웃는 아르크. 그렇게 새로운 위고 분대는 다시 훈련에 들어간다. 그러다 발렌은 자신이 어디서 들었다며 '안케나의 귀신'에 대해 설명한다. 안케나의 귀신이란 정체모를 거구의 남성으로, 안케나 숲을 지난 사람 중 돌아온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돌아온 사람이 아무도 없다나봐. (중략) 진짜 귀신일 수도 있고[8]

그 얘기에 새로 들어온 에버른은 덜덜 떨고 진땀을 흘린다. 결국 옆에 있던 아르크가 나서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겁주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발렌은 분명 자신이 그렇게 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곧 그 괴담은 진실이 된다. 그로부터 며칠 후 위고노베른이 안케나의 귀신에 대해 직접 언급했기 때문이다. 멀쩡한 사람도 그 주변에서 홀로 가면 길을 잃고 헤맨다며 절대 작전 중 흩어지지 말 것을 경고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그곳을 지나던 아르크는 길을 잃는다. 끝없는 안개의 숲. 그곳이 안케나였다.


028 안케나의 귀신

아무리 길을 헤매도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이곳. 그러던 아르크는 사람이 지나다니던 흔적을 발견하고 따라간다. 조심히 흔적을 추적하던 아르크는 이 지독한 숲에 누군가가 정말 살고있다는 걸 깨닫는다. 호수 주변을 메운 수 천개의 무덤과 작은 오두막. 곧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를 들은 아르크는 재빠르게 몸을 숨기자 정말로 거구의 남성이 그 앞을 지나간다. 그는 횃불 앞에 앉아서 불을 피우다, 멍하니 아르크가 있는 방향을 바라본다. 순순히 그의 앞으로 걸어나오는 아르크. 자세히보자 알몸에 바지만 입은 그는 손에 이방인들의 물건을 주렁주렁 들고있다. 아르크는 속으로 이방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는 아르크에게 도시어로 말을 건넨다.

초면이라면 인사가 먼저인데, 이상하게도 다들 무기부터 꺼내들더군.

괴물이 말하는 듯한 무겁고 텁텁한 목소리. 그는 이방인처럼 붉은 눈을 갖고 있다. 이곳에 온게 운이 좋다고 설명하는 그는, 자신이 그렇게나 유명한 안케나의 귀신이라고 자칭한다. 긴장한 아르크. 그리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아르크에게 이곳에 왜 왔느냐고 묻는다. 아르크는 그저 자신이 길을 잃었기 때문에 왔을 뿐이라고 답하며 은근스레 검 주변부로 손을 옮기고, 남자는 아르크에게 경고한다. 살면서 공포라는 걸 크게 느껴보지 않은 아르크는 그에게만은 형용할 수 없는 기괴함을 느끼고, 입술을 오므리고는 무기에서 손을 치운다. 그러자 그는 잘했다는 투로 대답하고는 자신이 힐베스라고 설명해준다.

아르크는 힐베스에게 억지로 이끌려 호수 주변을 돌아다니고, 힐베스는 아르크를 죽이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준다.[9] 그리고 그는 자신이 숲에 들어온 모든 사람을 죽였다고 털어놓는다. 왜 그런짓을 하느냐 묻는 아르크. 힐베스는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인간을 먹기 위해서지. 이상한가? 이상하지 않아. 너희 가문도 그랬잖아. 파실라도 사람들을 희생시키며 견뎌왔으니까...

아르크는 등골이 서늘해진다. 난데없이 자신의 가문을 이야기하는 힐베스는, 서러움을 느끼듯 목소리를 떨며 아르크를 바라본다. 힐베스는 자신이 이방인도, 도시민도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은 진실을 추구하는자다. 그리고선 거대한 손으로 아르크의 양쪽 어깨를 잡곤 눈과 눈을 마주쳐 알 수 없는 기억을 비춘다. 순식간에 아르크의 뇌로 들어온 기억들은 윈테라의 복장들을 입은 군인들이 이방인들의 아이들을 학살하는 장면이 비춰진다. 아이를 잡고 울부짖는 어른들. 마침내 기억 속 이방인들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두터운 백색가면을 쓴다. 아르크는 함께 주저앉고, 침을 흘리며 정신차린다.

아르크는 이건 망상에 불과하다며 부정하지만, 힐베스는 자신이 그런 망상을 이렇게까지 전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 자신이 파실라에 대한 진실을 알듯 모든 진실을 안다는 것이다. 아르크는 당신이 뭐라도 되느냐며 소리치지만, 힐베스는 자신 스스로가 이해를 가진 자라고 말한다. 그리고선 주저앉은 아르크 앞에 앉아서 마지막으로 말한다. 지금 본 것을 잊지말라고. 이 안케나의 귀신이 살려주는 대가는 오직 그것 하나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라며 아르크를 기절시킨다. 그가 깨어난 곳은 숲 바깥이었다.


029 조직 개편
살려주는 대가는 그것 하나 뿐이다. 기억해라. 이 기억을 잊지마라.

이후로 아르크는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는다. 그는 대체 누구였을까.[10] 뭘 하고있냐며 아르크를 치는 한트. 연이어 발렌은 대체 안케나에서 어떻게 돌아왔느냐고 묻지만 아르크는 대답않는다. 아르크는 자신이 들은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는다. 심지어 로운에게도, 자신이 본 것은 힐베스라는 남자가 만들어낸 망상에 불과하고 정말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살려준 건 분명한 자비다. 왜? 살려준 대가란.. 만약 그 기억이 진실이라면 자신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아르크는 종잡을 수 없는 어려움에 사로잡힌다.

그와는 별개로 계속되는 작전. 팀이 증설되면서 아르크는 조장을 맡는다. 조원 중에서는 안그래도 몸이 허약했던 에버른이 있다. 아르크는 그걸 보며 한숨을 내쉬고 차라리 자신도 로운의 팀으로 넣어달라며 위고에게 투덜거린다. 에버른은 목소리 큰 아르크에게 무서워하며 별 말도 못하고, 아르크는 하는 수 없이 자기 조를 끌고다닌다. 곧 외부에서 이방인들을 만나며 전투가 벌어진 위고 분대. 소수에 불과했지만 에버른은 적을 공격하기 망설여한다. 답답함이 폭발한 아르크는 자신이 무참하게 처리하고는 에버른에게 참디 참은 한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무서워? 그렇게 무서우면 따라오지를 말았어야지.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주면 안되잖아. 안 그렇냐고 씨발!
모두가 다 있는 앞에서 에버른에게 호통을 치는 아르크, 에버른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서있다.

그런데 에버른은, 정말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한다.

죄송합니다.. 정말.. 정말.... 처음에는 용기를 내고 싶었는데.. 너무 어려서... 너무 미안해서...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사실. 그 말에 아르크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바라보지 않은 적의 얼굴을 바라본다. 부숴진 가면 사이로 보이는 어린 얼굴. 그 말에 주변 사람들 모두 말이 사그라든다. 아르크는 그 얼굴을 보자 다시 한 번 힐베스라는 남자가 보여준 기억이 아른거린다. 아이들을 죽이는 어른들. 복잡하고 찝찝한 기분 속, 아르크는 욕을 내지르고는 자리를 피한다. 다른 곳에 있던 아웬은 무슨 일이냐며 쓰러져있는 에버른을 일으킨다.[11]

아르크는 곤두선 신경에 계속 되뇌였다. 그래서 어쩔거냐고. 전쟁은 저들이 일으킨 것이다. 처음부터 이런 전쟁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누구도 고통받지 않았을 거다. 누가 죽든, 누가 죽였든.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도덕이니 뭐니 신경을 쓰면 결국 자신만 고통스러운 것이라 확신한다. 오히려 복잡한 생각은 자신을 병들게 한다고. 아르크는 그렇게 곱씹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아직 숨쉬는 어린 적을 죽여버린다. 그 모습에 기겁하는 조원들. 그리고 아르크는 본인이 대신 죽을 게 아니라면 절대 망설이지 말라는 말과 함께 홀로 다시 숲을 걸어간다.


030 전조
이곳이.. 전쟁을 끝낼 열쇠야.
발렌의 말 중

반복된 작전의 끝. 정말 우연히 또한 마침내 적의 본진을 찾아낸다. 끝없는 숲과 들판, 크고 작은 강이 뒤엉킨 이곳에서 적의 본진을 찾았다는 건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증거다. 하문은 드디어 전쟁의 실마리를 찾았다며 기뻐한다. 그건 위고 분대의 몫이다. 하문은 처음으로 기쁜 표정을 보이며 위고를 격려한다. 위고는 아이들에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스물세명의 분대원들은 이틀동안 완전한 정비시간을 가진다. 이제는 군인놀이가 지친다는 시빌렌더. 아웬은 초를 치듯이 우린 군인이라며 재미없게 대답한다. 하지만 결국 이 전쟁이 끝나는 것은 확정이다. 적의 허를 찌른다면 더 이상 누구도 고통받지 않을 수 있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창고, 짚포대에서 검을 끌어안은 채 누운 아르크는, 그날 이후로 여전히 고민에 빠져있다. 그것은 고민이라기보단 해결될 수 없는 괴로움이다. 3년 무려. 3년이란 세월동안 자신은 이곳에 있다. 동생들의 거처도 알 수 없다. 자신의 미래도 알 수 없다. 불분명한 신분으로서의 자신과, 파실라 가문으로서의 자신. 어쩌면 잊고 싶었던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잘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무엇하나 안정적인 건 없다. 그렇게 아르크의 마음 속은 오히려 전쟁이 끝나간다는 사실에 오히려 괴로워한다. 그때 늘 그렇듯이 아르크의 말을 들어주던 로운이 나타난다. 반가움의 미소도 잠시, 곧 뒤따라온 사람을 보고 표정은 구겨진다. 에버른이다.

사과.. 사과 드리고 싶어서요. 그때..

두서없이 서투른 말로 우물쭈물 말하는 모습에 이유를 직감한 아르크는, 한숨을 쉬고는 높은 포대에서 내려온다. 아르크는 로운을 노려보지만 로운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곧 아르크는 에버른을 격려하고 보내주고, 아르크와 로운은 자주 그랬듯 대화를 가진다. 에버른에게 사과를 시킨거냐고 묻는 로운, 전혀 자신이 그런 게 아니라고 반박한다. 그렇게 대화를 주고 받는 아르크. 로운은 아르크는 그만큼 3년이란 시간동안 가까워졌다. 누구에게나 늘 날카로웠던 아르크였지만 로운에게만큼은 그저 고민많은 애다.

전쟁이 끝나는 게 두려워?
두렵긴 지랄이.. 당연히 끝나야지. 그런데 그냥..
뒷말을 잇지 못한다.

로운은 오래전부터 아르크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는 건 안다. 언젠가 자신에게도 알려달라는 로운. 아르크는 너에게라면 알려줄 수 있다며 웃고, 홀로 남은 아르크는 창고 벽에 기대서 오히려 로운이 있다면 괜찮을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진다.


031 새벽숲
이쪽으로! 이쪽으로 와!
흩어지고 있는 팀을 이끄는 로운

이른 새벽, 위고 분대는 짙은 안개가 내리깔린 가시나무 숲을 지난다. 로운, 아웬, 아르크를 주축으로 한 3개의 조. 도시의 본대는 얻은 정보를 토대로 적을 기습하기 위해 우회한 사이, 위고 분대는 유사시를 대비하여 기지 주변을 정찰한다. 싸늘한 분위기지만 익숙했기 때문에 워낙 긴장감이 없는 상황 속, 가장 후미에 있던 동료가 사라진다.

에버른?
한트가 에버른을 찾아 나서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좁은 가시거리 탓이라며 넘기는 시빌렌더. 그래도 확실한 게 낫지 않겠느냐는 말에 로운이 뒤를 돌아본다. 그런데 난데없이 안개 속에서 적들이 나타나고 난전이 벌어진다. 로운은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지만, 아무런 기색도 없이 나타난 건 분명히 매복과 다름없다. 피아식별도 도망도 쉽지 않은 가시나무 숲. 로운은 적에게는 혼란을 주고 아군에게는 경고하고자 아르크아웬에게 숲에 불을 지르고 북쪽으로 이동할 것을 명령한다. 하지만 아르크은 오히려 가까운 남쪽 평원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고, 아웬는 그렇게 하면 장애물이 없어 우리가 전멸할 텐데 말이 되느냐고 소리친다. 두 사람의 신경전. 고민 끝에 로운은 아르크의 결정대로 명령하고 각 조는 죽기살기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마지막까지 아르크를 노려보는 아웬이였다.

거칠게 불타오르는 화마가 숲 전체를 혼란에 빠트린다. 아르크의 조에서도 결국 부상자가 나오고, 동료들은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묻지만 아르크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며 그들을 놓고 자리를 떠난다. 목매어 부르는 소리에 이미 익숙하다며 벗어나는 아르크. 시빌렌더는 옳은 선택이라고 맞장구를 치지만 아르크는 갑자기 걸음을 돌리더니, 다친 동료를 업고 이동한다. 그러나 결국 동료는 과다출혈로 죽게되고, 불길 한가운데에 시체를 놓고 온다. 시빌렌더는 자신들이 도대체 후방에 있는건지 최전선에 있는건지 분간이 안간다고 중얼거린다. 아르크는 그 말을 듣자 이상함을 느끼고, 직감적으로 큰 위기라는 걸 깨닫는다. 만약 적들이 양동작전을 펼치고 우회하여 이곳으로 오고있다면? 아르크는 시빌렌더에게 분대를 맡기고 홀로 로운을 찾아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032 생환자

한편 로운은 거세지던 불길이 새벽이슬과 습기에 의해 잦아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위적으로 조작된 불은 계속 마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다. 불길은 점차 약해지고, 언제 이방인들이 나타날지 모른다. 적들의 숫자는 이상하리 만큼 많았다. 그러나 위험하다고 해서 자신이 나설 수도 없는 노릇. 로운은 스스로 자신이 위고였다면 어떻게 판단했을지 복기한다. 그때 로운을 찾아 돌아온 아르크가 합류하고 아르크는 적들이 남부 평원을 돌아 아군을 기습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제대로 된 방어병력도 없는 지금. 이방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전선을 뚫고 얼마든 도시로 들어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도망가봤자 답은 없어. 할 사람은 해야해.

아르크는 로운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때처럼. 두 사람이 죽을 위기를 겪었던 그때처럼. 하지만 로운은 한사코 아웬을 위험에 빠트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르크는 네가 망설이면 우리가 뭘 할 수 있냐며 밀어붙인다. 로운은 현실적으로 정말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묻지만, 다른 방향에서 돌아온 아웬이 진실을 전한다.

아르크 말이 맞아. 땅이 울려. 적이.. 적이 오고있어.

아르크는 주변을 둘러본다. 모두 지친 모습. 몇 번이고 위험한 일을 겪어왔지만, 그 중에서 몇명이 살아남을지 알 수 없다.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토록 위고노베른이 말했던 교전수칙. 위험이 있으면 피하라는 논리를 정면으로 들이박는 일이다. 아르크는 그저 로운을 바라볼 뿐이다. 로운은 눈을 지끈 감고, 작전을 계획한다. 말을 타고 이동하는 이방인들의 습성상, 적들은 무조건 평원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평원을 가로막는다면 적의 이목을 끌 수 있노라고 생각한다. 곧 아르크가 두고 왔던 시빌렌더와 동료들까지 모두 합류하고 로운은 다시 조 단위로 작전을 하달한다.

아웬은 로운에게 저번처럼 무리한 일은 결코 하지말라고 말한다. 그 말에 아웬의 손을 꼭 잡는 로운. 각자 서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각자의 자리로 이동한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기회를 놓치기 위해 움직인 위고 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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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는 없다.

하지만, 작전은 성공하지 못한다. 혼선을 주기위한 계획은 곧 힐베스의 등장과 함께 대부분의 동료들이 처참하게 학살당한다. 그는 무려 아르크가 데려오지 못했던 동료 에버른의 머리를 들고 있었다. 힐베스는 그야말로 위고 분대를 학살한다. 가늠할 수 없는 강함에 그 누구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제압당한 한트. 오른쪽 팔과 왼쪽 눈을 다친 로운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동료들이 죽는 모습에 결국 목숨을 건 마법을 시전하려고 한다.

씨발... 그만, 그만해!

아르크는 그의 앞에 양팔을 서서 벌리며 대화를 시도한다. 그러자 힐베스는 자신이 악의가 없다고 대답한다.[12] 그는 어차피 자신이 아니더라도 곧 이방인들에게 모두 죽을 텐데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 게다가 아르크가 자신이 살려준 이유도 까맣게 잊었다며 비난한다. 그러자 아르크는 자신과 거래하자고 대답한다. 만약 자신들을 살려준다면,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걸 주겠다는 거래였다.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 힐베스. 그렇다면 자신을 죽이라는 말과 함께 아르크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아르크는 살아남기 위해서 죽기 살기로 힐베스를 공격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아르크는 힐베스와 대등하게 맞서고, 결국 그의 가슴에 검을 찔러넣어 싸움에서 승리한다. 떨떠름한 승리. 괴리가 있는 승리였지만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몇명 뿐. 그렇더라도만로운은 두려워하는 내색이 없다. 그저 숙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이 희생해야 한다고. 누구하나 제대로 된 힘을 낼 사람이 없다. 마치 오래전, 로운과 아르크가 죽을 고비를 넘겼던 때처럼. 로운은 만신창이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적을 막아야 한다고 말하고, 결국 살아남은 전원이 이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예상대로, 저 멀리. 흐려지는 안개 너머로 이방인의 군단이 진군한다.


033 하늘베기

작전은 실패했다. 적들이 다가온다. 아웬은 로운을 끌어안고, 발렌도, 한트도, 시빌렌더도, 누구 하나 희망을 보지 못한다. 구원하러 오는 자는 없으며, 죽음은 당장 딛은 땅만큼 가깝다. 하지만 아르크는 두려운 내색이 없다. 아르크는 로운에게 간다. 로운만이 바로 서서 상황을 직시하고 있다. 아르크는 이제 남은 방법은 너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마치 비겁한 재촉이다.

이제는 해야해

아르크는 자신이 우스웠다. 많은 고통 속에서도 무엇하나 의지하지 않던 자신이, 스스로보다 대단하지도 않고 어쩌면 멍청한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있다. 아르크는 그런 로운을 바라본다. 그렇다. 이건 죽음이 아니다. 우린 죽지 않을거라고 확신한다. 아르크는 로운에게 이제는 해야한다고 말한다. 설령 로운이 죽을 위기가 닥칠지언정. 로운은 해낼 것이라고. 그것이 어떻게든 안케나의 귀신에게 살아남는다면 로운이 자신들을 살려줄 수 있으리라 믿은 까닭이다.

알아.

지평의 사선을 메울 만큼 많은 적들이 오는 지금, 로운은 그들 앞으로 걸어간다. 아르크는 울먹이고 있는 동료들을 엎드리게 만들고, 자신도 여파에 대비하기 위해서 몸을 숙인다. 하지만 아웬은 로운이 뭘 하는거냐며 걱정하는 마음에 뛰어간다. 아르크는 잡아야했다. 하지만, 아르크의 마음 속 하나의 생각이 스친다.

너에게 아웬은 필요한 존재일까? 그래… 차라리…
아르크의 독백

아웬에게 손을 뻗으려는 아르크는, 차라리 로운을 얽매는 아웬이 없다면. 로운과 더 큰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차라리 로운과 원로회의 인연이 사라진다면. 그 원로들을 모두 숙청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아웬은 로운을 껴안는다. 귀와 코에서 피가 흐르는 로운을 보며 걱정하고, 로운도 아웬이 자신을 끌어안자 흐트러진다. 로운이 조금이라도 실수한다면 아웬은 도륙날 것이다. 곧 하얀 광원이 주변으로 퍼지며 시야를 가리고, 로운은 아웬을 끌어안는다. 그리고. 한순간 빛이 세상을 덮는다.


034 다로시

거짓말처럼, 그들은 모두 살아남았다. 로운의 마법에도 휘말리지 않았다. 그것은 기적이었고, 사람들은 전쟁이 끝났다고 확신한다. 따스한 여름이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바뀐다. 전면전이었던 전투는 대부분 소탕 임무로 바뀌고, 수색대의 역할도 과거보다 훨씬 축소된다. 아르크의 임무 역시 전쟁 후 재건을 위해서 폐허들을 확인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한 도시에서는 내부를 지키던 중앙마법사들을 도시 밖으로 파견한다. 그 중에는 아르크에게 당돌하게 직진하는 여성, 다로시도 있었다.

너 보기보다 엄청 쑥맥이네?

대뜸 자신을 놀리는 여자에게 화를 내려던 아르크는, 일방적인 태도의 다로시에게 점점 이끌린다. 잔인하고 힘든 일도 없어진 마당에 늘 기지에 머물렀던 아르크는 계속 다로시와 마주친다. 점차 가까워지는 분위기 속, 의외로 말도 제대로 못하는 모습에 시빌렌더발렌은 아르크를 놀리고, 로운도 장난스럽게 행동한다. 아웬은 로운 넘보지말고 차라리 여자를 만나라며 놀리기까지 한다. 결국 다로시와 친해지면서 다로시는 대뜸 아르크에게 어떻게 자랐냐는 질문을 하게된다.

나는....
과거를 떠올리는 아르크, 별 다른 대답을 하지 못한다.

머뭇거리는 마음 속에는 진실에 대한 어려움과 복잡함이 있었지만, 다로시는 아르크의 눈빛이 흔들리자, 자신은 그런 것으로 사람을 가늠하지 않는다며 안심시킨다.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큰 아르크가 속이 여리다는 걸 깨달은 다로시는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하고, 세상을 좁은 시야로만 살아온 아르크는 점차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다로시를 밀어내지 못한다. 결국 어느순간 아르크는 다로시를 짝사랑하면서 아무도 없는 순간 미숙한 고백까지 이뤄지게 된다. 그리고 다로시는..

좋아.

아르크를 받아들인다.


035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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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가까워진 두 사람.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던 찰나. 아르크는 로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자신의 비밀을, 기어코 다로시에게 고백한다.[13]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다로시. 그리고 아르크는 살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고, 다로시는 그런 아르크를 안쓰럽다는 듯이 안아주며 눈물을 닦아준다. 자신이 들을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하는 그녀. 아르크는 그제서야 아웬로운에게 어떤 존재인지 자신이 알아가고 있다고 확신한다. 찰나의 감정이었으나, 아르크는 다로시라면 무엇이든 용납하고 이해해줄 수 있다고. 그렇게 착각하고야 만다.

곧 자신도 할 말이 있다며 다시 저녁에 만난 두 사람. 축제 분위기 속에서 으슥한 곳에 함께있던 둘. 다로시는 천천히 입밖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다로시는 충격적인 비밀을 털어놓는데...

오빠들이.. 그런 일을 했다는게.. 나는... 너무.. 너무 무서웠어 나는. 그래서 아무한테도 말할 수가 없었어.

다로시는 중앙마법사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자신만 알고 있었던,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던 진실. 중앙마법사들은 야만과의 전쟁 직전, 마을을 짓고 살고있던 이방인들이 정착할 수 없도록 불을 지르고 약한 아이들을 학살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다로시는 자신 역시도 그런 죄책감을 떠안고 있었다며 위로를 바라는 듯 했지만, 아르크는 머리를 맞은듯 복잡한 심경 속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그랬다. 힐베스가 보여준 건 거짓이 아니었다는 걸. 자리를 일어난 아르크는, 이제 확신할 수 있다. 이 전쟁은 원로회가 일으킨 것이라고. 그게 의도든, 의도하지 않았든.

분명 다로시는 방관한 죄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울먹이던 아르크는, 이제 뭐가 옳은지 알 수 없게 된다. 곧 적막과 함께, 다로시가 절벽에서 떨어진다.


036 서약

다시 돌아온 장면, 눈물을 흘리는 아르크의 모습. 아르크는 뒤돌아서 숨을 주경 울다가 다시 다로시를 바라본다. 그 순간 그곳에는 힐베스가 서있었다.

아르크. 이제 약속을 지킬 때다.
그의 주먹에 들어올려진 다로시는 숨이 막힌 채 몸부림치고 있었다.

힐베스는 죽지 않고 아주 멀쩡히 살아있었다. 자신과의 약속을 운운하는 힐베스. 자신이 로운과 위고분대를 살려준 대가를 치루라는 말이다. 아르크는 헛웃음을 짓는다. 자신보고 뭘 어쩌란 말인가?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런데 왜? 전쟁은 분명 다 끝났는데. 이제는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텐데. 하지만 힐베스는 아르크는 결코 본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말 직후 힐베스는 들고있던 다로시를 거의 반죽음으로 만들어놓고, 아르크 앞에 던지며 다음처럼 말한다.

파실라는 대대로 그렇게 살아왔다. 타인의 힘을 빼앗고, 그걸 바탕으로 견뎌온 족속들이지. 비록 지금은 이 구석진 세상에 갇혀있지만, 너는 그럴 그릇이 된다. 흡수해라. 힘을 얻어. 나는 괜찮다. 여태껏 나는 전쟁터에서 충분히 얻었으니까. 이제는 고대하던 네 차례다. 분명 알 텐데. 친구에게서 충분히 느꼈겠지. 네가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이라는 건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야. 성적인 것도, 친분도 아니지. 너는 그런 존재인 거다. 힘에 이끌리는.. 거머리. (아르크가 한참 반응이 없자) 해. 하지 않으면 내가 한다.

희미한 정신으로 부르르 떨며 아르크를 바라보는 다로시. 힐베스는 얼마 되지 않은 인연에 정을 들이지 말라며 계속 강요한다. 아르크는 비명을 지르며 다로시의 힘을 얻고, 힐베스는 다로시를 절벽 아래로 내던진다. 오열하는 아르크. 힐베스는 그런 아르크를 일으켜 말을 이어간다.

아르크. 너는 선택받은 거다.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나는거지. 전쟁이 끝나면 도시로 돌아가서 네 원수들에게 복수해. 네 가정을 이렇게 만들고 네 삶을 송두리째 흔든 사람들이다. 그들이 네 세상을 그렇게 만든거다. 그게 진실임을 깨달아라. 네가 그렇게 한다면, 너에게 새로운 세상을 안겨줄 테니.

힘을 얻은 아르크는 호흡을 고르고 멍한 눈으로 웃는다. 힘은 아르크를 진정시키고 또 다른 방면의 자아를 각성시킨다. 친구니 연인이니 하는 가치는 자신과 걸맞지 않다. 처음부터 이 도시는 잘못된 사회라고. 그러니 지킬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하루가 지나고 사람들은 다로시가 실종되었다는 걸 깨닫고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수색대는 곧 낙사한 다로시를 찾아내고, 아르크는 그런 다로시를 보며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당연히도 다로시의 죽음에 아르크가 관련되었을 거라 상상하지 못한다.[14] 아르크 스스로도 자신이 정말로 다로시의 죽음을 슬퍼하는건지 알 수 없다.

결국 마무리되는 사건. 원로의회 측에서는 이 일을 이방인들의 소행이라 단언하고, 그들을 소탕하는데 박차를 가한다. 머지않아 진행된 장례식 중 눈시울이 붉어진 아웬은 마지막 날 아르크와 함께 같이 있었지 않느냐며 아르크에게 따져묻는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 어떻게? 말이 안되잖아.
아르크를 의심하며

한트조차 그 말에 화를 내며 도대체 무슨 예의냐고 따지지만, 아르크는 멍하니 아웬을 바라볼 뿐이다. 이상해지는 분위기 속, 그저 아르크는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피한다. 더이상 아르크는 아무런 대화도 원하지 않는다. 아르크는 아웬을 보며 지난 3년간 느낀 감정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웬은 가치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그건 아웬을 사랑하는 로운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자신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속으로 되뇌인다. 아르크는 그렇게 자리를 빠져나간 후 다시는 위고 분대 인원들과 상종하지 않는다.


037 돌아보며

전쟁의 끝은 또 다른 전쟁이다. 아르크가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다. 이방인들을 향한 대학살.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일이다. 하지만 아르크에게는 고뇌를 씻을 열쇠에 불과하다. 그렇다. 이 전쟁은 처음부터 누군가의 의도로 시작된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마땅히 응징받아야 한다. 그런 마음이 누군가의 세뇌인지, 자신의 복수심인지는 이제 헤아릴 수 없다. 어쩌면 힐베스가 자신을 다로시로부터 해방시켰다고 생각한다. 아르크는 남은 기간동안 전쟁에서의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원로회를 향한 반란을 차근차근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전쟁은 끝났고, 그들은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 아르크는 파실라의 이름이 아닌, 그저 아르크라는 이름[15]으로.

전쟁이 끝났음에도 자신들에게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배신감이 수많은 군인들을 분노케한다. 아르크는 그들의 심리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르크의 분노는 다른데 있었으니. 도시에서 영웅 취급을 받는 아웬로운이었다. 아르크는 머나먼 곳에서 로운을 바라보고, 자신과 그들이 본질적으로 달랐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결국 무엇하나 바꿀 수 없었던 거다. 아르크는 말미에 로운과 대화하려는 마음을 결국 접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생들의 소식을 확인하곤, 먼발치에서 라한과 아리사의 모습을 확인한다.

형?
라한의 목소리, 아르크를 본듯 길 건너편에서

동생들은 순간 아르크를 보았지만, 동생들과 대화할 자신이 없었던 아르크는 곧장 그곳에서 피한다. 이제 망설임은 없다. 아르크는 동료들을 불러모은다. 무기를 모으는 그들. 끝끝내 한트는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좋다. 이른 새벽. 그들은 원로회에 잠입하기 시작한다..


038 계획
모든 것은 제자리로
원로회에 들어가기 직전 그들이 한 말

아르크의 반란군은 순식간에 중앙마법사들을 격파하고 원로회관으로 진입한다. 손쉬운 일이다. 아르크와 동료들은 사람을 죽이는데 망설임이 없다. 이미 지난 3년 그런 세월만을 보낸 사람들이다. 아르크의 목표는 명확하다. 그들은 죄인이다. 전쟁을 일으켰으며, 자신들을 몰아넣었고, 어떠한 대우도 해주지 않았다. 그러니 그들을 모두 없애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는 자신도 모른다. 사실 아르크는 성공하려는 마음조차 없다. 이것은 발길질이다. 분노에 젖어 앞뒤를 가리지 않는 망발이다.

아르크는 숨이 붙어있는 적들의 힘을 계속 빼앗는다. 도중 나타난 하문은 단번에 아르크를 바라보곤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며 저항하지만 오래 걸리지 않는다. 결국 다수의 원로들이 사로잡힌 상황. 그들마저도 모두 죽이려고 하는 아르크를 다른 동료들이 제지한다. 저들마저 모두 죽이면 도대체 어떻게 협상할 생각이냐며 제지하는 것이다. 이미 제정신이 아닌 아르크는 말리든 말든 그들을 죽이려고 하지만, 예상보다도 빠르게 대응한 중앙마법사들이 원로회관으로 들이닥치기 시작한다. 아르크는 그래봤자 적들이 자신들을 이길 수 없을거라 말하고 다시 입구쪽으로 돌아간다.

아르크의 머릿속에서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혼선되며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햇갈릴 정도였다. 반복되는 환청에는 다로시도 있다. 아르크는 괴성을 내지르고, 온전하지 못한 정신에 괴로워한다. 매순간 매순간 지금의 선택에 의문을 가지는데도 멈출 수 없다. 그런 아르크를 향해 누군가 다온다. 마주친 적은 그토록 아르크가 바라지 않았던 로운이었다.

원로회관 그 거대한 공간 속, 붉은 불길이 피어오르고 두 사람은 마주선다.


039 진실을 향하여

분노 서린 목소리가 오가는 두 사람. 로운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느냐고 외치지만 아르크는 우습다고 생각할 뿐이다. 권력의 개에 불과한 네가 자신을 처단하러 왔다는 사실이 우스웠고, 지난날 쌓아온 세월도 보이지 않았다. 불길이 뒤덮인 대회관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경계하며 천천히 원을 그리듯 걷는다. 이곳에서 싸운다는 것은 결판을 짓는다는 의미. 그 끝은 오로지 죽음 뿐이다. 아르크는 모든 걸 예상하고 있었고 어쩌면 로운을 처음 만난 순간 부터 모든 것이 예정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놈에게 무얼 말하든 거짓일 뿐이고, 놈은 아웬의 편일 뿐이었다. 아르크는 검을 꺼내든다.

결판을 짓자.

아르크와 로운은 격전을 벌이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로운은 결코 자신에게 강력한 마법을 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르크는 입으로는 로운에게 혼란을 줄법한 폭언을 쏟고, 얼마든 로운을 위협할 수 있는 공격을 이어나갔다.

등신같은 소리. 넌 아무것도 몰라. 평생 아웬만 쫓아다닐 테니 앞으로도 영영. 그렇게 평생을 살다가 죽는거야. 먼저 떠나간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이 네 행복만 찾으면서!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르크는 떠올린다. 로운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함께 싸웠는지, 아웬을 아끼는 만큼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는 걸.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로운을 이길 수 없다. 아르크는 이를 악물고 로운을 괴롭히고 예상대로 로운은 괴로워한다. 결국 로운은 아르크에게 한쪽 팔을 크게 다치고, 한 손으로 싸우게 된다. 전황은 거의 기울었다. 하지만 아르크의 체력도 충분하지는 않다. 이젠 끝내야 한다.

아르크는 이를 악물고 달려든다. 그러나 로운은 아르크의 검을 몸으로 들이받고, 가까워진 순간 폭발적인 마력으로 아르크의 정신을 제압한다. 결국 아르크는 로운에게 패배한 것 그래도 로운은 아르크를 죽이지 않는다. 이것마저도 아르크는 예상했지만, 차마 공격하진 않는다. 그것은 완패였다. 로운은 피를 토하면서도 스스로 마법으로 지혈하며 묻는다. 자신은 결코 로운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아르크는 인정한다.

네가 그렇게 짖꺼린 진실이 뭔지 말해.
하. 전쟁은...

아르크는 눈을 지끈 감는다. 온몸을 울리는 고통보다도, 머릿 속의 엉킨 생각이 더욱 아프다. 전쟁은, 그토록 자신도, 로운도, 아웬도,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든 그 전쟁은 그들이 일으킨 거다.

전쟁은.. 전쟁은 원로회가 벌인거야. 몇백 몇천명이 죽고 죽인 그 전쟁이, 우리 가족을 다 죽인 그 전쟁이.. 원로회가 스스로 벌인 전쟁이라고. 이 씨발아..

벙찐 로운의 표정 힘겹게 숨을 들이마시던 아르크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곧 문을 열고 뛰처들어온 시빌렌더가 아르크의 등을 찌른다. 의식을 잃은 아르크는 그대로 쓰러진다.


040 돌아본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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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과거, 가족, 동생, 친구, 동경, 사랑, 죽음, 그리고...

아르크는 기나긴 꿈을 꾼다. 스스로도 꿈이라고 생각할 만큼 추상적이고 몽환적인 꿈을. 그 기억의 저변에서 아르크는 헤매고 있다. 오랜 시간 속에서 언제인지 어디인지 마지막을 잊고, 미아가 되어 자신을 찾고 있다. 눈물을 흘리는 아이. 아르크의 삶은 그러했다. 하지만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주변이 아르크를 괴롭혀도 아르크는 견뎌냈다. 가족, 동생, 친구, 연인. 아르크는 다로시의 눈물을 복기한다. 그 눈물은 진심이었을까? 다로시는 정말로 나를 사랑했을까. 로운도. 아웬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래. 우리들의 고통을 이토록 키운 건 자신들밖에 모른 이기적인 존재들.. 도시. 원로회. 그리고 세상이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이 태어난다면, 새로운 삶을 산다면 그들에게 복수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꿈 속에서 스스로를 파먹으면서까지.

그런 끝나지 않을 꿈을 꾸던 아르크는, 그로부터 약 10년 후. 깨어난다.


  1. 아리사는 3살 여자아이, 라한은 8살 남자애
  2. 아버지는 이제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며, 이 도시에서 빠져나갈 것이라 말한다.
  3. 고아들은 아르크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지만, 아르크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르크를 말하지 못하는 농아로 생각한다.
  4. 어린 아이가 성인 남성을 맨손으로 죽였으니 제정신으로 보일 리 없다.
  5. 나지막하게 꿈 깨. 라고 말한다.
  6. 당연히 아이들에게 말도 안되는 일을 시키는 거라며 노베른은 소리치고 저항했지만 위고는 고통을 감내하고 자신이 직접 나선다.
  7. 아르크는 대놓고 '지랄맞네'라고 말한다.
  8. 아웬이 귀신이 어딨냐며 코웃음친다
  9. 두려움에 맞서는 눈빛이 좋았다며
  10. 안케나의 귀신, 힐베스는 대체 뭐였는가. 파실라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서 얻었는지, 이방인의 모습을 했으면서도 어떻게 도시어를 사용했는지.
  11. 이때 아웬은 도저히 아르크는 이해할 수가 없는 놈이라며 로운에게 뒷담한다.
  12. 아르크만 들릴 만큼 작게 속삭인다.
  13. 자신이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것. 아버지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도망갔다는 것. 두 동생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다는 것까지.
  14. 그 이야기가 그녀의 아버지였던 베히모스에게 전해진다. 딸의 죽음으로 슬퍼했던 베히모스는 아르크의 사연을 듣고 난민촌에서 자라던 라한과 아리사를 다른 곳에서 잘 자라도록 도와주는 배경이 된다.
  15. 노베른은 아르크에게 가족이 없다면 자신의 성을 물려받을 것을 제안했지만, 아르크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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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핵심인물 로운 · 아웬 · 아르크 · 워렛 · 아리사 · 레서스 · 슈펜 · 다일 · 라한
조연인물 한트 · 한스 · 헤이랑그 · 소프랑 · 나사린 · 단리 · 위고 · 노베른 · 시빌렌더 · 레이먼트 · 베히모스(더 보기)
설정 도시 안 윈테라 시 · 리히텐 · 아인트 · 슈타인 · 40인 의회 · 슈테헨롯 · 브레이튼 대학원 · 결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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